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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때문에 오늘 불행하지 말자 갈라디아서 2:1-10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6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아멘
○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 회심해서 아라비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다메섹에 갔다, 3년 만에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 갔다가 다시 14년 만에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바나바와는 동격, 디도는 수행원. 우리 옆 사람에게 야 진리는 틀리네 인사 한번 하십시다, 인사하면서도 좀 부끄럽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갈라디아서를 읽으면서 야 진짜 이런 말씀이구나 정말 세상에서 어디에서 볼 수 없는 말씀이구나 라는 감탄이 나와야 됩니다. 왜 안 나오는가? 성경은 사실은 원석과 같아요, 여러분 원석을 잘 다듬으면은 다이야몬드와 금이 되는 거와 같아요, 여러분들은 원석을 그냥 보니까 잘 모르는데 저는 뭐 하는가 하면은 그것을 다듬는 보석 기술자거든요, 여러분 설교를 듣고 난 뒤에 아 정말 그렇구나 이런 고백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오늘도 우리 갈라디아서에서 오면서 갈라디아서 본문을 제가 이것 참 안 해야 되는데 그래야 시간이 좀 주는데 그래도 여러분들이 좀 아셔야 되니까 좀 해석을 하고 또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뭔지 선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순종해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의 맛을 맛보며 사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2장 1절에 보면은 14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잘 아는데로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러 유대의 랍비로서 바리새인으로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는 회심했잖아요. 그 전에는 예수님을 거짓선지자로 알았는데 아 구약에 예언 되어져 있는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가 이분이구나 해서 기독교인이 된 거에요, 그래서 3년 동안 그는 아라비아 쪽에서 나바티안 왕국 쪽에서 전도를 하다가 또 필요해서 예루살렘에 개바를 만나러 올라갔는데 그 오늘 1장에 보면은 지난번 2월 달에 봤지 만은 야고보와 함께 사도 중에 그만 보고 다시 또 전도를 했는데 오늘 그로부터 14년이 지나고 다시 예루살렘에 갔는데 누구하고 왔는가 하면은 바나바 그리고 헬라인 디도를 수행 인으로 해서 올라갔습니다,
1. 바울이 바나바와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을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라 올라갔다, 소환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간 것도 아니고, 아가보의 흉년이 있다는 예언에 따라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올라간 김에, 내가 이방인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했다. 그 올라가면서 2절에 뭐라는 가 하면은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갈리디아서를 읽을 때에 여러분들은 언제나 설교를 들으면서 빨간 펜을 가져오라 했지요 줄도 긋고 설명을 좀 적어 놓으면 좋아요, 바울이 뭐라는 가 하면은 바나바와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을 이래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라 올라갔다 이러니까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은 바울은 계시를 받아서 모든 것을 움직인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름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서울에 있는 큰 믿음교회 같은데 가면은 기도해서 직통 계시를 받아서 뭘 해야 된다고 하는데 그런 내용이 아니에요, 여기에 계시를 따라서 올라갔다 이런 말은 그 다음에 보면은 내가 이방인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했다,
그런데 유력한자들에게 사사로이 했다 이렇게 말을 해요, 이 말씀은 자 잘 들으세요 내가 왜 계시를 따라 올라갔다고 하는가 하면은 잘 아는데로 바울은 이방인교회에서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알고 구제헌금을 가지고 올라가는 김에 사도들을 만나서 사적으로 자기가 이방인가운데 전파하는 복음이 그들의 복음과 다른 것이 있는가 제시를 받아서 확인을 받았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런데 왜 계시를 따라서 올라갔다고 하는가 하면은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에 구제헌금을 가지고 올라간 것은 사도행장 11장에 보면은 아가보라고하는 선지자가 글라오디오 황제시절에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올 거라는 예언을 한 것이 있거든요,
그 예언을 따라서 구제헌금을 가지고 올라갔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움직일 때에 계시 받아서 움직인다는 말이 아니고 그리고 내가 올라갈 때에 너희들이 그렇게 유력하다고 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제시했는데 이방인에게 전한 복음을 내가 사적으로 했다 공적인 소환이나 공적으로 확인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지금 교인들을 미혹하는 거짓사도들이 뭐라고 이야기했는가 하면은 자기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베드로나 그 다음에 야고보 야고보는 또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잖아요 요한,
