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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적 자서전쓰기
이영식 목사
I. 자서전의 개념과 서사적 특징
1) 자서전의 개념 정의
자서전(自敍傳; autobiography)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self)을 뜻하는 “autos”, 삶(life)을 뜻하는 "bios", 글쓰기(write)를 뜻하는 "graphein"이라는 그리스어가 합성된 용어로서 ‘자신의 생애를 자신이 기술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1) 경우에 따라 자서전을 전문 작가에게 대필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자서전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일반 전기와 자서전이 다른 점은 전자는 서술자와 피 서술자가 다른 인물인 반면 후자는 서술자와 피 서술자가 동일인물이라는 점이다.
한편 자서전과 비슷한 말로 회고록(回顧錄;memoir)이 있는데 전자가 한 사람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을 어린 시절부터 집필 시점까지 체계적으로 다룬다면 후자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에 대해서 글쓴이의 개인적인 기억, 느낌, 감정, 해석을 기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서전의 형식은 매우 오래된 장르 이지만 "autobiography"란 용어는 시인인 Robert Southey가 1809년 “the English periodical Quarterly Review”라는 평론잡지에서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2) 자서전의 서사적 특성
Lejeune에 따르면 자서전은 서사형식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정혜진, 2007; 천정은, 2004).
첫째, 서술 형태에 있어서
① 이야기와, ② 산문으로 되어 있다. 자서전은 저자가 살아온 특정한 공간과, 시간, 시대를 배경으로 나와 주변인물들이 등장하며 시간의 축을 따라 사건이 전개된다. 그 안에는 다양한 갈등양상과 그것의 해결의 과정이 그려진다. 자서전은 저자가 경험한 사건들을 단순하게 모아놓은 일지 이상의 것으로서 사건과 사건을 의미 있게 연결시켜주는 주된 플롯이 있다. 이런 면에서 자서전은 한 편의 완성도 높은 서사문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다루어진 주제 면에서
① 한 개인의 삶이나, ② 인성의 역사를 다룬다. 자서전의 개념을 규정하면서 언급했듯이 자서전의 주제는 저자 자신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집필의 시점까지 통시적으로 다룬다. 회고록이 어떤 정치적 상황이나 전쟁,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상황에 대한 회고자의 개인적 기억과 견해, 느낌에 대한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자서전의 주제는 자기 자신에 관련된 것이다. 즉 자신의 출생과 학창시절, 결혼, 가족관계,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들, 좌우명, 직업, 자녀양육, 종교생활, 성격, 질병, 직업적 성취, 좌절의 경험, 욕구 등등.
셋째, 저자와 화자의 관계
① 저자와 화자가 동일인물일 것을 전제로 한다. ② 화자와 주인공이 동일인물일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저자 = 화자 = 주인공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동일성은 형식적인 면에의 동일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동일성을 뜻한다. 자서전의 하위 장르로서 “소설 형식의 자서전”(fictional autobiography)에서는 화자를 일인칭으로 내세우지 않고 삼인칭으로 기술 할 수 있으며 아예 배우자나 친구, 생경한 타인의 목소리로 서술할 수도 있다. 반대로 완전히 허구적인 텍스트인데 자서전의 형식을 빌려서 서술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자와 화자의 형식적 동일성이 자서전의 본질을 보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떤 서사문이 자서전이 되려면 실제 저자, 또는 피서술자가 화자, 또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주인공과 내적으로 일치한다는 전제를 만족시켜야 한다.
넷째, 시간적 시점
이야기가 과거 회상(回想)형으로 진행된다. 즉 자서전을 집필하는 시점으로부터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기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점을 일반적인 관례이며 소설형식을 빌린 자서전의 경우 좀 더 융통성 있게 시간적 시점을 설정할 수 있다. 또한 교육적 목적의 자서전 설계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삶을 미래의 관점에서 과거형으로 기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거 회상형 진술은 자서전의 일반적 관행일 뿐 본질적인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II. 자서전쓰기의 원리
자서전을 쓰기위한 원리는 ① 자기 객관화의 원리, ② 관계성의 원리, ③ 진정성의 원리, ④ 통일성의 원리 등이 있다(정혜진, 2007). 이런 요소들은 치료적 자서전쓰기와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1. 자기 객관화의 원리
자서전은 서술자와 피서술자가 내적으로 동일인물일 것을 전제로 하지만 양자가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진술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찰하는 나와 관찰당하는 나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서전을 쓰기 위해 필을 드는 순간 우리는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자기 객관화가 일어나는 셈이다.
