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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서론적으로 둘러보기
송영목 목사(고신대 대학교회 담임, 부경성경연구원장)
들어가면서
초기 교부들과 심지어 2세기 중반의 이단 말시온(c. 144) 같은 저술가들은 신약 성경의 책들을 함께 묶어서 ‘복음과 사도’라고 표현했다. 이는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을 뜻한다. 이는 아주 자연스런 구분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빠진 것이 있다. 즉, 교회의 시작과 발전에 대한 묘사를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다. 사도행전이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책이다(랄프 마틴, 2000:87).
우리는 복음서를 4개나 가지고 있지만 초대교회의 역사에 관한 책은 사도행전 1권뿐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성경에서 필수불가결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도행전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역사적인 가치로 인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주는 감화력으로 인해서도 중요하다. 칼빈은 사도행전을 ‘일종의 광대한 보물’이라고 불렀고, 마틴 로이드존스도 ‘가장 서정적인 책이며 성령의 가장 강력한 강장제’라고 불렀다(존 스토트, 2002:9).
오늘날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점은 사도 바울의 동행자이며 이방인 출신 의사요 목회자요 역사가이며 신학자인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라는 2부작(a two-volume, one story)을 기록했다는 점이다(가스끄, 1989:11). 유일하게 신약의(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알리는) 복음서와(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알리는) 역사서를 동시에 기록한 사람이다. 누가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그리스도 사건은 역사의 분리된 조각(isolated piece of history)이 아니라 그 결과는(사도행전에서처럼) 계속되어야 할 것을 알았다.
1. 사도행전이라는 이름
누가는 이 책을 우리가 부르고 있는 대로 '사도행전'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 제 1권이 복음서로 수납되면서 제 2권인 이 책은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2세기 중순부터 ‘사도행전’(The Acts of the Apostles)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Du Plessis, 1994:194). 2-3세기 저자들 중 터툴리안은 ‘누가의 주석’(commentaries Lucae), 무라비안 정경은 '모든 사도들의 행전'(acta omnium apostolorum)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도행전'이란 명칭은 누가복음에 대한 反 말시온의 서론 (1세기 말엽)에도 나타난다.
이레니우스는 Lucae de apostolis testificatio(누가에 따른 사도적 증거)라고 불렀다. ‘행전’(praxeis, 유명한 사람의 활동과 공적이라는 의미. 사도행전은 ancient historiography와 유사한 점도 있음)은 고대의 문학 장르를 가리키는데, 인물이나 도시의 위대한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사실 1세기의 왕이나 장군은 그들이 정복하고 약탈한 역사적 사실을 행전을 통해 기록되도록 허용했다. 참고로 벵겔(Johann Albrecht Bengel, 1687-1752)은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으로 추정된다(참고. 에두아르트 로제, 1998:188).
2. 저자
외증(2세기 후반의 무라토리안 정경, 저스틴 마터, 이레니우스, 로마의 클레멘트, 터툴리안, 反 말시온서론 [Anti-Marcionite prologue to Luke, 160-180년경] 등)이 누가를 지지한다(발톤 외, 2003b:10). 누가는 상당히 엄격한 의학 훈련을 받았으며 그의 소상한 헬라어 문체에 이것이 묻어난다. 이미 1882년에 W.K. Hobart는 ‘The medical language of St. Luke’이라는 책에서 누가가 헬라의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사도행전과 누가복음 전체에 걸쳐 군데군데 나타난 의학용어는 의술에 종사하는 사람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존 스토트, 2002:17-18).
내증은 (1)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고상한 헬라어 문체와 어휘의 유사성, (2) 바울(b. AD 5-10, 가족은 다소에서 예루살렘으로 AD 10년경에 이사했고 AD 33년경에 개종한 것으로 보임 Witherington 3, 1998:82-83)의 길동무요(아마 시리아 안디옥 출신) 의원 누가를 지지한다(골 4:14). 그는 의술 이외에 지리적인 배경에도 박식하다.
예를 들어, 갈릴리를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고 부르는 유일한 복음서 기자인데, 아마 지중해 연안의 헬라-로마세계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으로 지중해와 갈릴리를 비교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본문’(we-sections, 행 16:10-17; 20:5-15; 21:1-17; 27:1-28)이 밝히듯이 바울의 동역자요 실제 선교 목격자만 할 수 있는 묘사의 사실성, (3) 1세기 지리에 밝은 저자의 감각, (4) 각 책의 서론 부분 즉 행 1:1-2절과 눅 1:1-4절의 유사성, 이 모든 것은 누가복음 저자와 동일 인물을 지지한다.
