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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 직원신앙부흥회 04낯선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 - 박상길 목사
정말 나한테 따뜻하고 친절하던 사람이 어느 날 낯선 모습을 보일 때 충격도 되고 또 힘들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그런 경험을 아마 여러분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다가도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말하지, 왜 이렇게 행동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요셉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창세기 37장에서 애굽으로 팔려가고요.
39장에서 보디발의 가정총무가 되고 그다음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40장에서는 이제 떡 관원장과 술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41장에서는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나서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고 7년 동안 애굽의 총리 역할을 아주 완벽하게 수행을 하게 되죠.
이 모든 기간이 20년입니다. 20년 이 20년 동안 요셉은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반항 한 번, 불평, 한 번 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된 후에도 자기의 무죄함을 알고도 종신 감옥에 보낸 보디발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옥에서 나가게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2년 동안 까맣게 입고 있던 술 권 원장에게 당신 정말 사람이 그럴 수 있냐 이렇게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처럼 착하고 순한 사람이 세상에 없어요. 그런데 이런 요셉이 형들과의 만남이 시작되는 창세기 42장에서부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이전의 요셉과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여기 여러분 창세기 42장 7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을 보고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채 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20년 만에 만난 형들이에요. 물론 밉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혈육이고 그다음에 형들입니다.
뭐 한방 그냥 주먹을 날리고 싶기도 하지만 또 끌어안고 울고 싶은 형들입니다.
그 심경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이럴 때 자기의 마음을 딱 감추고 이렇게 하는 것 여러분 이거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런데 요셉이 냉정합니다.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어요.
여러분 이런 요셉은 창세기 41장까지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요셉입니다.
낯선 요셉인 것이죠. 다시 42장 9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꿍꿍이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요셉이 압니다. 형들이 정탐꾼이 아니라는 것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 누구보다 잘 알아요 요셉이 그런데 뒤집어 씌운 것입니다.
너희는 정탐꾼이다. 그러니까 형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뭐 그렇지 않고 어쩌고 저쩌고 하니까 또 말합니다.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낯선 요셉입니다.
요셉은 이전에 한 번도 누구를 향해서 이렇게 독한 말을 한 적이 없고, 누명을 씌운 적도 없고, 거짓말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근데 요셉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끝이 아니죠.
그들을 다 함께 3일을 가두었더라. 낯선 요셉입니다.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가 죽을 거야.
여러분 요셉이 누구를 뭐 너 잘못하면 너 죽어 이렇게 말하는 농담으로도 그렇게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근데 지금 형들에게 말하는 거 동생 안 데리고 오면 너희가 죽을 거야.
데리고 오면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24절.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앞에서 결박하고 냉정한 요셉입니다.
낯선 요셉. 그 후에 요셉은 곡식 값을 자루에 도로 넣었으므로 정말 이 형들을 극심한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보라 자루 속에 돈이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리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고 곡식 사 왔는데 가다가 열어보니까 곡식 자루 속에 돈이 그대로 다 들어있는 거예요.
여러분 돈 보면 사람이 공돈 생겼으면 좋다. 그럴 것 같은데, 이 형들이 지금 막 그 돈을 보고 혼이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선의로 아유 내가 형들한테 어떻게 곡식 값을 받겠어?
이렇게 해서 돈을 넣어준 것이 아니라 이런 반응을 예견하고 함정을 판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곡식 가져가서 먹는 내내 이 형들이 밥 먹을 때마다 밥이 맛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먹을 때마다 막 그냥 이거 이거 큰일 났다. 이거 이거
43장에서 요셉은 베냐민에게 5배의 음식을 주어서 형들의 질투를 자극합니다.
낯선 요셉입니다. 44장에서 요셉은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는 시험으로 형들을 최악의 공포로 몰아놨습니다.
말할 수 없이 낯선 요셉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요셉의 냉정하고 가혹한 또 치밀한 시험은 거의 1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요셉의 형들은 이러다가 처형되지는 않을까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공포에 휩싸여서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과거에 지은 죄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게 정말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 인정사정 안 봅니다. 피를 말려 죽이려는 사람들처럼 계속 형들을 몰아붙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낯선 요셉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왜 이렇게 갑자기 변했을까요?