서사학에서 “내포작가”(implied author)라는 개념이 있다. 내포작가란 서사 텍스트에 반영된 작가의 제2 자아, 마스크, 혹은 페르소나(persona)를 일컫는 말로 본문의 여러 배경의 배후에 도사리고서, 텍스트의 디자인이나 텍스트가 보유하는 가치관과 문화적 규범에 책임을 진다고 여겨지는 가상적 작가이미지를 말한다(제럴드 프린스, 1992). 자서전을 쓰고 있는 실제 인물과 완성된 자서전에 투사된 내포작가는 ‘나’라는 한 존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첫째 현실의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하여 한 편의 글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다. 자서전 역시 한 편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달리하여 여러 편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자서전에 내포된 작가는 하나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서전에서는 드물겠지만 하나의 문학 텍스트가 다수의 작가를 가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자서전을 쓰려는 사람은 필연코 작가적 정체성을 먼저 형성해야 하며 그렇게 설정된 내포작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기술하는 행위가 자서전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을 기술 할 때 서사적 맥락을 적절하게 조절함으로써 다양한 차원의 객관성을 확보 할 수 있다. 즉 화자와 수화자의 설정, 양자의 관계 규정, 서술 시점, 플롯의 채택 등을 어떻게 선택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자서전이 될 수 있다. 특히 이야기 치료에서 자기 객관화는 문제에 젖은 이야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즉 자신의 문제와 존재자체를 구별하여 문제를 하나의 서사로 다룰 수 있을 때 대안적인 이야기가 틈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① 화자 설정: 1인칭 화자, 3인칭 화자, 2인칭 화자 등등. 여기서 2인칭 화자 글쓰기란 주인공이 자기 앞에 이야기 상대를 두고 그 떼까지 말하지 않고 있던 자신의 내면을 털어놓음으로써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형식이다. 이 때 화자와 주인공은 서로의 대화 상대자로서 소설 속의 같은 이야기 차원에 위치한다(김명숙, 2005).
대개의 자서전은 일인칭으로 기술된다. 1인칭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기술하기에 용이하지만 객관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3인칭 화자를 내세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② 수화자 설정: 자서전의 수화자는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둘 수 있고 순전히 자신이 수화자로 설정 될 수도 있다. 또한 특정인에게 보내는 편지나 자녀들에게 남기는 유언의 형식으로도 쓸 수 있다. 같은 자서전이라도 수화자에 따라 글의 내용이 달라질 것은 명확하다.
③ 화자와 수화자의 관계: 서사적 용어로 컨택(contact)라고 한다. 양자의 관계의 종류와 질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서술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같은 자서전이라도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기술하는 것과 배우자에게 남기는 유언처럼 기술하는 것은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④ 서술하는 시점: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인생의 종말을 서술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을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해결중심의 단기상담에서는 어떤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 이미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가정하고 오늘 무엇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지 대화를 이끌어간다. 즉 시간적 시점이 미래에 있으며 관계역시 현재 문제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이미 해결된 시점으로 현재를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⑤ 이야기 안의 화자와 저자의 관계: 화자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보이는 대로만 중계한다고 가정하고 서술하는 것이 달라진다. 화자가 저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전지적 시점이 될 것이고 보이는 대로 중계만 한다면 관찰자 시점이 될 것이다. 이 양자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⑥ 제 3의 화자 설정: 대부분의 자서전은 화자가 곧 저자일 것을 가정하고 있으나 필요에 따라 자신이 아닌 배우자, 자녀, 친구, 스승과 같은 제 3자를 화자로 내세워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기술된 자서전은 전통적인 양식을 벗어나서 소설형식의 자서전(fictional autobiography)가 될 것이다.
⑦ 플롯 채택: 자서전 역시 서사문의 일종이기 때문에 플롯이 존재한다. 플롯이란 사건과 사건을 인과적으로 엮어주는 접착제의 역할을 하여 글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위에서도 논의 했지만 자서전이란 경험한 기억을 단순하게 모아놓은 것이 결코 아니며 어떤 일정한 플롯을 엮어진 완성된 작품이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요리사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듯이 어떤 플롯을 채택하여 자서전을 쓰는가에 따라 다양한 글이 생산될 수 있다.
자서전에서 플롯은 사건을 들을 인과적으로 연결시켜 줄 뿐만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는 준거가 되며 어떤 기억을 강조하고 어떤 기억은 무시할 것인지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어차피 아무리 상세한 자서전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이 경험한 것을 모두 기술할 수는 없고 그렇게 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자서전의 저자는 일단 자신의 경험을 완성도 높은 서사문으로 기술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며 화자를 내세우고 화자와 자신의 거리를 조정한 다음 일정한 플롯을 채택하여 기술한다.
