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도修羅道’는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1908~1996) 선생이 1969년 <월간문학>에 발표한 중편 소설이다. 일제 식민지 통치 하에서 6‧25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낙동강 하류 어느 시골 양반 집안의 수난사를 그렸다. 한 집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집약하고 있다. 작품 속 공간과 실제 공간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바, 요산의 소설 중 가장 명확하게 현존하는 문학 현장이라 할 수 있다.
그 상징적인 공간이 황산베리끝 길이다. 물금 취수장에서 원동 취수장에 이르는 약 2㎞의 구간으로 경부선 철길과 낙동강 사이에 있다. ‘아수라도’의 준말인 ‘수라도’는 불교에서 이르는 지옥의 하나이다. 수라도 제목이 상징하듯 우리 민족의 근대사가 아귀다툼 고통의 연속이라는 시각이 작품을 관통한다. 주인공 가야 부인의 삶의 역정이 바로 ‘수라도’로 나타난다. 작품은 내용 자체가 전쟁과 증오, 파괴가 그치지 않는 어둠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 소설 속 ‘황산베리끝’
비록 서울로 빠지는 국도라고는 해도 그 당시의 황산베리끝 하면 좁기로 이름난 벼룻길(강가나 바닷가의 낭떠러지에 나 있는 길)로서, 시가 측에서 마중 나온 사람만 보태도 서른 명이 넘었을 텐데, 구경꾼까지 합치면 줄잡아도 오륙십 명 가까운 사람들이 외줄로 사뭇 늘어섰다고 하니, 과연 얼마나 볼 만했을까.
<2> 소설 속 ‘태고 나루터’
할머니는 고향 얘기를 할 때는 염전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미륵당 길목인 태고란 나루터에 그곳 소금 배가 와 닿아 있는 걸 보면, 할머니는 곧잘 달려가서, 아무개 무쇠 가마에 불 들었던가, 띠밭 등 아무개가 잘 있던가 하고, 친정 소식을 깍듯이 묻곤 하였다.
<3> 소설 속 ‘솔밭’
가야 부인은 시집간 고명딸이 괴질로 죽었다고 하여 솔밭 속에 체봉(假墓)해 놓은 것을 원통해한다. “대밭각단 아래쪽 솔밭 속에는 가야 부인의 죽은 고명딸의 체봉이 있었다. 마마에 죽은 어린것들의 시체를 오쟁이에 넣어서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아 두듯이...”
<4> 소설 속 ‘대밭각단’
가족들은 쥐 죽은 듯이 말이 없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고는 비로소 모두 냉거랑 건너 대밭각단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대밭각단이란 부락 아래쪽 솔밭 속에 희미한 불빛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또 저게 갔는갑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바보 같은 것들! 냉캄 가 봐라!”
<5> 소설 속 ‘냉거랑 다리’
뒷문으로 빠져나온 옥이는 냉거랑 건너 박 서방의 집이 있는 곳을 넋 없이 바라보았다. 다닥다닥 붙은 초가지붕들이 어스름에 싸여 분명치가 않다. 옥이는 별안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녀는 쓰러지듯 차디찬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꼭뒤를 기둥에 들이댔다.
<6> 소설 속 ‘미륵당’ 및 ‘돌부처’
서간도에서 돌아간 시할아버지 허 진사의 입젯날 제삿장을 보아 머리에 이고 ‘황산베리끝’ 길을 돌아오다가 가야 부인은 우연히 땅에 묻힌 돌부처를 발견한다. 그곳에 조그만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기로 작정을 하지만 엄격한 유교 집안이어서 마음에 병만 생긴다.
*영남대로 황산잔도
한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던 '영남대로'는 한양에서 부산의 동래부에 이르는 조선시대 9대 간선로 가운데 하나로, 960여 리에 달하는 길에 29개의 주요 지선이 이어져 있었다. 옛날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다니던 길이자, 조선 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걸었고 보부상들이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넘었던 길이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서울을 향해 진격하였던 길이기도 하다. ‘황산잔도’는 작원잔도(삼랑진), 관갑천잔도(문경)와 함께 영남대로의 3대 잔도로 꼽힌다. 시퍼런 낙동강을 아래에 두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었던 까닭에 일반인들에게 공포의 길로 알려졌다.
1694년(강희 33년) 황산잔로 정비를 기념해 황산잔로비黃山棧路碑가 세워졌다. 지금은 기찻길 건너편 용화사 대웅전 좌측에 위치해 있다. ‘갑술년(1694)에 군수 권성구가 탄해 스님과 별장 김효의를 시켜 깊은 곳을 메우고 험한 곳은 깎아 평탄한 도로를 만든 공을 기려 세운 것이다.’(<양산군읍지>)
*황산강 베랑길
황산강은 낙동강의 삼국시대 명칭이며, '베랑'은 벼랑의 지역방언이다. 2011년 행정안전부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돼 2012년까지 2년에 걸쳐 조성됐다. 전체 2km 구간 중 1km는 국토해양부 '낙동강 자전거 종주길' 사업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영남대로 황산잔도 구간으로서 주민의 왕래가 잦았다. 1900년대 초 철길에 편입되고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길이 완전히 닫혀버렸다가 황산강 베랑길을 통해 다시 열리는 계기가 마련됐다.
신라시대 고운 최지원이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던 임경대, 조선 고종 때 선비 정임교가 이름 붙인 경파대鏡波坮), 보물 제491호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용화사, 행동래부사정공현덕영세불망비가 구간 내 위치한다.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주요 배경이 되기도 하는 등 많은 역사문화 자원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