1)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는 바울은 사도의 자격이 없다 한다. 바울이 세운 교회에 다니면서 유대교의 율법과 전통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을 미혹한 것은 잘 못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강림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이 예루살렘회의 사도회의에서 그들에게 파송을 받아서 왔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바울은 그들 사도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지금 복음을 전해서 너희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 교회를 많이 지어놨는데, 잘 못된 거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바울이 세운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지만은 할례도 받아야 되고 유대교의 율법과 전통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 이런 주장을 해서 사람들을 미혹한 거 거든요, 그러니까 바울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내가 그 구제헌금을 전달하러 올라간 김에 사도들에게 사사로이 내가 이방인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 사람들에게 제출했는데 그 사람들은 내가 전한 복음에 너희들과 같이 더하여 준 것이 없다 이런다고요, 그래서 여러분 그기에 보면은 6절에 보면은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뭐 한다고요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보여줄 때에 그 베드로라든지 야고보 라든지 요한이라든지 너희가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은 너희들과 같이 할례를 받아야 되거나 유대교의 전통과 규례를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그런 의무를 일절 전하여준 것이 없는데 왜 너희들이 그렇게 하느냐 지금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도 이 본문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강림으로 구원을 받는 거지요,
어떤 종교적인 전통이나 규례를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잘 못된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그 5절에 보면은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않고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다, 내가 할례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이나 유대교의 율법과 규례를 내가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타협하지 않는 것은 너희들이 지금 예수그리스도에 있는 자유를 엿보려고 가만히 들어와서 지금 우리를 종 삼으려고 하는데 나는 한 시도 타협할 수 없다, 왜 너희가 진리가운데 거하도록 이런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정말 설교를 들으면서 이 말씀 속에 진리가운데 거하는 것이 뭔가?
왜 그것이 구원이고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고 진리가운데 거하게 되면은 우리 속에 어떤 구원이 나타나는가? 이것 아시고 오늘도 여러분들이 어떤 것에서도 타협하지 말고 진리 안에 머물므로 말미암아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고백이 있는 신앙생활 하기를 바래요, 정말 내가 예수 잘 믿었지 예수님 아니면 내 일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고백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저 예수 믿으면서 교회 다니면서 아이구 어떤x이 새벽기도 만들어 놨어? 이 주일날은 또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예배드려 또 교회가면은 왜 성가대 하라 해? 왜 교회가면은 봉사해야 돼 이런 종교적인 짐을 지고 가는 신앙생활 말고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그런 종교적인 짐이 아니고 정말 진리 안에 거함으로 말미암아 세상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 동안에 여러분들이 도저히 누려보지 못했든 행복한 삶을 회복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도 여기에서 요것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은 그기에 보면은 2절에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에게 사사로이 했다 하는데 요건 제가 설명했지요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했다, 여러분들이 정말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으려면은요 고기에 보면은 유력한자들이라고 했는데 그 유력한자에 대한 설명을 6절에 보세요,
2. 예수를 믿고 자유를 얻고 난 뒤에는 개념이 달라져야 된다. 거짓 선지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유력한자라 생각한다, 바울은 그들을 유력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기에 백 개의 나라를 정복했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해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하고 괄호 안에 딱 넣어놓았지요, 여기 보세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자유를 얻고 예수 잘 믿었지 하려면은 유력한 것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되요, 지금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교인들을 깨고 가만히 들어와서 유혹하려고 해서 자기네들의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어 갈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을 굉장히 유력한자 라고 생각하는데 바울은 나는 그 사람들을 유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 사람들은 왜 유력하지 않는가 하면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런데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 유력하다 이 말은 어떤 의미냐 하면은 우리가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어떤 성과를 이루었을 때 우리는 유력하다고 그래요 그지요,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굉장히 넓히거나 아니면은 사업을 잘 해서 굉장히 큰 기업을 이루었거나 아니면은 목회를 열심히 해서 큰 교회를 이룬 사람들을 우리는 유력하다고 하고, 그런 사람들 앞에 가면 괜히 내가 작아지고 외소 해지고 내 자존 감이 사라지잖아요 이것 잘 못된 거에요,
여러분들이 거듭나게 되면은 왜 우리가 그런 것들이 잘못되었는가 하면은 여러분 어떤 백 개의 나라를 정복했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누가 한 거에요 하나님이 하신 거에요, 여러분 백만 명을 목회하는 목회자가 되었을지라도 자신이 한 게 아니고 누가 한 거요? 하나님이 하신 거에요, 내가 삼성전자에 우리 박점령 집사가 CEO가 되었더라도 은혜 받으면은 내가 실력 있고 열심히 해서 된 게 아니라 누구 은혜로 하나님이 나의 능력과 외모를 통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필요해서 나를 그 자리에 있게 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어떤 일을 이룬 사람도 못 이룬 사람도 같은 가치이지요.
