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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올망졸망 초가집들이 들어선 마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넓은 마당 집이 내 진외가로 아저씨뻘 되는 분의 집이다.
*친척 아저씨 집 소개
나는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오면 한 번씩은 이 집을 찾는다. 이 집에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열세 살 되는 누이뻘 되는 소녀가 있었다. 실상 촌수를 따져 가며 통내외까지 할 절척(切戚, 성과 본이 같지 않으면서 가까운 친척)도 아니지만 서로 가깝게 지내는 터수(다른 사람과 이루어져 있는 어떤 관계나 사이)라, 내가 가면 여간 반가워하지 아니했고, 으레 그 소녀를 오빠가 왔다고 불러내어 인사를 시키곤 했다. 소녀의 몸매며 옷매무새는 제법 색시꼴이 박히어 가기 시작했다.(글쓴이가 사춘기 시절에 소녀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은근한 호기심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당시 양가에서 여자에게 예의범절과 바느질, 음식 솜씨를 갖추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만 해도 시골서 좀 범절 있다는 가정에서는 열 살만 되면 벌써 처녀로서의 예모를 갖추었고 침선이나 음식 솜씨도 나타내기 시작했다.
*친척 소녀 소개
집 문 앞에는 보리가 누렇게 패어 있었고, 한편 들에서는 일꾼들이 보리를 베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에 들어가 어른들을 뵙고 수인사 겸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얼마 지체한 뒤에 안 건넌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려는 것이다. 사랑방은 머슴이며, 일꾼들이 드나들고 어수선했으나, 건넌방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방도 말짱히 치워져 있고, 돗자리도 깔려 있었다.(소녀가 나를 위해 건넌방을 정리한 모습) 아주머니는 오빠에게 나와 인사하라고 소녀를 불러냈다. 소녀는 미리 준비를 차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곱게 매만져 있었다. 나도 옷고름을 매만지며 대청으로 마주 나와 인사를 했다. 작년보다도 훨씬 성숙해 보였다. 반쯤 닫힌 안방 문 사이로 경대 반짇고리들이 한편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막 건넌방에서 옮겨 간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 일꾼들을 보살피러 나가면서 오빠 점심 대접하라고 딸에게 일렀다. 조금 있다가 딸은 노파에게 상을 들려 가지고 왔다. 닭국에 말은 국수다. 오이소박이와 호박 눈썹 나물이 놓여 있었다. 상차림은 간소하나 정결하고 깔밋했다(아담하고 깔끔하다). 소녀는 촌이라 변변치는 못하지만 많이 들어 달라고 친숙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곱게 문을 닫고 나갔다.
*차분하고 조용한 소녀의 자태
남창으로 등을 두고 앉았던 나는 상을 받느라고 돗자리 길이대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맞은편 벽 모서리에 걸린 분홍 적삼(곤때가 약간 묻은 분홍 적삼은 소녀의 체취를 환기시키는 물건으로, 소녀는 이 때문에 부끄러워 하게 된다. 여기서 반복과 도치에 의한 표현이 글쓴이의 사춘기적 감수성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이 비로소 눈에 띄었다. 곤때가 약간 묻은 소녀의 분홍 적삼이. 나는 야릇한 호기심으로 자꾸 쳐다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밖에서 무엇인가 수런수런하는 기색이 들렸다. 노파의 은근한 웃음 섞인 소리도 들렸다. 괜찮다고 염려 말라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러더니 노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밀국수도 촌에서는 별식이나 맛없어도 많이 먹으라느니 너스레(수다스럽게 떠벌려 늘어놓는 말)는 놓더니, 슬쩍 적삼을 떼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었다.(소녀의 사춘기적 심성에 대한 배려)
*소녀의 적삼에 어리는 호기심
상을 내어 갈 때는 노파 혼자 들어오고, 으레 따라올 소녀는 나타나지 아니했다. 적삼 들킨 것이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가 올 때 아주머니는 오빠가 떠난다고 소녀를 불렀다. 그러나 소녀는 안방에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했다.(부끄러움에 '나'를 보지 못하는 소녀) 아주머니는 "갑자기 수줍어졌니, 얘도 새롭기는." 하며 미안한 듯 머뭇머뭇 기다렸으나(보리 베는 일꾼들의 점심 식사를 챙기느라 적삼에 얽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아주머니의 미안한 감정이 나타나 있다.) 이내 소녀는 나오지 아니했다. 나올 때 뒤를 흘낏 훔쳐본 나는 숨어서 반쯤 내다보는 소녀의 뺨이 확실히 붉어 있음을 알았다. 그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소녀의 어여쁜 자태
수필의 철학성 -김태길-
이해와 감상
이 글은 '철학'을 '철학한다'라는 동사로써 먼저 설명한 후, 그에 대한 작자의 가치와 생각을 진술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철학함'은 대상에 대해 더욱 깊이, 더욱 넓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철학하는 것'은 대상의 외양만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분석과 비판을 토대로 본질을 찾아내야 하며, 또 여러 각도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하여 결론을 내리는 태도를 지칭한다. 철학을 지닌 수필을 쓰기 위해서 작가는 항상 대상을 바라보면서 참된 인식을 얻고자 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수필의 철학성은 내용의 심오함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의 본질에 대해 깊이 궁리하고 다양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에 논리적인 오류나 정서적 편견은 없는가 등을 점검하는 자세를 습관화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반성과 점검으로서의 수필 쓰기가 철학적 차원에서 평가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점 정리
◆ 성격 : 사색적, 설명적 중수필
◆ 특성
* '철학'을 '철학한다'라는 동사로서 먼저 설명한 후, 그에 대한 작자 나름의 가치와 생각을 진술함.
◆ 주제 → 좋은 수필의 요건
◆ 출전 : <계간수필>(1995)
◆ 관련 작품 : 김태길의 '좋은 글', 피천득의 '수필'
생각해 보기
◆ 경수필과 중수필
경수필 - 비정격 수필
중수필 - 정격 수필
* 문장 흐름이 가벼운 느낌
* 주관적, 서정적
* '나'가 겉으로 드러나 있음.
* 자기 고백적, 개성적
* 예술적 가치
* 감성, 정서 위주로 전개
* 정서적, 신변잡기적
* 문장 흐름이 무거운 느낌
* 객관적
* '나'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음
* 논리적, 사회적
* 실용적 가치를 추구
* 논리 · 설명적으로 전개
* 지적, 사회적
◆ 김태길 수필의 특징
김태길의 수필은 생활 속에서 발견한 하나의 문제를 대상으로 이를 인생의 문제와 관련시켜 음미하고 소화시켜 그 결과까지를 제시하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경향을 띤다. 특히, 사회와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인생 철학'을 제시하여 독자의 지적 수준을 높여 준다.
