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이야기
무심코 현관에서 신을 신다가 요즈음 유진이가 번갈아 신는 구두가 세 켤레에다가 운동화가 두 켤레로 모두 다섯 켤레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한 켤레의 구두로 줄기차게 사시사철을 버텨내다가 밑창이 닳고 닳아 구멍이 나면 폐기하고 새로 장만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습관 때문인지 동시에 두세 켤레의 구두를 구입해서 번갈아 신는 것은 사치이며 낭비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떠나 우직하게 단 벌 신사를 고집한 옹고집인 셈이었다. 한데, 어린 아이가 입는 옷이나 그날그날의 행사에 걸맞게 신발도 맞춰 신는 격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친김에 유진이 신발 흔적을 살펴보고 싶었다.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았던 신발장을 열고 살폈는데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어이가 없어 하나 둘 헤아리니 자그마치 열일곱 켤레가 다소곳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비오는 날에 신을 장화 두 켤레, 눈썰매장에서 신는 방한화 한 켤레, 내년 봄여름을 비롯해 가을에 걸쳐서 신을 샌들(sandal)이나 구두와 운동화가 여섯 켤레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다가 작아져서 폐기해야 하는데도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한 계륵 같은 여덟 켤레도 면구스러운지 좌불안석의 모양새를 한 채 가지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겨우 걸음마를 하던 시절에 신던 것까지 끌어 모아 두었다면 지금의 숫자를 훨씬 상회했을 게다.
불과 육십 년 전쯤의 풍경이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이 고무신을 살 형편이 되지 못해 짚신(짚세기)을 신은 채 등교하던 예가 드물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운동화는 언감생심이고 검정 고무신을 한 켤레 사면 밑창에 구멍이 나거나 헤어져 나달나달 거려 낭패스러워도 버리지 못하고 신고 다니던 경우가 숱했다. 그 중에 형편이 곤고했던 아이들은 남이 보는 앞에서는 신을 신고 걷다가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 이르면 신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는 눈물겨운 사연도 있었다. 그 시절 특별한 계층을 제외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신 발 한 켤레 뿐이었다. 그리고 경제적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자급자족이라는 이유로 그 당시 시골의 농사꾼이나 머슴들은 짚세기를 무척 많이 신었고 가난의 늪에 빠져 허우적이는 꼴인 가정의 아이들 역시 그랬었다.
내 어린 시절 추석빔이나 설빔으로 사주던 새 옷이나 신발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보통 명절 직전에 서는 오일장에서 그들을 사오면 머리맡에 가지런히 모셔둬야 아련히 잠들 수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면 여태까지도 공연히 계면쩍어 슬며시 애매한 미소로 표정 관리를 하며 딴청을 부린다. 전쟁 참화로 너나없이 빈곤의 늪에 빠져 허우적였던 모양새였던 관계로 하찮은 옷가지를 비롯해서 신발을 구입하기도 어려워 명절에 겨우 아이들에게 선물하던 게 일종의 관습처럼 자리 잡았었다. 이런 삶이기에 거개의 가정에서는 여러 켤레의 신발을 장만해 두고 입맛에 맞추거나 소용이 닿는 대로 바꿔 신고 다닌다는 거추장스러운 사치는 꿈도 꾸기 어려운 욕심이었다.
원래 신발의 원초적인 목적은 발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쓰임새 위주의 여러 갈래로 분화되면서 그 맵시나 기능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해졌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단순히 운동화로 지칭되던 것이 요즈음엔 농구화, 축구화, 야구화, 조깅(jogging)화, 골프화, 등산화 등과 같이 다종다양하게 거듭 변하고 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외출에 신는 신발도 정장에 어울리는 신발, 캐주얼한 복장에 맞는 신발, 작업에 적합한 신발 등이 보편화되어 어린이들도 무엇을 입고 어디에 가며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그에 합당한 신발을 신는 쪽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경향이 또렷해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신발문화의 경향에서 볼 때 우리 집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식구는 단연코 유진이다. 겨우 여섯 살 배기인 주제에 여러 켤레의 신발을 보유하고 있기에 하는 얘기이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 가끔 외출 준비를 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신발을 고를 때 제 할머니와 밀고 당기는 기세가 여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제 할머니의 미적 감각과 옷을 입히고 신발을 맞춰서 골라 신기는 심미안이 범상치 않은데도 마구 반기를 드는가 하면 항명을 밥 먹듯이 하며 제 뜻을 관철하려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방면에 대한 제 할머니 감각은 전문가 수준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녀석은 공연히 어깃장을 부리며 ‘공자 앞에 문자를 쓰는’ 격의 행동을 거침없이 해대는 무례를 범하고도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숙맥이기도 하다.
유진이의 신발을 줄줄이 사서 부지런히 나른 원흉은 할머니이지만, 정녕코 쇼퍼홀릭(shopaholic : 쇼핑중독자)은 아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이후의 신발 모두를 줄 세운다면 틀림없이 세른 켤레를 훨씬 웃돌지 싶다.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사다 신겨 놓고 조금 지나면 작아서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에 하는 얘기이다. 신발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옛날 세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낭패를 당했던 슈어홀릭(sjoeaholic : 구두수집광)이 떠오른다. 필리핀 독재자인 마르코스(Marcos) 대통령의 부인 이었던 이멜다(Imelda)여사가 구두 3,000켤레를 수집했다던 일화 말이다. 유진이는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요즘 웬만한 아이들의 예에 지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제 할머니 덕으로 유진이가 옷을 입은 맵시나 신발을 신는 세련된 모습은 엄청 잘 어울리는 편으로 호사를 누리는 셈이다. 제 부모가 끼고 함께 산다면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망설였을 가능성이 다분한 경우도 제 할머니는 과감하게 단안을 내리는 것을 몇 차례 옆에서 지켜보며 느낀 소회이다. 어린 시절 미적 감각이나 세련된 옷매무새를 가꾸는 안목을 기르는 교육도 유익한 일로 여겨진다. 그런 연유에서 유진이의 옷이나 신발 문제가 다소 성에 차지 않거나 마뜩치 않아도 한 눈 질끈 감고 짐짓 모르는 척 넘기기 일쑤인 내 처신이 과연 옳은 것일까.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