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두 번째 언약
신명기 1-2장
들어가며
신명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요단 강 동쪽,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한 일종의 설교입니다.
신명기 1장 1절을 보십시오. “이는 모세가 …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개역개정 성경의 이름인 신명기는 ‘다시 신(申)’과 ‘명할 명(命)’을 써 ‘다시,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의 삶은 광야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과거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잊지 말 것을
호소하는 동시에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권면합니다.
이러한 모세의 권면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경 속으로
1. 모세는 지난 40년 여정을 마무리하며 무엇을 회상합니까?
모세를 돕는 자들은 어떻게 세워졌으며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신 1:1-18)
출애굽한 지 40년이 지났습니다. 만약 출애굽할 때 19세였다면 이제 59세 노인이 된 셈입니다.
모세는 2세대 백성과 언약을 갱신합니다. 두 번째 언약 체결인 셈입니다.
모세의 율법 선포는 단순히 출애굽기나 레위기, 민수기의 반복이 아닙니다.
2세대 백성을 교육하고 훈련하고 교훈하는 데 목표를 둔 설교와 같습니다.
매주 교회에서 반복해 듣는 설교를 떠올려 보십시오.
1-5절은 서론부에 해당하고 6절부터 본격적으로 설교가 시작됩니다.
모세는 호렙 산 이후의 사건을 회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려는 가나안 땅과 관련해 아브라함 언약을 상기시킵니다.
아브라함 언약(8절)은 시내 산에서 확인되었는데 다시 모압 평지에서 기억됩니다.
모세가 아브라함 언약을 언급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의 언약이 연결된다는 의미이며 이어서
둘째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일하셨던 하나님이 다음세대에도 신실하게 함께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9절부터는 출애굽기 18장의 사건을 자신의 말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모세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했습니다.
모세가 지명하지 않고 제비 뽑았는데 하나님의 세우심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지도자들을 다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조장으로 세웠습니다(15절).
세워진 지도자는 재판할 때 공정하게 판결해야 합니다.
재판은 외모나 빈부귀천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모세가 직접 재판했습니다(17절).
재판은 하나님에게 속하기에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2. 모세가 회고하는 광야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 사건을 통해 백성의 불신앙이 드러났는데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신 1:19-46)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낸 사건을 언급하는데
민수기 13-14장과는 조금 다르게 설명합니다.
민수기는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보내라고 명령했다고 하는데(민 13:1-2),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정탐을 제안했다고 합니다(22절).
두 이야기가 모순되어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은 강조점과 관점의 차이로 인해 다른 것처럼 묘사될 수 있습니다.
여기 정탐꾼 사건의 상이점은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 차이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나 충돌되지 않고 조화롭습니다.
모세는 백성의 정탐 요구를 좋게 여기고 시행했습니다.
마침 하나님도 모세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정탐꾼이 파송된 동기가 아니라 그 결과입니다.
정탐꾼 모두가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한 것은 동일합니다(25절).
그런데 10명의 다수 보고는 백성을 두렵게 했습니다. 가나안 백성의 거대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28절).
불신앙의 결과는 무섭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려고 출애굽 시킨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27절). 그들의 평가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에 부닥친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과 불신앙이 갈라집니다.
모세는 백성을 위로하며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29절)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음을 환기시켰습니다(30-31절).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백성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입니다.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소수 보고자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하고,
나머지 불신앙으로 원망한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불신앙은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경솔히 행동했습니다.
아모리 족속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자신들의 열정과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완패하고 말았니다(41-45절). 참 어리석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나는 현실을 중요하게 여겨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감각 사이에서 바로 설 수 있을까요?
3. 언약을 떠난 에돔, 모압, 암몬 족속은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이 말씀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하나님의 통치는 무엇인가요? (신 2:1-23)
모세는 마지막 2년 동안의 여정을 회고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싸우지 말아야 할 민족이 있고 싸워 이겨야 할 민족이 있습니다.
에서의 후손 에돔 족속과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 족속과는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 곧 불신자에게도 하나님의 통치가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과 전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비기독교 민족이라고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그들 지역을 통과할 때 약탈해서는 안 됩니다.
양식을 얻으려면 적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불신자가 성도를 환대하지 않더라도 함부로 위해를 가해선 안 됩니다.
에돔 지역을 통과한 후 모압 지역으로 들어왔습니다(8절).
모압 족속과도 전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롯의 자손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민족과 나라가 살도록 허락하십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6-27)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의 영토를 함부로 침범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14절에 의하면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걸린 세월이 무려 38년입니다.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결국 불신앙을 드러낸 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15-16절).
4. 평화를 추구하는 언약 백성이 싸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언제 그리고 누구와 그렇습니까? (신 2:24-37)
에돔, 모압,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싸우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전쟁을 해야 할 민족을 만났습니다(24, 31절).
그들은 가나안 일곱 족속 가운데 속한 아모리 사람인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입니다.
출애굽 당시 최강 군대인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킨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발톱 없는 사자와 같았을 것입니다.
에돔, 모압, 암몬 족속이 볼 때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께서 능력을 보여주실 때가 도래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모세는 헤스본 왕에게 에돔과 모압,
암몬에게 했던 것처럼 양식과 물을 돈 주고 구매할 것이고,
지나갈 큰 도로만 허용해 주길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만 부탁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과 싸우라 명령하셨고 땅을 차지할 것임을 천명하셨습니다.
그렇게 모세와 이스라엘의 명성을 천하만민이 알도록 할 작정이셨습니다(24-25절).
모세는 그 일의 실행을 아주 합리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외교적 노력을 통해 정중히 요청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헤스본 왕은 모세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출애굽을 요청했을 때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이 완악했던 것처럼 시혼도 그랬습니다(30절).
30절을 보십시오.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시혼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전쟁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신 것이었습니다.
야하스에서 벌어진 전쟁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사람들을 진멸하고 육축과 물건은 남겨 전리품으로 사용했습니다(34-35절).
지역은 아르논 강 북쪽입니다.
아르논 강은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데 강의 남쪽이 암몬 지역입니다.
강 남쪽은 이스라엘이 침범하지 못했지만,
강 북쪽은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때문입니다(37절).
하나님의 백성은 평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때로는 싸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언제일까요? 그 싸움에 하나님이 함께하실까요?
한 주간의 실천/ 잠시 교회를 떠난 형제자매에게 평화의 인사 전하기.
마무리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의 역사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민낯,
불신앙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으로만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교훈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불신앙의 길을 피하고 하나님만 신뢰하고 따르기 바랍니다.
찬송: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