작품 읽기
'철학'이라는 학문이나 사상이 있기 전에 '철학한다'는 행위가 있었다.(더욱 깊고 넓게 생각하는 철학하는 행위에서 세계 · 인생 · 지식에 관한 근본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철학이 생겨났다. '철학'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철학한다'라는 동사로 설명하고 있다.) '철학'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하는 행위의 특색을 살펴보는 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 '철학한다'함은 더욱 깊이, 더욱 넓게 생각한다는 말에 가깝다. '깊게 생각한다' 함은 겉만 보고 조급하게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의문이 풀릴 때까지 분석과 비판을 거듭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넓게 생각한다' 함은 하나의 시각에서만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그것만으로 철학함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깊고 넓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공상(空想)은 철학함이 아니다.(공상은 헛된 생각으로, 참된 인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없고, 여러 각도에서 종합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편협한 생각을 가리킨다.)
*'철학한다'의 의미
철학함에는 참된 인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진리 탐구의 의지가 없는 생각은 철학함이 아니며, 비록 그러한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진리와는 관계가 없는 엉뚱한 생각으로 방황하는 것은 철학함이 아니다. 진리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깊고 넓게 생각할 뿐 아니라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바르게 생각한다' 함은 생각의 출발점인 전제에 거짓이 없으며, 사유(思惟)의 과정(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철학함의 목적과 의미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잠정적 결론을 얻게 된다. 철학성이 풍부한 수필이 좋은 수필이라는 말은 깊고 넓은 바른 생각, 즉 훌륭한 사상을 많이 담고 있는 수필이 좋은 수필이라는 말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수필의 문학성이 주로 그 문장에 비중을 두는 것이라면(수필의 문학성은 주로 글의 구상과 문장 등 그 외형과 직결되고), 수필의 철학성은 주로 그 속에 그려진 마음의 세계에 비중을 두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의 철학성
수필은 주로 마음의 세계를 글로써 그리는 자화상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수필을 그림 중에서도 자화상에 비유하였다. 수필은 작가 자신을 잘 드러내는 고백적인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수필을 위해서는 그 표현의 수단인 문장이 탁월한 동시에 그 문장에 의하여 그려지는 마음의 세계가 풍부해야 한다.(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수필의 문학성과 철학성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작가의 내면 세계가 진솔하고 적절하게 표현되었을 뿐 아니라, 그 문장에 문학적 향기가 가득하고, 그 내용에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글이 좋은 수필인 것이다.) 마음의 세계가 풍부하다 함은 단순히 지식 수준이 높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지능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정이 메마르고 의지가 박약하면, 마음의 세계가 풍부하다고 보기 어렵다. 지정의(知情意)를 종합해서 볼 때 마음이 깊고 넓은 사람이 마음의 세계가 풍부한 사람이다.
*훌륭한 수필의 요건(1)
수필은 작가의 인품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인품이 높은 사람은 넓은 의미로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현이나 군자처럼 인품의 완성도가 높아야(인품이 뛰어나야, 철학이 뚜렷해야)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며, 장점이든 단점이든 함축성 있고 깔끔한 문장으로 진솔하게 그리면, 좋은 수필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마음의 세계가 깊고 넓은 사람일수록(철학성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글로 나타낼 수 있는 세계도 넓다는 점에서 유리할 따름이다.
*훌륭한 수필의 요건(2)
낭비가 -김소운-
이해와 감상
수필 갈래의 글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하는 문제의 폭은 실로 넓다. 크게는 삶의 의미, 국가 경영의 문제같이 중량감이 있는 문제로부터 작게는 자신의 취미를 토로하는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이 작품에서 대상으로 하는 문제는 돈의 지출에 대한 문제로, 이것은 생활의 지혜, 또는 생활 속에서의 방향과 태도의 선택 문제의 일부가 된다. 수필 갈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이런 유형의 글이다.
이 글의 첫머리는 ‘돈의 더러움’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여, 그 더러운 돈을 점잖은 신사와 아름다운 아가씨가 소중히 지니고 다니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일인(日人) 전당포 주인의 돈에 대한 태도를 통해 그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고, 그것과는 또 다른, 자신의 돈에 대한 생각을 전개시켜 나간다. 즉, 자신의 별명이 ‘낭비가’이지만 결코 부당하게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낭비’는 곧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이라는 독자들의 통념을 뒤집어 놓는다. 즐거움이 따르는 곳에서는 철저하게 인색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이로써 자신의 별명인 ‘낭비가’라는 말은 ‘쓸 곳에 제대로, 즐겁게 쓰는 사람’이며, 그리하여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누구보다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부자임을 강조하여 독자들에게 돈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설법하고 있다.
요점 정리
◆ 성격 : 경수필. 신변잡기적 수필
◆ 표현 : 일화와 예시를 통해 친근감을 전해줌.
◆ 주제 : 돈이란 아낄 때 아끼고 쓸 때에는 즐겁게 써야 한다.
◆ 출전 : 수필집 <목근통신>
작품 읽기
지폐 한 장에 몇 천만(千萬)인가, 몇 억(億)인가 하는 세균(細菌)이 우굴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실증해 보인 분이 있었다. 연전(年前)에 일본 후생성(厚生省)이 밝힌 바로는 동경(東京)의 음식점에서 내는 소독저(消毒箸) 한 벌에서 자그만치 5, 6백만의 미균이 검출되었다는 얘기다. 종이로 하나하나씩 싼 소독저도 그렇거던, 하물며 서울 거리의 버스간에서 거슬러주는 쓰레기 지폐리요.
미균이 모두 유독(有毒)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지만, 점잔을 빼무는 노신사(老紳士)에서 아이새도우, 매니큐어로 몸단장을 한 아가씨까지, 돈지갑 속에 몇 억, 몇 십 억의 미균 무더기를 간직하고 다닌다는 것은 유머러스한 만화(漫畵) 자료가 아닐까 보냐. 그렇다고는 하나 그 쓰레기 지폐를 행여 소홀히는 대접 못 한다. 비록 미균의 배양기(培養基)일망정 그것이 십만 원, 백만 원에 연(連)하는 ‘돈’이기 때문이다.
조개껍질이며, 두세 아람되는 돌덩이(石貨)가 돈으로 통용되던 그 옛날부터 ‘돈’의 조화는 과연 무궁 무진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신파(新派) 연극의 이 캐치프레이즈야말로 인생을 그냥 상징(象徵)한 만고의 명언(名言)이 아닐 수 없다.