그 착하고 순진하고
절대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던 요셉이 갑자기 왜 이렇게 형들을 향해서 이렇게 지독한 공격을 계속할까요?
왜 요셉이 첫 만남에서 넓은 마음으로 형들을 용서하지 않았을까요?
왜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로 대하지 않았을까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요셉이 왜 형들은 이렇게 지독하고 치밀한 시험으로 1년 동안 괴롭혔을까요?
그래서 창세기 42장 이후에 요셉은 우리가 이전에 알던 요셉이 아닙니다.
낯선 요셉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요셉이 처음 형들이 와서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을 절하는 모습을 보고 그 순간에 형 나야 내 요셉이야 그랬으면 그래서 다 나는 이미 다 용서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빨리 가서 아버지와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그랬더라면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여러분 그런 요셉이 더 멋있지 않습니까? 딱 그냥 한 방에 지난번에 니가 내 돈 훔쳐갔지 다 용서했어.
걱정하지 마. 이게 훨씬 나 그게 요셉다운 것 같은데 만약에 그렇게 했더라면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형들이 요셉의 말을 믿었을까요? 안 믿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믿으시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길로 도망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알아요. 자기들이 한 일이 그렇게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여러분 그 증거가 창세기 44장에 있습니다. 50장에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여러분 야곱이요.
130살에 애굽에 와서 147살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난 지 17년 후에 형들이 한 말이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형들이 무슨 걱정이 된 거예요?
요셉이 아버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버지 때문에 우리를 해코지하지 않았는데 이제 아버지 돌아가셨으니까 틀림없이 뭐야 복수할 거야 그래서 겁이 나가지고 제발 우리 좀 살려달라고 총리 요셉을 만난 지 17년 후에도 이렇게 벌벌 떨고 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요셉이 형 이제 다 괜찮아 용서했어.
이제 우리 행복하게 살자 그랬으면 이 형들이 요셉의 말을 믿었겠냔 말이에요.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즉시 형들이 도망칠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에게 자기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하지도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형제들을 아버지와 형제들을 안전하게 애굽으로 데리고 올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낯선 요셉이 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우리가 지금까지 확인한 낯선 요셉입니다.
낯선 요셉 친절하지 않습니다. 따뜻하지 않습니다.
찬바람 나는 요셉이 냉정한 요셉입니다. 시험하고 신문하고 괴롭힙니다.
누명도 씌우고 죽이겠다고 위협도 합니다. 여러분 이런 요셉은 우리에게만 낯서는 것이 아니라 요셉 자신에게도 낯섭니다.
이렇게 하기 싫어요.
자기도 빨리 내가 누군지를 형들에게 밝히고 아버지와 베냐민을 데리고 오고 싶은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온 집안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에 요셉은 낯선 동생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낯선 요셉이 구원자 요셉입니다. 낯선 요셉이 사려 깊은 요셉입니다.
낯선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어 내는 요셉입니다.
여러분 인생길을 걸어오시면서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낯선 때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간절한 기도에 침묵하실 때 하나님은 낯섭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내가 기대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은 낯섭니다.
자녀를 하나님 뜻대로 양육한다고 내 나름대로 모든 노력을 기울였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낯섭니다.
건강, 기별, 순종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암 진단 받았을 때 하나님은 낯섭니다.
이럴 때 우리가 당황하게 되죠. 하나님이 왜 이러실까 하나님이 친절해야지, 하나님이 따뜻해야지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건 들어주셔야 하나님이지 왜 이러시지 왜 냉정하시지 왜 날 힘들게 하시지 낯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가면서 낯선 하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노아에게 산꼭대기에 배를 지으라 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신 하나님 약봉나루에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하나님 낯선 하나님입니다.
80세 양치기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내라 하신 하나님, 다윗을 아들남 동굴로 도망치게 하신 하나님,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지게 하신 하나님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신 하나님.
낯선 하나님입니다. 복음서에도 낯선 하나님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죠.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우와 세상에 예수님이 이런 분이라니 말이 됩니까?
어떻게 예수님이 어떤 여자를 보고
개와 같다고 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예수는 정말 얼마나 낯선 분입니까?
