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페.톡Cell)회원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乙巳年 (Cell)가족 방문의 해(前)💖
◇악인(惡人)은 그의 환란(患亂)에 엎드러져도 의인(義人)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所望)이 있느니라(잠14:32) (舊正 特輯)(1)
† 구약(舊約) ☆ (詩歌書)
전2:1-11절) 인간의 행복(幸福)지수(index)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所重)한 인생(人生)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밖에 없는 인생(人生)을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보내기를 원(願)할 것입니다. 즉 자기(自己) 인생(人生)이 헛된 개죽음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問題)는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목숨만 있고, 세상(世上)을 사는 데는 시간(時間)의 제안(提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목숨이 여러 개 있어서 일이 잘 안 풀리기라도 하면, 죽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만, 우리 목숨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人生)의 기한(期限)도 절대 무한(無限)하지 않습니다. 우물주물하다가 보면, 나이가 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밖에 없는 인생(人生)을 낭비(浪費)하지 않고, 아름답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이에 대(對)해서 사람들마다 입장(入場)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단 자기(自己)가 하고 싶은 욕망(慾望)을 다 추구(追求)해 보라고 말합니다. 즉 세상(世上)을 사는 기간(期間)이 너무 짧기 때문에 자기(自己) 욕망(慾望)을 채우는 것이 가장 행복(幸福) 한 길이라고 생각(生角)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실컷 먹고, 놀고 싶으면, 실컷 놀라는 것입니다. 대개 부잣집 자녀(子女)들이 이런식으로 인생(人間)을 망치기 십상입니다. 일단 돈이 많으니까 공부 (工夫)나 일은 뒷전이고, 세상(世上)을 실컷 즐기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책임(無責任)한 난봉꾼 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인간(人間)의 욕망(慾望)은 끝이 없어서, 채우면 채워질수록 행복(幸福)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虛無)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실(成實)한 사람들은 목표(目標)를 정(定)해 놓고, 온 힘을 다해 목표(目標)를 추구(追求)합니다. 즉 이것저것 하는 대신(代身), 한 가지 목표(目標)를 정(定)하고, 최선(最先)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단 자신(自身)의 목표(目標)를 성취(成就)해서 좋고, 다음에는 그것으로 사회적(社會的)으로 인정(認定)을 받아서 좋습니다. 대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살아갑니다.
명문(名文) 대학(大學)을 나온다든지, 고시(考試)에 합격(合格)한다든지 하면, 그만큼 유리 (有利)한 고지(告知)에서 세상(世上)의 좋은 것들을 차지하게 됩니다. 즉 유리(有利)한 고지(告知)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기회(機會)를 먼저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이 좋은 것을 선택(選擇)한 후(後)에 남은 것을 고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창의성(創意性)이 떨어집니다. 기계적(機械的)으로 정(定)해진 일들은 잘하는데, 공식(公式)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어떻게 대처(對處)해야 할 줄 모릅니다. 공식(公式)만 달달 외워서 그 자리에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행복지수(幸福地數), 즉 사람이 느끼는 행복(幸福)의 정도로 표현(表現)하면, 어떤 사람의 행복지수(幸福地數)가 가장 높을까? 우선 행복지수(幸福地數)가 높은 경유는 육체적(肉體的) 욕구(欲求)가 잘 채워질 그때입니다.
즉 먹고 싶고, 가지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사람은 행복(幸福)해집니다.그러나 문제(問題)는 모든 사람이 자신(自身)이 욕구(欲求)를 무한(無限)히 만족(滿足)시킬 순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욕구(欲求) 충족(充足)은 처음에는 효과(效果)가 있어도 계속(繼續) 반복(反復)되면, 효과(效果)가 떨어집니다. 즉 최고급(最高級) 식당(食堂)에 처음 갈 때는 굉장한 행복(幸福)을 느끼지만, 자꾸만 가면, 효과(效果)가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에는 목표(目標)를 설정(設定)해 놓고, 최선(最先)의 노력(努力)을 하다가 목표(目標)를 성취(成就)했을 때, 얻게 되는 만족감(滿足感)이 있습니다. 즉 어려운 시험(試驗)에 합격(合格)했거나, 학위(學位)를 받았거나, 아무도 오르지 못한 높은 산(山)에 올랐을 때, 느끼는 행복(幸福)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복감(幸福感)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작은 만족(滿足)으로 그치든지, 아니면 새로운 목표(目標)를 찾아 다시 도전(挑戰)을 시작해야 행복(幸福)한 상태(狀態)가 지속(持續)될 것입니다.
예외적(例外的)으로 외적(外的)인 상태(狀態)나 목표달성(目標達成)과 상관(相關)없이 주관적(主觀的)으로 자기(自己) 상태(狀態)에 만족(滿足)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느끼는 행복감(幸福感)이나, 선행(善行)의 기쁨 같은 것입니다.