2. 관계성의 원리
관계성의 원리란 자서전을 집필할 때 서술적 자아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과 일정한 관계를 정립해야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는 ① 상보적 관계, ② 대립적 관계, ③ 단절된 관계, ④ 병리적 융합관계, ⑤ 종속관계 등이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써 풀어내기 위해서는 중요한 타자들과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인관계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생장사멸(生長死滅)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자서전을 집필하는 가운데 얼마든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자신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하는 가운데 통찰이 일어나서 관계가 정립되어 갈 수도 있다.
3. 진정성의 원리
진정성이란 진솔성(眞率性)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자서전은 자신에 대한 서사로서 저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의 말이 객관적이고 역사적 사실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솔성(眞率性)이 핵심이다. 사실 일반역사 역시 어떤 시점을 설정하지 않고 완전히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역사기술 자체가 해석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 저자의 자신의 기억에 대한 진솔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자서전의 옷을 입었다 하더라고 소설(fiction)이 되고 소설의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진솔성이 확보된다면 내면적으로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쓰기가 자신의 기억에 대한 진솔한 글쓰기라는 점에서 글쓰기치료와 잘 접목이 된다. 특히 펜니베이커(2007)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에 대한 진솔한 기술이야말로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한편 이러한 글쓰기의 진솔성을 응용하여 (제이콥 베스, 2008)는 다음과 같은 글쓰기 치료 과정을 제안한다.
① 자신이 경험한 충격적인 사건, 거기에 얽힌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② 그때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묘사한다.
③ 그 사건이 지금 나에게 미치고 있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력을 평가해 본다.
④ 그 사건이 나에게 미치고 있는 부정적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을 일을 찾아본다.
이와 같은 요소들을 갖추어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통시적으로 기술한다면 단편적인 글쓰기보다 훨씬 강렬한 카타르시스와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4. 통일성의 원리
자서전에 있어서 통일성이란 저자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단순하게 시간 순으로 배열한 것 이상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완성도 높은 서사에는 사건들을 인과적으로 엮어주는 접착제가 있는데 곧 플롯이다. 자서전에서 플롯은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관이나 특정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주제에 따라 다양한 자서전이 생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의 플롯 채택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치료적 요소로서 통일성의 원리 역시 중요한 주제이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소재로 하여 하나의 통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천재지변이나 사고, 질병, 중요한 타자의 상실 등과 같이 충격적인 경험들은 자신의 인생플롯에 너무나 맞지 않기 때문에 미처 해석되지 못하고 삶의 줄거리에 적절하게 통합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런 파편화된 이야기가 극도의 슬픔이나 수치심, 불안, 분노와 같은 강렬한 정서를 수반하고 있을 때 여러 가지로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자신의 삶을 통시적으로 조명하여 기술하는 자서전 쓰기를 통해서 이런 사건들을 인생의 전체 맥락에서 재음미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인생의 줄거리에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나치 치하의 포로 수용소 체험을 통하여 의미요법을 개발하였다. 그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체험을 상담의 새로운 이론정립이라는 맥락 안에 둠으로써 가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생산해 내고 있다.
글로 쓰는 것은 반복적으로 회상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깊은 통찰로 우리를 안내 할뿐만 아니라 시간의 축을 타고 전개되는 인생 서사의 성격에도 매우 잘 부합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억은 정보의 파편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문자의 옷을 입고 책 속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며 한 편의 인생 서사 전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문제는 성장의 기회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로, 수치스러운 과거는 성장을 위한 발판의 도약으로 채택될 수 있는 것이다.
III. 자서전쓰기 방법
자서전쓰기와 관련된 단행본들이 국내에도 몇 권 출판되었다. 이남희(2000)는 『자기발견을 위한 자서전 쓰기』라는 책에서 실제로 자서전을 집필하는데 필요한 노하우와 구체적인 과정을 섬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작가답게 자서전의 여러 가능한 주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싣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한정란 등(2004)은 『노인 자서전 쓰기』라는 책에서 자서전 쓰기에 대하여 좀 더 교육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즉 ①자서전의 개념 규정으로부터 시작하여, ② 자서전쓰기의 형태, ③ 주제, ④ 그룹 자서전쓰기 프로그램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자서전쓰기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이다.
