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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나오는 두꺼비.
땅으로 내려앉아 어디론가 가버린다.
견우: 이넘이 어떻게 들어가쓸까여? 불가사이임미다.
캡슐 안에는 옛날에 넣었던 것처럼 편지 두 장이 들어있다.
그녀의 편지를 꺼내 바라보는 견우.
편지를 뜯어낸다.
깨알 같은 그녀의 글씨-
그녀의 목소리로 읽혀진다.
그녀: 견우야? 견우야, 안녕? 나 너 만나는 동안, 너무 재밌었어. ……. 엄마가 너 만나는 거 좋아하진 않았지만……. 엄마도 내 고집 꺾을 수 없다는 거 잘 알아……. 문제는 내 마음 속에 있었어. 네가 알고 있듯이 나……. 사랑하던 사람……. 죽었어……. 너와 처음 만나던 날…….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되던 날 이었어. …….나 사실 너한테서 그사람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었어……. 그럼 안되는 건데……. 미안해. …….나 그사람, 너처럼 전철에서 처음 만났어. 옛날엔 나, 몸이 약했었거든…….
씬 117. 몽타주. (편지 내용)
사람이 가득 찬 전철 안
고등학생의 그녀가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가 스르르 코피를 흘린다.
팔걸이 옆에 서 있던 그 남자(얼굴은 보여주지 않는다.)가 손수건을 꺼내준다.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는 그녀.
전철역 승강장
벤치에 앉아있는 그녀와 그 남자, 그녀가 손수건을 돌려준다.
그녀: (편지) 우린 그렇게 만났어. ……. 그 사람…….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줬어. 너처럼…….
석촌호수
그녀: 날 위해서 물속에 뛰어들 수 있어?
그 남자, 물로 뛰어든다. 좋아서 입이 벌어지는 그녀.
그 남자, 호수 속에서 그녀에게 물을 끼얹는다. 깔깔 웃으며 달아나는 그녀.
교실
여자 고등학교 교실
그 남자가 수업시간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그녀에게 장미 한 송이를 내밀어 준다.
여학생들과 선생님,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 그녀, 행복감에 젖어있다.
스쿼시 경기장
그 남자와 스쿼시를 하고 있는 그녀.
검도장
그녀와 그 남자, 검도를 하고 있다.
카페
멀리 보이는 옥상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남녀가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다.
석양빛을 받은 그녀와 그 남자, 그 환상적인 광경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산
등산을 하며 손을 잡아주는 그 남자.
나무아래
그녀, 무릎에 그 남자를 눕히고 강가를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 산들바람이 나뭇잎을 가볍게 흔들고 있다.
그녀: (편지) 우린 그 나무 아래서 미래를 약속했는데……. 근데 그 남자……. 죽고 말았어…….
강가
그녀와 그 남자의 母, 멀리서 배를 타고 뼛가루를 뿌리는 그 남자의 父를 바라보며 울고 있다.
그녀: (편지) 난 그 남자한테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나 너를 만나고 있는 동안에도 ……. 그 사람 어머니 가끔 만났어……. 그 사람 어머니……. 날 얼마나 위해주는지 몰라……. 가끔 좋은 남자 있다고 소개해 주시겠다는데……. 그럴 수 없잖아……. 나……. 너를 처음 만나던 날……. 그 나무 아래에 왔었다. 나……. 그 남자한테 기도했어……. 너무 괴로워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전철 안
전철에 치일 뻔한 그녀를 견우가 구해주는 장면 팔걸이 옆에 팔짱을 끼고 서있는 견우의 모습.
코피 흘리는 그녀를 바라보던 '그 남자'의 모습과 견우가 잠시 겹쳐진다.
그녀: 너를 만난 순간 난 생각했어……. 그 사람이 견우……. 널 소개해준 것이 아닐까 하고 ……. 근데 ……. 너를 만나면 만날수록 ……. 내 마음속에 있던 그 사람이 질투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어……. 네가 좋아지는 만큼 죽은 그 사람한테 죄책감을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난 ……. 네가 없는 동안, 그 사람을 나 혼자서 잊어보고 싶었어……. 그렇지 않고 너를 만나면 너한테도 잘못하는 거잖아, 그치? 만약 2년 후에도 내가 네 옆에 없다면 난 아직 용기가 없는 거야. 2년이 지나면 우린 어떻게 변해 있을까……. 마치……. 넌 미래에 살고 있고……. 난 과거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야……. 빨리 다시 만나서 네 편지 읽고 싶어…….
편지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견우.
견우, 나무와 강물을 바라보며 예전과 다른 느낌을 갖는다.
주변이 어두워져 가면서 나무와 견우가 실루엣으로 남아있다.
견우(내레이션): 저는 그날 이후, 시간만 나면 그 자리에 찾아가씀미다. 혹시 그녀가 와따가지 아나쓸까……. 올 때마다 타임캡슐을 열어봐씀미다.
DISSOLVE TO
씬 118. 나무아래.
견우가 다가와 돌들을 들치고 타임캡슐을 꺼내본다. 그녀의 편지와 견우의 편지가 변함없이 들어있다.
그녀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는 견우.
DISSOLVE
씬 119. 동. 나무아래.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 아래-
DISSOLVE-
눈이 쌓인 나무, 타임캡슐 자리의 돌무덤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DISSOLVE-
나무에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고 있다. (그 위에)
견우: 저는 가끔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해봅미다. 내가 왜 존재하는 것일까……. 난 정말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차라리 그녀가 과거의 추억 속에 살고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씬 120. 동. 나무아래.
다시 여름이 된 동산의 나무.
롱숏으로 보여지는 화면-
늙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다가가 돌무덤을 바라보다가 그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가까이 다가가면 견우가 늙은 것 같은 생김새의 노인이다.
멀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과 지나는 기차를 보고 있다.
얼굴에 보이는 세월의 주름.
그 노인 아래로 한 여자가 올라오고 있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노인.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면, 바로 그녀다.
가까이 다가와 나무에 기대서 강물을 바라보는 그녀.
노인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녀: 왜 자꾸만 그렇게 쳐다보세요?
노인: 응……. 너무 예뻐서……. 선녀가 올라오는 줄 알았어.
그녀: …….
노인: …….
그녀: 할아버지는 여기 자주 오세요?
노인: 가끔 오지……. 이 나무에 비밀이 있거든…….
그녀: 저도……. 이 나무 아래에 비밀이 있어요.
노인: ……. 그래?
