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진 지 어언 3일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집, 도서관, 피시방을 전전하며 폐인 같은 생활에 지쳐 있었기에 날이 밝자 잽싸게 튀어나왔습니다.
방학이어서 집에 있던 저와 마찬가지로 방학이라 수업이 없는 아버지, 그리고 집에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그리고 여행에 방해만 되는 짐들(김선빈, 김선형, 김선린)은 떼어놓고 가볍게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디로 가는진 모르겠지만, 좋은 날씨에 훌쩍 떠나는 그 느낌이 얼마나 산뜻합니까?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으시고 어머니는 조수석에, 그리고 저는 뒷자석에 앉아 서쪽으로 출발했습니다.

<야심 찬 출발>
차를 타고 한참을 간 후에도, 목적지가 어딘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가는 길에 지리산과 근처에 있는 대성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네비게이션은 커녕 지도도 없지만, 자타공인 인간 내비게이션 아버지의 운전실력을 믿고 저는 편히 사진을 신 나게 찍었답니다.
일단 마산 시내에서 진동 방면으로 빠져나가 마산을 벗어났습니다. 이반성쪽에 잘 닦여진 도로를 타고 진성 IC에서 남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산청 방면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장마의 여파가 남았는지 비가 몇 방울 홀짝였지만, 운 좋게 더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12시 즈음 남강을 건너 진주에 진입했고, 경호강(남강) 변을 따라 산청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갔는데, 역시 고속도로를 타니 산청 IC까지는 금방이었습니다.거기서 다시 3번 국도를 거쳐 60번 국도를 타고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구름 낀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느낌은 정말 신선이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장마철의 먹구름이 예뻐보였던 첫 번째 순간이었습니다. 산의 정상까지 이어진 도로를 타고 대성산에 오르자, 우리가 올라왔던 긴 도로가 우리 뒤에 따라 올라오고 있었고, 반대쪽의 산을 굽어보니 산 밑으로 뻗어있는 긴 능선에 작은 암자가 콕 박혀 있었습니다.

<정취암을 찾아보세요>
정취암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하자면 일단 산청 9경 중에 하나입니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암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에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정취암으로 갔더니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산속 깊이 숨어있는 암자라는 점에서 그 은근한 매력이 드러나는 듯 했습니다. 작은 건물들 몇 채와 정원, 큰 나무와 바위가 있던 내부가 참 예뻤습니다. 내부 모습을 어찌 다 표현할까 하는 마음에 사진으로 보여 드리기로 했습니다. 같이 감상하시죠.




<정취암의 풍경>
이렇게 등산을 오래 하자(대부분 차를 타고 하는 등산이었지만) 배가 출출했습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출발했기 때문에 점심시간은 한참 전에 지난 지 오래였습니다. 이제 다시 차를 타고 산에서 내려와 지리산 방면으로 향하면서 배를 채워줄 음식점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마 동생들이 있었다면 그런 곳에서 먹는 음식이라 해봐야 평소와 똑같았겠죠. (중국집 혹은 패스트푸드) 그러나 이번에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그런 메뉴에 질려버린 사람들이었기에 좀 더 색다른 음식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길을 가는 길에 저는 스마트 폰으로, 아버지는 냄새로 음식점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역시 아버지의 코가 한 수 위여서 그런지 아버지가 저보다 먼저 음식점을 찾으셨더군요. 이번에 결정된 메뉴는 바로 '어탕', 계속 벼르고 왔던 메뉴였지만 마땅한 집을 찾지 못했었는데, 산청군 신안면 문대리를 지나갈 때 커다란 간판에 '어탕'이라고 써 놓은 가게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붕어를 푹 고아 곰탕처럼 만든 다음, 여기에 방아, 부추, 파, 마늘, 고추, 된장 등을 함께 넣고
그 국물에 국수와 밥을 말아 먹는 '붕어곰탕'이 유명한 집이었습니다. (침 고이네) 가게 안도 깨끗했고, 밑반찬도 맛있었으며, 무엇보다 어탕의 맛이 최고였습니다.
처음에는 곰탕처럼 삼삼한 맛의 하얀 국물이었는데, 여러 가지 채소와 된장을 넣자 맛이 금방 어탕 맛으로 변했습니다. 아버지는 국수를 두 개나 말아 드셨고 저도 밥을 왕창 말아 순식간에 흡입했답니다. 우리 셋 모두는 먹은 뒤 한참 뒤까지 굉장히 만족스러워했고 전 꼭 다시 오고자 하는 생각에 명함을 챙기고 위치 정보를 잘 저장해놨습니다.