여러분 우리사회가 힘든 게 뭡니까? 왜 여러분들에게 자유가 없어요? 유교사회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또 미국에 실용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람의 어떤 수고의 업적을 따라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이잖아요, 거듭나게 되면 그런 것 없어요, 왜 우리가 교회생활이 이래 힘이 들고 목회가 힘이 드는가? 저는 목회가 굉장히 자유롭고 좋아요, 왜 만 명이 되었든 백 명이 되었든 열명이 되었든 그게 내가 한 게 아니라 누가 한 거에요? 하나님이 하신 거에요,
1) 하나님이 역사해서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가 된 것이다. 대통령도 환경 미화원도 하나님이 임명한 것이기 때문에 다 귀하게 여기는 것, 바울에게는 그런 자유 함이 있었다. 유력한자들에게 사사로이 복음을 전한 이유는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 헛되지 않게 함이다. 그래서 여러분 8절에도 보면은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베드로가 유능해서 유대인들에게 사도가 된 것도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그런 것이고 내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도 그 유대인의 베드로를 삼으신 그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해서 된 것이기 때문에 자기나 내나 갔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목사님들조차 그러잖아요 어디 가서 여러분 목사 안 되 봤지요? 되 보면 그래요, 인사 탁하면 아 김종웅목사님 어느 교회입니까? 그래 물어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라고 그러고 나면은 가만히 묻고 싶은데 좀 찜찜하게 궁금해 하는 것이 얼마나 모이는가? 틈을 타서 저에게 물으면은 제 대답이 뭔 줄 아세요 아직 만 명은 안 됐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은요, 미국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물을 때에 2가지 실례가 있어요 학교 어디 나왔느냐 나이가 몇 살이냐, 우리는 쓸데없는 나이로 가지고 누르려고 또 나이가 몇 살인지 묻잖아요 그러면 나는 그래요 아직 백 살 안 됐다, 이런 것에서 여러분들이 자유 해야 되요 거듭나게 되면 진리 안에 머물게 될 때 그렇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 정말 교회 목사님이나 교회의 모든 관리를 수고하시는 이상철집사님이나 또 오늘 우리 결혼한 아직까지 새내기 같지만 전도사님이나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그 자리에 있으면은 다 귀한 거에요, 대통령도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그 자리에 앉은 것이나 환경미화원도 하나님께서 임명한 것이기 때문에 다 귀하게 여기는, 바울에게는 그런 자유 함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유력한자들에게 사사로이 복음을 전한 이유가 뭔 줄 아느냐? 내가 달음질 한 것이나 달음질 하는 것이 헛되지 않도록 그런다고요, 저는 여기에요 머리가 쭛빗 섰어요, 왜 그런가 하면은 이런 말이에요, 너희들은 지금 내가 전하는 복음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하고 달라서 할례를 요구하지 않고 유대교의 율법과 규례를 유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잘 못되었다고 이야기 하는데 너희들이 그렇게 유능하다고 생각하고 너희들이 자랑하고 너희들을 파송 했다는 그 사도들을 내가 만나서 구제헌금을 전달하면서 내가 전하는 복음이 잘못되었는가 그 사람들에게 제출해서 확인한 것은 왜 했는가 하면은, 그 사람들의 소환에 의해서 내 복음이 잘 못 되었다고 너희들이 말하는 것 때문에 내가 간 것이 아니고 간 김에 내가 확인했는데 왜 했는가?