역사가로서의 누가와(네레이터 및) 신학자로서의 누가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볼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누가는 역사가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였으며 이 둘은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이다. 누가는 '구원의 신학자'였다. 누가에 의하면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예비된 것이며(눅 2:30-31),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눅2:11; 19:10),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제공된다(눅 2:31-32). 사도행전의 지리적 확장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기보다는 이방 세계에 기독교의 승리를 계시하는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거쓰리, 2002:333).
조지 래드(1993:21)의 말로 이 단락을 결론지어 보면, “사도행전은 신학적인 동시에 변증적인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바로 누가가 역사 안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역사로 읽혀진 신학도 아니고 신학을 왜곡시킨 역사도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신학적 해석이다.” 신학을 위해서 역사를 희생한 누가는 아니다. 역사성과 신학은 상충되지 않는다.
3. 수신자
사도행전의 수신자는 누가복음의 수신자와 동일하다. 일차 수신자는 데오빌로(뜻: 하나님의 친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다. 그는 가상적인 인물이 아닌데(B.H. Streeter는데오빌로를 1세기 크리스챤 전체를 가리키는 신중한 익명으로 보았다), 그에게 주어진 ‘각하’(Kratiste, most excellent Theophilus)라는 호칭을 볼 때, 역시 ‘각하’라는 호칭을 받은 총독 벨릭스(most excellent Felix)와 베스도 (most excellent Festus)와 거의 동일한 고위 관리로 보인다(행 24:3; 26:25).
데오빌로는 기록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보급하도록 후원까지 했지 않을까? 그는 눅 1:4절을 근거해 볼 때 세례를 받고 교회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인 것 같다. 데오빌로의 신앙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를 위해 기록되었다. 이방인 신자인 총독 데오빌로는 에베소서의 교회론이 밝히듯이 우주적인 구원을 내다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참고. Bock, 1994:18).
하지만 2차적으로 누가 공동체-교회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발톤 외, 2003a:22). 이들은 누가복음에서 저자 누가가 의중에 두었던 누가 당대의 크리스천 청중이다. 그렇다면 누가 공동체는 어디에 있었나? 정확한 정보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도 투영의 원리를 사용하여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이야기로부터 유추해 낼 수 있다. 누가 공동체 (Lukan community)는 데오빌로처럼 주로 이방인(즉 God-fearer)에서 개종한 초신자들로 구성된 교회가 아닐까?(참고. Nolland, 1989:xxxii)
누가공동체는 아마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가 혼합된 공동체로 보인다. 왜냐하면 구약성경과 유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고 게다가 예수님께서 ‘인자’ 칭호나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를 통해 의미하는 바가 누가복음서에 아무 설명 없이 쓰이고 있기에 유대인 성도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물론 이방인 성도 역시 교육을 통해 구약과 유대인의 관습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 공동체의 위치를 시리아 안디옥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이유는 유세비우스의 책에서 발견되는 ‘反말시온 서문’과 제롬, 그리고 주석가들(예. Geldenhuys) 또한 누가를 시리아 안디옥 출신 혹은 안디옥 주민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누가는 눅-행에서 시리아 안디옥을 13번이나 언급하고 있다(참고. 룩 티모씨 존슨, 2000:278). 그리고 누가공동체는 시종일관 누가가 강조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 및 구제라는 주제(눅 4:16-20; 6:20; 7:22; 12:13-21; 16:19-31; 행 3:6; 8:18-24; 10:2; 24:17)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많은 재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다수의 부자(데오빌로, 시몬 마구스, 이데오피아 내시, 고넬료, 루디아 등)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공동체로서 관심을 보여야만 했다.
이런 구제는 그레코-로마 세계의 관습과는 상이한 것이다. 로마인에게는 비시민권자를 구제할 의무가 없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이건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의 누가공동체이건 이방인 중 부유한 자들이 개종한 경우에는, 특별히 헬라-로마 세계의 제한적이고 차별적인 구제를 그들이 극복하도록 가르쳐야만 했을 것이다. 남자 부자들 이외에 여자 성도도 남편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선교사의 후견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행 2:45; 4:32; 16:14-15; 눅 18:22; 19:8; 노만 페린 & 데니스 덜링, 1996:477; Moxnes, 1994:385; Karris, 1978:117, 124).
4. 연대
AD 60년대 초반. 아마 바울이 1차 로마투옥에서 풀려난 후. 로마화제가 발생한 주후 64년경 이전에는 로마 당국은 기독교를 인정하였으나 그 후 네로는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를 향한 핍박이 거의 묘사되어 있지 않고 예루살렘 멸망도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AD 64-70년경으로 볼 수도 있다(발톤 외, 2003b:14). 이렇게 이른 연대로 볼 수 있는 다른 근거는 ‘우리-본문’에 나타난 사실적인 묘사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 서신들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무지했다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그럴 경우 바울 서신 전집이 집성되고 회자되기 전에 기록되었다. 바울 서신의 집성과 회자된 시기는 논란이 있으나, 이 사실은 사도행전의 이른 시기를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신학용어도 이른 연대를 지지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이 ‘제자들’로 불리고, 예수님은 ‘그 그리스도’, ‘하나님의 종’ 그리고 ‘인자’로 불린다(참고. Du Plessis, 1994:204). 따라서 80-90년 혹은 속 사도시대 (post-apostolic age)인 150년경으로 볼 이유는 없다(contra 차일즈 2001:349; 에두아르트 로제, 1998:193).
