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내장탕이라는 메뉴로 맛집을 소개하기엔 시절이 참 하수상하네요. 소 비육을 위해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인간의 욕심이 되려 인간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한다는 의미에서 광우병 문제는 좀 더 깊고 폭넓은 반성을 요하는 사안이긴 합니다. 하지만 촛점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지금 정부의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소에 대한 태도는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제를 위해 우리나라 국민 전체를 잔반처리반이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작태입니다. 다시금 백번을 양보해서 생각해도, 그들이 광우병 사태를 괴담이라면서 일축하려하지만 괴담이 괴담이 되어버린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정부는 괴담의 가장 근본을 이룬 사람들의 불안마저도 잠식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불씨붙은데 부채질하고 있는 꼴이죠. 대체 국가란, 그리고 정부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사유까지 불러일으키는, 다방면에서 국민들을 공부시키고 고민케 하는 정부입니다.
맛집이야기에 맛 떨어지는 이야기로 시작해 좀 그렇긴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소내장탕은 오래전부터 우리들이 즐겨먹었던 음식이지요. 얼핏 떠오르는 내장탕의 모습은 뚝배기에 곱과 내장, 그리고 투박하고 붉은 국물이 보글보글 담긴채로 식욕을 무책임하게 당기는 그런 모습입니다. 저도 이 집 내장탕에 대한 상상을 그렇게 하고 갔었죠. 하지만 이 집은 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모습일까요?
구제주 시내에서 516도로 방면으로 죽 올라가다보면 제주대학병원에 못미쳐 도로변에 아담하게 보입니다. 설마 저기가 맛집일까 싶을 정도로 작은 집이지요. 일단 우리는 내장탕을 맛보러 왔으니 소내장탕을 주문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 붉은 국물을 생각하고 있었죠. 고기는 제주산이니 수입산에 대한 불안감은 일단 접어두죠. 밑반찬이 나왔습니다. 단촐하면서도 나름 젓가락을 부르는 손맛같은 느낌이 있는 반찬들입니다. 공기밥과 함께 작은 뚝배기에 내장탕이 나왔습니다. 아,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오네요. 투박한 하얀국물이 가득하고 파가 둥둥 뜬 모습입니다. 이게 정말 내장탕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있어 안매울 것으로 생각한 만두국을 주문했는데 내장탕으로도 충분히 아이에게 먹일 수 있었음을 알고는 살짝 후회했습니다. 만두국은 내장탕과 같은 국물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내장탕의 모습은 왜 그랬을까요? 수저로 건더기를 떠보니 바닥에 천엽과 부속고기, 막창 길게 저민 것들이 수북히 올라옵니다. 무가 섞여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문득 소고기 무국이 생각나더군요. 소고기 무국에 소고기 대신 천엽과 부속고기들을 넣은 모습이었습니다.
소고기 무국.. 이게 집에서 만들어보면 참 간단하게도 보이긴 하지만, 집에서 만드는 간단한 음식일수록 차이는 손맛과 내공에서 비롯되죠. 예전 할머님이 만들어주셨던 소고기무국을 생각해보세요. 할머니의 음식은 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만들어도 맛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 차이는 주로 깊이와 감칠맛의 차이이죠. 오랜 세월을 지내온 손이 간직한 내공있는 솜씨는 아무리 유명한 요리사라도 따라올 수 없는 그런 깊은 맛을 간직합니다.
이 집의 소내장탕이 그런 느낌이랄까요? 소고기 무국에서 고기만 바뀐 그런 소고기국의 느낌이지만 깊이와 감칠맛이 있어 먹고나면 어떤 든든함과 시원함을 느끼게 합니다. 함께 나온 청양초와 고추가루를 조금 풀고 밥을 넣어 말아 먹습니다. 문득 동대문운동장 부근에서 보낸 4년간 종종 찾아갔던 30년전통의 소고기 국밥집이 생각났습니다. 그 집도 소고기 무국이 넓은 냉면그릇에 담겨나오는데 한끼 든든하고 시원한 느낌으로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집이었죠. 다른 메뉴를 술안주 삼아 한잔 하기도 참 좋은 집이었는데,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 손맛과 이전의 추억까지 끌어내는 어떤 깊이와 든든함이 있는 집이었어요. 하수상한 세월의 불안감은 그냥 확 떨치고 혹시나 감기기운이 있어 몸이 무거울 때, 고춧가루 넣고 청양초 넣어 뜨겁게 한그릇 비우면 몸이 든든하고 가벼워지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 내장탕의 어떤 비쥬얼은 조금 아쉬울 지 모르고 풍성함이 아쉬울지는 모르지만 먹고나면 그런 아쉬움은 한순간 일소할 수 있는 집. 516도로를 넘어가야 한다면 이 집에서 내장탕을 먹고 바람까페에서 커피한 잔 한 후에 드라이브를 이어가도 좋을 듯 합니다. |
출처: 칼을 벼리다. 원문보기 글쓴이: 민욱아빠
첫댓글 국물이 시원하니 맛있을거 같네요...ㅎㅎ
정말이지 처음보는 내장탕 포스네요~ 그간 보았던 내장탕들이 혹시 냄새를 없애기 위해 그리 요란스러운 자태를 하고 있었던건 아닌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서두 이야기 200% 공감합니다. 비행기 값 축낸 조사단..참 거시기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