1. 개인적 자서전 쓰기 활동
개인적인 자서전쓰기는 이 영역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글쓰기는 인간의 다른 의사소통 기능인 듣기, 말하기, 읽기보다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혼자 이러한 거대한 작업을 해 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개인적 자서전쓰기 활동을 돕는 책들을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치유 목적의 자서전을 쓰고자 할 때 맥아담스(Dan P. McAdams)의 7단계 지침이 도움이 될 것이다(양유성, 2004). 1단계는 전체적 윤곽 잡기이며, 2단계: 삶의 여덟 가지 중요 경험에 반응하기2) , 3단계: 중요한 주변 인물에 대한 기술, 4단계: 미래에 대한 이야기, 5단계: 스트레스나 문제들, 6단계: 개인적인 사상과 신념들, 7단계: 삶의 전반적인 주제에 관한 기술 등이다.
한편 린다 스펜스(2008)는 출생에서 노인까지 생애를 시기별로 나누고 각 시대마다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 목록과 그에 대한 저자 자신의 예시적인 반응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자신에 대한 총체적인 인터뷰로서 총 480가지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작가 자신도 모든 질문에 다 반응하지 않듯이 이 가운데 마음에 닿는 것들을 골라서 틈틈이 기록하여 교정하는 단계를 거친다면 훌륭한 자서전이 될 것이다. 질문은 미지의 세계를 여는 열쇠와 같아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을 때 자신에게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상기해 내고 그것을 줄거리가 있는 서사로 엮어서 상대방에게 들려준다. 이 책은 질문의 이러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촉진적인 힘을 활용한 것이다.
생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한혜수(2003)는 좀 더 서사적인 측면에서 자서전을 어떻게 집필해야할 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한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염두에 둔다면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범인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만의 이야기 하는 방법을 개발하라고 한다. 즉 그림을 그리듯이, 독백하듯이, 사진 스크랩하듯이, 시나리오 쓰듯이, 뉴스를 전하듯이, 지역이나 장소에 따라, 참여 형식에 따라, 인터뷰 하듯이, 소설 쓰듯이, 사건과 사고에 따라, 역사적 사건 활용하기, 일기 쓰듯이 등등.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글을 쓰더라도 자신에게 적절한 지침서를 참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양한 글쓰기에 대한 방법론은
Kathleen Adams(2007)의 『저널 치료』와 『저널치료의 실제』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2. 그룹 자서전 쓰기
글쓰기는 의사소통 기능 가운데 가장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무작정 쓰는 것보다는 말하기와 듣기, 읽기, 쓰기와 결합시켜 활동하면 훨씬 재미있고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데 이를 가능케 해 주는 것이 그룹 자서전쓰기이다. 예컨대 먼저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 등 특정한 시기를 상기하는데 도움이 되는 독서자료를 읽고, 소감을 그룹에서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다음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서전글쓰기는 통합적 독서치료와 활동과 잘 접목될 수 있다.
앞에서 자서전쓰기의 원리 가운데 “객관성”을 언급했다. 자신의 외모를 비춰 보려면 거울을 보고 몸속의 고장 난 부분을 알아보려면 내시경이나 엑스레이 촬영을 해야 하듯이 내면세계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거울이 필요한데 그룹 활동은 이를 위해서 입체적 환경을 제공한다. 즉 그림책이 소설, 시, 영화와 같은 다양한 매체로 제시되는 타인의 이야기가 첫째 거울이며 그 작품에 반응하는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또 다른 거울이다. 그룹 안에서는 이처럼 텍스트를 비롯하여 참여자들 각자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는 장점이 있다. 그룹 자서전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글쓰기에 대한 원리뿐만 아니라 그룹 역학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3. 오디오/비디오 자서전쓰기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의 이야기를 오디오나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장비가 있다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자작으로 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 대필 자서전
대필 자서전 활동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대필 자서전의 좋은 사례는 댄 헐리의 책 『60초 소설』에 잘 기술되어 있다.
