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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사람을 해치고 감금한 엽기적이 범행이 벌어졌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근데… 왜 죽였어?’
사람이 사람 죽이는 데 이유가 있냐?’
지난 2002년 개봉했던 화제작 <공공의 적>에서 열혈형사 ‘철중’(설경구 분)과 살인범 ‘규환’(이성재 분)이 나누는 대화의 일부다. 때론 현실에서도 이 영화 대사 같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사람을 잔혹하게 해치는 ‘황당하고 엽기적인 살인극’ 말이다.
이번에 인천 남동경찰서 과학수사팀 최정호 팀장이 전하는 ‘강간·토막살해 2인조’ 사건 역시 그렇다. 범인은 자신의 옛 애인의 새 남자친구와 목소리가 흡사하다는 이유로 한 생명을 잔혹하게 죽였다. 또한 한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자신들이 사체를 훼손시키는 작업에 강제로 동참시키기까지 했다.
당시 강력1팀장을 맡아 사건을 해결했던 최 팀장은 “벌써 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 받았던 충격이 생생하다. ‘악마의 소행’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사건이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 2003년 1월 중순의 어느 날, 인천 남동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얘기는 형사들의 귀를 의심케 할 만큼 ‘엽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화를 건 여성에 따르면 며칠 전 사체를 토막내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그 여성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린 듯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차근차근하게 말씀해보세요. 뭘 봤다구요?”
사람을… 토막냈어요. …어떤 남자 둘이서 마구. 진짜예요. 내가 직접 봤어요.”
섬뜩한 제보 전화에 형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최 팀장이 전하는 당시 상황.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없었다. 처음에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느닷없이 사체를 토막내는 걸 봤다고 하는데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과연 사실일까. 어디까지 믿어야할까.’ 순간적으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허위 제보나 장난전화라고 무시하기엔 내용이 너무도 구체적이었다. 또 여자의 말을 들어보니 꾸며낸 얘기라 하기엔 조리가 있었다. ‘뭔가 있긴 있구나’ 싶어서 우리팀은 서둘러 여자를 만나러 갔다.”
제보한 여성 A 씨(당시 32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만신창이 상태였다. ‘지옥’을 경험한 사람의 행색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게 최 팀장의 얘기다. A 씨는 악마와 같은 두 명의 남성들에게 수일간 감금되어 성폭행을 당하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자취방에 갇혀 있으면서 경험한 악몽 같은 기억들을 힘겹게 끄집어냈다.
A 씨가 민 아무개 씨(당시 27세)와 강 아무개 씨(당시 25세)를 알게 된 것은 화상채팅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서로 얼굴을 익힌 이들 세 사람은 그 해 1월 13일 밤 9시 40분경 월미도에서 만남을 갖기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A 씨는 두 사람의 정체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이들 두 사람은 ‘잠시만 들르자’며 A 씨를 꾀어 인천 가좌동에 있는 강 씨의 자취방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순순히 이들을 따라간 것이 A 씨에겐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짐승으로 돌변해 번갈아가며 A 씨를 성폭행하기 시작했다. A 씨가 죽을 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시무시한 흉기의 위협과 무지막지한 폭행뿐이었다. 여인의 힘으로 혈기왕성한 두 남성을 막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A 씨는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폭행과 강간을 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들은 A 씨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녀의 온몸을 플라스틱 끈으로 결박했다. 그날부터 A 씨는 마치 사육당하는 가축 신세와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A 씨를 두고 갖가지 방법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어지는 최 팀장의 이야기.
두 사람이 A 씨를 죽일 것인가 살려줄 것인가를 두고 서로 의견이 엇갈렸던 것 같다. 자기가 보는 앞에서 ‘죽이자’ ‘살려주자’며 옥신각신하니 A 씨로선 얼마나 무서웠겠나. 한 명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없애버리자’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죽일 필요까지 있겠나. 강간도 당했는데 섣불리 신고도 못할 거다’ 뭐 이런 얘기들을 꺼냈던 것 같다.”
결국 이들은 A 씨를 살려주기로 뜻을 모은다. 하지만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도 잠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A 씨는 이들이 사람을 죽인 살인마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사내의 정체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A 씨가 감금된 지 이틀 후인 15일 새벽 4시경 이들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숨죽여가며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A 씨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가져온 것은 한 젊은 남성의 사체였기 때문이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A 씨 앞에 사체를 갖다놓은 이들은 작정한 듯 칼과 톱, 망치를 준비해왔다.
설마설마’했던 일은 현실로 나타났다. 이들은 A 씨가 보는 앞에서 사체를 토막내기 시작했다. A 씨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이들의 행각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피할 수는 없었다. 둔탁하고 역겨운 소리가 좁은 자취방 안에 울려 퍼졌고 숨막히는 공포의 시간이 계속됐다.