내가 달음질한 것 그 말은 뭔가 하면은 복음을 전하여서 세운 이방인의 교회, 또 앞으로 개척하고 세워나가야 할 이방인의 교회들이 이 사역이 헛되지 아니하도록 머리 쭛빗 섰나? 여러분 이 말이 뭐냐 하면은 우리하고 너무나 다르잖아요, 우리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하면은 저도 여기 오기 전에 대학교회에 10년을 사역했어요 그지요, 그런데 그 10년 동안 정말 저는요 희생하면서 잘 했거든요, 그래서 인간적인 육신적인 생각에는 그 대학교회 교인들이 김종웅 목사님이 있을 때 좋았어 그때 때문에 우리가 이래 됐어 이말 듣고 싶거든요, 그런데 그래 되면은 내 사역이 헛되게 될 거라는 거에요,
3. 바울의 이런 주장은 복음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바울이 유라굴로 광풍에 죽음을 당할 번하고 독사의 독을 먹기도 하고 태장[笞杖]을 맞기도 하면서 교회를 세웠는데 유대인의 교회와 다른 복음을 전하면 바울 종교가 되는 순간 모든 사역이 헛되기 때문이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거듭난 자의 헛됨이 뭔지 알아야 되요, 우리나라는 자신이 행한 어떤 바벨탑적인 문화 유적문화를 쌓아놓고 그것이 보람이고 업적이라고 자랑을 하는데 바울은 거듭나고 나니까 내가 이방인의 교회를 세웠는데 혹시 내가 전한 복음이 유대인에게 전한 복음하고 다르면은 내가 세운 교회가 내 교회가 되면은 내 모든 사역이 헛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네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병고치고 뭘 해도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소망 중에 보면은 세상의 가치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그것 뭐 그렇게 기억될 것 없는 거에요, 이 목사에게는 그래 적용하지만 여러분들에게 적용하면 그런 거에요,
여러분 자녀를 키우고 난 뒤에 상처가 뭐에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러면은요 자녀 키운 게 도루묵이 된다 이런 말이에요, 아멘 내가 키운 게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키운 것이기 때문에 성장해서 네 인생 네가 살아가는 거지, 내가 수고한 것을 빼먹으려고 하는 것은 유적문화에요, 장장로님 눈물로 장전도사를 키웠더라도 내가 키운 게 아니요 이제부터 네가 살아라, 여러분 정말 이런 가치관이 세상과 다르잖아요 우리가, 그러면은 고부간의 갈등도 없어지는 거지요,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의 문제가 뭐에요 정권 잡고 나면은 자신의 유적을 남기려고 자기 업적 하려고 하다가 얼마나 많은 예산의 낭비와 자기사람 줄 세웁니까,
여러분들이 깨어나야 되요, 교회는 바울이 만약에 자기가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세워진 자기가 개척한 교회가 자기를 기억하고 유대인에게 베드로가 전한 교회를 베드로를 추앙[推仰]하면은 오늘날 기독교는 없습니다, 모든 이방인의 교회는 바울교가 되지 기독교가 되지 못하는 거요. 얼마나 바울이 고린도후서나 보세요, 유라굴로 광풍에 죽음을 당할 번하고 독사의 독을 머기도 하고 태장[笞杖]을 맞기도 하고 이러면서 교회를 세워나갔는데 내가 세운 교회가 베드로가 세운 유대인의 교회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은 나의 모든 일생의 수고가 바울 종교가 되는 순간 나는 도루묵이 된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 정말 회개해야 되요, 목사님들도 회개해야 되고 교회도 회개해야 되고 여러분들도 회개해야 되요, 교회에서도 왜 분쟁이 있고 싸움이 있습니까, 내가 선교회장일 때 내가 구역 장일 때 내가 이 교회에서 얼마나 했는데 목사님이 나를 안 알아주고 여러분들이 안 알아줘 그러면 여러분들이 수고 모든 것들 다 말짱 도루묵 되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설명으로 되겠어요, 십자가의 은혜 속에 들어가야지요 진리 안에 들어가야지요, 그러면서 그 뒤에 7절부터 뭐 칠,팔구,십, 시간이 가니까 다 접어두고 아 정말 여러분 이런 것은 좀 배우세요 이게 예수 믿는 복이에요, 자녀가 잘 되고 뭐 반기문 되고 이런 게 아니고 그 되면 뭐해요 행복하지 못한데,
저도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이렇게 되고 하니까 이제 친구들이 하나하나 이래 죽기도하고 아파서 사람구실 못하기도 해요, 3주 전에는 친구 중에 하나가 현대중공업에 들어가서 40년 거의 40년이더라고 했든 친구 또 그 3주 전에는 그렇게 어릴 때 초등학교 때 착하고 근실하게 잘 살은 친구가 암에 걸려서 죽었어요, 그리고 나니까 또 와서 서울대 건국대 병원에 입원해가 있고 가평 현리에서 요양을 해요, 그러니까 사는 게 뭔지 이런 생각이 육 적으로는 가끔 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동안에 목사가 되니까 별로 뭐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옛날 친구들을 만나서 이래 쭉 하는데 친구 하나가 한국전력에서 근40년을 하다가 퇴직을 한 친구가 있어요, 이제 얼마 전에 퇴직을 했는데 탁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이야기해 주고 싶더라고,
