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간호사관학교
대한민국 국군 간호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사관학교. 줄여서'국간사', '간사', 간사교, 간호교 등으로 불린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고등교육 기관이다.
고등교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곳이므로 신입생 모집에 있어 수시모집에서의 지원가능횟수에 포함되지도 않고, 정시모집의 대학군(群)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국방부 직할부대로,대전광역시 유성구 자운동 자운대에 위치하고 있다.
학생 정원은 여학생 76명, 남학생 14명으로 총 90명이다.
6.25 전쟁으로 인해 간호장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였던 1951년 1월 6일 육군군의학교(陸軍軍醫學校)에 2년제 간호사관생도 교육과정을 설치한 것이 시초이며 이때 1기 생도 303명을 최초로 선발, 휴전 전인 1953년 4월 3기가 입교하였다.
휴전 이후 1955년 4월부터 군장학생을 선발, 전국의 주요 민간 간호교육기관에 위탁교육을 실시하였으나 시설 및 교수 부족으로 2회만 배출 후 폐지하였고 육군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 모집은 1957년 10기 입교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이후1957년 4월 1일 전국의 5개 육군병원 부설 3년제 간호학교를 설치하여 간호사관생도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지만 이 교육과정도 3개 기수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던 1959년 9월 학교 설치법안이 국무회의 심의에서 부결되어 1960년 4월 11일자로 중단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 간호사들의 국외 취업이 늘어나면서 군 간호인력 획득이 어려워졌고 베트남 전쟁 부상 장병들의 귀국이 이어지면서 늘어난 간호장교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1967년 8월 15일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육군간호학교를 설립하였다.
문제는 이 육군간호학교가 교육법에 의거하여 민간 간호교육기관과 동일한 교육을 해왔음에도, 국군조직법에 의해 설립된 학교라는 이유로 졸업 후 학력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
이는 1969년 5월 1일 보건사회부(현보건복지부)로부터 정규간호사를 배출할 수 있는 간호교육기관으로 지정받는 것으로 해결하였고 1970년 9월 9일에는 문교부(현교육부)에서 100명 정원(당시 기준)의 교직과정 설치도 승인받았다.
그러다가 1970년 12월 들어 국방부의 3군 의무부대 통합 운영방침에 따라 육군병원 및 육군간호학교가 육군참모총장 예하부대에서 국방부 직할부대로 지휘감독권이 이양되어 교명도 '국군간호학교'로 개칭되었다.
1974년3월 문교부의 교육기관 정비계획에 의해 국군간호학교는 전문학교 교과과정으로 개편, 1975년 12월부터 전문학교 학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1979년도부터는 교육법상 전문학교가 전문대학으로 학제가 개편되면서 졸업시 전문대졸 학력이 인정되기 시작했고, 1980년 1월 4일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제정으로 현재의 교명을 갖게 되었으며, 동년 12월부터는 4년제 정규간호대학과정으로 학제를 개편하여 3군사관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4년제 사관학교의 반열에 올랐다.
첫 4년제 정규과정을 적용받게 된 기수는 23기.
해군간호장교는 1977년, 공군간호장교는 1993년에 최초로 임관하였다.
1996년 8월에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서 현 위치인 대전 유성구 추목동 자운대로 이전했다.
1999년, 국방부의 예산 절감 방침으로 인하여 국방부 산하 군 교육기관 통폐합 및 규모 축소가 논의되면서 간호사관학교는 학교 자체를 해체하기 위해 신입생도 모집을 중단하는 흑역사를 맞이하였고 1999년에 입교한 43기가 마지막 기수가 될 뻔했다.
이때 국방부는 굳이 간호사를 한 명당 양성비가 비싼 장교로 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수급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간호사관학교를 해체하고 100% 민간 자원으로 간호장교를 선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률이 거의 100%에 가까운 민간간호사자원들이 진짜 지방 민간 병원에 비해 급여도 낮고 엄격한 군율 하에 전국 오지의 군부대에 근무해야 하는 군에 굳이 지원할 이유가 없었다.
100% 민간 자원만으로 간호장교를 충원하기 어려운 현실이 어쩔 수 없었는지 2001년 5월 31일학교 존치가 결정되었고, 2002년 1월 23일 한국군 최초 여성장군인 양승숙 육군준장이 학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장성급 학교장 체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2002년 46기가 입교했는데 46기가 입학했을 당시 선배는 4학년이던 43기뿐. 2000년과 2001년에 기수 선발을 하지 않아 44기와 45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98년 IMF 경제위기 극복과 군 개혁의 일환으로 김대중 정부에 의해 폐교 결정이 난 이후 1999년 가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어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법률 제4839호'에 의거 3년 연속 신입생을 받지 못하면 자동폐교가 결정된 상태였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이상원 박사는 간호장교 출신 아내 김영신(26기)에게 선물한 사이트를 중심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 폐교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폐교 반대투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5개월간 온·오프라인 상에서 국민들에게 존속의 당위성을 인정 받았다.
2001년 5월 31일, 자동 폐교 3개월을 앞두고 건국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가 집행한 행정행위를 뒤집고, 새천년 민주당 이해찬 정책위 의장과 한명숙 여성부 장관과의 당정협의회를 통해 존속을 결정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여성장교단의 숙원인 여성장군을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2009년 국군간호사관학교 총동문회는 이 공로를 기려 이상원 박사를 명예동문에 위촉하였다.
2년간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다가 재개되었던 탓에 2002학년도에는 2학년과 3학년이 없어서 1학년과 4학년 사이가 뻥 뚫려 있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43기가 졸업한 2003학년도에는 1, 2학년만 존재했다.
이러다 보니 2005년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체 학년이 채워지고 나서야 다시 정상적인 4년제 대학이 되었다.
2012년에 입교한 56기부터는 남생도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남생도는 8명이었으나 후술할 일로 인해 1명이 퇴교해 최종 7명이 임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