* 돈이 갖는 다양한 속성
해방 십여 년 전, 종로 큰길에서 서린동으로 빠지는 뒷골목, 지금 N비어홀 자리에 ‘미야나가(官永)’라는 일인(日人) 전당포가 있었다. 주인 사내는 아직 삼십대의 절반밖에 안 된 나인데다 영화 스타 못지 않은 미끈한 미남(美男)이었다. 점원 하나가 있기는 있어도 돈을 만지는 것은 언제고 주인 사내였다. 물건을 잡고 돈을 내줄 때, 이 주인은 지전 한 장 한 장을 가로 세로, 모로 세고 그리고 나서 양쪽 손가락으로 소리가 나도록 부비면서 한 장씩을 천천히 두 손으로 손님 앞에 내놓았다. 마치 절친한 친구와 작별이나 하듯이…… 비록 5원(圓) 10원의 작은 돈일 경우에도 이 수속 절차가 생략되는 법은 없었다. 돈과의 결별에 그토록 신중하고 경건한 주인 사내의 그 태도에는 수전노(守錢奴)의 냄새보다 차라리 경의(敬意)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종교가가 그렇게도 신(神)을 공경하며, 어느 학자(學者) 예술가(藝術家)가 그렇게도 진리를 사랑하랴. 이만치 극진한 정성 앞에서야 돈인들 어찌 무심하리. ‘이자’라는 졸개를 거느리고 하루바삐 되돌아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경의를 표하는 것과 나 자신이 돈을 신앙(信仰)하지 않는 것과는 문제가 다르다. 나는 영구 불변(永久不變), 확고 부동(確固不動)의 가난뱅이――지금도 남들은 나를 가리켜 돈을 모르는 천치요, 낭비가라고 한다. 낭비를 하도록 큰 부자 노릇을 한적은 없었건마는 그것이 세상에 등록된 정평(定評)이다. 친구에게 떳떳이 술 한잔을 대접 못 하는 주제로 낭비가란 소문을 누린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요, 송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함부로 남에게 물려줄 수 없는, 이 허명(虛名)도 필경은 천복의 하나이리라.
*전당포 주인의 돈에 대한 태도와 지은이의 돈을 신앙하지 않는 태도
시인(詩人) J가 구정(舊正)에 나를 대접한다면서 부르러 왔다. 밤거리의 찬바람을 무릅쓰고 택시로 그가 사는 동리까지 갔다. 미터 90원――가진 잔돈이 없어 5백원 한 장을 내고 내렸다. 뒤따라내린 J가 운전사에게서 받은 거스름돈을 내 손에 건넨다. 3백 원이다.
‘어째서?’ 하고 물으니 백십 원은 팁으로 주었다고 한다. 남의 주머니 돈으로 백삼십 프로의 팁을 주다니 뱃장 좋은 친구다. 하물며 그 운전사는 도심(都心)과는 반대 방향이라고 탈 때부터 투덜댔고, 큰 길에서 멀어지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목적지까지는 채 못 가서 내려 2, 3백 미터나 밤길을 걸어야 했다.
초대를 받은 쪽이 택시값을 치른다는 것도 정상은 아니나 대한 민국에서는 족히 있을 수 있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도도한 운전사에게 백삼십 프로의 팁을 준 것만은 ‘있을 수 있는 일’로 흘려 버릴 수가 없다. 멀어져 가는 택시의 테일램프를 바라다보면서 나는 몇 마디 귀 따가운 소리를 J에게 했다. 오십 고개를 넘은 사내에게 낭비가의 레테르가 붙은 내가 경제학의 설법을 하다니 희극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돈에 얽힌 일화
이발관에서나 레스토랑에서나 나는 팁을 잊은 적이 없다. 내가 짚은 스틱에도 팁이란 세금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즐거움이 따르지 않는 일원의 지출은 즐겨서 하는 만금(萬金)의 소비보다도 더 아깝다. 그 점에 있어서 나는 철두철미 구두쇠요, 노랭이다. 육십 평생을 두고 내가 몸소 체득(體得)한 이 ‘돈의 생리(生理)’로 해서 ‘영구 불변’의 가난뱅이 나는, 한편 장안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마음 부자’이기도 하다.
* 지은이의 돈에 관한 철학
# 후생성(厚生省) : 일본 행정 부서의 하나. 우리 나라의 보건 복지부에 해당함
# 미균(黴菌) : 세균(細菌)과 같은 뜻의 말.
# 점잔을 빼무는 ∼ 아닐까 보냐. : 깨끗함을 상징하는 신사와 아가씨가 세균이 우글거리는 돈을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만화 소재가 될 만하다. 더러운 돈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세상 사람들을 풍자함
# 배양기(培養基) : 미생물을 배양하는 데 쓰는 영양 물질.
# 경의를 표하는 ∼ 문제가 다르다. : 예컨대, 돈을 소중히 다루는 것이 일인 전당포 주인의 자세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지만 나 자신은 돈에 대해 맹목적으로 매달리지 않겠다는, 지은이의 돈에 대한 생각을 암시해 주는 구절이다.
# 정평(定評) : 세상에 널리 알려진 평판.
# 허명(虛名) : 실속 없는 헛된 명성.
# 천복(天福) : 하늘이 내려준 복.
# 테일램프(tail lamp) : 자동차의 뒤쪽에 있는 등. 미등(尾燈)
# 오십 ∼ 이만저만이 아니다. : 낭비가로 소문난 내가 친구에게 돈을 낭비했다고 비난을 했으니 너무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친구를 비난한 까닭은 그가 돈을 너무도 즐겁지 않은 곳에 소비했기 때문이다. 팁은 친절의 대가로 지불해야지, '도도한' 운전수에게 지불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 설법(說法) : 불교의 교의(敎義)를 풀어 밝힘.
# 스틱(stick) : 지팡이. 단장(短杖).
# 육십 평생을 ∼ 하다. : 평생의 경험을 통해서 돈이란 함부로 쓰거나 맹목적으로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쓰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은 돈 없이 가난하겠지만, 돈을 즐겁게 쓸 줄 알기에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넥타이 -윤오영-
이해와 감상
어느 날 체경 앞에서 넥타이를 매려다 오히려 제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반사적 습관으로만 움직여 온 타성적인 생활을 떠올리고 반성하는 수필이다. 여러 가지 예화와 인용을 통해 주제와 관련된 사례를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다.
요점 정리
◆ 성격 : 체험적, 성찰적, 반성적
◆ 특성
* 일상생활의 체험을 통해 반성적 깨달음을 얻음.
* 다양한 예화를 소개하고(대화체), 장자의 말을 인용하는 등 문체의 변화를 보여줌.
◆ 주제 : 반사적 습관으로 타성에 젖어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작가가 깨달음을 얻은 과정을 정리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주제를 파악해 보자.
어느 날 우연히 체경 앞에서 넥타이를 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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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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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 타성에 의해 습관처럼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
갑자기 넥타이 매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넥타이를 맬 수가 없었다.
↓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반사적 습관으로만 움직여 온 타성 때문 (이)다.
2. 이 작품에 제시된 예화를 정리하고, 예화를 언급한 이유를 파악해 보자.
예화
구체적 내용
언급한 이유
'해관장' 이야기
해관장이 어느 날 자신의 서명하는 법을 잊어버림.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가끔 늘 해오던 일을 잊기도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어느 학자' 이야기
어느 학자가 임금 앞에서 나이를 대답하지 못함.
긴장을 하면 단순한 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지만, 자신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눈을 뜬 장님' 이야기
신의를 만나 눈을 뜬 장님이 눈을 감아야 길을 갈 수 있었음.
습관적으로 해 오던 일은 의식적으로 하면 오히려 어려울 수 있듯이 자신의 경우도 그러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소동파' 이야기
수염에 신경을 쓰지 않던 소동파가 수염에 대한 질문을 들은 뒤에 신경이 쓰여 잠을 자지 못했음.
자연스럽게 해 오던 어떤 일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것에 얽매인다는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
3. 자신의 경험 중 이 작품에 추가할 만한 사례가 있는지 떠올려 보자.