성당 다닌다 하더라고 내가 뭐라 했는가 하면은 이름이 갑이에요 갑아 나 예수 믿고 목사 되가 너무나 행복하다, 이러니까 아이구 많이 모아 놨는갑네, ㅎ ㅎ ㅎ 그래서 내가 이야기 했지요, 나 집도 없고 내 통장에는 한 보통 한 일이 십만 원 있고 돈 없다, 이러니까 그런데 뭐 그래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행복한 게 어떤 게 행복한 건 줄 아냐? 이러니까 탁 쳐다보더라고 제가 그랬어요, 여러분 진리 안에 있는 것을 그냥 진리 안에 있으면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자유케 해 주안에서 뭐 평강이 있어 이런 이야기 교리적인 이야기 그 교리가 우리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아셔야지요, 4.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주재권이 이양이 되면 과거의 일들 때문에 오늘 후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된 것을 회개해야 된다. 바울이 그 정도 때문에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굴복하지 않고 너희를 진리 안에 거하게 하려고 한다 여러분들이 정말 행복하고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주재권이 딱 이양이 되면은요 과거의 어떤 일들 때문에 오늘 후회하거나 불행하지 안 해요 아멘 해야 돼, 여러분 지금 대부분 불행하다는 사람들이 오늘의 불행 지금의 불행이 아니고요 과거에 어떤 일들을 후회하기 때문에 후회하고 불행 하는 거요, 그것은요 하나님의 주권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원죄에요 이 시간도, 아이구 내가 그 지하철만 안 타도 이 마누라 안 만나서 고생 안 할건데, 회개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아이 키울 때 그때 그런 일만 없었어도 이 애가 이래 되지는 안 했을 건데, 여러분 그건 전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자기 눈 찌르는 행위에요. 예수를 믿고 설교를 듣고 기도할 때에 내가 하나님 내 실수와 내 잘못조차도 선용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가시는 그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지 아니하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된 것을 회개합니다 이 시간 그래야 되요,
저는요 과거에 내가 잘 못하고 내가 뭐 이렇게 해서 오늘 좀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다 주권아래 일어난 거라 생각하니까 과거 때문에 가끔은 나도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만은 그게 나를 지배하게 하지는 안 해요, 영의 지배가 그런 거에요 여러분, 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도 뭐 지나간 것 때문에 별로 그런 걱정 안 한데, 여러분 그 성품에도 그럴 수 있어요 또 오늘날 여러분 우리가 교회들마다 힐링이라고 해가지고 뭐 많은 치유를 하는데 그 치유자체가 심리학과 상담학적인 접근이에요, 그러면은 반쪽 치유만 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이 다 뭐냐 하면은 과거에 잘못 선택한 일들 때문에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지금 내가 불행하고 고통 당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힐링이라는 것이 과거에 자기도 모르게 받은 상처를 들추어 내가지고 그것을 다시 돌아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치유하는 게 힐링 이잖아요, 성경은 그 정도 아니에요, 여러분들 가운데 아마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사람 있을 거에요 목사님 나도 그래요 나도 뭐 지난 일 별로 그것 때문에 오늘 이렇게 고통 당하는 것 없어요, 그런 사람은 성품상 또 심리학에는 상담학적인 차원에서 힐링이 되어서 반쪽행복 합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 성경에 바울이 그 정도 때문에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나는 한시도 굴복하지 않고 너희를 진리 안에 거하게 하려고 한다 라고 이렇게 싸움 안 한다 말입니다.
