■ 깨알 Letter
ㅡ^제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천재 작가님의 글
늙은 꽃 / 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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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마지막 두 행....
'분별 대신
香氣라니'
복수초(일명 어름새꽃)는 왜
혹한의 눈 속에서 노란 꽃을 피울까요?
매화와 산수유는 왜
꽃샘추위에 맞서 작은 꽃망울을 터트릴까요?
인간사에 관한 例話를 하나 들어 볼까요?
고대 중국, 분서갱유로 유명한 진秦나라가 흔들리고
천하가 혼란에 빠졌던 기원전 206년 여름,
한왕 유방이 형양성에서 틀여 박혀 1년 가까이 초왕 항우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형양성에서는 식량이 떨어져 굶는 사람이 속출하였고,
대식가였던 유방은 날로 엉성해지는 식탁을 보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합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여자 생각이 나는 건 무슨 까닭일꼬?"
곁에 있던 현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그렇게 시킨 것이지요.
강남에 많이 나는 녹나무는 쇠하게 되면 왕성하게 꽃을 피우고 까만 열매를 맺습니다.
다음 세대를 남기기 위해서 입니다"
기실 진화 인류학에 따르면
인간이 원숭이(뇌 용량 800cc)에서 호모족(1,300cc)으로 진화도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는 의지의 발로였다고 합니다.~^^
위의 글발은 상상적 직관에 의거한 현자의 말이지만,
논리적 인식에 의거한 과학, 식물학에서는 '스트레스 개화 이론' 입니다.
이른바 고사 위기에 있는 소나무일수록
작은 솔방울이 많이 맺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 스트레스 개화(開花)이론
'꽃 중의 꽃'이라는 난(蘭)을 대량으로 키우는 농장에는
배아에서 여린 싹이 나면 농부들은
화분에 옮겨 심고 온실에서 정성껏 보살핍니다.
난은 농부의 노고에 보답이나 하듯
잎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하지만 농부의 정성은 출하를 앞둔 여름이 지나고
늦여름 밤바람이 서늘해지면 농부는 갑자기 심술장이로 돌변합니다.
쌀쌀한 밤에도 온실을 활짝 열어놓고,
비료는 커녕 물주기도 거르기 일쑤입니다.
애지중지하던 난에게 절박한 고통, 즉 스트레스를 줍니다.
"넌 머지않아 죽을지 몰라.
그러니까 이제 새끼를 남겨야 돼"라고 속삭이는 듯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난분마다 꽃대가 쑥쑥오르고, 이내 꽃망울을 소담스레 맺습니다.
난은 어렵사리 후세를 남기게 되었지만,
농부는 오로지 꽃대가 몇 개냐에 관심을 둘 뿐입니다.
농부는 바빠집니다.
이제 내다 파는 일만 남은 셈이지요.
난 뿐만 아니라 개나리. 산수유. 매화. 목련 등은
급상승하는 기온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른 봄에 개화합니다.
봄볕의 강한 자외선 스트레스를 받으면 꽃을 피웁니다.
식물들이 철저히 아름다운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는 듯하지만,
기실은 죽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인간도
삶의 절박함과 고통을 감내하고 절치부심의 노력으로
멋들어진 꽃을 피워 결실을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런지요.~^^
YouTube에서 'Brahms - Intermezzo Op.117-1' 보기 - https://youtu.be/YD8i0jUmbF8
■ 부석사 무량수/정일근
무량수를 산다면
이 사랑도 지겨운 일이어요
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반짝하다 지는 초저녁 별이어요
그래서 사람이 아름다운 게지요
사라지는 것들의 사랑이니
사람의 사랑 더욱 아름다운 게지요
■ 이호신 화백
30년간 현장에서 발로 뛰며 그림을 그렸다는 분입니다.
이화백이 집중해온 마을 그림과 사찰그림의 특징은 부감법과 진경입니다.
일찌기 단원 김홍도가 즐겨 사용한 부감법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대상을 화폭에 담는 기법이고,
진경산수는 관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경을 보고 그리는 화법으로 겸재 정선 등에 의해 창출된 화풍입니다.
부감법은 작가 스스로 솔개가 되어
높이 뜬 창공에서 본 장면들을 화폭에 끌어 들인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또한 현장을 고집하는 것은
겸재선생의 진경산수 정신에 따라 관념이 아닌
현실에서 포착한 실경을 보여 주자는 의도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法鼓創新(법고창신),
근본을 잃지 않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신념으로 매진했고,
지난 수십년 간의 답사와 현장 사생을 통해
그가 독자적으로 연마해 이름 붙인 화풍이 '생활산수' 랍니다.
풀이하면,
역사와 삶과 문화를 하나의 화폭에 현현코저 함이었다네요.
남명 조식 선생 말씀인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라는 이치를
그는 겸손하게도 조금은 알것도 같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