그녀: 삼년 전에 남자친구하고 이 아래에 편지를 묻어놨어요. ……. 할아버지의 비밀은 뭐예요?
노인: ……. 그래서?
그녀: 묻어놓은 편지……. 작년에 만나서 꺼내 보기로 했었는데…….
노인: ……. 일 년이나 늦었네?
그녀: 네. ……. 올 수가 없었어요 ……. 2년은 긴 시간이 아니더라구요……. 전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어요. 그동안 ……. 바보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노인: 어떤 생각?
그녀: 우리가 만날 운명이라면…….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노인: 운명은 말이야……. 노력하는 사람한테는 우연이란 다리를 놓아주는 거야.
그녀: ……. (미소)
노인: …….나 사실은 이 아래에 묻힌 편지들을 봤어.
그녀: …….
노인: 이 나무에 비밀이 있다고 했지?
그녀: ……. 네.
노인: 잘 봐……. 예전에 그 나무하고 같은 나문가?
그녀, 나무를 찬찬히 훑어본다.
그녀: ……. 조금 변한 거 같지만 잘 모르겠어요.
노인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있지……. 그것처럼 죽은 나무와 산 나무가 있어.
그녀: …….
노인: 작년에 여기에 있던 나무는 벼락을 맞았어……. 두 쪽이 나서 죽었지……. 근데……. 그걸 가슴아파하던 젊은이가 있었어……. 올 봄에…….어디서 찾았는지 ……. 전에 있던 나무하고 똑같이 생긴 이 나무를 옮겨와서 심었지…….
그녀, 노인의 말을 들으며 눈물이 핑 돈다.
노인: 젊은이가 나무를 심고 있을 때……. 나한테 물었지……. 옛날 그 나무하고 똑같이 보이냐고……. 나무가 죽은 걸 알면 가슴 아파할 사람이 있다면서…….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해야 한다고 했어.
그녀: (글썽이며) 짜식!
노인, 일어나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그녀, 눈물을 글썽이며 나무를 바라보며 만져보다가 돌을 치워내고 땅을 파본다.
땅 속에서 드러나는 타임캡슐.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그녀.
안에서 두꺼비가 툭 튀어나간다.
깜짝 놀라는 그녀, 다시 캡슐 안을 보면 안에는 견우가 쓴 편지들로 가득차 있고, 그녀의 목걸이가 있다.
목걸이를 바라보는 그녀, 이어 편지들을 꺼내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때, 하늘로 UFO가 지나가고 있다.
놀라서 바라보는 그녀.
DISSOLVE TO
씬 121. 강가.
그녀,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힘껏 강물로 던진다.
물속으로 빠져서 가라앉는 목걸이.
씬 122. 기차 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하는 그녀.
전화: (여자소리)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결번이거나 사용이 중지 된 번호임미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유 코러 롱 넘버 오아 더 다이얼 넘버 이즈 나린 썰비스. 프리스 코러겐…….
그녀, 그 소리를 들으며 울음과 웃음이 섞여버려 감정을 잘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씬 123. 그 카페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그녀. 무심코 창밖을 바라본다.
석양을 배경으로 두 남녀가 손을 마주잡고 춤을 추는 모습이 보인다.
붉은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두 사람의 춤.
그들을 보며 활짝 웃고 있는 그녀.
씬 124. 지하철 역.
그녀가 지하철역에 서있고, 전철이 들어온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
이어 층계에서 뛰어오는 견우, 문이 닫히며 손이 낀다.
그녀는 뒤돌아 서있어서 견우를 보지 못하고-
문이 다시 살짝 열렸다 닫히자 견우, 포기하고 뒤로 물러선다.
전철이 출발하고, 문 밖의 견우가 멀어지고 있다.
씬 125. 고급 레스토랑.
그녀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온다.
전망이 좋은 자리에 혼자 앉아있는 초로의 여인, 그녀를 보더니 그윽한 미소를 띠며 일어선다.
'그 남자'의 母다.
그녀: 어머니!
그 남자의 母, 그녀를 덥석 껴안는다.
그녀: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건강하시죠?
그 남자의 母: 영국에 갔다 왔다고?
그녀: 예……. 일 년 반쯤 있었어요……. 그 사람 잊으려고 많이 애 썼어요.
그 남자의 母: (글썽이며) 그래……. 이제 마음 많이 편해?
그녀: 네 ……. 많이요…….
그 남자의 母: 정말인 거 같은데? 우리 애……. 하늘나라에서 섭섭해 하겠어?
그녀: 아녜요……. 더 좋아할 거예요.
그 남자의 母: 그래……. 그래……. 나도 그걸 얼마나 바랐는지 알지.
끄떡이는 그녀, 활짝 미소를 짓는다.
그때, 한 남자가 그녀의 옆자리로 뚜벅뚜벅 걸어와 선다.
견우: 고모! 여권 사진 찍고 있는데 전화를 하면 어떻게 해여?
그녀, 올려다보면 견우가 서있다.
그 남자의 母, 벌떡 일어서더니 견우의 볼을 잡고 비벼대더니 뽀뽀를 해댄다.
그 남자의 母: 이놈의 자식아! 이놈아 미꾸라지 같은 놈아! 이게 몇 년 만이냐? 응? 이놈아!
견우, 앉아있는 그녀를 뒤늦게 발견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눈물이 고이고 있는 그녀와 견우, 헛웃음도 나온다.
그 남자의 母: 내가 말도 없이 이렇게 불렀어. 견우라고……. 내 조카야……. 그 애하고 많이 닮았지? ……. 너 맘 고생할 때……. 몇 년 전부터 너한테 이놈 한 번 소개하려고 오라고 그랬더니,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 다니는 통에……. 너 부평에 자주 왔었다며? 그런데도 고모한테 한 번 안 들려?
그녀와 견우, 고모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마주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그 남자의 母: 한 번 사겨봐……. 이놈이라면 너 마음 편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맞아, (견우에게) 너무 영국에 간다고 그랬지? 얘는 벌써 갔다 왔으니까 물어보면 많이 도움이 될 거다, 아마.
견우: (글썽글썽) 이제……. 안가도 대여!
그 남자의 母: 왜……. (표정들을 보고) ……. 서로 아는 사이니?
고개를 끄떡이는 그녀,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견우,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고-
그 남자의 母: …….
그녀: (견우에게) 못 믿겠지만 ……. 나……. 미래인 만난 것 같아! ……. 바로 너의 미래…….
미소 짓는 견우와 갸우뚱거리는 고모.
카메라가 뒤로 돌아 탁자 아래를 비추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녀, 견우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의 손, 다시는 놓지 않을 듯 보인다.