5. 기록 장소
행 28장의 종결 부분을 근거로 해 볼 때 아마도 로마로 추정된다. 그리고 딤후 4:6절과 11절에서 바울의 2차 로마 투옥 중에 누가만 바울과 함께 있었던 점도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안디옥(행 11:19-30; 12:25-13:3; 14:26-15:2; 15:22-40), 가이사랴 그리고 에베소도 후보지로 거론된다(참고. Klijn, 1980:66).
6. 기록목적
일차적인 기록 목적은 누가복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방인 데오빌로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의 풍부한 구약 인용은 데오빌로가 구약을 알고 있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즉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눅 1:50; 7:2-6; 행 10:1-2; 13:16, 26)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초신자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 보인다. 누가공동체에게 유대와 로마의 도전에 대해 조언을 주며, 복음과 교회의 확장 시대를 알리기 위해서 이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성령으로 교회 안에 내주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전이다. 특별히 이방인도 구원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선포하려는 목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참고. 행 10:9-48; 11:18; 그리고 이방인 지역에서의 선교여행 눅7:1-10; 8:26-39).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가 목적이다(Du Plessis, 1994:197-198).
누가복음에서도 이방인을 독자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거는 서기관이나 랍비와 같은 유대식 표현을 피하고 율법사나 선생과 같은 일반적인 헬라식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눅 9:33; 11:52; 비교. 막 9:5; 12:8). 누가는 골고다라는 히브리어를 ‘해골’을 의미하는 헬라어 ‘kranion’으로 번역하고 있다(눅 23:33절과 막 15:22절을 비교해 보라).
또한 누가는 이방인으로 추정되는 이방인 독자에게 유월절과 같은 일반화된 유대인의 관습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눅 22:1-7). 이 외에도 누가는 모세 율법이나 유대인의 관습 중 복잡한 규정과 관련된 예수님의 가르침(예. 이혼 규정, 맹세, 기도, 금식 등)에 대한 부분은 생략했다(참고. 발톤 외, 2003a:20-21; 차일즈, 2001:353-354; contra, 예르벨, 2000:49-52).
7. 사도행전의 헬라어 본문
UBS와 NA는 주로 오래된 헬라어 사본(특별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계열)을 의존한다: 바티칸, 시내산, 알렉산드리아, C, 81, P45, P47. 그러나 아주 이른 시기부터 다른 본문 형태인 서방 사본(D, E, P29, P38, P41, P48, 그리고 고대 라틴 역본과 시리아 역본들)을 가지고 있었다. 논쟁의 핵심은 “서방본문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이다.
서방사본은 알렉산드리아계의 사본보다 길이가 10% 더 길어서 아주 상세하게 채색적으로 묘사하는 문체이다. 이것은 UBS와 같은 헬라어 성경의 각주를 잠시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장면을 설명하는 행 12:10절에서 서방 본문인 D사본에는 “그가 일곱 계단을 내려간다”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2차 대전 후 편집비평이 발흥한 후, 혹자는 서방본문 안에서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과 사상(Lukanisms)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M.E. Boismard와 A. Lamouille는 D와 B가 사도행전의 최고의 사본이라고 보았다. 몇 부분에서는 D가 더 나은 독본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참고. Green, 1997:9-10).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이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Blass는 누가가 이 두 본문을 모두 기록했다고 보면서 로마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읽혀졌다고 보았다. Salmon의 가설은 누가가 사도행전에 대해 강의를 했는데 그 내용이 서방본문에 첨가되었다는 주장이다.
Westcott-Hort와 F.G. Kenyon, M. Dibelius는 서방본문은 후대의 삽입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 그 외에 서방 본문을 원본으로(예. A.C. Clark, 1933), 아니면 (다수의 학자가 주장하듯이)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원본으로 완전히 다르게 보는 주장이 여전히 맞서고 있다. 이런 다양한 주장은 모두 가설인데, 여전히 알렉산드리아 계열이 원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보라. Du Plessis, 1994:207).