고 위에 있는 게 뭐냐 하면은 그런 거에요. 내가 그렇게 말한 친구에게 뭐라고 이야기 했는가 하면은 그런 이야기 했어요, 두 번째로 나는 닥치지 않는 미래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 잘 안 해, 가끔 나도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미래에 대해서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 들기는 하는데 그게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탁 한다는 소리가 그렇데 자기는 그게 잘 안 되어서 정년퇴직 하고 나니까 걱정이래 애들도요 뭐 정말 잘 되었더라고 지 후회 잘 안 한다면서 후회 하나는 하더라고, 삼천포 화력발전소에 있다가 여 중동 부천 쪽으로 올라올 때에 직장 선배가 그렇게 집을 대치동에 사라 하더래 그런데 자기는 뭐 대치동이나 직장 가까운데 부천에 샀는데 그게 후회 된데, ㅎ ㅎㅎ 서울 방배동에 있을 때 사람들이 말이 있거든요, 시골에서 친구가 강북에 살면 강북사람 되고 올라오면서 강남 살면 강남사람 되는데 고 방배동이 길 하나에 따라서 사당동 방배동이잖아요 집값은 배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하는데 보니까 광명 소하동에도 집이 있고 약간의 건물도 있고 또 퇴직금도 수억 받았고 또 애들 잘 크고 뭐 결혼도 시켰는데 그냥 불안 하다는 거요, 여러분 한가지 아세요 과거의 일들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도 되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어지는 것은 예수 안 믿으면은 안 되요.
5. 예수님의 말씀이 한날의 괴로움은 한날에 족하니라 내일 일은 내일 하라.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완벽한 지혜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아서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기대하기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게 하셨다. 그것 때문에 예수 믿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 했는가 하면은 예수님의 말씀이 한날의 괴로움은 한날에 족하니라, 내일의 염려는 뭐 하라고 내일 하라,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그냥 예수님의 말씀이니까 순종해야지 하면은 기독교는 좋은 말씀을 따르는 게 되잖아요, 그기에 조금 더 나가는 것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한다는 말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순절에 십자가가 대속의 제사 언약의 제사로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믿고 그분의 자녀 됨을 믿는 거잖아요, 내가 믿는 그 하나님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내 IQ 로는 그분의 계획을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완벽한 지혜와 완벽한 전능하신 그 하나님이 나에게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거요, 하나님이 내 생각대로 내 생각의 범주 안에 정도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면 믿을 필요 없잖아요, 여러분들이 왜 불안하고 왜 하나님 못 믿습니까,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지혜와 자기의 능력의 범위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 깨뜨리세요. 우리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아서 아버지 노릇 해주세요,
내가 암으로 죽은 그 자리에도 번데기가 깨고 나와서 나비가 되는 놀라운 능력의 역사 존재하듯이 내가 사업이 부도나는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굶기지 아니하고 만나와 메추라로 먹여가시면서 내가 부도나면서부터 사람 노릇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으라 이 말입니다. 그럴 때에 사람은요 지금 일 해야 됩니다. 걱정하는 사람치고 지금 자기가해야 할일 제대로 하는 사람 못 봤어요, 그래서 기독교인의 삶이 근실한 거에요, 이것 때문에 바울이 내가 한시도 타협하지 않고 진리 안에 거하도록 할례를 받는 것이나 유대교의 종교적인 관습과 규례를 지켜야 구원 받는다 하는 내가 조금도 타협할 수 없다 이러는 겁니다.
