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한방이야기 - 거머리
교외에 나가보니 벌써 들판이 파랗다. 어느새 모내기가 끝나 6월 햇살에 벼들이 한창 자라고 있다. 지금은 트랙터로 기계이양을 하니, 한 줄로 늘어서서 모내기하던 풍경은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만 남았다. 못 줄에 맞춰 늘어서서 진흙물 튀겨가며 뒷걸음으로 모를 심어나갈 때, 걸죽한 농담과 간드러진 콧노래도 석여 나왔지만, 발목과 종아리에 흐르는 피를 살펴야 했다.
거머리는 그야말로 "찰거머리" 같이 달라 붙어 손으로 뜯어도 잘 떨어지지 않았으며, 떨어진 자리에서는 지혈이 되지않고 붉은 피가 흘러 내렸을 뿐 아니라, 상처는 나중에도 오랫동안 가려웠다. 거머리의 공포는 필자가 마지막 모내기를 하고 25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거머리가 요즘 인기 드라마 "허준"에서 심한 종기의 치료에 응용되는 것을 보니 흥미롭다.
"동의보감"에 보면 옛이름은 "검어리"이고, 한약명은 "수질(水蛭)"이다. 성질은 평성(平性 : 차거나 따뜻하지 않고 중간)이며, 맛은 짠맛과 쓴맛인데, 독이 있다고 했다. 어혈과 적취(종양)를 치료하고, 유산시키며, 이뇨작용을 하고, 월경이 나오지 않을 때 통경작용을 한다고 되어있다.
5~6월에 잡아서 바싹 말려 약으로 사용하는데, 뱃속에 새끼는 꺼내지 않으면 열을 가하고 해가 지나도 물만 만나면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유의할 내용은 "소아과의 두창(痘瘡)"을 다루는 대목이 있다. 여러 가지 치료법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에 거머리(水蛭)가 나오는 것이다. "소아의 단독 (丹毒 : 피부가 붉어지면 붓고 아픈 종양이 점점 퍼지는 병으로 난치병이며 위급한 병이다)에 거머리로 나쁜 피를 빨아 내도록 하면 최고로 묘한 효과가 있다" 그 외에도 타박상에 의한 어혈을 치료하는 곳과 월경이 멈춘 때 통경제로 쓰이는 치료법이 상세히 나온다.
다른 한의서에서도 종양에 10여 마리를 환부에 흡착시켜 피고름을 빨 아내는 치료법이 있다. 500년 전의 시대에는 이런 방법들이 쓰였던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살아있는 거머리를 빨리는 것은 그 독을 이용하는 것이다. 거머리의 독은 타액 중에 들어있는 hirudin 으로 본다. hirudin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의 응고를 막는 물질로 거머리가 사람이나 동물을 물었을 때 분비하여 출혈을 일으킨다.
산채로 쓰는 외에 일반적으로는 다른 약재처럼 말려서 사용한다. 거머리는 잘 죽지 않으므로 바싹 말리거나 실에 꿰어 말린다. 석회나 술에 묻혀 죽인 후 말리기도 한다. 생용 또는 살짝 볶아 약용으로 쓴다. 내복시 1회 사용량은 3~6g이며 환제에 넣을 때는 1.5~3g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