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으시는 예배” 히 9:28-10:9
https://youtu.be/3PNayNFkLac
1. 오이쿠메네 & 코스모스. 같은 세상이라는 말이지만 앞의 말은 장차 올 영광스러운 세상을 말하고, 뒤의 코스모스는 죄의 지배 아래에 있는 타락한 곳을 말합니다. ‘세상에 임하실 때’ 예수님에게 세상은 타락한 곳이었지만 동시에 장차 임할 영광스러운 영역으로 보였습니다. 구원은 은혜받는 정도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자리로의 초청까지 포함됩니다. 당신은 교회를 볼 때, 가정을 볼 때, 영광스러운 세상이 보이십니까?
2. 두 가지가 이 관점을 이루어냅니다. 첫 번째는 ‘몸’입니다. 황소의 피는 불완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곳에 오시는데 하나님은 그런 아들을 위하여 제우스의 능력이나 헤라클레스의 힘도 아니고 온 세상을 채울 짐승의 피도 아닌 ‘몸’을 준비하셨습니다. 시편 40편에서 그 몸은 ‘귀’를 통하여, 라고 표현됩니다. 몸 전체를 순종으로 드릴 힘은 ‘귀’가 열려있을 때입니다. 귀가 열리면 주의 법이 심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그 몸이 드려지고, 영광의 세상이 열립니다.
3. 두 번째는 ‘주의 뜻’입니다. 당연히 주의 뜻을 원하지요. 하지만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 있음을 안다면 쉬운 말은 아닙니다. 황소의 피가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율법 자체의 폐기가 아닙니다. 율법은 죄를 깨끗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깨닫게는 합니다. 장점과 단점에 붙잡히지 마십시오. 그것을 뛰어넘는 주의 뜻에 천착해야 합니다.
4. 누군지 아시겠습니까?“‘조지아로 돌아가십시오. 루이지애나로 돌아가십시오. 어떻게든 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것이라고 믿고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연설을 이어갑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실을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라는 미국의 신조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살 날이 올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가 피부색으로 평가받지 않고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나라에게 살게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입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말’이 가장중요합니다. 사실은 원고대로 연설하던 그에게 찬양가수 마할리아 잭슨이 소리쳤습니다. ‘목사님, 당신의 꿈을 이야기 해주십시오. 꿈을 말해주세요.’란 외침을 듣고, 6초 동안 하늘을 쳐다보더니, 원고를 옆으로 밀어젖히고는 첫 번째 한 말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 그것은 가슴에서 울리는 웅장한 고동입니다. 내 가슴을 울리는 하나님의 뜻, 그 한 가지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