작품 읽기
체경 앞에서 넥타이를 매려니까 가락이 헝클어져서 잘 매지지를 않는다. 다시 매도 또 헝클어진다. 몇 번을 고쳐 매도 영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허구한 날 매던 넥타이를 오늘 따라 맬 줄을 모르다니 딱한 노릇이다. 할 수 없이 아이놈을 불러 좀 매달라고 했다.
내가 젊어서 처음 양복을 사 입고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우느라고 체경 앞에서 연습해 본 적도 있지만 넥타이를 못 매서 쩔쩔 매기는 처음이다. 글씨를 쓰다가 밤낮 쓰던 글자, 그나마 제대로 써 놓고도 눈이 서툴 때도 있고 밤낮 다니던 길을 차에서 내려 어느 쪽인지 어리둥절한 때도 있고, 이웃의 영양(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이 옷만 갈아 입어도 누구시냐고 딴전을 하기 일쑤인 내라, 원래 똑똑한 편은 못 되지만 오늘은 좀 심한 것 같다.
* 글쓴이의 체험
해관장(海觀丈, 근대의 서예가 윤용구의 호)은 만년에 남에게 글씨를 써 주다가 거침없이 다 써 읽어 보고는 서명할 때 와서 "내 성명이 뭐더라."해서 사람을 웃겼다지만 이것은 노래(老來, 늙어 가는 무렵)의 일이다. 나야 그렇게 늙지도 않았다.
* 예화1
예전에 어느 학자가 어전(임금의 앞)에 불려 와서 너무 긴장되어 있다가 갑자기 그 나이를 하문하시는 바람에 생각이 막혀 쩔쩔매고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긴장될 까닭이 없다. 황의돈 씨처럼 남의 나이는 물론 생일까지 몇십 년 전의 날짜 숫자까지 꼬박꼬박 기억하는 분과 만나면 부끄럽기보다 저게 정말일까 의아할 정도다. 그러면 나는 선천적으로 건망증이 가끔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이왕 건망증이 있을 바에는 과거의 모든 쓰라리고 슬프고 불유쾌한 경험조차 씻은 듯 잊었다면 내 건강에도 한결 다행하련만 안 잊히는 놈은 좀체로 잊혀지지 않는데, 하필 오늘따라 넥타이 매던 것을 잊어 버렸다.
* 예화2
모자를 들고 뜰에 내려서자, 언뜻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한 장님이 반생을 햇볕을 못 보고 살다가 용하다는 신의(의술이 뛰어나 병을 신통하게 잘 고치는 의원이나 의사)를 만나서 침 한 대에 눈을 떴다. 어떻게 세상이 신기 황홀한지 그야말로 환천환지(歡天歡地, 하늘도 땅도 기뻐할 만큼) 좋아서 날뛰다가 집으로 오려는데 방향을 몰라 길을 찾을 도리가 없다. 헤매다 그냥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이때 지나가던 사람이 있어 이 사정을 듣고는,
"눈을 도로 감고 가 보구려." 해서 눈을 다시 감고 지팡이로 더듬으니 쏜살같이 길이 나섰다(주객이 전도된 표현). 그렇다. 내가 넥타이 매는 법을 잊어 버린 것은 체경 앞에 선 게 탈이다. 진작 들고 나오며 맬 노릇이었다. 몇 해 동안 아침마다 출근 시간이면 총총해서 허둥지둥 매는 것이 습관화되어 손이 자동적으로 매 주었던 것이다. 반사적으로 행동해야 일이 순하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렵다.
* 예화3
소동파를 골려 먹은 청년이 있지 아니했던가.
소동파는 수염이 장히(기상이나 인품이 훌륭히, 매우 또는 몹시) 좋았다. 하루는 한 청년이 찾아와서,
"선생님 그 긴 수염을 주무실 때는 이불 속에다 놓고 주무십니까?" / 하고 물었다.
"그렇지!" / 하고 무심히 대답하자 청년은
"그러면 퍽 갑갑하시겠습니다."
"응! 이불 밖으로 내 놓고 잘 꺼야."
"그러면 시려우실 겝니다."
"글쎄?" / 하고 나서 그는 그날 밤에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내가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잤던가 내놓고 잤던가 하는 것이다. 넣고 자려면 갑갑하고 내놓고 자려면 시렵고 밤새도록 신고하다(어려운을 일을 당하여 몹시 애쓰다) 한잠도 편히 못 잤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체경 앞에서 자꾸 생각할수록 옥매졌는지 모른다.
* 예화4
장자는 "시비 선악이 생각하면 할수록 끝이 없으니 성인은 이를 천예(天倪, 자연의 품에 안긴 만물)에 화(和, 자연과 만물이 하나되는 무아지경을 의미함.)하여 망의무경(忘義無竟) 부친다.(하늘 끝에 닿으면 뜻도 잊어 버리고 경계도 잊어버린다.)"고 했다. (장자의 말을 인용한 의도 → 오늘 넥타이를 맬 때처럼 지나치게 시비를 분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그러나 모든 생활이 반사적 습관으로만 움직여 온 타성적인(오래되어 버릇으로 굳어진) 내 생활의 일면인 것 같아서 고달픔을 느낀다.(이 글의 주제의식, 자신의 평소 모습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글을 마무리함.)
* 마무리(깨달음과 반성)
숨어서 피는 꽃 -김병권-
이해와 감상
이 글은 자신의 정원에서 1년간 시들했다가 다시 조용히 피어난 수국에 대한 애정과 긍정적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른 꽃들은 자신의 모습을 뽐내는 듯 과시하지만 수국은 홀로 숨어서 피어나는 것에 글쓰이는 매력을 느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생살이도 이와 같다.'며 수국의 겸허한 모습에서 인간사에도 이와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요점 정리
◆ 성격 : 경수필 - 교훈적, 친화적
◆ 표현 : 대상에 대한 친화적 태도
◆ 주제 : 괴로움을 모두 이겨 낸 수국에서 발견한 겸허한 태도
작품 읽기
우리 집 정원에는 지난 1년 동안 시들했다가 생기를 되찾은 수국 한 그루가 있다.
나는 꽃나무의 생리를 잘 몰라 별로 손질해 주지는 못했지만 이 수국은 지난해 삿갓 모양의 넙죽한 향나무 밑에서 호된 홍역을 치뤄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을 아내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옮겨 심어 가까스로 기사회생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꽤 싱싱하게 자랐는데도 다른 집의 풍성한 수국보다는 포기가 적고 나이는 그럭저럭 5년째로 접어든다. 다른 수국 같으면 벌써 꽃송이가 만발했을 때다.
*일 년만에 생기를 되찾은 수국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야 겨우 한송이 피었는데 그 꽃의 빛깔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연보라빛이었고 그 크기는 제법 밥사발만 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겨우 한 송이 핀 꽃이 올바른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 무성한 잎새에 가려진 채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어 사람의 손이 잎새를 헤쳐 주지 않고는 눈에 띄기조차 어려웠다. 옆에 있는 옥잠화 · 실비아 · 채송화 · 장미 · 목단 · 국화 등이 저마다 요염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는 데 비해 혼자 외로이 외면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측은해 보였다. 그러나 다른 꽃들과 미색을 다투지 않고 홀로 잎새 속에 숨어서 피어 있는 자태는 사뭇 고고하기까지 했다.
