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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3:1-13 삶의 목적을 이루자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고 죽습니다.
우리도 철이 들고 나서 오육십년 밖에 살지 못하는데
실상은 그냥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매미는 6년 동안 땅 속에서 준비하다가
7년째에 매미가 되어서 불과 여름철 한 철 맴맴 하다가
또 알을 놓고 자신은 죽습니다.
옛날 트로토의 가수들은 생명이 길고 노래가 오래 지속되었는데
지금은 가수의 생명이 금방 끝나버려서
누가 누구인지를 잘모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오래일 것이다.
나는 건강할 것이다.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그대로 잘 살 것이다.
그래서 물질도 있고 또 건강도 있고
또 사회적인 신분도 있어서
그것이 계속해서 될 줄을 알고 있는데
얼마 가지 못해서 다 바뀝니다.
권불십년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삶을 살 때 항상 들에 풀같고
또 꽃같고 이슬같고 안개와도 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럽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슬이고 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또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어떤 왕도 대통령도
권세가 있는 사람도 물질이 많은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애기도 어른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안 갈 수가 없습니다.
다 가야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고 또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목적을 이루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귀한 삶이고 가치있는 삶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뉴스를 보니까 아프리카에 가서 의사의 직업을 뒤로 하고
신부가 되어서 아프리카의 어느 동네에 가서
손수 벽돌을 다 찍어서 학교를 만들고 악대를 만들고
동네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해서
그 나라를 많이 도와주고 그 일을 하도록 했는데
갑자기 몸이 좋지 안 해서 한국에 들어 왔는데
암으로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의 삶의 수기를 영화로 재방영을 한다고 합니다.
그분이 이태석 신부님이십니다.
그 분은 젊은 나이에 돌아 가셨지만
그 신부는 삶의 목적을 이루시고 가셨더라고요.
그쪽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는데
오지를 못하니까 그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지원을 해서
사람은 바뀌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가서 일을 하므로
우리 한국을 잊지 못할 일을 만들드라구요.
저는 그것을 가만히 보면서 삶의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
너무나 참 귀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만 남으니까 그렇습니다
본문은 데살로니가에 가서 바울이 복음을
3주 정도 밖에 전하지 못했는데
거기에 있는 유대인들이 쫓아내면 베뢰아로 도망갔고
거기에서 쫓아오니까 아덴까지 도망갔습니다.
그러는데 아덴에서 데살로니가로 바울운 가지 못하니까
디모데를 대신 데살로니까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목회하고 바울에게 돌아 왔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와서 하는 말이 가서 바울을 보고자 합니다.
또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했고
또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의 기쁨이 되고
디모데가 또 상대방에게 기쁨이 돼서
서로 잃어 버려야 잊어버릴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이 사람들이 삶에 목적을 이룬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삶의 목적을 이룰 것인가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면
1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어떻게 삶의 목적을 이룰 것인가
첫 번째는 환란에도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삶의 목적을 이루어 가야 됩니다.
1절에 “이러므로”라고 시작합니다.
이러므로라는 말은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가지 못하므로 그런 말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바울이 잡아 죽이려고 하므로
바울이 도망나왔어요. 그러니까 데살로니가를 못가는 거예요.
그래서 야손이 대신 잡혀 보석금을 받고 야손을 내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가지 못하는데
아덴에서 머무기를 좋게 여겨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냅니다.
그러면서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하므로
누구든지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고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바울이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환란에도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바울은 행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젖을 뗀 엄마의 심정으로 젖을 주고 싶은데도
자식들이 울고 있는데 젖을 주지 못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바울이 보냈다는 것입니다.
많은 힘들고 어려운 환란에도
바울은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가 어떠한 환란에도
요동치 아니했으면 좋겠다는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낸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삶의 목적을 이루라고 보내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모든 아이들을 물가에 놓아두고
지금 올 수 밖에 없는 형편에서 가지는 못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면서 안타까와 하고 있는
어려운 환난에도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행동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어려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끌어가시는가를 따라가는 사람이
삶에 목적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중에 어느 땐가 자기의 모든 삶을 다 정리하고 나면
아하! 그때 그랬었지!
그때 그 일 속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시길 원하셨지.
그래서 내가 그것을 했지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어떤 환란에도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목적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직 받지 못한 고난이 있다고 하면
내가 그것을 내 육체로 받아 내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삶에 목적을 이룬 사람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도 이렇게 바울과 같이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것을 원하신가 라는 의도를 따라서
삶의 목적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은 왕 외에 다른 데서 무엇을 구하면
사지굴 속에 집어 넣는다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사지굴 속에 집어넣든 말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하루에 세 번씩 전에 하던대로
창문을 열어 놓고 예루살렘을 향해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본 사람이 고발을 해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들어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자굴 속에 들어간 다니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함므로 사자가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와서 많은 사역을 했던 사람인데
어려운 환란에도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삶의 목적을 이룬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삶에 목적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우리가 삶의 목적을 이룰 것인가
데살로니가 전서 3장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어떻게 우리가 삶의 목적을 이룰 것인가
두 번째는 믿음으로 행함으로 증거를 남겨서 삶에 목적을 이루어야 됩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에게 고린도에 와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데살로니가 교회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고 하더라.
