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그리고 용서
오늘 예수님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십 니다. 익히 들어왔던 말씀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맥빠지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뻔히 잘못을 저지른 원수 를 무조건 사랑하라고만 하시니, 하느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계명을 통 해, 죄인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금지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가톨릭 교회에서 ‘천사적 박사’로 칭송받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자신의 철학과 신학을 집 대성한 <신학대전>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약 처벌을 하는 이의 의도가 처벌받는 이의 고통과 손해로만 향해 있고 그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면, 이는 하느님의 법에 어긋난 것입니다 …
하지만 처벌하는 이의 의도가 죄인을 벌줌 으로 해서 생겨나는 어떤 선(이를테면 죄인의 개선이라든지, 죄인을 속박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방해받지 않게 하는 것이라든지, 정의를 지키기 위함이라든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라든지)을 향한 것이라면, 처벌은 정당하게 허용될 수 있습니다.”( IIaIIae, q.108, a.1) 또한 죄에 대한 적합한 처벌은 덕스러운 행동이 기도 함을 강조하면서, 아퀴나스 성인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하는 것 못지않게 죄에 대한 처벌을 태만하게 하는 것 또한 부덕함의 소치임을 주장합니다.( IIaIIae, q.108, a.2)
원수를 사랑하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죄인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금지하는 말씀으로, 혹은 누군가의 죄와 악행을 모른 척 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 다. 어설픈 관용으로 처벌을 주저하거나 죄를 묵과하는 것 이야말로 오히려 사랑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에 무디어져 더이상 자신의 의지로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적합 한 처벌에 따르는 고통과 손해를 겪으며 정신을 다시 차리는 것만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생명의 길로 다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 도 바오로도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 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히브 12,6)고 가 르치시지 않습니까. 또한 오늘 제1독서에서도 주님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시에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인양되어야 하고, 거짓은 밝혀져야 하고, 죄를 지은 이들은 응분의 처벌 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죄인의 처벌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분노와 복수심만으로 가득 차 우리 스스로가 하느님의 사랑의 법에서 멀어져서는 안 될것입니다. 오히려 그 처벌을 통해 죄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하느님과 화해하여 참된 생명을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최규하 다니엘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