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te d’Azur 여행기
(18) : 발로리 Vallauris 로 가는 길
사진설명
위 : 발로리스 시내, 도자기 도시라서 어디를 가나 도자기가 보인다
아래 : 발로리스 공동묘지에 있는 쟝 마레-
의 무덤
5월 17일, 수요일 흐리다가 맑다
오늘 칸느에서는 금년 세계 필름페스티벌이 열린다. 휴가촌에서도 이를 즈음하여 칸느로 가는
단체여행이
있었지만 우리는 몇 일 전 칸느에 다녀와서 오늘은 발로리스라는
곳에 가 보려 했다.
발로리스는 앙티브에서 칸느로 가는 사이에 있고 옆 쥐앙灣과 더불어 한 동네를 이루고 있는
조그마한
도시다. 무엇 보다도 ‚발로리스’하면 이 곳 프로방스 지역에서 도자기의
도시로 유명
하다. 프로방스에서 제조되는 일상생활품의 도자기는 연하고
진한 붉은색의 도자기로서 프랑스에서도
특이한 제품들이다. 이 곳이 매년 세계도자기 박람회가 열리는 곳이다.
발로리스는 그뿐 아니라 피카소 Picasso와 프랑스 영화배우 쟝 마레- Jean Marais 로 또한 유명한
도시다. 그래서 우리가 기회를 보아 찾아보려든 도시다.
발로리스 (프랑스말로 ‚발로리’라 발음하는데 여기 프로방스 사람들은 ‚발로리스’라고 발음한단다)
로 가려면 앙티브 시내 드골광장에 있는 교외버스 터미널로 가야 한다. 교외버스 터미널로 가니까
친절한 여직원이 발로리스로 떠나는 버스는 여기가 아니고
몇 거리 더 가서 시외로 나가는 길가에서
타고 가야한다고 한다.
겨우 이 버스정류소를 찾아서 발로리스로 가는 버스 8번을 찾았다. 기다리는 정류소에는 사람들도
많고
해서 촌놈티를 보이지 않으려고 출발시간을 점쟎게 찾고 하니 거기에서 기다리든
여자 한 명이
어디로 가려느냐고 묻는다. 발로리스로 간다고 하니까
이 버스는 몇 분 내에 온다고 하며 어디에서
타는지 친절하게 가르켜 준다.
오는 8번 버스를 탔다. 버스도 만원이었지만
처음 찾아가는 곳이라서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그것도
알
수가 없었다. 앙티브 시내를 이곳 저곳 빙빙 들러서 가기 때문이었다.
몇 정거장 가니 아프리카계통 남녀중학생 한 무리가 버스에 올라 탔다. 버릇없는 애들이 었다.
큰 소리로 노래를 하고 떠들며 서로 밀고 닫치고 야단들이다. 버스내에 있든 백인 프랑스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고 창 밖으로만 쳐다 보고들 있다. 외방인인 우리 자체도 외면을 하게되는 장면들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만남이 새로운 경험이지만
여기 사람들에게는 아마 매일 당하는 모습인가 보다.
우리는 내려야 할 정류소만 찾느라고 이런 소동을 귀넘어 보았지만 한 정류소에 오니 이 떠들던
애들이 다
내린다. 우리만 버스에 앉아 있으니까 운전사가 발로리스에 다 왔다고 하면서
시내로
가려면 저 곳으로 가라고 방향까지 알려 준다. 그 곳으로 가면 뮈제-도 있고 샤또도 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우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둘러서 가기로 했다. 시외로 나가는 언덕길을 좀 올라
가자니
길 왼 쪽에 여행안내책에 나오는 유명하다는 식당이 보이고 오른 쪽 길가에 ‚씨머티에르’
Cimetiere 로 가는 길표가 서있다.
발로리스에 오면 쟝 마레-의 무덤을 찾아 보기로 했는데 이렇게 쉽게 찾을 수가 있었 나. 그래서
발길을 계속해 이 공동묘지로 올라 갔다. 버스정류소에서 약 50 미터 정도의 거리다. 발로리스에
와서 하필이면
공동묘지를 찾느냐구...?