꽃나무도 감성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지난해 여름 그 홍역을 치른 후 제 나름으로 온갖 풍상을 다 겪은 탓인지 저렇듯 자신의 모습을 움추리는 겸허 속에는 꼭 까닭이 있는 것만 같았다. 주변에 피어 있는 뭇 꽃들이 화려하면 할수록 나의 마음 쓰임은 저 무성한 잎새 속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수국에게로 기울어지는 것이었다.
* 잎새 속에서 숨어서 피어난 수국
따지고 보면 인생살이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저마다 난 체하려 들고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얼굴을 내세우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씁쓸한 현대인의 경박한 생리를 생각하다가 문득 저 고개를 떨구고 있는 수국 앞에 와서는 겸허하게 자신을 도야하는(몸과 마음을 닦아 기르는) 은자의 교훈을 느끼게 된다.
정금미옥(精金美玉, 인품이나 시문이 맑고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은 반드시 열화(熱火) 속을 거쳐 단련되어야 이루어지듯이 죽음의 경지에까지 도달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생의 참다운 의미를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하나의 쇠붙이나 돌덩어리보다도 약한 자신인 줄 안다면 어찌 함부로 고개를 쳐들고 교만을 피울 수 있으랴!
그런 의미에서 온상의 화초처럼 길러져 강한 햇빛만 받아도 시들해지는 저 모든 꽃들이 어찌 신산인고(辛酸忍苦,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괴로운 상황을 참고 견뎌 이겨 냄.)를 다 겪은 수국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랴 싶다.
* 겸허한 자세를 깨닫게 해 주는 수국
수학이 모르는 지혜 -김형석-
■ 이해와 감상
이 수필은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해 버릴 수 있다는 교훈이 담긴 수필이다. 작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라도 큰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이 범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삼형제의 유산 분배 과정에서 보여주는 행태는 단순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모습들이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작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국 형제간의 우애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고, 언젠가는 후회의 쓰라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화 속의 인물들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들은 복잡하고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현실적인 이익보다는 사랑과 이해를 지켜나갈 수 있는 지혜로움이 필요할 것 같다.
앞부분의 우화와 뒷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다소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데, 우화가 가지는 속성상 충분히 숨겨진 의미가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그것 또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 요점 정리
◆ 성격 : 중수필, 교훈적 수필, 시사적 수필
◆ 주제 :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는 삶의 여유와 지혜로움
◆ 출전 : <김형석 에세이집>(1968)
■ 생각해 보기
1. 앞부분의 이야기, 즉 우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⑴ 왜 형제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집행하지 못했는가?
→ 아버지가 원한 형제간의 우애에 대해서 그들은 알지 못하고, 다만 수학적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⑵ 유언은 어떤 이유에서 형제간의 갈등을 유발하였는가?
→ 수학적으로 배분하였기에
⑶ 아버지가 그러한 유언을 남긴 이유는?
→형제간의 사랑과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서
2. 앞부분의 이야기(우화)와 뒷부분의 주제와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이 잘 되는가?
→ 얼핏 보면 다소 어색한 면이 있지만,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우화는 꼭 한 가지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 여러 부분의 지혜를 끌어올 수 있는 것이다.
3. 본문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 대해 비판해 보자.
⑴ 삼형제의 싸움 때문에 선조들의 뜻을 버리고 집안이 망해 가듯이
→ 삼형제가 싸운다고 꼭 선조들의 뜻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남긴 지혜를 모를 뿐이다. 지나친 비약으로 볼 수 있다.
⑵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은 둘 다 잃어 버리지만 주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가 잘 살게된다는 원칙을
→ 현실 사회에서 과연 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잘 살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요즈음 사회는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⑶수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이러한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 진리는 여러 곳에 숨겨져 있다. 생활 속에, 하물며 저자거리에서도 진리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과 이 말은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
■ 작품 읽기
재미있는 우화가 있다.
옛날 아라비아의 어떤 상인이 임종을 맞게 되었다. 그는 자기 앞에 세 아들을 불러앉혔다. 그리고는,
"내가 너희들에게 남겨 줄 유산이라고는 말이 열일곱 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고장의 습관에 따라 똑같이 나누어 줄 수는 없으니까 맏아들 너는 열일곱 마리의 반을, 둘째 아들 너는 전체의 3분의 1을, 그리고 막내 아들 너는 전체의 9분의 1을 갖도록 해라."고 유언을 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재산을 나누어 가져야 할 삼형제 간에는 오랜 싸움이 계속되었으나 해결할 길이 없었다. 맏아들은 열일곱의 반으로 아홉 마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동생들은 아홉 마리는 2분의 1이 넘으니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여덟 마리 반이 되지만 반 마리는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은 여섯 마리를 가져야 한다고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형과 동생은 다섯 마리밖에는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막내 아들은 두 마리를 가져야 한다고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형들은 두 마리는 열일곱의 9분의 1이 넘으므로 우리들만 손해를 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싸움은 여러 날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만족스러운 해결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루는 이들의 집 앞을 한 목사가 지나갔다. 세 아들은 그 목사에게 아버지의 유산 문제를 해결지어 주도록 청을 드렸다. 누구도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목사는,
"그러면 이렇게 합신다. 내가 타고 온 말 한 마리를 당신들에게 드리지요. 그러면 열여덟 마리가 될 것입니다. 맏형은 그 2분의 1인 아홉 마리를 가지시오. 둘째는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여섯 마리를 가지시오. 그리고 막내는 9분의 1에 해당하는 두 마리를 차지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당신네 세 사람은 모두가 아버지의 약속된 유산보다도 많은 것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세 아들은 모두 만족했다. 목사가 얘기해 준 대로 자기들에게 돌아올 말들을 찾아가졌다. 일을 끝낸 목사는,
"그러면 나는 다시 길을 떠나야겠습니다."는 인사를 하고 걸어서 대문 앞을 나섰다. 바로 그 때였다. 한 아들이 뒤따라 나오면서,
"목사님, 말을 타고 오셨다가 어떻게 이 사막길을 걸어가실 수가 있습니까? 외양간에 가 보니까 아직도 한 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차지할 것은 다 차지했는데도 한 마리가 남았으니 이 말을 타고 가십시오." 라고 말했다. 목사는,
"그렇습니까? 나에게 한 마리를 다시 주신다니 타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말을 탔다. 타고 보니 그것은 조금 전 타고 왔던 바로 그 말이었다. 아들들은 목사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목사는 아까와 같이 자기 말을 타고 갔다. 생각해 보면 세 아들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젊은이들이었다. 목사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라도 싸우다가 무슨 결과를 가져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 세 아들만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들 모두가 똑같은 생활을 해 가고 있지 않은가.