그 위에 엔딩 타이틀이 떠오르며-
FADE OUT-
끝
웰컴 투 동막골
씬 1. 프롤로그.
F. I
화면 밝아지면 50년대 산골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담은 낡고 거친 흑백영상이 보여지기 시작한다.
이 영상과 함께 신비로운 음성의 아리아가(슬프도록 아름다운…….) 서서히 화면을 가득 메운다.
뛰고 뒹구는 아이들……. 껄걸 웃는 노인네들……. 한쪽에는 덩실덩실 춤추고 있는 여자 아이가 보이고…….
그런 모습들 위로 제작사……. 메인스탭의 자막들 생겨난다.
씬 2. 동막골 초원.
신비로운 아리아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입을 반쯤 벌린 채 배시시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연의(20세) 얼굴로 디졸브 된다.
머리에는 예쁜 들꽃도 한 송이 꽂혀있다.
카메라 점점 위로 빠지면 이연이 서 있던 곳이 물결치는 풀밭 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주변을 한가로이 노니는 나비 떼…….
이연, 뭔가를 봤는지 씨익 웃으며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순간! 이연을 덮치는 커다란 그림자.
갑자기……. 굉음을 내며 총알 같은 속도로 날아와 이연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P-47D 전투기.
인서트) 전투기 내부
겁에 질린 조종사…….
요동치는 계기판…….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전투기 내부시점.
위태롭게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다 초원에 처박히는 P-47D 전투기.
수풀과 바위 등을 휩쓸며 돌진하다 프로펠러가 떨어져 나와 화면을 덮친다.
측면으로 돌진하던 전투기는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고서야 멈춰 선다.
흙먼지로 화면이 어두워지고 어지럽던 소음도 잔잔해 진다. ……. 간헐적으로 들리는 무전음…….
여기에 서서히 생겨나는 타이틀……. 웰컴투 동막골
씬 3. 강원도 산간 골짜기.
험준한 산자락의 골짜기……. 멀리서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들…….
지친 발걸음으로 계곡을 따라 이동하는 인민군 부대원 10여명.
절반 이상이 부상자라 이동속도가 늦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부관, 어금니를 깨물고는 군관 앞으로 다가온다.
부관: (잔인한 어투) 중대장 동지……. 당의 지시대로 하지 않는 이유가 뭡네까?
부대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군관…….
검게 그을린 얼굴 왼쪽에 칼자국이 나 있는 차가운 느낌의 사내……. 군관 동치성(30대 중반)이다.
겁에 질린 부상자들과 부관을 번갈아 본다.
망설이다 힘겹게 권총을 꺼내든다.
치성: 처리하고 갈 테니 부상자 내려놓고 가라우…….
부상자들: 살려주시라요.
“제발 살려주시라요……. 중대장 동지…….”
부관: 뭐래 주저하십네까? 이건 당의 명령입네다!!
어린 부상자: (젖은 눈으로) 중대장 동지……. 데려가 주시라요…….
부관: (날카롭게 치성을 노려보며) 중대장 동지…….
다그치는 부관 때문에 갑자기 욱하는 것이 치미는 동치성.
치성: (부관의 뒷덜미를 잡고는) 뉘시깔 내리 깔라우……. 쌍통에 바람구멍 나기 전에.
치성의 기에 눌린 부관……. 차갑던 시선을 거둔다.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의식한 늙은 하사 장영희(40대 후반) 부상당한 팔의 붕대를 옷 속으로 슬며시 감춘다.
그 뒤에 서 있는 꼬질꼬질한 행색의 소년병 서택기(18세)……. 독 오른 눈빛으로 망설이는 치성을 보고 있다.
먼 곳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 매복한 국군이다.
첨예한 감정대립을 하고 있는 동치성 일행 쪽으로 겨눠지는 총구…….
타앙-! 하는 금속성 소리와 함께……. 목덜미가 뚫리며 쓰러지는 부관.
곧바로 쏟아져 들어오는 총탄……. 불을 뿜는 총구들.
“엎드려!!”
사방으로 흩어지며 어딘지 분간도 못한 채 총을 갈겨대는 인민군.
그러다 자신의 편을 맞추기도 하고……. 비 오듯 날아드는 총탄에 처참히 쓰러지는 인민군들.
두려움에 울부짖는 버려진 부상병……. 고개를 처박고 벌벌 떠는 장영희.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지르며 따발총을 마구 갈겨대는 서택기……. 택기를 향해 날아오는 수류탄…….
몸을 날려 택기를 끌어안고 뒹구는 동치성. 벗겨지는 군모…….
치성: (당황해서) 뒤로 빠져!! 후퇴해라!!!
거세게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는 국군……. 뒤도 안보고 도망치는 영희……. 칡줄에 묶인 총이 몸에 매달려 끌려간다.
몇 명 살아남은 인민군들이 흩어져 뛰기 시작하고 뒤 따라 쫓기 시작하는 국군.
바닥에 떨어진 동치성의 모자가 밟히며 나뒹군다.
씬 4. 깊은 산속 벼랑.
겨우 살아남은 인민군 넷……. 험한 산속으로 도망중이다.
모자를 쓰지 않은 군관 동치성……. 치욕스런 그의 표정.
계속해서 뒤로 쳐지는 늙은 하사 장영희…….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꼬나보는 서택기.
영희: (지친) 이런 험한 산길로 어찌 평양까지 갑네까…….
치성: 죽고 싶지 않으면 잔말 말고 따라 오라우…….
아차……. 하는 순간, 발을 헛디디며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병사1.
새파랗게 질리는 영희와 택기……. 치성을 본다.
고통스런 표정의 치성……. 험준한 산을 질린 표정으로 둘러본다.
막막한 절벽들…….
씬 5. 산 너머 갈대숲.
거친 숨소리와 함께 갈대숲을 빠르게 달리는 누군가의 발…….
기다란 갈대숲을 헤치며 뛰고 있다. 갈대 사이사이로 언뜻, 팔에 십자가 완장이 선명하게 보이고…….
겁에 질린 표정의 국군 위생병 문 상상(20대 초반) 이다.
뭔가에 걸렸는지 비명을 지르며 엉망으로 구른다.
그 소리에 놀라는 누군가의 눈동자(클로즈업) ……. 분열적으로 사방을 살피다 방아쇠에 걸고 있던 손가락의 힘이 빠진다. 카메라 위로 스윽 올라가면 턱에 괴고 있던 총구를 거둔다. 군복 깃에 소위 계급장이 보인다.