어느 날 베드로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어떻게 이렇게 인격 모독적인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까?
바울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육체의 가시를 빼주십시오.
빼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더 열심히 일하고 진실하게 일하고 복음에 헌신하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고만해라 됐다. 낯선 하나님이
사랑하는 여러분 낯선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당신의 뜻대로 빚어가시는 우리 안에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신뢰하십시다.
여러분 하나님이 낯설다고 해서 그분이 우리를 사랑,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낯이 아주 익숙할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낯선 때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낯선 모습 때문에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고, 낯선 하나님에게서 도망치지 마시고, 낯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낯선 요셉이 온 집안을 구원해냈던 것처럼 우리에게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하늘 본향으로 이끌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 중에서 가장 낯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욥입니다.
하나님의 낯선 모습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서 욥이 얼마나 많은 탄식을 욥기에 쏟아내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그가 그 낯선 하나님을 향하여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 너무너무 낯섭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여러분 하나님이 낯설어도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내가 구하는 것을 이루어주지 않으실지라도 우리가 가는 길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우리를 의의 길로 소망의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런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여러분 양리 양이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까요?
시편 23편에서 양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간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목자가 그리로 인도해 간 거예요. 목자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목자가 옆에 있어요. 그래서 이 양이 자기가 뭐 길을 잃고 마음대로 가다가 보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간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해 간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목자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그 똑같은 목자인데,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서는 따뜻한 목자예요.
목자는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가 기대하고 꿈꾸는 목자인데, 그 목자가 항상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고 쉴만한 물가에만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목자가 때때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 가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가 그러면 이 목자는 갑자기 낯설어지죠.
왜 이러시는 거야? 목자가 푸른 초장에만 데리고 있어야지 그건 우리 생각이죠.
쉴 만한 물가에만 있게 해주셔야지 우리 욕심이죠.
아닙니다. 여러분 목자는 우리를 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이끌어가십니다.
왜냐하면 그 길을 통과해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는 그 날이
이르러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369산병원에서 섬기시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 믿고 살아가시면서 하나님이 때때로 여러분에게 우리에게 낯선 모습을 보이실 때, 그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나님의 귀한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호세야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호세야가 말이죠.
호세아에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맞게 하실 것이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지금 호세아가 우리에게 호소하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를 찢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치시는 하나님이에요.
낯선 하나님이죠. 이런 하나님 누가 좋아하겠어요?
나 싫어하니 도망가고 싶어 하. 그런데 하나님이 왜 우리를 찢으시는가 진짜로 낫게 하기 위해서 왜 치시는가 싸매어 주셔서 우리를 완전히 그분의 곁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죠.
당신의 백성을 찢으시고 치시는 여호와 한없이 낯선 하나님이지만, 그 낯선 하나님이 우리를 낫게 하시는 치유의 하나님이시고, 싸매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다.
이제 우리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은 날마다 순간마다 아버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마다 하나님이 들으셨고 즉시로 즉시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분의 뜻을 나타내 보여주셨고 함께하셨고, 그런데 딱 한 번 예외가 있었습니다.
게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을 때
아버지 하나님이 침묵하셨습니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 번이나 같은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간절한 기도를 세 번이나 올렸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생소한 일입니까? 얼마나 낯선 일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아버지 하나님의 낯설이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늘 본향에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낯선 얼굴을 대야 했던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선 손길에 당황해야 했던 이유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선 음성에 놀라 해야 했던 이유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날까지 낯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우리 주님이 먼저 가신 낯선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는 우리 삼육부산병원 믿음의 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에 낯선 요셉이 구원자 요셉이라는 사실을, 요셉의 낯선 모습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이라는 사실을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믿음의 길을 갈 때 때때로 하나님의 낯선 얼굴을 대할 때, 낯선 섭리를 대할 때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낯선 요셉이 구원자 요셉이었던 것처럼 낯선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는 우리 삼육부산병원의 모든 구성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살아갈 때 때때로 낯선 하나님의 모습을 대할지라도 변함이 없는 신뢰와 사랑으로 우리 예수님을 따라가는 귀한 하루 되게 해 주시옵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