미국 변호사 협회지 기자로 일하고 있던 저자는 젊은 작가 지망생이었다. 어느 날 그는 만약 타자기를 들고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즉석에서 소설로 옮기면 어떻게 될 것인지 좀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마침내 1983년 4월 24일 시카고의 한 거리에 나타났다. 1953년형 로얄 타자기를 들고 와 거리에 앉은 그는 사람들을 잠시 인터뷰한 다음 즉석에서 『60초 소설』타이핑하여 나주기 시작했다. 타이핑 할 때 먹지 한 장을 덧대어 한 부씩 보관한 이야기가 책을 발간할 즈음까지 16년 간 1m터를 훌쩍 넘고 시카고에서 시작하여 뉴욕까지, 아이오와 시골의 농장에서, 중서부의 쇼핑몰에서,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편의점애서 만난 22,613명의 생애를 담아냈다고 한다. 『60초 소설』은 그 중에 감동적인 이야기 60편을 담아 펴낸 것으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자서전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60초 소설 써 주기는 그의 직업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아내를 만나게 했으며 삶의 플롯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본 발제자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필 자서전이 생애를 송두리째 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자질구레한 모든 일상을 기술해야 하는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치료적 글쓰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단 60초에 써내려 간 내용이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기승전결이 있으며 삶의 가장 핵심이 농축되어 있고 플롯이 긍정적이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을 본다. 필요에 따라 60초 소설을 3분 소설로, 또는 5분, 10분.... 늘려가면서 다양하게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삶이 단순하게 기억되는 것 보다는 말해지는 것이 치료적이며 말해지는 것보다 완성된 글로 씌여지는 것이 훨씬 치료의 효과가 강한 것임을 느낀다.
5. 연구 및 교육활동으로서의 자서전 쓰기
교육적 차원에서의 자서전쓰기는 천정은(2004), 정혜진(2007) 등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상세하게 논의한다. 교육적 자서전 쓰기가 일반적인 자서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서전의 요소들은 그대로 활용하되 후자가 살아온 날들을 회상형으로 기술하는 반면 전자는 살아보지 않은 미래를 회상형으로 기술하여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효과를 거둔다는 점이다.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위원인 강영우 박사의 글에 보면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신입생들에게 교육적 차원에서의 자서전 쓰기를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치료적 목적으로 자서전과 교육적 목적에서의 자서전은 사실 하나의 선상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7. 치료적 목적의 자서전 쓰기
치료적 목적의 자서전쓰기는 위에서 논의한 모든 형태를 종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이 치료에 있기 때문에 문학적 심미성에 초점을 두기보다 자신을 성찰하고 표현하며 의미의 발견과 억압된 정서의 카타르시스, 삶에 대한 새로운 조망 획득 등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IV. 자서전쓰기 치료 프로그램 사례(학위논문을 중심으로)
국내에도 치료적 목적의 저서전 쓰기에 관한 선행 연구를 몇 편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논문 제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김순미(2004), 『인성교육을 위한 자서전 쓰기 교수·학습 방법 연구 : 인문계 특성화고등학교를 중심으로』(조선대 교육대학원)
② 김인숙(2007), 『그룹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중년여성 우울증 치료에 미치는 영향』(가톨릭대 교육대학원)
③ 최영일(2005), 『신앙적 자서전 쓰기를 통한 노인상담』, 평택대 신학전문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이밖에도 손창화(2006)의 내러티브를 목회상담에 적용하는 연구 논문이 참고할 만하다.
참고문헌
Kathleen Adams(2007). 저널 치료. 강은주• 이봉희 역. 서울: 학지사
Kathleen Adams(2007). 저널 치료의 실제. 강은주• 이봉희•이영식 역. 서울: 학지사
김명숙(2005). 조르쥬 페렉의 새로운 자서전적 글쓰기. 서울: 한국학술정보
김순미(2004). 인성교육을 위한 자서전 쓰기 교수·학습 방법 연구 : 인문계 특성화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조선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김인숙(2004). 그룹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중년여성 우울증 치료에 미치는 영향.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댄 헐리(2000). 60초 소설. 류시화 역. 서울: 웅진닷컴.
린다 스펜스(2008).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황지현 역. 서울: 고즈원.
손창화(2006). 내러티브치료의 목회상담적 적용. 장로회신학대 목회전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양유성(2004). 이야기치료. 서울: 학지사
정혜진(2007). 자서전쓰기 교육방법 연구. 신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제럴드 프린스(1992). 서사론사전. 이기우•김용재 역. 서울: 민지사.
제이콥 베스(2008). 감정다스리기를 위한 글쓰기. 김현희, 이영식 역. 서울: 학지사
천정은(2004). 자서전쓰기 지도방법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최영일(2005). 신앙적 자서전 쓰기를 통한 노인상담. 평택대 신학전문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펜니 베이커(2007). 글쓰기 치료. 이봉희 역. 서울: 학지사.
한정란 외(2004). 노인 자서전쓰기. 서울: 학지사
한혜수(2007). 나를 기록하라. 서울: 매일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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