씬 6. 숲속.
깊은 산중에 들어서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는 문 상상.
철모를 벗어 내던지듯 바닥에 놓고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위생가방을 열더니 뭔가를 꺼낸다.
건빵이다……. 지금껏 긴장했던 표정이 풀리고 입 안 가득 건빵을 넣고 우드득 씹는다.
‘철컥’머리 뒤에서 소총이 장전되는 소리
헉!! 놀라며 먹던 행동을 멈추는 상상……. 힘겹게 뒤를 돌아보면…….
살기 띤 눈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국군 소위 표현철(20대 중반)
상상: (덜컥 겁먹고는)사……. 살려주세요……. 제가 도망친 게 아니거든요……. 막 부대로 가다가……. 그만……. 길을……. 길을 못찾아가지구……. 맞아요……. 길을 잊어버린 거 지……. 타……. 탈영이 아니거든요……. 제발 살려주세요……. 진짜……. 꼭 다시 돌아갈려 구 했거든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애처롭게 울부짖는 상상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던 현철…….
스르르 겨눴던 총을 거두고는 얼빠진 사람처럼 그냥 지나간다. 동공이 풀린 현철의 눈을 본 상상…….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는 저만치 가는 현철을 빤히 본다.
씬 7. 숲속/뱀 바위.
안개가 깔리고 수풀이 우거진 곳……. 널찍한 바위와 조그만 게 흐르는 냇물……. 하늘을 다 가릴 정도의 나무들…….
낡고 헤진 군화발이 화면으로 들어선다.
바짝 긴장한 표정의 인민군들……. 이 아늑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없는 현기증을 느낀다.
여기에 신비로운 음악 한 덩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턱턱 치며 주위를 한 번 휙 둘러보는 동치성……. 바위 옆에 풀썩 주저앉는다.
영희와 택기도 주변을 둘러보며 짐을 풀고 한숨을 돌린다.
영희: 여기가 도대체 어딥네까…….? 이거이 원……. 밑도 끝도 없이 들어와게지구…….
치성: 이 산만 넘으면 개활지가 보이지 않갔네……. 곧 평양에 들어 갈 테니 걱정 말 라우.
영희: 낙동강까지 밀구 내려갔던 우리가 와 이 지경입네 까? 경주 지나 영천까지 다시 밀렸을 때……. 소문 들었습네까……. 허리 끊어졌다 고……. 보급이니……. 지원 병력 다 끊긴 거 보면 소문만은 아닌 것 같습네다.
택기: (버럭) 다 헛소리요! 조금만 버티면 지원군 내려와 낙동강 건너고 인민의 세상이 될 테니 두고 보시라요!
영희: 그기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탄창을 확인한다……. 빈총이다)
총알도 다 떨어지고……. 수류탄 몇 개로 어찌 버티네!
택기: 열 발 넘어 있으면 수류탄 까고 열 발 안짝에 있으믄 백병전으로 하문 되 지……. 어쩐다고 우는소립네 까?
영희: 아새끼……. 딱 열 발에 걸쳐 있으믄 어쩔거네!!!?
택기: (한심하다는 듯) 한발을 뒤로 가든 한발을 앞으로 가문 되지 않소. 거 소문이 어쩌고 하는 소리 고마 작작 하시라요.
영희: 아새끼가 하사한테 말뽄새가 웬 고이가?
택기: 그저 나이 많다구서 달아준 하사 ……. 아무 때나 힘주지 마시라요.
영희: 뭐이 어드래?
굳은 표정으로 먼 곳을 보던 치성……. 주머니에서 여러 개의 총알을 꺼내 두 사람 앞에 던진다.
치성: 각자 총에 맞는 게 있는지 확인해서 장전하라우…….
영희: 아니……. 이거이…….?
치성, 말없이 자신의 권총 탄창을 확인한다. 남은 한발…….
영희와 택기……. 이리저리 총알을 맞춰본다. 택기는 찾아서 넣지만 영희는 맞는 게 없나보다.
울상이 되는 영희……. 물끄러미 보던 택기, 그 중에 하나 집더니만 한심하단 표정으로 영희에게 건넨다.
치성: 그 한발……. 아끼라우……. 꼭 필요할 때가 있을기야.
영희: 예?
치성: 전쟁터에서 가장 불행한 게 뭔지 아네? 손발 묶이는 거이지. 밧줄에 사지 묶여 질질 끌려가는 거이 가장 몹쓸 꼴이지……. 그렇게 될지 싶으면……. (이마에 총 대고) 땡기라우!
택기: 약해지지 마시라요!
치성: 약한 거이 아니야……. 현명한기야.
두려움에 서로를 보는 영희와 택기…….
택기…….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손수건 크기의 낡은 인공기를 꺼내 물끄러미 본다.
치성: 해 지면 이동할 테니 잠시 눈 좀 붙이라우……. (팔을 베고 눕는다)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간다. 서로 숨기려 하지만 패잔병의 불안함이 보인다.
씬 8. 근처 어느 산속.
숲속 누군가의 시선에…….
마르고 눈이 처져진 부락민 달수가 흥얼거리며 약초를 뜯어 망태기에 담고 있는 게 보인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달수……. 약초 하나를 슬쩍 떨어뜨리고는……. 집는 척 하며 막대기를 집어 들고 몸을 휙 돌리는데……. 순간, 뺨에 겨눠지는 총구. (보통의 경우 이 상황에서는 우뚝 멈추거나 손을 드는데……. 총을 잘 모르는 부락민……. 머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한다)
초췌해진 몰골의 상상이 겁먹은 표정으로 총을 겨누고 있고 그 뒤에는 동공이 풀린 현철이 우두커니 서 있다.
씬 9. 절벽 길.
밟고 지나간 자리에서 떨어진 돌멩이가 절벽 밑으로 끝없이 떨어진다.
수십 길 낭떠러지의 위태로운 절벽을 이동하는 세 사람……. 달수, 현철, 상상.
몸에 익은 솜씨로 절벽 길을 이동하는 달수…….
달수: 뭔 사람이 아는 체를 그리 해요? 낯짝에 막대기는 들이대고…….
상상: (절벽 밑을 보며) 지 ……. 진짜 여기로 가면 부락 같은 게 있긴 한 거예요?
달수: 그럼 없는 데로 데꾸가요?
상상: (혼잣말) 부대에 있을 때도 유격훈련 한번 안 받았는데……. 니미…….
달수: 여 보다 쉬운 길이 있긴 있는데, 걸루 갈래요? 내일 되야 들어가는데…….