나라를 사랑한다는 정치가들이 정당 싸움과 감투 싸움을 하는 꼴도 비슷하고, 경제 사회에서 이권을 다투는 사람들의 심정도 거의 마찬가지다. 삼형제의 싸움 때문에 선조들의 뜻을 버리고 집안이 망해 가듯이 오늘날 우리들은 선조들의 정신적 유산을 짓밟고 불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왜 그런가? 한 가지 마음의 결핍 때문이다. 남의 것을 빼앗기보다 이웃에게 주려고 하는 사랑의 결핍이다.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은 둘 다 잃어 버리지만 주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원칙을….
여기 두 사람의 장사꾼이 있다고 하자. 갑은 '어떻게 하면 싸고 질긴 물건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물건을 생산하며 판다. 이에 반하여 을은 '좀 나쁜 물건이지만, 속여서 이득을 얻을 수 없을까?'하는 생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면 5년, 10년 후에는 결과의 차이가 어떻게 나타날까? 갑과 같은 실업인이 많은 사회와 을과 같은 실업인이 많은 사회는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과거에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가지려고 애써 왔다. 이웃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찾아 누리는 사람이 그만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좋은 사회는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이웃들과 더불어 소유하며 한가지로 즐길 수 있을까를 모색해왔다. 오늘 우리는 그만큼 못 살고 있으며 그들은 그만큼 잘 살고 있다. 우리는 수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이러한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목사가 한 마리의 말을 싸우는 형제들에게 주었듯이, 우리들도 무엇인가를 줄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자신에게도 손해가 없음 이웃에게도 도움이 되는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 삶의 자세와 바탕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문제는 누가 먼저 그 뜻을 보여주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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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가 -김소운-
이해와 감상
수필 갈래의 글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하는 문제의 폭은 실로 넓다. 크게는 삶의 의미, 국가 경영의 문제같이 중량감이 있는 문제로부터 작게는 자신의 취미를 토로하는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이 작품에서 대상으로 하는 문제는 돈의 지출에 대한 문제로, 이것은 생활의 지혜, 또는 생활 속에서의 방향과 태도의 선택 문제의 일부가 된다. 수필 갈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이런 유형의 글이다.
이 글의 첫머리는 ‘돈의 더러움’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여, 그 더러운 돈을 점잖은 신사와 아름다운 아가씨가 소중히 지니고 다니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일인(日人) 전당포 주인의 돈에 대한 태도를 통해 그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고, 그것과는 또 다른, 자신의 돈에 대한 생각을 전개시켜 나간다. 즉, 자신의 별명이 ‘낭비가’이지만 결코 부당하게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낭비’는 곧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이라는 독자들의 통념을 뒤집어 놓는다. 즐거움이 따르는 곳에서는 철저하게 인색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이로써 자신의 별명인 ‘낭비가’라는 말은 ‘쓸 곳에 제대로, 즐겁게 쓰는 사람’이며, 그리하여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누구보다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부자임을 강조하여 독자들에게 돈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설법하고 있다.
요점 정리
◆ 성격 : 경수필. 신변잡기적 수필
◆ 표현 : 일화와 예시를 통해 친근감을 전해줌.
◆ 주제 : 돈이란 아낄 때 아끼고 쓸 때에는 즐겁게 써야 한다.
◆ 출전 : 수필집 <목근통신>
작품 읽기
지폐 한 장에 몇 천만(千萬)인가, 몇 억(億)인가 하는 세균(細菌)이 우굴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실증해 보인 분이 있었다. 연전(年前)에 일본 후생성(厚生省)이 밝힌 바로는 동경(東京)의 음식점에서 내는 소독저(消毒箸) 한 벌에서 자그만치 5, 6백만의 미균이 검출되었다는 얘기다. 종이로 하나하나씩 싼 소독저도 그렇거던, 하물며 서울 거리의 버스간에서 거슬러주는 쓰레기 지폐리요.
미균이 모두 유독(有毒)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지만, 점잔을 빼무는 노신사(老紳士)에서 아이새도우, 매니큐어로 몸단장을 한 아가씨까지, 돈지갑 속에 몇 억, 몇 십 억의 미균 무더기를 간직하고 다닌다는 것은 유머러스한 만화(漫畵) 자료가 아닐까 보냐. 그렇다고는 하나 그 쓰레기 지폐를 행여 소홀히는 대접 못 한다. 비록 미균의 배양기(培養基)일망정 그것이 십만 원, 백만 원에 연(連)하는 ‘돈’이기 때문이다.
조개껍질이며, 두세 아람되는 돌덩이(石貨)가 돈으로 통용되던 그 옛날부터 ‘돈’의 조화는 과연 무궁 무진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신파(新派) 연극의 이 캐치프레이즈야말로 인생을 그냥 상징(象徵)한 만고의 명언(名言)이 아닐 수 없다.
* 돈이 갖는 다양한 속성
해방 십여 년 전, 종로 큰길에서 서린동으로 빠지는 뒷골목, 지금 N비어홀 자리에 ‘미야나가(官永)’라는 일인(日人) 전당포가 있었다. 주인 사내는 아직 삼십대의 절반밖에 안 된 나인데다 영화 스타 못지 않은 미끈한 미남(美男)이었다. 점원 하나가 있기는 있어도 돈을 만지는 것은 언제고 주인 사내였다. 물건을 잡고 돈을 내줄 때, 이 주인은 지전 한 장 한 장을 가로 세로, 모로 세고 그리고 나서 양쪽 손가락으로 소리가 나도록 부비면서 한 장씩을 천천히 두 손으로 손님 앞에 내놓았다. 마치 절친한 친구와 작별이나 하듯이…… 비록 5원(圓) 10원의 작은 돈일 경우에도 이 수속 절차가 생략되는 법은 없었다. 돈과의 결별에 그토록 신중하고 경건한 주인 사내의 그 태도에는 수전노(守錢奴)의 냄새보다 차라리 경의(敬意)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종교가가 그렇게도 신(神)을 공경하며, 어느 학자(學者) 예술가(藝術家)가 그렇게도 진리를 사랑하랴. 이만치 극진한 정성 앞에서야 돈인들 어찌 무심하리. ‘이자’라는 졸개를 거느리고 하루바삐 되돌아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경의를 표하는 것과 나 자신이 돈을 신앙(信仰)하지 않는 것과는 문제가 다르다. 나는 영구 불변(永久不變), 확고 부동(確固不動)의 가난뱅이――지금도 남들은 나를 가리켜 돈을 모르는 천치요, 낭비가라고 한다. 낭비를 하도록 큰 부자 노릇을 한적은 없었건마는 그것이 세상에 등록된 정평(定評)이다. 친구에게 떳떳이 술 한잔을 대접 못 하는 주제로 낭비가란 소문을 누린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요, 송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함부로 남에게 물려줄 수 없는, 이 허명(虛名)도 필경은 천복의 하나이리라.
*전당포 주인의 돈에 대한 태도와 지은이의 돈을 신앙하지 않는 태도
시인(詩人) J가 구정(舊正)에 나를 대접한다면서 부르러 왔다. 밤거리의 찬바람을 무릅쓰고 택시로 그가 사는 동리까지 갔다. 미터 90원――가진 잔돈이 없어 5백원 한 장을 내고 내렸다. 뒤따라내린 J가 운전사에게서 받은 거스름돈을 내 손에 건넨다. 3백 원이다.