1998년에 죽은 쟝 마레-의 최후유언이 죽은뒤 이 발로리스의 땅에 묻어달라는 원이었단다. 어느
공동묘지에 가든 누구의 묘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공동묘지에 와있는 서 넛의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는 특이하다는 눈초리를 보낸다.
공동묘지 중간 길을 걸으며 왼 쪽은 내가 맡고 오른 쪽은 우르젤이 맡아서 쟝 마레- 의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 약 중간 쯤 왔을가 우르젤이 ‚찾았어, 찾았어’하며 외친다.
공동묘지 중간 쯤 남향 줄에 있는 쟝 마레- 의 묘는 북쪽을 보고 있다. 약 1 미터 폭의 대리석으로
만든 무덤인데 무덤 앞 양 쪽에는 사자의 얼굴을 한 괴물이 서있다. 영화 ‚미인과 괴물’
(La Belle et la Bete) 에 괴물로 나오는 쟝 마레- 의 마스크다. 무덤 자체는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평범한 무덤이다. 무덤 앞에는 시들지 않은 여름꽃 화분 하나가 보인다.
내가 본 쟝 마레- 의 마지막 영화가 ‚판토마스’ Phantomas 였나 본다. 쟝 꼭토와 깊은 친지가 있는
쟝 마레- 는 꼭토의 영화에는 거의 다 주인공으로 나온다. 몇 일전 이곳 씨네마 영화관에서 쟝 꼭토의 영화 ‚오르페우스 Orpheus를 보았다. 1949년 제작인 이 영화에도 쟝 마레- 가 주인공인 오르페- 로
나온다. 발로리스에서 그의 무덤을 찾아본 뒤라 이 영화가 무척 인상적으로 머리에 남아
있다.
쟝 마레- 와 피카소는 ‚도자기’로 발로리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Cote d’Azur
여행기 (19) : Vallauris 에서 <2>
발로리스는 별로 이름난 도시가 아니지만 도자기의 도시로 쟝 마레- 와 피카소가 거의 20 여년
여기서 도공기술을 배우며 도자기 작품을
만들든 곳이다.
제 2차 대전
직후 쥐앙灣에 살고 있든 피카소가 발로리스에서 마두라 Madoura 라는 도자기 아텔리에를 경영하는 라미에 Ramie 부부로 부터 초대를 받아 발로리스를 왔다갔다 하면서 도공의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2 년 후
그의 여배우자 프랑쑤아즈 질로 Francoise Gilot 와 같이 피카소는 발로리스로 이주했다.
1946년 부터 1971 년 까지 피카소가 이 마두라 아텔리에서 도공작업을 하며 약 4000 여종의 작품을
창작했다고 하는데 마두라 아텔리에가 이 작품들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피카소의 박물관은 버스 정류소에서 동네 중심지로 내려가는 길에 있다. 옛 발로리스의 성이 있든
곳에 지금 샤또 뮈제 뮈니씨팔 Chateau Musee Municipal 이라고 하는 박물관에 피카소 박물관이 있다.
한 시가 다 되어가는대도 혹시나 하고 박물관에 들렸드니 점심시간 씨에스타라고 문을닫기에 오후
2 시에 다시 들리기로 하고 우선 점심을 먹을 음식점을 찾았다.
동네 중심지로 내려가는 길은 이 고장에서 나오는 도자기들을 좌우로 세워놓아 동네 분위기가 참
예쁘게 보였다. 길가에 까지 의자와 식탁을 깔아놓은 한 참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올리브집’
l’Olivade 라는 식당이다. 대접하는 아가씨가 무척이나 상냥했다. 이 집 요리사가 프로방스에서는
가장 유명한 쏘-스를 만든다고
호통을 하며 자랑한다.