상상: 계속……. 가시죠.
달수: 저이는 어디 아파요? 말도 없고…….
상상: 아……. 그게……. 요……. 낯을 많이 가려요……. 이해하세요.
달수: 근데 어쩌다 여까지 들어왔어요?
상상: 작전 중에 길을 잃었거든요……. 워낙 막중한 임무여놔서……. 헤헤……. 어쨌거나 하루만 있다 갈게요……. 전혀 피해주지 않고……. 국군알죠? 국군……. 같은편……. 뭐……. 인민군도 아니고 우린 피해주고 그런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달수: 싹 다 좋아할 기래요. 잘데 없으믄 우리 집도 있는데요 뭐.
상상: 감사합니다. (인사하다 절벽에 머리 부딪히고는……. 딴소리) 진짜 길 험하다.
달수: 편한 길로 갈래요? ……. 내일이믄 들어가는데?
상상: 아뇨.
달수: 근데……. 작전 중에가 뭐래요?
두 사람: …….
씬 10. 다시 인민군들이 있는 뱀 바위.
울창한 숲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어느덧 골아 떨어져 있는 인민군을 비추고 있다.
간혹 부는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이때……. 그들 앞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누군가…….
눈을 번쩍 뜬 인민군들 서로 쳐다보다가……. 후다닥 총을 집어 든다.
치성: 뭐야……. 지나간 게?
택기: 사……. 사람 같은데요.
영희: (잠이 덜 깬) 뭔데 그럽네까?
하는데……. 지나갔던 발소리 다시 커진다. 바짝 긴장한 채 총을 치켜드는 인민군.
그 앞에 헐떡이며 멈춰 서는 이연.
정적…….
대뜸 내뱉는 이연의 첫 마디.
이연: 뱀이 나와…….
셋 멀뚱…….
이연: 뱀이 나온다고……. 여가 뱀바우래.
치성: 이 간나는 뭐야?
영희: 좀 전에 이리로 휙 하니 지나간 기 님잔가?
이연: (헤 웃으며) 내 좀 빨라……. 난 참 이상해……. 숨도 안 맥히고……. 이래이래 팔을 빨리 휘저으면 ……. 다리도 빨라지고……. 다리가 빨라지면 팔은 더 빨라지고……. 땅이 뒤로 막 지나가고……. 난 너무 빨라…….
이연의 횡설수설에 당혹스런 인민군들…….
치성: 이런 썅!! 그게 무슨 소리야!!! 손이 그러는데……. 다리가 왜……. 빨라지고……. 땅 이……. 무슨 소리야 썅!!!
영희: (이연의 머리를 가리키며) ……. 군관동지……. 꽃 꼬봤습네다.
실실 웃는 이연을 보고 뭔가 느낀 게 있겠지…….
이연: (여전히 실실 웃으며) 여 누워있지 마……. 뱀에 깨물리면 마이 아파. 아주 독해…….
하고는 인사를 꾸뻑하고 그냥 간다. 그래도 좀 무서워 해줘야 되는 건데……. 당혹스런 인민군…….
셋
“꼼짝마!!!”
“움직이면 죽어!!”
“어딜가!!”
이연: (가다말고) 아직도 거 있나? 일루 나와.
이연……. 다시 휙 간다.
셋…….
“이런 썅!”
“에잇”
총을 하늘에 대고 일제히 방아쇠를 당긴다.
세발의 총성……. 메아리를 타고 간다.
총구에서 나간 마지막 한발을 느끼며 서로 마주보는 인민군……. 허하다.
이연: (약간 늦다) 뭘로 낸 소리라니? 희한하네…….
기가 차서 그냥 보고만 있는 인민군……. 그때,
이연: (뭔가 발견하고) 어!!
화들짝 놀라 양쪽으로 비켜서는 인민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이연.
이연: 파랭이 꽃이다……. (머리에 꽂으며) 이쁘나?
치성: (피가 거꾸로 솟는다. 수류탄을 빼들며) 썅! 간나 이거이 확 까서 뒤집어 놓갔어!!
택기: (치성을 말리며 이연에게 소리친다) 제발 가만히 좀 있수라요!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치성……. 적응도 안 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휙 가버리는 이연…….
뒤통수 맞은 듯 멍하게 서 있는 인민군……. 서로 자신의 총을 보다 약간 울상이 된다.
치성: (정신 차리고) 뭐였네……. 지금?
택기: 이런 산중에도 마을이 있나 봅네다.
영희: 그렇담……. 혹 괴뢰군 아새끼들도 있는 거 아닙네까?
치성: (신중하게) 여기 군대 없다. 총을 들이밀고 우악을 질러도 눈 하나 깜빡 안하는 거이……. 총을 처음 본기야. 군대 절대 없다. 부락으로 가자……. 가서 배도 좀 채우고……. 양식도 구하고……. 또 상황도 좀 알고 움직이자우.
영희: (주위를 한번 보고는) 일단은……. 뱀 나올지 모르니까 여길 뜬 다음에…….
그토록 근엄하던 치성, 뱀바위를 물끄러미 보다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기면…….
영희도 군장을 주섬주섬 챙기고는 자리를 뜬다.
택기: (우두커니 보다) 어디……. 가십네까?
영희: 여기……. 뱀 나온단 말 못 들었네…….
택기: 예??!! 아 ……. 우린 군인 아닙네까?
영희: 군인이라고 물리면 안 죽네……. 총알도 없는데……. 뱀 나왔다고 수류탄 까 던 질래? 군관동지도 가잖네.
치성: (저만치 가면서 근엄하게) ……. 뱀 무서워 가는 게 아이야!!
인민군 셋……. 걸어가면서…….
영희: 그나저나 군관동지……. 이제 남은 거라곤 수류탄밖엔 없는데……. 행여 포로가 될 상황이면……. 그땐 요놈을 까야 갔디요?
치성: (대답이 없이 앞만 보고 걷는다)…….
영희: 뭐……. 한 명만 까도 되갔구만요.
씬 11. 허수아비 길.
언덕 공제선을 넘어가는 시점…….
(소리) 상상: 근데요 매번 저런 길로 어떻게 다니세요?
(소리) 달수: 여간해서 배껕에 잘 안 나가요. 아픈 사람이 있어서……. 요 약초 캐러…….
이마의 땀을 훔치며 모습을 드러낸 세 사람.
현철과 상상……. 자신들 앞에 나타난 뭔가를 보고 눈이 휘동 그래진다.