<맛있었던 어탕>
이제 밥도 먹었으니 다시 여행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엔 진짜로 지리산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20번 국도를 타고 지리산으로 가는 길에 남명 조식 선생의 서원인 덕천서원에 들렀습니다. 지리산을 사랑했던 남명 조식 선생은 천왕봉이 보이는 곳에 자신의 서원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덕천서원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니 남명 선생이 왜 그토록 지리산을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천왕봉의 동쪽에 자리 잡고, 앞에는 개울이 흘러가는 덕천서원에 있으니 남명 선생의 시 한 수가 떠오릅니다.
頭流山(두류산) 兩端水(양단수)를 녜 듯고 이졔 보니
桃花(도화) 뜬 맑은 물에 山影(산영)조차 잠겻셰라.
아희야. 武陵(무릉)이 어듸오, 나는 옌가 하노라
-남명 조식-

<덕천서원>
지리산 동쪽에서 지리산을 오르는 중에 흐르는 물을 발견하고는 살짝 옆으로 새서 계곡을 보러 갔습니다.
중산리 계곡이라는 곳에서 물을 구경했습니다. 경치가 좋아서인지 근처에는 이미 펜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날씨가 그렇게 덥지도 않은데다가 장마 때문에 불어난 물 때문에 물놀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어난 물이 큰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도 하나의 큰 재미였습니다. 계곡은 폭포와 같이 갈색 물을 계속해서 토해내고 있었고, 우리는 옆에 있는 작은 정자에 앉아 물을 구경하고, 큰 계곡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물에 발과 손을 담그면서 물과 산을 감상했습니다.
아버지 말을 들으니 예전에 우리 가족들이 여기에 와봤다고 하네요. 기억은 나지 않는데 다음에 한번 꼭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도 많고 근처에 맛있는 것도 많이 파는데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요.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습니다.
<흐르는 중산리 계곡>
이렇듯 멋진 계곡을 한참 구경한 다음에 이번엔 터널을 뚫고 산청을 넘어 하동군으로 갔습니다. 하동과 산청 사이에 있는 긴 삼신봉 터널을 넘어가자 하동군이라는 표지판이 우릴 맞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산청에서 봤던 산청 양수 발전소에 갔습니다. 양수 발전소는 낮에 물을 흘려 발전하고 밤에는 물을 다시 퍼올려서 다음날 발전을 하는 구조입니다. 그렇다 보니 댐이 2개나 됩니다.
우리는 하부 댐은 건너뛰고 산 위에 있는 상부 댐에 들러서 경치를 감상했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저수지에 댐을 쌓아 물을 막아놓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땅속 깊이 파놓은 수직 터널을 상상하니 새삼 한국인의 위대함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ㅋ 그 외에 담에 올라갔다가 직원한테 혼난 것 외에는 참 재미있고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빨리 내려오려고 뛰어내린다고 발이 좀 아팠답니다)
산청 상부댐을 마지막으로 저와 어머니는 슬슬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어머니가 조수석에서 졸고 계시길래 저는 어머니와 자리를 바꿔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청학동으로 갔습니다. 청학동에 대해선 제가 거의 좋은 경험이 있지를 않습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인성교육이다 뭐다 해서 아이들을 단체로 데리고 청학동에 있는 수련원에 가곤 했습니다. 대체 뭘 위한 수련인지도 모르겠고 왜 이게 수련인지도 모를 그런 짜증 나는 경험이었습니다. 군대 체험도 아니고, 직원들에게 말대답 한번 잘못했다고 얼차려를 받고 밤에 떠들었다고 회초리를 맞고, 도저히 인성교육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사자성어 외우기 등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또 돈이 되는지 청학동에는 1분마다 다른 수련원이 나타났고, 그때마다 초등학교 때의 생각이 났습니다.