그래서 이태리식 탈리에티에다 튀긴 조개를 넣어 만든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정말로 그 쏘-스의
맛이 여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에 오면 다시 발로리스에 한번 더 들리자고 했다. 영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하는 젊은 여자를 프랑스에서 만나기는
힘든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영어를 잘 쓰지 않는다는데 프로방스 특히 꼬트다쥐르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자진해서 영어를 쓴다고도 하니...
관광손님이 왕이라...
점심식사를 끝내고 식당이 있는 길을 좀 내려갔더니 오른쪽에 옛날 피카소가 와서 도공기술을 배우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마두라 아텔리에’ 가 나왔다.
물론 오후에는 문이 닫혀있었다. 다시 올날이
언젠고 .... 유감이나마 마두라 아텔리에를 구경하지 못했다.
이 아텔리가 있는 골목을 나와서 큰 한길로 나오니 바로 그 모퉁이에 쟝 마레- 의 아텔리에가 보였다. 자기의
묘 앞에 세워둔 괴물의 머리 두개가 이 아텔리에의 정문을 장식하고 있다. 물론 여기도 오후에는 문이 닫혀있었다.
점심시간이나 오후에는 프랑스에서 큰 관광을 하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스페인에서는 정부가 금년
부터 법을 개정하여 이 ‚씨에스 타’를 없앴다고 하는데 법이 관습을 이겨 나갈가 가 문제다.
Cote d’Azur
여행기 (20) : Vallauris 에서 <3>
피카소의 박물관은 옛 샤또에 있는데 본건물은 없어지고 다만 카펠레 Chapel 만 남아있다. 피카소
박물관 이층 삼층 층계만은 옛 성의 대리석으로 만든 르네쌍스식 층계가 아직 남아있다. 헐어질 가봐
조심해서 올라가도록 해 놓았다.
피카소의 작품은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았다. 세계 여러 박물관들에 대여품으로 나가기 때문에 석판
인쇄 작품이나 복제품들이 벽에 많이 걸려 있었다. 이름이 피카소 박물관이지만은 피카소의 영향을
많이받은 작가들의 작품들과 2층에는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들만이 진열되어 있었다.
피카소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본관 옆에 서있는 샤또의 별관격인 로만식으로 지어진 카펠레다. 관객이 출입할때 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잠기고 했다. 감시자가
앉아서 사람들을 들어가고 나가게 한다. 사방에 비디오가 걸려있고 그만큼 감시가 심했다. 카펠레의 본관에는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
몇 개가 진열장 속에 진열되어 있다.
본관 옆에 좀 아래로 내려가는 둥근 아치형의 석굴암의 아치같이 생긴 방이 있는데 이 아치의 삼면
벽과 천정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 있으니 이 것이 바로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전쟁과 평화’
La guerre et la paix 이다.
‚게르니카’와 ‚마싸크르 앙 꼬레-‚ 에서 보든 그림과 비슷한 벽화의 그림이지만 이 그림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사진을 찍어 가지 못하게 사방에서 비디오로 감시를 하기 때문에 나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왼쪽 벽에는 검정색의 괴물들이 칼을 들고 사람들을 해하려 하는데 말을 탄 한 기사가 한 쪽 손에는
평화의 비둘기를 그린 방패를 쥐고 다른쪽 손에는 창을 들고 이 괴물들을 방어하고 있다. 두 벽 사이
가운데 벽에는 빨강, 흰, 검정, 노랑색의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 그림은 세계인종들의 ‚프라테리아'를
주장하고 있다. 오른쪽
벽에는 전쟁에서 고생하는 얼굴표정의 사람들 ... 얼굴들을 자세히 보면
동아세아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바로 한국사람들이다. 한국전쟁을 질책하는 그림이다.
피카소 박물관 앞은 여기도 공사로 수라장이었다. 박물관 건너 동네 광장에는 ‚양을 쥐고 있는 남자
L’Homme
au Monton 이라는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이 동상은 피카소가 발로리스시에 기증한 것이다.
발로리스에서 작품활동으로 큰 공헌을 한 피카소가 발로리스시로 부터 명예시민권을 받자 이 동상을
기증했다고 한다. 물론
이 광장에 지금 서 있는 동상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