디모데가 가서 사역을 함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6절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가지 못하니까 바울대신 디모데가 갔는데
디모데가 복음을 전하므로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이 있었고
그 다음에 항상 바울 일행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간절히 보고자 한다는
마음을 갖게 만든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바울 대신 가서 복음을 전하므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바울을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한 그것을
바울에게 전하니까 바울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디모데하고 만난 것도 참 귀한 일이고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서
성도들을 만난 것도 정말 귀한 일입니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서 믿음을 심어주고
행함으로 증거를 보이고 온 것입니다.
말로만 한 것이 아니고 행동 속에서
그들에게 복음을 보여 줬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젊은 나이지만 정말로 믿음으로
행함의 증거를 남겨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변화가 되어서
바울에게 기쁨이 되게 만든 사람이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모든 삶 속에
믿음으로 무엇인가 내가 행동을 한 것이 증거로
다른 사람의 가슴에 기억이 된 그 사람,
그 사람은 삶의 목적 중 하나를 이룬 사람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목적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 12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바울은 삶을 통해서 선한 증거 본을 보였다, 기쁨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4절부터 10절까지
그 일은 다 버리고 오직 무엇만 해야 되느냐 하면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이것이 믿음으로 행함으로 증거를 남기는 귀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바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한 내용의 한 부분입니다.
디모데가 믿음으로 행함의 증거를 남겨서 삶을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어떤 행함의 증거를 남겨서
삶에 목적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는 바울과 2차 전도 여행 때 합류하게 됩니다.
그런데 2차 전도 여행 때 합류한 이후에
바울이 사역하는 모든 끝까지 누가는 가방을 들고 따라 다녔습니다.
바울을 따라 다니면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지위가 높아 진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도 되고 동역자도 되어서
누가는 의사이지만 자기 일생을 다 드려 버린 사람입니다.
그 때 의사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 옆에서 월급도 받지 않고 따라 다니면
다른 의사 동기생들이 보고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바보라고 했겠죠. 아니 거기에서 무엇이 나오느냐?
거기에서 밥이 나오냐 무슨 돈이 나오냐?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아닙니다. 누가는 또 아닙니다.
누가가 어떻게 해서 바울을 만났는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푼 은혜를 경험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 일생을 드린 것도
우리 주님이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것만큼은
못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믿음으로 행함의 증거를 남긴 사람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사람입니다.
양으로 보아서 바울보다 더 많이 쓴 사람입니다.
성경이 있는데까지 누가는 계속 남을 것입니다.
우리도 누가와 같이 믿음으로 행함의 증거를 남겨서
삶의 목적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삶의 목적을 이룰 것인지
다음은 9절 10절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고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어떻게 삶의 목적을 이루어야 될 것인가
세 번째는 믿음으로 굳게 서서 기쁨을 줘서 삶의 목적을 이루어야 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서
이제는 기쁜 소식을 바울이 받은 것입니다.
그 기쁜 소식은 6절 하반부에 나옵니다.
너희가 항상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을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너희를 보고자 한 것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바울이 그냥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너무 기쁜 것입니다.
복음은 3주 밖에 전하지 아니했는데도
그 복음을 듣고 바울의 기쁨이 된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인 그 자체가 복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범교회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을 보고 싶어 하고
디모데의 그 복음 전한 것을 잘 따라서
바로 이렇게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굳게 서서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굳게 서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하나님에게 기쁨을 주어서 우리의 삶에 목적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 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여기의 시련이 나중에 그것이 금보다 더 귀하여서
주님이 오시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는 것이라고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시련 속에서도 믿음으로 굳게 서서
그것을 다 이김으로 말미암아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되어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시련 속에서도 믿음으로 굳게 서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맛보아라.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나 하나님에게 기쁨을 주어서
삶에 목적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은 일곱귀신이 들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의해서 병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앉으나 서나 예수님 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최소한 12명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소유로 공궤했습니다.
자기의 삶의 모든 초점을 주님을 대접하는 일에
써버린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한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의 가슴에 잊으래야 잊어버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에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 전날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계신가 관심이 있어서 무덤에 왔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에게 마리아야! 부르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에는 전혀 내용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달려가서
주님이 부활했다고 말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일곱 귀신이 들었을 때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도 믿음에 굳게 서서 변화되어서
은혜 속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과 주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도 디모데를 기쁘게 하고
바울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 것입니다.
삶의 목적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믿음으로 굳게 서서 내가 변화되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하나님에게도 기쁨을 주어서
삶에 목적을 이룬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잘 먹고 잘 살아라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젊음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고 또 건강 자랑하고 몸을 자랑하고
얼굴을 자랑하라고 이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하신 삶에 목적을 이룬 사람이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저 사람은 보기 싦다는 말을 들으면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어떻게 삶의 목적을 이루어야 될 것인가
첫 번째는 환란에도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삶의 목적을 이루고
두 번째는 믿음으로 행함으로 증거를 남겨서 삶에 목적을 이루고
세 번째는 믿음으로 굳게 서서 기쁨을 줘서 삶의 목적을 이루어서
다른 사람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서
삶의 목적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