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지·펄프 중견기업 ‘무림(茂林)’의 오너 일가는 주력사 무림페이퍼 주식을 쉼 없이 팔아치웠다. 지분으로는 1.05%, 액수로는 11억원어치다. 작년 2월 이후 1년여 만이다. 이 일가가 무림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보유 중인 무림페이퍼 주식은 0.26%밖에 남지 않았다.
고(故) 이무일 창업주의 아들 5형제 중 막내다. 3대(代) 세습까지 성공적으로 마침표를 찍은 질긴 생존력을 가진 무림에서 한 때는 한 지붕 아래에서 ‘마이웨이(My way)’를 외쳤지만 지금은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인 형제다. 비운의 흑역사를 가진 형제 또 있다. 3남이다.
경기도 용인시 양지파인리조트. 27홀 골프장과 스키밸리, 콘도미니엄을 갖추고 있다.
3남 父子 소유 세하㈜, 유전사업으로 사달
현재 백판지 업체 세하㈜(옛 신무림제지)는 해성그룹 소속이다. 제지를 비롯해 전동공구·전장모터, 반도체 부품 분야의 중견기업이다. 2020년 5월 한국제지(현 해성산업)가 인수, 계열 편입했다. 지주회사 해성산업이 1대주주로서 지분 50.73%를 소유 중이다.
옛 주인이 무림 창업주의 3남 이동윤(73) 전 세아㈜ 회장이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76년 모태기업 무림제지(현 무림에스피) 입사하며 경영에 입문했다. 창업주 작고 직후인 1989년 6월 바로 윗형 이동욱(75) 회장이 취임할 무렵 세하㈜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사실상 독자경영의 출발이다. 2006년 1월에는 회장으로 취임했다.
‘[거버넌스워치] 무림 ②~③편’에서 얘기한대로, 창업주 2세들이 무림SP, 무림페이퍼, 세하㈜ 등의 주력사 지분을 직접 소유했던 2000년 7~8월 이 전 회장이 장남 이준석(45) 전 세하㈜ 상무와 함께 무림SP 20%를 전량 팔아치운 것은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부자(父子)는 세하㈜ 각각 18.18%, 21.07% 도합 39.25%를 가진 대주주였다.
순탄했다. 화장품, 의약품, 제과 등의 포장재로 쓰이는 백판지를 생산하는 세하㈜는 2003년만 해도 한솔제지, 대한펄프(현 깨끗한나라)에 이어 업계 3위의 알짜업체였다. 시장 점유율도 20%나 됐다. 2001~2003년 매출(별도기준) 1200억원대에 영업이익으로 적게는 76억원, 많게는 209억원을 벌어들였다.
2005년 카자흐스탄에 있는 광구 개발권을 확보해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사달이 났다. 사명을 신무림제지→세하㈜로 교체한 게 이 무렵인 2007년 3월이다. 2013년 매출 1740억원에 순익적자가 628억원에 달했다. 부채비율 821%에 이를 정도로 경영상황 악화됐다.
2014년 1월 워크아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무림그룹에서도 계열 제외됐다. 2014년 11월 부실채권전담은행인 배드뱅크 유암코(연합자산관리·당시 지분 31.49%)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동윤․이준석 부자의 세하㈜ 지분은 8.35%로 축소됐고, 이 전 회장의 세하㈜ 대표 자리라고 온전할 리 없다. 한 달 뒤 물러났다.
세하(주), 파인리조트 재무실적
5남, 무림페이퍼 지분 현금화 배경 촉각
현 무림그룹 소속 미래개발은 1971년 3월 설립된 양지리조트를 전신(前身)으로 하는 레저업체다. 1996년 9월 파인리조트를 거쳐 2019년 12월 현 사명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27홀 골프장과 스키밸리, 콘도미니엄을 갖춘 경기 용인 양지파인리조트와 강원 속초 콘도미니엄 설악파인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1대주주 무림파워텍(42.0%)을 비롯해 무림P&P, 무림로지텍, 무림캐피탈 등 4개 계열사가 지분 77%를 보유 중이다.
원래는 창업주의 5남 이동훈(66) 전 파인리조트 회장 몫으로 분류됐던 계열사다. 회장 명함을 달리 갖고 있었던 게 아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으로 일찌감치 레저사업에 눈을 돌렸다. 1985년 1월 무림그룹이 파인리조트를 계열 편입한 데서 비롯됐다.
인수 당시 파인리조트 이사를 시작으로 1989년 부사장→1995년 부회장→2001년 회장으로 명함을 바꾸며 파인리조트를 경영무대로 삼았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범위로는, 2000년 말 최대주주로서 특수관계인을 합해 지분 100%를 소유했다.
파인리조트를 사업 기반으로 하는 회사들도 하나 둘 차렸다. 1997년 7월 파인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주로 파인리조트 건물과 시설 관리, 청소용역을 담당했다. 부인 황희준씨 등 가족들과 함께 지분 100%를 보유했다. 2003년 11월에는 파인리조트(지분 35.71%)를 통해 파인시스템즈(옛 피컴스)를 인수했다. 관광·레저분야 IT 솔루션 개발 및 통합정보시스템 업체다.
반면 2000년대 중반부터 파인리조트는 벌이가 썩 신통치 않았다. 매출이 2006년(3월결산․2006년 4월~2007년 3월) 362억원에서 2015년에는 227억원으로 축소됐다. 10년간 적게는 26억원, 많게는 121억원 순익적자가 이어졌다, 2016년 3월 말 결손금 357억원에 달했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609억원 초과할 정도로 재무건전성이 나빠졌다.
2016년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듬해 6월 유진그룹에 매각됐다. 이 전 회장이 이사진에서 물러나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던 시기다. 2018년 4~5월에는 파인매니지먼트, 파인시스템즈 등 다른 계열사도 청산했다.
2019년 말 파인리조트는 무림그룹에 재인수됐지만 무림가의 5남이 경영에 복귀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래저래 지난달 무림페이퍼의 상당 지분을 현금화 한 이 전 회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거리다.
무림그룹 핵심계열사 주주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