그들의 시선으로 길 양옆 갈대밭에 수백 개의 허수아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장관을 이룬다.
상상: 이야……. 뭔 허수아비를 논밭도 아니고 길바닥에다 이렇게나 많이 세워놨데 요? 새떼가 무지 극성인가 보네. (허수아비를 자세히 드려다 보고는) 어라? 요것들 되게 웃긴다……. 무슨 허수아비가 죄 봇짐을 지고 있냐…….
달수: 여가 우리 조상님들 길 떠난 자리래요.
상상: 길을 떠나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 현철……. 바람에 흔들리는 허수아비……. 기괴한 느낌을 준다.
달수의 시선에 넘어진 허수아비가 보인다.
달수: 이런……. 쯧쯧쯧……. (허수아비를 세우며) 이래이……. 바람이 쉬 몰아 댕기면서 죄 자빠뜨리고……. 이래 정신이 없네……. 여기다 산짐승들도 먹을 기 없으니 요 허수아비 밑뚱을 다 파 묵고 지랄이래요.
상상: (불안한) 산짐승들이……. 나다녀요?
달수: 아유……. 이건 유도 아니래요……. 멧돼지라도 나와 봐요……. (그러다 현철을 보고 는) 근데 저이는 뭐 부애가 났어요?
상상: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앞장서 가는 달수의 눈치를 살피다 봇짐 속을 열어보는 상상……. 굵직한 통 옥수수가 들어있다.
슬쩍 꺼내려는데 달수가 돌아보면 얼른 손을 떼고 실없이 헤헤거린다.
달수: 길 떠나실 때 드실 양식이래요.
상상: 에이……. 허수아비가 어딜 떠난다고…….? (뭔가 떠올랐다) ……. 혹시……. 공동묘지…….?
후다닥 허수아비에서 손을 떼는 상상……. 찝찝한 듯 손을 흔들어 턴다.
아랑곳하지 않고 허수아비 행렬의 끝부분에 병풍처럼 우거진 나무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달수.
서로 마주보며 불안해하는 현철과 상상……. 조심스럽게 그 속으로 따라들어 간다.
씬 12. 처음으로 공개되는 동막골 전경.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는 카메라 서서히 드러나는 동막골 전경.
입이 떡 벌어지는 현철과 상상…….
나무들 사이로 아담하게 지어진 집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다.
떠들썩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부락민들과 뛰어다니며 깔깔거리던 아이들…….
현철과 상상을 보고 모두 멈춰 선다.
상상: 오…….! 이런 험한 산속에 진짜 부락이 있네.
달수: (씩 웃으며) 여가 우리 부락 동막골이래요.
상상: 동 ……. 막 ……. 골이요?
달수: 얘들처럼 막- 살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그 내막은 잘 몰라요……. 그 냥 옛날부터…….
상상: 막- 살아요? 와……. 집두 히안하게 생겼네……. (정자나무 보고) 오……. 저건 백 살도 넘었겠다.
눈이 휘동 그래져 걷는 현철과 상상에게 모여드는 부락민들,
처음 본 총이 신기한지 손을 대보는 꼬마들……. 신경 쓰이는 현철.
석용: 달수……. 이 사람들 누구나?
달수: (씩 웃어 보이며) 자구 갈기야.
달수 처: (저만치서 환한 얼굴로) 댕기 왔어요?
달수: (자랑하듯) 임자, 내가 데리고 온 손님이래.
연신 수군거리며 뒤 따르는 부락민들……. 이때 눈치 빠른 부락민 한명이 어디론가 뛰어간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현철…….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총으로 손이 간다.
상상: (현철에게 넌지시) 여기……. 괴뢰군 소굴은 아니겠죠?
현철: …….
씬 13. 촌장 집 마당.
진지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는 부락민…….
이 부락민답지 않게 동그란 안경을 쓰고. 머리도 단정하고……. 꽤 지식인처럼 보이는 김 선생이 낡은 영어 교과서 같은 걸 들고 평상에 눕혀져 있는 미국인 조종사 앞에 서 있다.
부상을 입어 꼼짝할 수 없는 조종사 옆에는 부락 꼬맹이들이 죽 앉아서 신기한 듯 보고 있다.
(꽤나 겁먹은 표정……. 그의 시선으로 보면 부락민이 무섭게 볼일 수도 있겠다)
마님: 신기하네 ……. 그러니까 저 책만 있으면 말이 된단 거 아닌가?
용봉 처: 김선상님이야 배운 게 많으니…….
김 선생: (더듬거리며) 하우……. 아……. 유?
조종사: 뭐? 지금 내 꼴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 지금 나하고 농담하는 거야?
김 선생, 조종사의 긴 답변에 좀 당황하기도 하고……. 모두의 시선도 의식되고…….
그 옆에선 꼬맹이들은 조종사를 꼬챙이로 쿡쿡 찌르며 장난치고 있고…….
촌장: (슬쩍 다가가) ……. 뭐가 잘 안 돼?
김 선생: 조금 이상한 게……. 여기도 나와 있듯이 (책을 보여주면…….)
촌장: 난 봐도 잘 모르지…….
김 선생: 아……. 예, 아무튼……. 제가 “하우……. 아……. 유”
하면
곧장 “파인……. 앤드 ……. 유”해야 이게 옳은 미국인들의 대화고 그렇게 나와야 또 제가…….
“아……. 임……. 파인”이래야 완성된 하나의 에……. 뭔가가 되는데……. 쟤는 아무래 도?
촌장: (조종사를 노려보다간.) 이 양반이 왜 하라는 대로 안하고……. (김 선생에게) 이거 시비 거는 거 아니래요?
김 선생: ……. 조 ……. 조금 더 해보지요…….
김 선생, 다시 책을 뒤적인다.
답답한 조종사……. 다시 입을 연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 그러다 자기를 괴롭히는 꼬맹이들에게 버럭 소리도 지르고 또다시 말을 이어가고……. 점점 긴장이 되서 땀이 나기 시작하는 김 선생…….
멀찍이 서 있는 뒤쪽 사람들……. 궁금하다.
마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래?
석용: (아는 체) 내 딱 보니깐요……. “뭘 좀……. 먹었냐?”한거같애……. 김선상님이……. 그러면 우째건 식전이요……. 라든가 방금했지요……. 라든가 뜨다 말았지요……. 뭐 이렇게라도 해야 되는 것인데……. 저 코쟁이 하는 걸 보이…….