‘어째서?’ 하고 물으니 백십 원은 팁으로 주었다고 한다. 남의 주머니 돈으로 백삼십 프로의 팁을 주다니 뱃장 좋은 친구다. 하물며 그 운전사는 도심(都心)과는 반대 방향이라고 탈 때부터 투덜댔고, 큰 길에서 멀어지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목적지까지는 채 못 가서 내려 2, 3백 미터나 밤길을 걸어야 했다.
초대를 받은 쪽이 택시값을 치른다는 것도 정상은 아니나 대한 민국에서는 족히 있을 수 있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도도한 운전사에게 백삼십 프로의 팁을 준 것만은 ‘있을 수 있는 일’로 흘려 버릴 수가 없다. 멀어져 가는 택시의 테일램프를 바라다보면서 나는 몇 마디 귀 따가운 소리를 J에게 했다. 오십 고개를 넘은 사내에게 낭비가의 레테르가 붙은 내가 경제학의 설법을 하다니 희극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돈에 얽힌 일화
이발관에서나 레스토랑에서나 나는 팁을 잊은 적이 없다. 내가 짚은 스틱에도 팁이란 세금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즐거움이 따르지 않는 일원의 지출은 즐겨서 하는 만금(萬金)의 소비보다도 더 아깝다. 그 점에 있어서 나는 철두철미 구두쇠요, 노랭이다. 육십 평생을 두고 내가 몸소 체득(體得)한 이 ‘돈의 생리(生理)’로 해서 ‘영구 불변’의 가난뱅이 나는, 한편 장안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마음 부자’이기도 하다.
* 지은이의 돈에 관한 철학
# 후생성(厚生省) : 일본 행정 부서의 하나. 우리 나라의 보건 복지부에 해당함
# 미균(黴菌) : 세균(細菌)과 같은 뜻의 말.
# 점잔을 빼무는 ∼ 아닐까 보냐. : 깨끗함을 상징하는 신사와 아가씨가 세균이 우글거리는 돈을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만화 소재가 될 만하다. 더러운 돈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세상 사람들을 풍자함
# 배양기(培養基) : 미생물을 배양하는 데 쓰는 영양 물질.
# 경의를 표하는 ∼ 문제가 다르다. : 예컨대, 돈을 소중히 다루는 것이 일인 전당포 주인의 자세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지만 나 자신은 돈에 대해 맹목적으로 매달리지 않겠다는, 지은이의 돈에 대한 생각을 암시해 주는 구절이다.
# 정평(定評) : 세상에 널리 알려진 평판.
# 허명(虛名) : 실속 없는 헛된 명성.
# 천복(天福) : 하늘이 내려준 복.
# 테일램프(tail lamp) : 자동차의 뒤쪽에 있는 등. 미등(尾燈)
# 오십 ∼ 이만저만이 아니다. : 낭비가로 소문난 내가 친구에게 돈을 낭비했다고 비난을 했으니 너무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친구를 비난한 까닭은 그가 돈을 너무도 즐겁지 않은 곳에 소비했기 때문이다. 팁은 친절의 대가로 지불해야지, '도도한' 운전수에게 지불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 설법(說法) : 불교의 교의(敎義)를 풀어 밝힘.
# 스틱(stick) : 지팡이. 단장(短杖).
# 육십 평생을 ∼ 하다. : 평생의 경험을 통해서 돈이란 함부로 쓰거나 맹목적으로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쓰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은 돈 없이 가난하겠지만, 돈을 즐겁게 쓸 줄 알기에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넥타이 -윤오영-
이해와 감상
어느 날 체경 앞에서 넥타이를 매려다 오히려 제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반사적 습관으로만 움직여 온 타성적인 생활을 떠올리고 반성하는 수필이다. 여러 가지 예화와 인용을 통해 주제와 관련된 사례를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다.
요점 정리
◆ 성격 : 체험적, 성찰적, 반성적
◆ 특성
* 일상생활의 체험을 통해 반성적 깨달음을 얻음.
* 다양한 예화를 소개하고(대화체), 장자의 말을 인용하는 등 문체의 변화를 보여줌.
◆ 주제 : 반사적 습관으로 타성에 젖어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작가가 깨달음을 얻은 과정을 정리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주제를 파악해 보자.
어느 날 우연히 체경 앞에서 넥타이를 매게 되었다.
⇒
주제
↓
반사적 타성에 의해 습관처럼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
갑자기 넥타이 매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넥타이를 맬 수가 없었다.
↓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반사적 습관으로만 움직여 온 타성 때문 (이)다.
2. 이 작품에 제시된 예화를 정리하고, 예화를 언급한 이유를 파악해 보자.
예화
구체적 내용
언급한 이유
'해관장' 이야기
해관장이 어느 날 자신의 서명하는 법을 잊어버림.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가끔 늘 해오던 일을 잊기도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어느 학자' 이야기
어느 학자가 임금 앞에서 나이를 대답하지 못함.
긴장을 하면 단순한 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지만, 자신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눈을 뜬 장님' 이야기
신의를 만나 눈을 뜬 장님이 눈을 감아야 길을 갈 수 있었음.
습관적으로 해 오던 일은 의식적으로 하면 오히려 어려울 수 있듯이 자신의 경우도 그러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소동파' 이야기
수염에 신경을 쓰지 않던 소동파가 수염에 대한 질문을 들은 뒤에 신경이 쓰여 잠을 자지 못했음.
자연스럽게 해 오던 어떤 일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것에 얽매인다는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
3. 자신의 경험 중 이 작품에 추가할 만한 사례가 있는지 떠올려 보자.
작품 읽기
체경 앞에서 넥타이를 매려니까 가락이 헝클어져서 잘 매지지를 않는다. 다시 매도 또 헝클어진다. 몇 번을 고쳐 매도 영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허구한 날 매던 넥타이를 오늘 따라 맬 줄을 모르다니 딱한 노릇이다. 할 수 없이 아이놈을 불러 좀 매달라고 했다.
내가 젊어서 처음 양복을 사 입고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우느라고 체경 앞에서 연습해 본 적도 있지만 넥타이를 못 매서 쩔쩔 매기는 처음이다. 글씨를 쓰다가 밤낮 쓰던 글자, 그나마 제대로 써 놓고도 눈이 서툴 때도 있고 밤낮 다니던 길을 차에서 내려 어느 쪽인지 어리둥절한 때도 있고, 이웃의 영양(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이 옷만 갈아 입어도 누구시냐고 딴전을 하기 일쑤인 내라, 원래 똑똑한 편은 못 되지만 오늘은 좀 심한 것 같다.
* 글쓴이의 체험
해관장(海觀丈, 근대의 서예가 윤용구의 호)은 만년에 남에게 글씨를 써 주다가 거침없이 다 써 읽어 보고는 서명할 때 와서 "내 성명이 뭐더라."해서 사람을 웃겼다지만 이것은 노래(老來, 늙어 가는 무렵)의 일이다. 나야 그렇게 늙지도 않았다.