진짜 수련원이라면 이런 청학동의 수련원이 아닌 좀 더 다른 방향에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학동을 마지막으로 하여 우리는 마산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저도 이때 곯아떨어져 30여 분 정도 잤습니다. 중간마다멈출 때 내려서 사진을 찍고 다시 타고 가는 방법으로 집으로 갔습니다. 1003번 지방도를 타고 물이 많이 불어난 하동호를 구경하고, 다시 국도를 타고 진주에 왔습니다.
진주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70년 전통의 비빔밥집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웬걸 스파트폰은 엉뚱한 곳으로 우릴 데려가는 게 아닙니까? 결국엔 찾았지만, 그날은 또 정기 휴일이었습니다....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같이 전통시장으로 들어가 누볐습니다. 여기서는 아버지의 냄새 맡는 기술도 통하지가 않더라고요. 결국, 물어물어 전통 시장에 있는 밥집에 들어갔습니다. 진주비빔밥을 시켜보니, 독특하게 육회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비린내가 나거나 짜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에 첫번째로 놀랐고, 맛을 보고 두번째로 놀랐습니다. 육회는 전혀 비리지 않고 고소했고, 여러 종류의 나물들이 섞여있어서 짜지 않고 담백했습니다. 그리고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풍기는 것이 입에 딱 맞았습니다.
사진 찍기 전부터 밥을 비벼버려서 사진이 마땅한게 없는것이 좀 후회가 됩니다. 그래도 정말 잊을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녁을 먹고나자 해는 벌써 서쪽으로 사라져 날이 점점 정말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7시 40분에서야 출발한 이후
날은 점점 어두워져 집에 도착하자 밤이었습니다. 아침에 출발해 밤이 돼서야 돌아온 지리산 여행.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저만 다녀온 여행이라 그런지 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 지방의 특징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산과 물을 고루 구경한 이번 여행을 통해 그동안 찌든 마음을 깨끗이 씻어낼수 있었기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어탕, 진주비빔밥 드시고 싶으신 분들 있으시면 우리 아버지 김원중 교수님께 사달라고 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우리 큰 아들, 기행문 잘 썼네.
재미있게 잘 읽었다.
몇 가지 보충 설명
1. 정취암에서 내려와 지리산 가는 방법은,
다시 산청읍 쪽으로 가 칠선 계곡, 백무동 계곡, 뱀사골이 있는 지리산 북쪽 사면으로 가는 것과
단성으로 내려와 지리산 남동쪽 사면인 중산리로 가는 것이 있다.
우리는 두 번째를 택하여 정취암에서 1006번 지방도를 타고 내려와 문대리에서 어탕을 먹고,
20번 도로로 단성, 덕산을 거쳐 중산리로 올라갔던 것이다.
2. 올라 가다가 네가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동영상으로 찍은 곳은
신촌마을 '중산교' 다리 옆이다.
그 곳에서 차를 돌려 내려오다가 우회전하여 내대 쪽으로 갔지.
3. 내대 마을을 지나 좌회전하여 삼신봉 터널을 지나면 산청군에서 하동군으로 넘어가게 되고,
그곳에 바로 청학동이 있지. 하동군 청학동은 지리산의 남쪽 사면이란다.
산청 쪽보다 따뜻하여 대나무가 많지.
4. 우리는 청학동에 가기 전에 산신봉 터널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하여
먼저 산청 양수발전소의 상부댐인 '고운호'에 갔었지.
거기서 네가 담장 위에 올라갔다가 경비원에게 걸려 한 소리 들었지.
5. 청학동을 둘러보고는 1003번 지방도를 타고 횡천으로 내려왔단다.
횡천에서 진주까지는 계속 2번 국도만 타고 갔다.
그 중간에 가을이면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로 유명한 '북천'이 있지.
"마음과 몸이 함께한 부모와의 소통방법" 너무나 멋진 여행이 되셨네요..부럽습니다..
교수님 사주세요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