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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장 패공(覇公) 탄생 (5)
한편, 초문왕(楚文王)은 겨우 목숨을 구해 영성으로 돌아왔다. 밤이 깊은 때였다.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군사들이 소리치며 성문을 두드렸으나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성문을 지키던 대혼 육권이 고개를 내밀었다.
"왕께서는 싸움에서 이기셨습니까?"
초문왕(楚文王)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졌노라."
성문 안에서 다시 육권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왔다.
"초무왕 이래로 우리 초군은 싸움에서 패한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파(巴)나라는 보잘것없는 소국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졌으니, 이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
"마침 황(黃)나라가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왕께서는 속히 군사를 돌려 황나라를 쳐서 굴복시키십시오. 그런 후에야 신은 이 성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육권이라면 일찍이 칼로 초문왕(楚文王)을 협박하여 채애공의 목숨을 살려낸 후 스스로 두 다리를 자른 바 있는 충신이었다. 그러한 육권의 성품을 모를 리 없었다.
성문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분연히 군사를 돌아보며 외쳤다.
"너희들은 육권의 말을 들었느냐. 이번에 황(黃)나라에 가서도 이기지 못하면 나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초문왕(楚文王)은 그 길로 군대를 돌려 황나라를 향해 쳐들어갔다.
적릉 땅에 이르러 황(黃)나라 군대와 크게 일전을 벌였다.
그는 친히 북을 쳐 사기를 돋우었다. 군사들 역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적릉 싸움에서 초문왕(楚文王)은 황나라 군대에 대승을 거두었다.
싸움에서 이긴 그 날 밤이었다.
초문왕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죽은 식(息)나라 임금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두 눈을 부릅뜨고 나타났다.
- 너는 무슨 이유로 내 나라를 없애고, 내 강토를 빼앗았느냐? 또 무슨 까닭으로 내 아내를 빼앗아갔느냐? 내가 이미 옥황상제께 너의 죄를 낱낱이 고해바쳤다.
식후(息侯)는 손을 번쩍 들어 초문왕의 뺨을 때렸다. 초문왕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화살에 맞은 뺨이 찢어져 피고름이 흐르고 있지 않은가. 초문왕(楚文王)은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군사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초군이 추(湫)땅에 이르렀을 때였다.
초문왕은 또 잠을 자다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일으키다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군사들이 모여들었을 때에 초문왕(楚文王)은 이미 눈을 하얗게 까뒤집은 채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초(楚)나라 신하 육권은 초문왕의 시체를 맞아들여 장사를 지냈다. 초문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장자 웅간(熊艱)이다.
초문왕의 장례가 끝나자 육권이 동료 중신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나는 두번이나 왕의 명령을 거역했소. 하지만 초문왕(楚文王)은 나를 죽이지 않았소. 내 어찌 그러한 초문왕의 은혜를 잊을 수 있겠소이까. 나도 이제 초문왕을 따라 지하로 갈까 하오."
그는 다시 가족들을 불러 말했다.
"내가 죽거든 반드시 성문 곁에다 묻어라. 나는 죽어서도 이 성문을 지키겠다."
말을 마치자 칼을 뽑아 스스로 자기 목을 찔렀다.
후일 노나라의 태사(太史)를 지낸 좌구명(左丘明)은 그의 저서 <춘추좌씨전>을 통해 육권의 이러한 죽음을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육권이야말로 진정으로 군주를 사랑한 신하였다고 할 수 있다. 군주에게 충간(忠諫)하였다가 스스로 자기 몸에 형벌을 가했고, 자기 몸에 형벌을 가하면서도 군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후세의 한 사가는 좌구명(左丘明)의 이러한 평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무기로써 임금을 협박하고, 또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니 이것은 해괴한 일이다. 만일 이런 것을 충(忠)이라 하고 애(愛)라 한다면, 난신적자(亂臣賊子)도 어찌 할말이 없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초나라 소식은 중원 여러 나라에 전해졌다.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기뻐했다.
그 중 누구보다도 초문왕(楚文王)의 죽음을 기뻐한 것은 정여공이었다.
정(鄭)나라는 주왕실의 피가 면면히 흐르는 희성의 나라요, 정장공 시대에는 중원을 호령했던 자긍심 높은 군사 강국이었다. 그러던 것이 초나라에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가.
"이제야 초나라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정여공은 그 날로 초(楚)나라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그 무렵 정나라의 정경은 숙첨(叔詹)이었다. 그는 정여공의 뜻이 작지 않음을 알고 은근히 권했다.
"옛말에 타인에게 의지하는 자는 늘 위태로움이 따르고, 남의 밑에 있는 자는 항상 굴욕을 면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정나라는 제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위태로움과 굴욕 속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입니다. 주공께서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작정이십니까?"
"나도 그 점을 몹시 안타깝게 여기고 있소. 하지만 힘이 없는 것을 어찌하오?"
"돌이켜보건대, 정환공, 정무공, 정장공께서 3대에 걸쳐 열국의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의 경사 신분을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환공(齊桓公)이 패업을 이루고 맹주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왕실의 천자를 잘 받들어 모셨기 때문입니다. 주왕실과의 관계로 보면 제나라보다 우리 정(鄭)나라가 훨씬 친밀하고 가깝습니다. 마침 지난해 왕실에서는 새로이 주혜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이 기회에 왕실에 조례하여 왕의 후광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만일 왕의 후광에 힘입어 옛 지위를 찾기만 한다면 대국들이 간섭할지라도 두려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정여공이 생각해보니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부 사숙(師叔)을 불러 명했다.
"그대는 낙양으로 가 천자께 조례하고 오시오."
그런데 낙양으로 떠난 대부 사(師叔)숙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돌아왔다.
정여공이 의아해서 물었다.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다녀왔소?"
"왕실에 난이 일어나 왕성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그냥 되돌아왔습니다."
"왕실에 난이 일어나다니? 대관절 무슨 난이 어떻게 일어났단 말이오?"
사숙(師叔)은 그간에 있었던 왕실 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