A 씨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참혹한 현장에서 A 씨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흐느낄 뿐이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이 잠시 ‘작업’을 멈추는 듯했다. 그러나 A 씨는 뒤이어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에 까무러칠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 토막내는 일에 동참시키자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최 팀장의 설명.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경악한 A 씨는 그짓만은 못하겠다고 사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악마와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A 씨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억지로 사체를 절단케 만들었다고 한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A 씨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A 씨는 이들의 엽기적인 만행에 강제로 동원되었고 이 끔찍한 작업은 사체가 여러 토막으로 잘리고 나서야 끝났다.”
하지만 이들 2인조의 엽기적인 범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최 팀장의 설명.
단순히 사체 유기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이들의 범행은 너무도 잔혹했다. 이들은 토막낸 사체를 플라스틱 김치통 몇 개에 나누어 담고 내장과 같은 장기까지 따로 비닐봉지에 넣어 보관하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또 디카로 사체 토막을 들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거나 활짝 웃는 장면들을 찍기도 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런 행각들이 이들에게는 그저 ‘놀이’에 불과했던 셈이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람의 짓이라고 보기 힘든 이런 행동들에 A 씨는 강제로 동원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들 두 사람은 A 씨의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친구를 데리고 있으니 살리고 싶으면 돈을 준비해둬라”고 요구하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날까 우려한 나머지 ‘이미 공범이 된’ A 씨에게 직접 돈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어차피 너도 우리와 같은 공범이니 신고할 테면 해봐라. 사진까지 찍은 상태니 맘대로 해라. 범행이 밝혀지면 니 인생도 끝나는 것’이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A 씨는 돈을 가져오기 위해 외출한 틈을 타 극적으로 도망쳤고 고민 끝에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A 씨의 제보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형사들은 즉시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수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A 씨는 강 씨의 자취방이 파란색 대문이 있는 집이라는 것 외에는 자세한 위치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범행현장을 찾을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우리는 관내 강도살인 전과자를 상대로 탐문 수사를 실시하는 한편 범행 장소인 강 씨의 자취방을 찾아 나섰다. 또 A 씨의 남자친구에게 걸려온 통화기록을 일일이 추적, 발신지 및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신원정보를 취합했다. 먼저 우리의 레이다에 걸려든 것은 민 씨였다. 며칠 후 우리는 민 씨의 동선을 파악, 수원에서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부산으로 도피한 강 씨를 추가로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에서 펄쩍 뛰며 무조건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했다고 한다. A 씨가 직접 나서서 “저들이 범인이 맞다”고 확인까지 했지만 이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는 것. 심지어 대질시에도 이들은 “처음 보는 여자” “미친 여자”라며 발뺌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팀이 강 씨의 자취방에서 수집한 증거들 앞에서는 이들도 더이상 오리발을 내밀 수 없었다.
가장 큰 의문은 이들 두 사람이 잔혹하게 살해한 남성의 정체였다. 도대체 어떤 원한이 있기에 사체를 냉장고에 유기하고 타인까지 끌어들여 토막을 낸 것일까. 하지만 조사 결과 이들과 살해된 남성은 원한은커녕 전혀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던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었다. “헤어진 애인이 사귀는 남자랑 목소리가 닮아서…”가 피의자가 밝힌 살해의 이유였다.
피의자 민 씨와 강 씨는 구치소 동기로 출소 후에도 ‘형 동생’의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가깝게 지내왔다고 한다. 특정한 직업도 없이 어울려 지내던 이들은 11일 밤 9시경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구 버스터미널 앞에서 자가용영업을 하는 오 아무개 씨(당시 26세)의 차를 타고 강릉으로 향하게 된다. 오 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던 중 강 씨는 불현듯 오 씨의 목소리가 헤어진 애인이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강 씨는 처음 만난 오 씨에게서 알 수 없는 적개심을 느끼게 됐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결국 강 씨는 민 씨와 공모, 위험한 범행을 저지르고 만다. 영동고속도로를 지날 무렵 민 씨 등은 강도로 돌변했다. 건장한 남성 두 명의 갑작스런 습격에 오 씨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 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해 트렁크에 감금한 이들은 오 씨의 그랜저 승용차를 빼앗아 강 씨의 자취방으로 돌아온다. 다음은 최 팀장의 설명.
이들의 범행에는 아무 이유가 없었다.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범행도 아니었다. 원인조차 불분명한 분노와 증오심에 갑작스레 저지른 일이었다. 오 씨의 목소리와 이미지가 강 씨의 옛 애인의 현재 남자친구와 닮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다가 오 씨가 탈출을 시도하자 이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야말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시작된 범행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납치 다음날 오전 10시경 오 씨를 주먹과 둔기로 마구 때려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오 씨의 사체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화상채팅으로 A 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A 씨도 원래 살해하려고 했다는 자백에 수사팀원들은 전율을 느꼈다.”
이렇다 할 죄책감도 보이지 않은 채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범행을 털어놓은 ‘잔혹 청년’들은 뒤늦게야 범행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강 씨는 무기징역을, 민 씨는 7년형을 법정에서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