* 예화1
예전에 어느 학자가 어전(임금의 앞)에 불려 와서 너무 긴장되어 있다가 갑자기 그 나이를 하문하시는 바람에 생각이 막혀 쩔쩔매고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긴장될 까닭이 없다. 황의돈 씨처럼 남의 나이는 물론 생일까지 몇십 년 전의 날짜 숫자까지 꼬박꼬박 기억하는 분과 만나면 부끄럽기보다 저게 정말일까 의아할 정도다. 그러면 나는 선천적으로 건망증이 가끔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이왕 건망증이 있을 바에는 과거의 모든 쓰라리고 슬프고 불유쾌한 경험조차 씻은 듯 잊었다면 내 건강에도 한결 다행하련만 안 잊히는 놈은 좀체로 잊혀지지 않는데, 하필 오늘따라 넥타이 매던 것을 잊어 버렸다.
* 예화2
모자를 들고 뜰에 내려서자, 언뜻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한 장님이 반생을 햇볕을 못 보고 살다가 용하다는 신의(의술이 뛰어나 병을 신통하게 잘 고치는 의원이나 의사)를 만나서 침 한 대에 눈을 떴다. 어떻게 세상이 신기 황홀한지 그야말로 환천환지(歡天歡地, 하늘도 땅도 기뻐할 만큼) 좋아서 날뛰다가 집으로 오려는데 방향을 몰라 길을 찾을 도리가 없다. 헤매다 그냥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이때 지나가던 사람이 있어 이 사정을 듣고는,
"눈을 도로 감고 가 보구려." 해서 눈을 다시 감고 지팡이로 더듬으니 쏜살같이 길이 나섰다(주객이 전도된 표현). 그렇다. 내가 넥타이 매는 법을 잊어 버린 것은 체경 앞에 선 게 탈이다. 진작 들고 나오며 맬 노릇이었다. 몇 해 동안 아침마다 출근 시간이면 총총해서 허둥지둥 매는 것이 습관화되어 손이 자동적으로 매 주었던 것이다. 반사적으로 행동해야 일이 순하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렵다.
* 예화3
소동파를 골려 먹은 청년이 있지 아니했던가.
소동파는 수염이 장히(기상이나 인품이 훌륭히, 매우 또는 몹시) 좋았다. 하루는 한 청년이 찾아와서,
"선생님 그 긴 수염을 주무실 때는 이불 속에다 놓고 주무십니까?" / 하고 물었다.
"그렇지!" / 하고 무심히 대답하자 청년은
"그러면 퍽 갑갑하시겠습니다."
"응! 이불 밖으로 내 놓고 잘 꺼야."
"그러면 시려우실 겝니다."
"글쎄?" / 하고 나서 그는 그날 밤에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내가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잤던가 내놓고 잤던가 하는 것이다. 넣고 자려면 갑갑하고 내놓고 자려면 시렵고 밤새도록 신고하다(어려운을 일을 당하여 몹시 애쓰다) 한잠도 편히 못 잤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체경 앞에서 자꾸 생각할수록 옥매졌는지 모른다.
* 예화4
장자는 "시비 선악이 생각하면 할수록 끝이 없으니 성인은 이를 천예(天倪, 자연의 품에 안긴 만물)에 화(和, 자연과 만물이 하나되는 무아지경을 의미함.)하여 망의무경(忘義無竟) 부친다.(하늘 끝에 닿으면 뜻도 잊어 버리고 경계도 잊어버린다.)"고 했다. (장자의 말을 인용한 의도 → 오늘 넥타이를 맬 때처럼 지나치게 시비를 분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그러나 모든 생활이 반사적 습관으로만 움직여 온 타성적인(오래되어 버릇으로 굳어진) 내 생활의 일면인 것 같아서 고달픔을 느낀다.(이 글의 주제의식, 자신의 평소 모습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글을 마무리함.)
* 마무리(깨달음과 반성)
다듬이 -정진권-
이해와 감상
이 글은 간결하고 소박한 문체로 한국인 고유의 정서를 재현하고 있다. 글쓴이는 다듬잇돌과 다듬이 방망이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을 떠올리고 있으며, 다듬잇돌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추상어나 개념어보다는 구체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함축적인 의미가 강한 고유어를 써서 서정적인 느낌과 전통적 색채를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요점 정리
◆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회고적 · 서정적 · 낭만적-
◆ 특성
* 현재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비교함.
*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진정성을 느끼게 함.
* 구체어, 고유어로 함축적 의미를 드러냄.
◆ 주제 : 다듬이에 대한 추억과 옛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 출전 : <한국인의 향수>(1996)
생각해 보기
◆ 정진권이 제시한 수필 문학의 특징
1. 언어는 함축적이고 독자의 정서에 호소해야 한다.
2. 수필가는 사실을 모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3. 수필 문학도 예술인 한, 독자에게 예술적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4. 수필도 문학이므로 언어의 정교한 구조물이어야 한다.
◆ 수필이 독자에게 주는 것
수필은 때때로 지식을 전달한다.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목적이 아니다. 만일 그런 것이 목적이라면 논설문이나 설명문에 미칠 수가 없다. 수필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서적 만족이다. 그것은 감동일 수도 있고 공감일 수도 있다. 더러 독자는 이런 만족을 맛보기 위하여 수필을 읽는 것이다.
작품 읽기
요 얼마 전에 이사를 한 일이 있다. 그대 나는 다듬잇돌을 들어다 실으면서 잠시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나는 어려서 다듬이질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풀 먹인 흰 빨래가 꼽꼽해지면, 다듬잇돌에 맞게 네모로 접어놓고 방망이질을 했다. 빨래가 너무 마르면 입으로 물을 뿜어서 다시 꼽꼽하게 한 뒤에 다듬이질을 했다. 나는 이따금 바가지로 찬물 심부름도 했다. 다듬이질은 혼자서도 하고 둘이 마주앉아 하기도 했다. 혼자 하는 소리는 좀 둔탁한 느낌이었지만, 맞다듬이질을 할 때의 그 소리는 경쾌하고도 청랑한 것이었다.
휘영청 달이 밝은 가을밤에 혼자 뒷간에 앉아 있자면, 마을은 온통 그 경쾌하고 청랑한 다듬이 소리투성이었다. 소년은 그 다듬이 소리에 취했다가 달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이 아랫배에다 힘을 주었다.(글쓴이가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 뒷간에서 달을 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부분이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청랑한 소리와 어우러지고 있다.) 그러다가 뒷간을 나와 보면, 환히 불 밝은 아랫방 문에 맞다듬이질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때 사립문 뒤에 세워 놓은 수숫대의 마른 잎사귀가 우수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다듬이질을 하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감 껍질 말린 것을 내다 놓고 주근주근 먹었다. 도토리묵이나 메밀묵으로 밤참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소년은 배 아픈 핑계로 홍시나 곶감을 졸랐었다. 홍시나 곶감을 먹으면 설사도 그친다고 했다.
다듬잇돌은 여름에도 차가웠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나는 그 서늘한 다듬잇돌을 베고 누운 일이 있다. 그때 어머니가 이걸 보시고는 깜짝 놀라 일으켜 앉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