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알거든요, 할례를 받고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규제를 하도록 공로신학을 첨가해서 함으로 말미암아 종교적인 목적은 이루는데 교인들에게는 자유와 평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유대교와 비슷한 것 아니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교인들이 마지못해서 종교적인 짐까지 지고 가져가는 거에요, 이 행복한 삶을 그기 까지만 있으면은 기독교는 실존적인 기독교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하고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에게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게 했잖아요, 그러면 교회가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어야 되요, 이것이 진리 안에 있는 거에요.
그러면 성령의 교통하심이 뭔가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듯이 이 세상에 모든 공동체는 조직체지만은 우리의 혈연과 지음과 확인을 넘어서는 영의 교통이 있는 영원한 가족이에요, 그 가족이 될 때에 그 가족인 교회가 성령의 지배함을 받아서 아름다운 거룩한 공회가 될 때에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염려하는 것을 생각으로만 염려하지 말자 내일 염려는 내일하자 이러는 게 아니고 실제의 염려가 사라지고 실제적인 평강이 여러분들 속에 임하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에게 삶의 누림이 있는 거에요. 제가 이야기 할게요 교회 이래 되야 되요, 그래서 오늘 제가 설교 제목을 내일 때문에 오늘 불행하지 말자 이랬잖아요,
6.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연대감 있는 공동체가 나를 지켜준다는 것이 미래에 대한 염려 같고 현재의 삶에 누림이 성령의 교통 하심이다. 해병대도 일이 생기면 어디선지 쫙 모이는 것은 연대감이 있어서이다. 그러면서 제가 설교제목을 이것 할까 저것 할까 굉장히 고민했는데 해병대 같은 교회, 아마 70년대에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군대상황을 알 거에요 저는 서울에 있었거든요, 그래 가끔 뭐 명동에 순찰도 나가고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또 군용 열차라는 게 옛날에 있었잖아요, 군용열차를 타고 이제 고향에 갈 때에 육군들은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 당시에요 폭력이 조금 미화되는 당시에 육군들은 군용열차 타고 탁 지 자리에 앉아가지고 옆에 보도안하고 이래 있어요, 그런데 해병대는요 삐딱하게 써가지고 근성이(곤조) 있잖아요, 부르면서 왔다 갔다 지 마음 데로 해, 명동에 가면 육군들은 어느 한 귀퉁이에 앉아가지고 뭐 술을 먹든지 딴짓 하는데,
해병들은요 길거리 대로를 다니면서 이래해, 왜 그 차이 아세요? 연대감의 차이입니다, 싸움이 일어났다 하면은요 해병대는 고놈 한 놈인 줄 알았는데 어디에서 튀어나오는지 쫙 빨간 명찰 모여요, 육군은 여러분 그 군용열차에 싸움이 일어나면은 그냥 푹 숙여가지고 있어요, 내가 혼자 살아가지만 언제나 내 곁에는 이런 연대감 있는 공동체가 나를 지켜준다는 것이 미래에 대한 염려 같고 현재의 삶에 누림이 나오는 거요 성령의 교통하심이 그런 거에요, 우리 한국사람들의 가장 불행이 기독교가 가치관이 되는 것 보다 그 가치관이 공동체를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OECD 가운데 자살 율 일위입니다, 그 자살 율 일위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그리스도인이 없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에요.
왜 이렇게 잘 사는데 자살하는 사람이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 없습니다, 닥치지 않는 미래를 미리 걱정해가 자살해요, 왜 하나님 믿는 사람도 왜 자살 합니까 공동체가 연대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해병대 여러분 저 마산 진해 그 산에 가면은 훈련 받고 딱 올라가면은 있는 게 뭐냐 하면은 아무나 해병이 될 수 있으면 나는 해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의 장로교가 그랬어요, 누구나 예수를 믿을 수는 있지만은 아무나 교인이 될 수 없도록 세례에 아무나 안 줬어요, 이것이 왜 실용주의가 와가지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자기 살려고 흩어지는 이런 사람들로 만들어 버렸느냐는 거에요.