“내가 감자를 먹든 감자를 캐든 니들이 뭔 상관이냐……. 사람 나고 감자났지 ……. 감자나고 사람났냐”
뭐 ……. 이렇게……. (사람들이 본다) 말하자면 이런다 이거지…….
석용 처: 아니……. 세 사람 분이나 다 쳐 묵고……. 와 저런 소릴 한대요?
할 말을 잃은 석용……. 이러고 있는 와중에…….
마당으로 뛰어 들어오는 부락민…….
“촌장님!! 달수행님이 사람을 데리구와요!!”
“산 아래 사람이래요…….”
“어이구 뭔 손님이 막 들어오네…….”
모두들 웅성거리며 촌장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달랑 조종사와 단 둘이 남은 김 선생……. 시선이 마주치면……. 마른침 한번 삼키고……. 그냥 책을 다시 본다……. 그냥 …….
씬 14. 마을 정자나무.
현철과 상상 주변을 신기한 듯 빙 둘러서는 부락민들…….
두 사람은 불안한 표정으로 부락민들을 살핀다.
옷매무새를 만지며 다가오는 촌장.
달수: (큰소리로 우쭐대며) 길을 잃었다지 뭐예요……. 자고 갈기래요.
현철: (긴장한 듯 주변을 살피며) 죄송합니다. 하루만 머물렀으면 합니다만…….
상상: 절대, 사고 안치고 ……. 있는지도 모르게 있다 갈게요. 진짜예요.
촌장: 귀한 걸음 했소.
달수: (현철과 상상에게) 촌장님이래요.
두 사람 인사한다. 현철은 거수경례……. 상상은 목례……. 다시 거수경례로 바꾸고…….
촌장: 뭐 좀 묵었어요?
씬 15. 촌장 집 마당.
촌장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부락민과 국군 두 사람…….
달수: 못 보던 사람이네……. 누구래요?
평상에 눕혀져있는 미군 조종사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총을 겨누는 현철.
상상: 연합군인데요…….
겨우 긴장이 풀린 현철과 상상……. 습관처럼 척 경례하는 현철……. 상상도 어정쩡하게 따라한다.
아군을 보자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으로 소리치는 조종사.
조종사: 헤이!! 국군 맞지? 난 연합군 해병대 소속 전투기 조종사 스미스 오브라이언이야!! 영어 할 줄 알아? 여기가 어디야? 내가 여기 얼마동안 있었던 거야……. 나 때문에 온 거지? 빨리 이 곳을 빠져 나가자!! 이 사람들 이상해!!! 내말 듣는 거야!!!
끝없이 말을 쏟아내는 미군 조종사……. 한 걸음 다가가 그의 말에 반응하는가 싶던 현철…….
순간 외면하고 촌장에게로 간다. 허해지는 미군 조종사…….
현철: (스미스를 가리키며) ……. 저……. 사람…….
촌장: 한 사흘 됐나……. 하늘에서 떨어졌다오.
상상: 하늘……. 요?
현철: (눈치를 살피며) 혹시……. 말입니다. 저희 말고 국군이 들어온 적 없었습니까?
촌장: ……. 국군?
상상: 꼭 국군이 아니더라도 (눈치를 살피며) 인민군이 라도요…….?
촌장과 부락민들 눈만 껌뻑거릴 뿐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달수: 타지 사람들 여 쳐다도 안 봐요. 여기 올라믄 숨만 차지 뭐. 잘 알잖아요.
씬 16. 전투기가 추락한 초원 석양이 지는.
추락한 정찰기 잔해를 뒤지고 있는 아이……. 동구다.(9세)
이것저것 구경하며 물건들을 꺼내고 신기하게 만져본다. 저 만치서 이연이 중얼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헬멧을 스윽 써보고는 헤 웃던 동구……. 다가오는 이연을 본다.
동구: 으때……. 멋지나?
이연: (헬멧을 쓰다듬으며) 수박 껍데기 뒤집어 쓴 거 같다.
동구: (한숨)……. 미친년한테 물어본 게 잘못이지…….
이연: 동구 니가 말하는 미친년에 내도 끼나?
동구: 우리 마을에 미친년이 뭐 여럿 있나……. 니……. 머리에 꽃 꽂았제?
이연: ……. 너 말고도 아는 사람 맞나? ……. 김선상님도 아나?
동구: 응.
이연……. 실망해서 긴 한숨…….
멀리서 동구와 이연을 훔쳐보는 시선…….
이연과 동구 앞에 나타나는 군화 발.
놀라는 동구……. 덩달아 쳐다보는 이연……. 그들 앞에 선 동치성 일행.
이연……. 표정이 밝아지고…….
씬 17. 촌장 집 마당 저녁.
옥수수를 앞에 놓고 어색한 표정으로 부락민을 둘러보는 현철과 상상…….
간혹 부락민과 눈이 마주치면 상상은 어정쩡한 웃음을 짓다가 선뜻……. 옥수수를 하나 집어 든다.
마님: 오느라고 을메나 힘이 들었소? 모재리면 마르해요. 좀 더 있어요.
상상: 아 ……. 예, ……. 같이 좀 드시지……. (하며 입에 물고 탈곡기 돌리듯 먹는다)
마님: 우린 때가 되면 묵지 뭐.
신기한 구경꺼리를 보듯 소곤거리는 부락민들……. 그러나 경계의 눈빛으로 보는 동구 모.
촌장: 뭐를 빤히 쳐다보나 회- 하이 가서 식솔들 좀 멕이야지.
아쉬운 얼굴들이지만 하나 둘 촌장 집 곡간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곡물을 바구니에 담아 나온다.
상상: (일러바치는 분위기) 촌장어른……. 저기……. 저 사람들…….
촌장: 니꺼 내꺼가 따로 없어요……. 저기에 모다 놓고 같이 묵고……. 일도 같이하고…….
험한 산골에서 살아가다보니 터득한 방식이래요.
달수: 남자는 감자 두개 옥시기 하나……. 애들은 감자 한개……. 배고프믄 두개……. 그래 묵어요.
몸집이 크고 사나운 인상의 응식, 곡간에서 나오며 현철과 상상을 못마땅하게 꼬나본다.
응식: 얼마 남지도 않은 양식 ……. 외지 사람들 다 퍼주고 ……. 이래이…….
상상주변에 죽 모여 있는 꼬맹이들……. 갑자기 장난 끼가 발동한 상상, 옆에 세워둔 소총을 꼬맹이들에게 척 겨누고는
“빵야 ……. 빵야……. 야, 쓰러져 죽어야지……. 히히히…….”
뭔지 모르는 꼬맹이들 헤헤 웃는다.
