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복의 마지막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여! 천국이 너희 것이다”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하면 부귀영화와 만사 형통의 복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8복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이 세상에서의 복 즉 있다가 없어질 일시적인 복이 아니라 영원한 복,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복입니다.
8복은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납니다.
첫 번째 복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마지막 복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서 나의 지경을 넓혀 가느냐?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최고의 복이지만 천국에 들어가 우리의 영원한 지경을 넓히는 것 또한 영광스러운 복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천국의 지경을 넓히는 비결이 무엇이냐? 그것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상에 있는 천국 백성들에 의해 천국이 점령당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의 우리의 영원한 지경을 넓혀 갈 수가 있는데 그 방법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DFI Korea 회원 모두가 첫 번째 복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받아 천국의 백성이 다 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심”으로 영적인 영원한 부자를 목표로 여러분의 천국의 지경을 넓혀 가는 지혜롭고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의를 위해서 받는 핍박
첫째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 아닌 것”입니다.
1> 천재 지변은 핍박이 아닙니다.
지진이 나고 홍수가 나고 비가 안와 가믐이 계속되고 날씨가 뜨거워서 온도가 급강하해서 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핍박이 아닙니다.
2> 핍박은 인재입니다.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피해입니다.
3> 인재 중에서도 다른 사람의 실수로 내가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웃 집에서 불이 났는데 내 집까지 불에 탓습니다, 이것은 핍박이 아닙니다.
4>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핍박이 아닙니다.
둘째 “의를 위한 핍박”은 예수님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입니다.
기독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 올 때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집안이 망한다고 부모님들에게 매 맞고 집에서 쫒겨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핍박입니다.
불교믿는 집안에 예수님 믿는 며느리가 들어갔습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얼마나 시집 식구들이 어려움을 주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핍박입니다.
이슬람 국가에 가서 선교하다가 발각이 되어서 광장에서 참수형을 당합니다. 이것이 핍박입니다.
북한에서 지하 교회 성도들이 몰래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이 되어서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총살을 당해 죽고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가 모진 고통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핍박입니다.
핍박의 뒤에는 사단이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면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의 뒤를 이어 사망이 들어오고 죄와 사망의 왕인 사단이 세상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죄인인 모든 인간의 주인 노릇하면서 인간을 지배라고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예수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곳은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죄 가운데서 마귀를 주인으로 섬겼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새로운 주님으로 영접하여 죄 용서받고 죄로부터 해방되어 예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3가지 신분의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죄인 => 의인, 마귀의 자삭 =>하나님의 자녀, 지옥 시민 => 천국 시민.
그런데 아직 우리는 사단이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왕인 사단이 가만히 있을리가 만무합니다. 자기 수중에 있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공격하는데 그것이 핍박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즉시 천국으로 대려 가시지 이 땅에 놔 두셨느냐?
그 이유는 핍박을 받으라고 놔 두셨습니다.
왜냐하면 핍박을 통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즉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 4)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의 소망 즉 기경이 이 땅에서의 환난 즉 핍박을 통해서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단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는 사단을 정복하고 목을 밟으신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면 사단은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믿음의 선포로 기도로 사단은 결박을 당합니다.
따라서 핍박받는 사람은 핍박하는 사람뒤에서 역사하는 사단의 세력을 묶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사단을 향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물러가리”고 하면 사단은 물러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핍박은 신앙의 순수함을 지킬 때 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핍박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런데 핍박이 있을 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둘째는 타협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압니다. 심판도 압니다.
그런데 당장 닥쳐 올 핍박의 고통이 무서워서 타협하는 것입니다. 즉 일시적인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영원한 복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10:28)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총칼을 두려워 할 때 신앙을 타협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때 한국 교회에 핍박이 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교회에 신사참배를 요구하였습니다.
신사참배는 엄연한 귀신숭배이고 우상숭배입니다.
모든 교회, 목사님, 성도들은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목사를 잡아다 감옥에 넣고 교회 문에 못질을 했습니다.
그 때 2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한 목사들은 고문당하고 옥사하였으며 교회 재산은 정부에서 몰수했습니다.
그런데 타협해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다”라고 선포하고 목사들이 단체로 일본에 건너가 신사 참배를 했습니다. 그들은 사실 우상숭배인줄 알면서도 총칼이 무서워서 굴복한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영원한 수치입니다.
성경은 “죽도록 충성하라” (계 2:10)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목숨걸고 신앙생활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에서의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도 날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