싸움이 일어나면은 해병대조차도 모이니까 어디에 가도 혼자 있어도 당당 하잖아요, 대한민국이 그래야 되지 않습니까, 기독교의 백 년의 역사 자랑할 것이 아니라 천만의 그리스도인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과거에 유교일 때에는 양반의 사회 잘사는 사람의 사회였는데 기독교가 천만이 되면서 국가가 이제는 혈연의 문제가 아니라 연대감으로 뭉쳐짐으로 말미암아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서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국가 때문에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어야 되잖아요, 여러분 제가 읽으라는 책 읽어보세요,
7. 원제 코리아 더 임파스벌 컨츄리(Korea; The impossible country)불가사의한 나라라는 겁니다. 성공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어떻게 그렇게 가난한 나라가 그렇게 부유하게 되었는데 왜 기쁨이 없느냐는 것이다(목사님 추천 도서) 다니엘 튜더 (Daniel Tudor) 가 지은 옥스포드 나온 젊은 친구 성공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원제 코리아 더 임파스벌 컨츄리 (Korea; The impossible country) 불가사의한 나라라는 거요, 그 불가사의한 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가난한 나라가 그렇게 부유하게 되었는데 왜 기쁨이 없느냐는 거에요, 우리가 어떻게 일을 했는데 베이비붐어 시대에 40년동안 죽도록 일을 했는데 은퇴를 하면서 내 남은 생애 이제 멋있게 살아가야지 이 기대를 하지 아니하고 불안과 초조로서 살아가야 되느냐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오늘 한국의 기독교의 번창을 자랑해서 되겠느냐는 거지요. 2주전에 현리에 요양원 왔다고
제가 가서 현대중공업에 40년 다니다가 이제 퇴직 곧 앞두고 있는 친구가 청평을 이래 쭉 돌면서 지금은 이제 누어서 꼼짝 을 못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60만원 가지고 부모형제 다 아버지 노름으로 그 중앙에 제재소 다 날려버리고 보따리 싸가지고 월셋방에서 울산에서 시작했는데, 참 요즘 여러분 고등학교 나와도 많이 받더라고 연봉이 일억이 넘더라고요, 보직이 좋아가지고 또 얼마나 많은 돈을 번지 몰라요, 그런데 뭐라는 가 하면은 이제 내가 퇴직금은 내가 다 쓸란다, 집도 팔아서 마누라는 오피스텔주고 내 할 것 해보고 살다가 가야 되지 않겠나, 죽음을 앞두니까 왜 그런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여러분 얼마나 불행한 삶이에요,
성경은 자기의 수고의 분복을 누리며 사는 거요, 여러분 백 만원 수입일 때는 백 만원에 누리고 천 만원이 되면 천 만원을 누리면서 천 만원을 누리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고, 백 만원을 누리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진리 안에 거하는 교회였다고요, 사도행전 2장에 보세요, 왜 교회가 이래 되었습니까, 진리에서 벗어나서 할례는 요구하지 않지만 종교적인 규례와 외형만 지키려고 교인들에게 공로신학 잡아 넣으니까 인생의 짐도 무거운데 종교적인 짐까지 지고 허덕이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 아닙니까,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이 바울은 가장
인간의 존엄성과 가난해도 가장 행복하고 부해도 멋있게 살고 내가 수고한 것 죽음 앞두고 써보고 살 거다 하고 가면서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멋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어서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세상 어디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우리에게 주신 거에요. 그것이 성령의 교통 하심이고 그것이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이고, 오늘부터 여러분 행복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어서 지난날 여러분들의 잘 못된 선택 때문에 후회 하는 법이 없이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마다 감사가 있는 삶을 살아가시고,
여러분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은 예수 믿지 아니하고는 어느 누구도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불안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아름다운 교회의 공동체가 성령의 유기적인 공동체가 됨으로 말미암아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면서 살아도 오늘 내 수고는 내가 누리며 살아도 여러분들의 일생이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생애 이런 신앙의 삶이 여러분들의 삶이 되도록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오늘도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고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김씨 성씨 이씨 박씨 그 외는 다 잡성 이지요? ㅎ ㅎ ㅎ 그 성을 넘어서는 영원한 하씨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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