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가 눈치채기
훨씬 전부터 이미
탈출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놀랄만큼
눈치가 둔할 때가 있다.
마음씨
착한 동생이
자주 집에 들락거리더니
어느 순간부터 거의 들어앉다시피 하며
아침마다 나를 깨워서 샤워를 시키고 밥을 먹었다.
그런다고
파경을 외면하거나
오랫동안 쌓인 불안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땅거미가 진 후에
낡은 운동화를 신고 슬그머니
첫날 달렸던 그 골목길을 나서면서
하루에 단 몇분이나마 그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나는
계속 똑같은
출발점으로 갔다.
계속 똑같은 노래를 들으며 달렸다.
매번
숨을 헐떡이며
코끼리처럼 쿵쿵 달렸다.
하지만
달리는 시간은
점점 늘고, 중간에
멈추는 횟수는 점점 줄었다.
그 터무니없는
독기어린 노래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곡으로 넘어가는 것도 허락했다.
신체적
변화도 감지했다.
잠을 더 잘 잤다.
옆에서
동생은 자는데
멀뚱멀뚱 천장만 보는게
아니라 동생의 고른 호흡과
온기에서도 작은 위안을 얻었다.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건 아니라는
안도감이었고나 할까,
침투적 사고나 공황이 들이닥쳐도
아드레날린이 미친듯이 분출되지 않았다.
눈물바람으로
일어나지도 않았다.
장족의 ..까지는 아니어도
어쨌든 발전은 발전이었다.
카페 게시글
늦지않았나
장족의 발전은 아니어도...
자노
추천 0
조회 7
22.12.01 03:50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