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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의 움직임과 지도자들의 거처를 손바닥 보듯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따라서 농민군은 적에게 거의 모든 정보를 노출시킨 가운데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남경대학살"은 그 규모면에서 전례가 없는 것으로 독일의 유태인에 대한 학살을 능가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일본군은 중국의 수도에서 6주 동안에 30여만명을 도살하고 대량의 가옥을 파괴하였으며, 10여만명의 부녀자를 유린하고 창고와 재물을 약탈하였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잔혹행위였다
그러나 이보다 못지 않은 일본군의 잔학행위가 한국에서 자행되었다.
일본 측은 동학농민군 학살에 대해 대부분 이를 부인하거나 축소왜곡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지휘·명령하여 학살한 동학농민군은 대체로 30만명~40만명에 이르렀다.
다음은 1894년 11월 9일 이노우에[井上] 전권공사가 이토[伊藤] 병참감에게 보낸 기밀문건이다.
〃기밀 제201호
금일자 귀 서한을 받아보았습니다. 동학당 진정을 위해 파견하는 제19대대에 부여할 훈령과 일정표를 보내오니 일람하시고 또 별지와 같은 저의 의견을 첨부해서 보냈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별지안 중 수정할 주요점은……
첫째, 우리 군대의 파견은 명분상 한국군을 응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 한국군의 진퇴와 행동은 우리의 지휘 감독 아래 두게 해서 우리의 지휘에 복종케 할 것.
둘째, 우리 군대는 전라도 깊숙이 들어가서 그 도의 적도들의 근거지라 일컬어지는 남원지방을 소탕할 것.
셋째, 적도들이 강원도와 함경도 및 경상도 3도 방면으로 도주하는 것을 엄히 방비할 것, 이 세가지 점입니다.
그리고 셋째 점에서 염려하는 바는 만일 적도가 함경도로 도피해서 러시아 국경을 침범하는 일이 발생하여 장차 러시아와 한국 간에 곤란한 문제를 야기시키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며 경상도는 적도가 이미 진정되고 잔당이 모두 전라도로 퇴산해서 사민의 생업에 복귀, 안주하고 있다는 통지가 어제 재 부산 무로다 총영사로부터 왔으므로 다시 그 곳을 교란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략)
1894년 11월 9일
이노우에 가오루 전권공사〃
이 훈령에는 ‘추서(追書)’라 하여 몇 가지 기밀을 전하고 있다.
˝첫째, 동학당의 거괴 최시형은 충청도 보은에 있으며 최법헌이라 불리어지며 동학교의 주괴(主魁)이다. 동학교를 신봉하는 사람 가운데서는 첫째가는 교주라 한다.
전녹두는 전숙명(全叔明)이라고 부르며 폭도들의 대거괴이다. 현재 전주에 있으며 그 세력이 전주감사를 압도하고 있다고 한다. 임기준은 공주에 있으며 충청감사 박제순을 강박하여 공주가 거의 그의 수중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말하기를 금년 10월 초순 대원군이 그의 심복인 박준양 즉 박제순의 종형제를 공주로 파견한 뒤부터 그 감사가 약간 동학에 마음을 기울인 혐의가 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사정이므로 기타 지방에서도 동학당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알 수 없으니 엄중히 조사해서 그 증거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으면 지방관이라 할지라도 체포해서 송치해야 한다.
둘째, 경기도 여주목사 이재구는 대원군의 일족으로 동학당과 동류라는 혐의가 있다. 의심되는 서류를 갖고 있으면 포박해서 송치해야 한다.
셋째, 전라도 동학당의 근거지는 남원이며 전주·장성·금구 지방은 모두 동학당이 둔집해 있는 곳이다. 또 여산 지방에도 동학당이 있다고 한다. 경상도 상주는 곧 전 경상도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이므로 동학당이 왕래하는 곳이라 한다.
넷째, 지방관으로이 동학당에게 살해된 사람은 태안·서산·진천 등의 부사들이다. 또 당진부사도 살해됐다는 풍설이 있다. 은진부사는 동학당에게 잡혔다고 한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⑤〉,《동학농민운동사 자료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년, 66쪽~67쪽.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