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미도 걷기 전/정동윤
월미도에서
모노레일을 탈 때
산 중턱 벚나무 군락을 보며
혼자라도 걷고 싶었어요
이제 두 명의 동반자가
손들고 따라붙으니
월미도 한 번
징하게 걸어보기로 했죠
꽃길은 마음으로
섬 바깥 풍경은 눈으로
반달의 꼬리 닮은 섬의 둘레길
기대하며 기다렸죠
처음 가지만
누군가 먼저 다져놓았고
또 누군가가 꿈꾸며 따라올 길
낯선 길에 대한 흥분과
길 위의 여유
비 온 뒤에 거니는 봄날의 오후
쌀쌀해진다는 예보 챙기며
가만히 가만히 다녀오렵니다
2.혼자 걷는 달꼬리섬/정동윤
가끔 본의 아니게
약속이 뒤집힐 때가 있다
함께 월미도 탐방하려든 도반에게
문제가 생겨 모임은 취소되고
내가 안내할 코스나
월미산 숲 해설의 부담이 없어지고
달꼬리섬을 혼자 걷기로 하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심한 미세먼지에도 머릿속은 쾌청
마주칠 풍경마다 감동을 준비하고
발길 닫는 대로 길이 보이는 대로
느끼며 출렁이며 나아가련다
인솔하고 앞서는 무거움에서
오롯이 나만 챙기는 가벼움으로
깨어진 약속이 주는 파문에도
물결은 또 한 번 힘껏 뒤척이며 흐른다.
3.월미도 걷기/정동윤
인천역에 도착하니
해는 중천에 그림자는 짧았다
월미 바다역에서 월미공원 역까지
머리 위의 모노레일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하였다.
처음 가는 길은
들머리를 확실히 잡아놓으면
걷는 여행은 한결 수월해진다
월미도 안으로 들어서니
인천항 제7 부두의 노무자들이
인근 식당으로 줄줄이 들어선다
나도 덩달아 점심을 일찍 먹고
느긋하게 걷기로 마음 먹었다
걷는 도중에 배가 고프면
걷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일단 몸 속의 외침을 진정시키면
나머지 걷기 조직들은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8천 원의 제육볶음을 시키니
순두부와 생선조림, 상추까지 푸짐하니
여유롭게 천천히 상을 비웠다
구속이나 압박이 없는 자유,
오늘 일정은 시작부터 순풍이다.
숟가락 놓고 봄 풍경 속으로 들어가니
벚꽃 날리는 바람이 꽤 차갑다.
며칠간 화창한 봄 날씨였는데
이틀 동안 내린 비에
전체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일기예보에 맞춰 옷을 챙겼으니
꽃샘바람도 그다지 두렵지 않다.
월미 공원에서
해군 2함대 주둔 기념탑과
퇴역 함정 등을 살펴보고
벚꽃 만개한 둘레길로 들어섰다
월미 둘레길 따라 한참 걸으니
지루한 기분이 살짝 들어서
월미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골라
덱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관리가 잘 된 포장 길이라
걷기도 편하고 울창한 수목들로
공기는 쾌적하게 느껴졌고
쌀쌀한 꽃샘 추위에도
트레킹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 2~30 명이
현장학습 나왔는지 시끌하다
월미산 정상까지 아이들과 동행하며
인생의 봄날이 얼마나 화창한지
귀에 쟁쟁하게 들려왔다
산 정상에서 만난 중년 분께
사진을 부탁하니 흔쾌히 들어주었다
조금 아래 우뚝 선
전망대 타워가 보이기에 가까이 가서
5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 가
주변을 살펴보니 풍경이 환상적이다
4층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니
내 또래의 시니어들이 서비스를 하는데
얼굴 표정들이 한결같이 환하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월미도 풍경에 빠지는 행복한 시간,
앞으로 전망대 카페에 자주 와야겠다
이따금 가는 인왕산 초소 카페보다
분위기 시설 커피 맛 등이
훨씬 우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입맛은 늘 긍정적이라는 약점이 있다
집에서 10 분 걸으면 서울역,
서울역에서 1 시간 남짓이면 인천역,
인천역에서 1시간 정도 걸으면
월미도 전망대 카페에 닿을 수 있으니
내 일상의 반경에 끼워도 될듯하다
바다 풍경을 커피로 즐기다가
이민사 박물관으로 내려왔다
이쪽에서 바라보는 일몰 풍경은
아주 기가 막힐 것 같았다
이민사 박물관을 둘러보고
인천항 갑문 홍보관 주변을 살핀 후
둘레길 따라 한국 전통정원으로 오니
바로 월미 공원역이다
오늘 나들이에서 남겨놓은
월미문화의 거리는 다음으로 미루고
인천역으로 와서 1호선 전철의
맨 뒤 칸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