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의 꿈
김 미영
언제 부터인지 나는 양지쪽 나지막한 곳에 자리 잡은 화분들을 흘려보지 못했다. 그곳엔 안주인의 손때가 묻은 올망졸망한
화분들이 거실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면 우리들의 단골 자리를 내줘야 했던 불편함으로 어머니에게 퉁퉁거리던 유년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못생긴 그들에게 거실을 기꺼이 내준 어머니의 따끈한 속뜻을 나는 이제야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 소박한 어머니 곁에는 화려하지는
앉지만 향기가 그윽한 화초들이 있었다.
8월 무더위에 이사를 했더니 사람도 지치고 살림살이도 어수선 해졌다. 몇 날이 지나도록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이 베란다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무관심하게 방치된 초라한 난(蘭)화분 몇 개가 내 마음처럼 쇠잔해 보인다. 그래도 그들은
나의 삶을 나눠 가진 선택받은 행복한 화분들이다. 이것저것 주워 모았던 것을 다 챙기지 못하고 끝내 아파트 앞 화단에 버려두고 온 화분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니 말이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매번 짐스러워 하면서도 외로움 때문인지 화초를 기르게 된다. 20여 년을 바람에 날리듯
한 곳에 정을 주지 못하고 보따리 짐을 싸는 것이 습관화 됐다. 그래서 인지 유난히 내 물건 내 가족에 집착하게 된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소중하고 알뜰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가격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낡은 것이라도 애지중지 하는 편이다. 특히 친정어머니를 은연 중
닮은 구석이 있는지 화초에 유난히 관심을 갖게 된다. 길을 가다가, 혹은 아는 집 마당의 화초가 맘에 들면 마음씨 좋은 주인의 배려로 분양을
해오곤 했다
나는 한때 작은 병마다 과일주를 담아 장식을 해 놓는 것이 취미였다. 아기자기한 모양과 매력적인 빛깔이 나를
흠뻑 취하게 했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짐 싸는 것도 골치 거리였다 한정된 공간에다 짐을 꾸려 놓으면서 취급주의 라는 글씨로 표시를 해도 부주의로
왕장창 깨버 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유리파편들이 가슴 속에 꼭꼭 박히듯 허망한 생각이 들어 나의 술 담그기도
시들해졌다. 지난겨울엔 친정집 거실을 가득 메웠던 화초에 눈이 가기 시작 했다.
장난삼아 선인장을 꺾어와 곁다리로 꽃아 놨더니 얼마 안가 새끼를 치면서 다음에 봄에는 빨간 꽃이 신기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오묘한 자연의 힘에 감탄을 한 나머지 우리 집에는 화분 몇 세대가 같이 살게 되었다. 자리가 좁다고 아우성을
쳐도 나는 여념 없이 계속 분양을 받아왔었다. 비록 상처난 작은 화분이지만 옮겨 심고 보면 여느 부자집 정원이 부럽지 않다. 그런데 올 여름엔
그들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분갈이를 하면서 화분을 옮겨주어 그들의 방 평수를 늘리다 보니 어느새 베란다 반을 차지해 버렸다.
전세만기일은 다가오는데 식구들은 보는 내 마음에 새로운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보이지 않게 짐이 늘어난
때문인지 옷과 책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도 이들에 대한 관리대칙이 서질 않았다.
그동안 다른 집처럼 번듯하게 화초를 기르고 싶어 화분도 값진 것으로 바꾸고 멋지게 늘어선 야자나무도 선물
받았는데 새로 이사 갈 집은 지금보가 공간이 작은 곳이다. 전세대란으로 겨우 얻은 집이라 철새의 설움이 몸으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나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계획을 세우던 날이다. 그간의 연(緣)을 끊는 고통을 따랐지만 그것만이 그들과
내가 살 방법이었다. 이사 가기 전 날 화분에 물을 충분히 주고 좀 더 어둠이오길 기다렸다. 모자를 꾹 눌러 쓰고 사람들이 잠든 시간을 틈타
제일 예쁘고 좋은 놈들을 골라 아파트 화단으로 화분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것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갈 거라는 계산이 따랐기
때문이다.
등줄기에서는 눈물처럼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열 번도 넘는 고된 일속에서 나는 좀체 화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먼동이 휜 해 지도록 자식을 버리고 온 어미의 심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정들면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뼈마다 마디로 느껴야했다. 그동안 방긋방긋 하루가 다르게 자라던 화초를 보며 내 아이들 커간 허전한 자리를 대신해준다고 생각했었다.
자식들에게 쏟았던 살뜰한 마음의 화초로 옮겨져 있었는지 그 일은 큰 상처가 되었다.
요행히 오전 8시도 안되어서 화분들은 제각기 사람들이 손에 들려 다른 삶으로 떠나갔다. 폭염에 시들까봐
노심초사하던 마음은 한결 가벼워 졌지만 나는 한동안 시름시름 앓았다.
이사를 하면서 얻은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챙겨온 화분에 눈길도 주기 싫었다. 갈증이 날 때면 그들도 목이
마를까봐 물 한 모금을 얼른 적셔주고는 이내 돌아서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서를 지나는 골목에서 뜻밖에 난향을 맡게 되었다. 주인에게
내리지 못한 뿌리를 이웃집에 내리고 난 나의 난이 보란 듯이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안쓰럽고 대견한 마음에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난도 내 마음을 아는 지 은은한 향기로 나를 보듬으며 위로해
주었다. 용케도 나는 역경을 이겨낸 그 모습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면 인자하게 나를 토닥이던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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