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딸은 어떤 인연으로 내게 왔을까.
과학적으로는 사람이 처음 수정될 때 조합되는 유전적 정보의 반은 어머니로부터, 반은 아버지로부터 온다고 한다. 사람은 짝을 이루는 46개의 염색체를 가지는데, 그중 한 쌍의 성염색체가 성별을 결정한다고도 한다. 어쨌든 딸은 나와 아내의 유전적 특성 조합에, 아들이 흔한 우리 집안 내력을 거스르고 태어난 나의 분신이다.
딸내미가 예정일보다 20일 앞서 아기를 출산했다. 몸무게가 평균보다 훨씬 못 미치는 사내아이다. 아내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고, 나는 그다음 날 손자와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대면했다. 정말 조그맣다. 사위는 눈도 겨우 뜨는 아기를 두고 병원 아기들 중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자랑한다.
산부인과에 딸린 산후조리원에서 유리창을 통해 한 번 더 대면을 했다. 처음 봤을 때와 별반 다름이 없다. 퇴원 후의 몸조리는 경찰 지구대에 근무하는 사위의 업무 특성을 감안하여 딸의 집에서 하기로 했다. 딸내미는 퇴원하면서 아내 편으로 백일 동안은 상가에 가지 말라고 당부를 해왔다. 나는 삼칠일까지만 안 가면 되는데 뜬금없이 왜 저러나 하고 가볍게 흘려들었다.
아내는 편도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를 오가며, 사위가 야간 근무에 들어가면 잠도 자면서 딸과 손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딸도 수시로 손자의 온갖 표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가족 대화방에 올렸다. 돌 때 하객들에게 보여줄 성장앨범을,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직접 만들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떨어져 있어도 곁에 있는 것처럼 손자를 맘껏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뤘던 손자와의 맞대면이 우리 집에서 60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한번 울면 감당이 안 된다는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있어서 바짝 긴장했는데, 이날 따라 이상하게도 울지 않는다. 눈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는지 온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한다. 까만 눈망울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맨살의 다리를 통해 전해져 오는 체온은 나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그렇게 대면한 손자는 부모 품에 안겨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생후 첫 장거리 여행으로 차멀미가 났는지 밤새 울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딸내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파트 주민들 보기가 민망해서 밖에도 못 나갈 지경이란다. 손자가 나 때문에 아픈 것 같아 안타깝고 죄지은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몸이 피곤해도 딸을 위해 더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렇게 손자가 집에 왔다 간 지 꼭 1주일 만에 난처한 일이 발생했다. 매월 한 번씩 모이는 퇴직자 모임 회장의 자당께서 노환으로 별세한 것이다. 손자가 태어난 날로부터 떠져서 삼칠일은 진작 넘었고, 백일은 모자란다. 가려니까 딸내미가 당부한 말이 생각나서 잠시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문상을 안 가자니 내가 알고 있는 금기사항과 맞지 않다. 또 일전에 장모님 상을 치를 때 찾아준 데 대한 답례 성격도 있다.
이런 사정을 딸네 집에 가 있는 아내에게 문자로 보냈더니 문상을 하고 난 뒤 여러 곳을 들러 나쁜 기를 흩고 오는 등 몇 가지 방책을 일러준다. 문상을 하고 왔더니 딸이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와서 난리가 났다.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도 상각에 가서 손자가 부정을 타게 되었다고 당분간 보지 말자고 한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바로 반박을 했다. 인터넷의 아기 출산 후 금기사항에는 삼칠일만 지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얻은 결론은, 이것은 민속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미신(迷信)과 관련된 일이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아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딸과 달리 내가 심지(心志)를 단단히 해야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선 금기사항의 원류인 옛날 사람들의 형태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다. 용케도 일곱 살 터울의 막냇동생이 태어날 때를 기억해 냈다. 호기심 많은 누나와 나는 안방 창호지 문을 뚫고 어머니가 동생을 낳던 장면을 훔쳐봤었다. 백열등 밑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핏덩어리 아기의 탯줄을 끊던 장면, 대문 위에 새끼줄을 달아 고추, 숯, 솔가지 등을 끼워 놓았던 장면, 그 금줄을 오랫동안 걸어 놓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이것을 증명이나 하듯, 국어사전에는 ‘세이레’를 ‘아이가 태어난 후 스무하루 동안, 또는 스무하루가 되는 날.’이라 해놓고 ‘대개는 이날 금줄을 거둔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인터넷에서 얻은 출산 후 금기사항에 대한 지식도 보태졌다. 옛사람들은 갓 태어난 아기와 산모가 외부 세계의 부정(不淨)에 매우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방비책으로 금줄을 걸어 외부인의 출입을 경계하고, 산모와 직접 접촉하는 내부인은 상가와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귀신이 붙어 온다는 명분으로 아예 출입을 금했다. 결국, 금기사항은 산모와 아기에게 전염병을 옮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상의 슬기로운 지혜라고 하겠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이런 풍습이 남아있게 된 데는, 새 생명의 탄생은 시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신성시 여긴다는데 기인한다. 출산의 ‘의료화’가 만연해졌음에도 금기사항만큼은 일부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거의 2주 정도 지내게 프로그램화하여 외부인과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좋은 본보기이다. 따라서 금기사항의 상징인 대문에 금줄을 치던 풍습은 사라지고, 삼칠일까지 궂은일을 보지 않는 심리적 전통만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 옛것을 중시 여기는 집안은 칠칠일(49일)까지 금기의 기간을 확장하는 사례도 간혹 있다고 한다.
이런 사항들을 모두 조합하여 볼 때, 나와 같이 출산 후 10주째에 접어들었다면 금기사항은 벌써 해제되었다고 하겠다. 아내가 딸내미 집에 갈 때, 이러한 내용들을 주지시켜 내 입장을 분명히 해서 보냈더니 딸한테서 사과의 전화가 왔다. “아빠, 부정 탓다고 말한 부분에 신경 쓰지 마세요.” 나도 딸의 말을 따라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담아 격려를 했다.
“딸내미,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일이 수없이 반복될 텐데 부정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이겨 내거라.” 4일 만에 딸이 손자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좀 미안하기도 하고 어색하다. 그래도 손자를 보니 정말 기분이 좋다. 그동안 많이 큰 것도 같고 표정이 그때에 비해 제법 어른스러워 보인다. 딸의 사과 차원의 짬을 낸 방문이라 잠깐 대면만 하고 헤어졌다. 손자를 보내고 나니 많이 허전하다. 눈을 감아도 계속 눈에 밟힌다. 세상이 많이 힘들게 변해가고 있다. 미래 세대의 앞날이 갈수록 더 불투명하다고 한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손자가 이 어려운 세상을 부정 타지 말고, 굳건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