종교적(宗敎的)인 희열(喜悅)도 여기에 속(屬)하는 행복(幸福)입니다. 모두 외적(外的)인 상태(狀態)의 변화(變化)는 없고, 내면적(內面的) 만족감(滿足感)에서 우러나오는 행복(幸福)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복(幸福)은 육체적(肉體的)인 행복(幸福)이 아니라, 정신적(精神的) 행복(幸福)입니다. 그래서 종교(宗敎)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지수(幸福地數)가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영학(經營學)을 공부(工夫)하는 사람은 마슬로우(slow)의 욕구(欲求) 단계(段階) 이론 (理論)을 잘 알 것입니다. 즉 사람의 욕구(欲求)는 다양(多樣)한 단계(段階)가 있는데, 식욕 (食慾)이나, 정욕(情慾)같은 기본적(基本的)인 것에서 안정감(安定感)이나, 소속감(所屬感)으로 나아가 최종적(最終的)으로 종교적(宗敎的) 욕구(欲求)나, 자아(自我) 성취(成就)의 욕구(欲求)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욕구(欲求) 중(中)에서 무엇이 최고(最高)의 행복(幸福)인지는 단정(斷定)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중요(重要)한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Ⅰ.욕망(慾望)을 따르는 삶(Ⅰ)
아이들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가면, 아이는 정신(精神)을 못 차립니다. 즉 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니 솔직한 마음으로는 장난감 가게 전체(全體)를 사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난감을 전부(全部)가진다고 해서 모두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뷔페음식이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우리 위장(胃臟)은 한계(限界)가 있어서 어느 정도 먹고 난 후(後)에는 더 먹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욕심(慾心)의 눈으로 세상(世上)을 보면,너무나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지만, 문제(問題)는 우리 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자(富者)들은 자기(自己) 몸이 여러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生角)할 것입니다.즉 이 몸은 회사(會社)에서 일을 하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또 다른 몸으로는 세계(世界)일주(一周)를 다닌다고 상상(想像)해 보면, 손오공이 머리털을 뽑아서 후⤳불면 똑같은 손오공이 복제(複製)되는 것처럼,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하나이므로 결국(結局) 줄이는 것이 잠입니다. 사람들은 잠자는 시간(時間)을 아쉬워하며, 많은 일들을 하고 싶어 합니다.
나폴레옹은 얼마나 의욕(意欲)이 많았는지, 잠자는 시간(時間)이 아까워서 하루에 30분 정도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結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욕심(慾心)을 내, 잠자는 시간(時間)까지 아까워하며,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다가 결국(結局) 어떻게 될까? 별로 건지는 것도 없이, 몸만 병들고,가까운 사람들만 잃어버렸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1절)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樂)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자(前導者)는 시험적(試驗的)으로 낙(樂)을 추구(追求)했다고 말합니다. 과연 사람이 시험적(試驗的)으로 낙(樂)을 누릴 수 있을까? 사람의 인생(人生)은 하나밖에 없고, 시험적(試驗的)으로 살아 볼 만큼 길지도 못합니다.즉 여러 가지 일을 시험적(試驗的)으로 해 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인생(人生)인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時間)이 지나면, 아무리 원해도 건강(健康)이 받쳐 주지 않아서 할 수가 없습니다. 젊을 때는 마치 인생(人生)이 무한(無限)한 것처럼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試圖)해 보다가도, 나이가 들어버리면,더는 다른 것을 시도(試圖)할 수 없는 때가옵니다.
그럼 *시험 삼아 낙(樂)을 누려 보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 자신(自身)도 진정한 가치(價値)를 발견(發見)하기 전(前)에는 여러 행복(幸福)을 추구(追求)하느라고 인생(人生)을 방황(彷徨)해 보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잠23:9절)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라. 이는 그가 네 지혜(智惠)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무시(無視)하고, 자기(自己) 욕망(慾望)껏 하고 싶은 대로 여러 가지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엄청난 시간(時間)과 정력(精力)의 낭비(浪費)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너무 늦기 전(前)에 정신(精神)을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위치(位置)에 서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너무 오랫동안 방황(彷徨)했거나, 자기(自己) 욕심(慾心)대로만 살았다면, 이런 진리(眞理)를 찾을 수 있는 기회(機會)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聖經)은 자기(自己) 욕망(慾望)대로 사는 인생(人生)을 *들 나귀 인생(人生)*이라고 말합니다. *들 나귀*는 어디에도 만족(滿足)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동물입니다. 즉 세상(世上)어디에도 만족(滿足)하지 못하다가 병들어 죽거나, 다른 맹수(猛獸)에 물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늦기 전(前)에 정신(精神)을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남은 인생(人生)이나마 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恩惠)입니다.
성경(聖經)이 할 수 있는 대로 젊어서 고생(苦生)하라는 것도 고생(苦生)하는 중(中)에 자신 (自身)은 아무것도 아니고,하나님을 의지(依支)하는 것이 중요(重要)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인생(人生)을 하나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망(慾望)을 따르는 사람은 다음 두 가지 사실(事實)을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 인생(人生)이 유한(有限)하다는 사실(事實)입니다. 한번 지나간 시간(時間)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重要)한 것이 시간(時間)입니다.
한번 허비(虛費)한 인생(人生)은 되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使徒) 바울은 엡516절)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惡)하니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혼자서는 행복(幸福)할 수 없다는 사실(事實)입니다.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 최고(最高)의 만족감(滿足感)이 있습니다. 만약 자기(自己)것을 남에게 주는 법(法)을 배우지 않은 무식한 꼴통, *놀부와 같은 못된 심보*는, 온 세상(世上)을 돌아다니며 찾아도 참된 행복(幸福)은 오지 않습니다.아-멘
※만물(萬物)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精神)을 차리고 근신(勤愼)하여 기도(祈禱)하라(벧전4:8)
우리세대와 다음세대,소중한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마28:18-20) ◑멸망할 영혼救靈과 避難處설립할 특별기도와 특별기부동역자 찾습니다. 온라인 헌금 농협중앙회 주거래 우대통장 302-8772-0191-01 이름 옆에 헌금종류-6자(예 : 착한이 십일조) ☆네 재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인정(認定)과 순종(順從) 💖진리의 복음💖
|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친절하게 열린 상담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