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Despair 绝望
절망(絶望)은 희망과 기대를 할 수 없으면서 체념한 감정 상태다. 절망(despair)의 어원은 라틴어 첫째, ‘부정(아닌)’을 의미하는 des(dis)와 ‘희망’을 의미하는 esperer가 결합한 desesperer이거나 둘째, ‘아래’를 의미하는 de와 ‘희망’을 의미하는 spērō가 결합한 despero의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한자어 절망은 끊을 절(絶)과 바랄 망(望)이 결합한 것으로 희망과 기대를 끊은 상태를 의미한다. 고대 라틴어와 한자어 모두 절망은 희망과 기대가 끊어진 심리 상태를 말한다. 유사어는 좌절, 낙담 등이고 인접어는 불안, 상실, 패배, 실망, 허무 등이다. 절망에는 절망하는 주체(subject, 主體)가 있다. 개인의 절망, 집단의 절망, 인류의 절망 등 절망의 주체는 다양하다. 대체로 절망은 개인의 정신과 감정의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절망은 ‘무엇 때문에 생긴 절망의 상태’다. 대부분 절망의 원인은 외적인 것이고 절망의 결과는 내적인 것이다.
좌절과 패배는 대상이 구체적인 반면 절망은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내적 심리 상태를 더 강조한다. 그러니까 절망은 주체(S)가 외부의 어떤 대상이 원인이 되어 내부인 정신이나 감정의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절망은 의식 내부의 감정, 정서, 정취라고 할 수 있다. 감정(感情)은 내외의 자극으로 인하여 마음이 움직인 것이고, 정서(情緖)는 단기간에 걸쳐 강하게 계속되는 감정이며, 정취(情趣)는 약하게 오래 계속되는 감정이다. 감정의 일종인 절망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feeling)이거나 길게 지속되는 기분(mood, 氣分)이다. 절망의 반대 개념은 희망이고 절망의 모순 개념은 ‘절망이 아닌 것[非絶望]’이다. 심리학에서는 절망을 우울증(depression)의 한 증세로 간주한다. 절망은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부정적 감정을 의미하고 우울증은 절망으로 인하여 생긴 이상 증세를 의미한다.
절망이 심화하면 절망의 주체인 자기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절망한 사람은 사회로부터 절연된 것 같은 고립감을 거쳐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좌절감을 느낀다. 절망의 강도가 클수록 주체의 반응도 크다. 가장 강한 절망은 극단적 자기부정인 자살이다. 자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계획적인 살인이다. 그리고 자살은 절망적 자기부정을 단호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칸트(I. Kant)는 절망과 고통으로 자살하는 것은 자기 존재를 지켜야 할 인간이 주어진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말한다. 절망 상태의 인간은 현실의 고통을 이기고 존엄한 존재를 실현하는 길과 현실의 절망 때문에 존엄한 존재를 포기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한다. 칸트에 의하면 자살은 자기 자신만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살해하는 것이고 자연의 질서를 살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절망은 존재의 문제에 연결되어 있다.
절망과 존재를 연결하여 사유한 것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존재론적 관점에서 절망을 분석했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의 본질 중의 하나를 절망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존재 자체에 절망이 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인간의 실존(existence, 實存)은 절망, 허무, 분노, 불안, 권태의 상태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것을 실존적 절망이라고 한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Søren A. Kierkegaard)는 실존적 절망을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보았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보고, 육체적 죽음이 아닌 정신적 죽음을 분석했다. 그는 인간을, 유한하면서 무한을 지향하는 모순적 존재로 보고, 그 모순으로 인하여 근원적인 절망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한편 물리적 필연성에 따르면서도 영원과 무한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신(God)으로 상징되는 영원, 무한, 가능성(possibility)과 인간으로 상징되는 현재, 유한, 필연성(necessity)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심연이 놓여 있다. 인간은 자유, 영원, 무한을 지향하므로 절망할 수밖에 없다. 절망은 의식되기도 하고 의식되지 않기도 한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인) 첫째, 감각의 좋고 나쁨만 추구하는 망각의 상태 둘째, 체계적으로 사유하지만 진실한 자기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절망을 의식하는 상태인) 셋째, 자기 존재를 알고 있으나 외적인 것에 압도당하여 존재하지 않으려고 하는 상태 넷째, 악마적 저항(demonic despair)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존재에만 치중하는 상태 등 네 가지로 나누었다.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인간의 죄는 절망 자체가 아니라 절망을 모르거나 극복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무한과 영원과 자유의 세계인 신의 절대성 안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 절망을 극복하는 길이다.★(김승환)
*참고문헌 Søren A. Kierkegaard, The Sickness Unto Death: A Christian Psychological Exposition For Upbuilding And Awakening(Kierkegaard’s Writings, Vol 19),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3).
*참조 <감각>, <감정⦁정서>, <공포와 전율의 아브라함>, <멜랑콜리[프로이트]>, <불안>, <상실감>, <실존주의>, <우울증 우울장애>, <의식>, <자기부정>, <정신>, <죽음에 이르는 병>, <프로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