8. 내용 및 주요 신학
(눅 1:1-4절은 실제적으로 사도행전의 서론이기도 하다)
교회의 시작과 선교 사명 1:1-2:41
예루살렘교회 2:42-6:7
교회의 확장 6:8-9:31
베드로와 최초의 이방인 회심 9:32-12:24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 12:25-16:5
이방 세계의 선교 16:6-19:20
로마로 향한 바울과 복음 19:21-28:31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나누어 보면
행 1:1-12:25은 베드로행전
1. 교회의 설립
2. 교회의 확장
그 이후는 (13:1-28:31) 바울 중심의 전도 여행 기록
1차 전도 여행: 13:1-14:28
2차 전도 여행: 15:26-18:22
3차 전도 여행: 18:23-21:26
바울의 재판
행 1:8절에 근거하여 지역으로 나누어 보면 (정훈택, 2003:23):
서론 (1:1-26)
예루살렘에서의 복음전파 (2:1-7:60)
유대, 사마리아, 팔레스틴에서의 복음전파 (8:1-12:25)
터어키에서의 복음전파 (13:11-15:35)
그리스에서의 복음 전파 (15:36-21:26)
로마에서의 복음전파 (21:27-28:31)
내용 전개에 나타난 사도행전의 주요 신학 (정훈택, 2003:23-33):
1. 성령의 사역이 모든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3위의 사역이다 (행 16:7).
2. 예수님의 지상 사역 시 ‘제자들’로 불리고 후에 즐겨 ‘사도들, 신자들, 교회’로 불린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주체로 부름받은 사실임을 알려준다.
3. 기독교 신앙이 구약 신앙의 연장선상에 서있음을 강조한다. 즉 구약의 성취로서의 가룟 유다의 죽음과 사도의 대체 (행 1:16-20), 성령 강림 (2:16-21),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3:18 8:32-33; 13:27-37), 예수님의 부활 (2:24-31; 26:23), 승천과 하늘에 계심 (2:35; 3:21),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적함 (4:25-26, 28). 이렇게 특별히 기독론적인 복음은 구약 예언의 성취이다.
4. 열두 사도의 역할도 사도행전의 특징이다 (비록 베드로와 바울 중심이지만).
5. 누가는 그리스도 사건과 복음 사건을 정확한 역사적 안목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역사성은 구원사와 관련된다.
6. 사도행전이 구약과 신약 시대를 하나님의 구속사역이라는 단일 주제로 서로 연결하고 있기에 이스라엘은 계속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으로 언급되며 복음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유대인의 복음의 거부는 지리적-인종적 전환 즉 이방인을 향한 전도와 구원으로 귀결된다.
사도행전은 복음에 대한 주석이라기보다 사도의 증언 즉 설교이다(차일즈, 2001:350). ‘하나님 나라’는 사도행전의 선포의 중심이다. 이 선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종말론적인 차원으로 개시하여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계신다(참고. 눅 2:32; Witherington 3, 1998:843). 빌립이 전한 복음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이고(행 8:12), 바나바와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며(14:22), 바울(혼자) 자신의 선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9:8; 20:25; 28:23, 31).
사도행전에 나타난 예수님의 추종자에 의한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누가복음의 선포의 논리적인 연속이다(눅 9:2 등). 누가복음의 이 주제와 관련된 유사한 뉘앙스가 사도행전에도 나타난다(참고. De Villiers, 1994:221).
9.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연관성
이 두 책 모두, 역사 기술적(historio-graphical)인 유사한 스타일을 가진 서문(눅 1:1-4; 행 1:1-5)으로 시작한다. 누가복음의 전반부에 성령이 세례 받을 때 임하셨다(눅 3:22). 사도행전의 전반부인 행 2:24절에서 오순절 성령이 교회에 임하셨다.
누가복음의 예수님과 사도행전의 사도의 선포와 사역은 공통적으로 유대인들과 갈등을 빚었다. 눅 9:51-19:28절의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은 마지막 여행이 예루살렘에서 끝나는 행 19:21-21:17절과 유사하다. 공사역 말에 여러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 받았던 예수님의 재판은 바울의 재판과 유사하다. 이것들은 눅-행을 누가가 기록했다는 사실을 더욱 지지하는 것이다.
세부적인 유사점으로는 예를 들어, 눅 5:17-26절과 행 3:1-10절을 비교해 보라. 예수님과 바울은 3번씩 무죄 판결을 받았다(눅 23:4, 14, 22; 행 23:9; 25:25; 26:31). 연설, 인용, 그리고 찬송들(canticles or hymns)이 어떤 사건을 시작하고 인도할 때 종종 사용된 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공통적인 강조. 한 사람이 이런 대작을 구상할 때는 전체적인 통일성에 기초하여 세밀한 계획을 가지고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누가는 당시 헬라 저술가들이 사용한 기법을 사용한 것 같다. 고대 사회에서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몇 권으로 나누어서 전체를 위한 서문을 먼저 두고, 뒷 권에는 이차적인 서문을 두는 것이 관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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