그 광경을 본 현철……. 찰나에 지나가는 플레쉬!!! 순간적으로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상상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며 부르르 떤다. 놀란 부락민들……. 우르르 달려들어 뜯어 말린다.
겨우 정신이 돌아온 현철……. 얼이 빠져서 “미……. 미안하다…….”
얼떨결에 당한 상상…….
“씨팔……. 저 인간 왜 저래?”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부락민들…….
“아……. 무슨 놀이나?”
수군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씬 18. 숲길 저녁.
이연과 동구를 앞장세우고 그 뒤를 인민군 셋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걷는다.
연신 생글거리는 이연……. 길이를 걷지 않고 풀밭 쪽으로 걷는다. 인민군 고개를 살살 흔든다.
이연의 머리 위에는 나비 떼가 날고 있다. (관객에게만 보이는 판타지)
이연: 나 없는 동안 뱀 안 깨물맀나?
인민군 셋: (말없이 걷기만 하고) …….
이연: 안 깨물맀나 보네……. 멀쩡한 걸 보니.
동구: 아는 사람이나?
맨 앞에 걷던 이연의 얼굴이 갑자기 확 밝아진다.
이연: (아주 큰소리로) 김선상님!!!
동그란 안경을 쓴 김 선생이 등잔불을 들고 영어책을 보며 어설픈 영어를 주절거리며 오고 있다.
인민군 셋 깜짝 놀라 숲으로 재빨리 숨는다.
반가운 표정으로 이연을 맞는 김 선생.
김 선생: 어이구……. 이게 누구야 이연양……. (진지하게) 오늘도 꽃 많이 꽂았군요…….!
말하다 말고 사색이 되어 손을 번쩍 드는 김 선생…….
카메라 빠지면 김 선생을 포위하고 있는 인민군.
씬 19. 개울이 흐르는 부락 어귀 저녁.
졸졸졸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개울가를 몇 명의 실루엣이 지나고 있다.
김 선생 손들고 동구와 이연은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간다.
총을 겨눈 채 심각한 얼굴로 뒤따르는 인민군.
순간……. 인민군……. 걸음을 멈춘다. 그들 앞에 나타난 아이들 서 너명.
(컷)
손들고 제일 앞에선 김 선생……. 그리고 아이들……. 그 뒤에 인민군.
아이들과 그 사이에 겅중 큰 이연이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인민군들……. 혼란스럽다.
택기: 간나 새끼들…….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하라우…….
아이들 노래를 멈춘다.
동구: 그러게……. 크게 부르지 말랬잖아……. 저 형아가 부애가 많이 났어.
석양이 지는 들길로 올망졸망 가는 풍경이 예쁘다.
작은 소리로 노래하는 아이들…….
“시끄럽다 돌대가리 새끼들”
“이것도 커요? 젤로 작게 부르는 건데…….”
“뭔 노래가 끝이 없네?”
“김선상님은 왜 손들고 걸어요? 힘들게…….”
씬 20. 촌장 집 부엌.
아낙들이 부엌에서 지짐이 등 요리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다.
아낙1: 으째 묵기를 이래 많이 묵어요?
마님: 힘들었겄지……. 여 들어오기가 어디 싶나.
아낙2: 우리 부락에 뭔 좋은 일 있을라나……. 산 아래 사람이 게 모이고…….
동구 모: (못마땅한 듯) 그기 좋은 일인지 우째 아나?
씬 21. 촌장 집 마당.
부락민들이 잔뜩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상상을 주시하고 있다.
달수: 전쟁이요? 진짜 전쟁이 났다 말이래요?
촌장: 아니……. 어데서 쳐들어 온 거래? 외놈이나……. 떼놈이나…….?
상상: 그게요……. 어디서 쳐들어 온 게 아니고……. 설명하기 힘드네……. 그러니까 우리 국군하고 인민군 괴뢰들 하고 싸우는 거죠.
부락민들 무슨 말인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달수 처: (스미스 방을 가리키며) 그럼 저 이는 누구 편이래요?
달수: 아……. 이짝 편이니까 딱 보고 아는 척 하지!
달수 처: 그라믄……. 2대 1……. 이 사람들 치사하네.
상상: 그게요……. 그렇게 보시면 안 되고요…….
현철: (저만치 앉아 있다가 상상의 말을 자르며) 저희는 내일 바로 떠나겠습니다.
촌장: 뭐이 그리 급해요……. 올 겨울 여서 나고 가시지…….
상상: (눈치를 보며) 그……. 그래요……. 당분간 여기 있죠?
그때……. 멀리부터 노래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다.
달수: 애들이네…….
달수 처: 어메? 왜 이리들 다 온데? 집에 안가고?
촌장: (환해지는 얼굴로) 어……. 때마침 김선상이 오시네…….
두 손을 번쩍 들고 잔뜩 우거지상이 된 채 마당에 들어선 김 선생……. 엉거주춤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촌장: (현철을 소개하듯) 김선상……. 서로 인사들 하게……. 배컽에서 손님이 오셨어.
김 선생: (울먹이며) 뒤에도 손님이 왔걸랑요…….
김 선생이 몸을 돌리자 등잔불에 스윽 어둠이 거치면……. 아이들 사이에 겅중하게 선 인민군이 보인다.
잠시 멍하니 서로 보고만 있다가…….
순간 눈이 휘동 그래져 잽싸게 총을 들어 겨누는 현철.
군화를 벗고 마루에 앉았던 상상은 양말바람으로 튀어 내려와 다급하게 총을 든다.
인민군 역시, 생각지도 못한 국군을 발견하고 놀라서 총을 겨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핏발선 눈을 부릅뜨고 살벌한 말들을 토해내며 서로를 위협하는 양측 군인들.
“총 내려놔!!!”
“움직이지 말앗!!!”
“다 죽여 버린다!! 빨리 총버려”
“입 닥치고 엎드리지 못하간!!!”
“씨팔 총버려!!!”
“빨갱이 새끼들 온몸을 벌집을 만들 테다!”
“이 쌍간나새끼들 항복하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말한다!!! 무기 버리고 손들어!!!”
“이 백당 놈의 새끼들 다 쏴버리고 말테다! 죽지 안 갔으면 총놓으라!!”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진 양측 군인들, 상대를 위협할 거친 말들을 계속 쏟아낸다.
양쪽에서 윽박지르다 보니 김 선생을 비롯한 부락민들은 마당에 놓인 평상 위로 올라가게 되고…….
서로 죽일 듯이 악악대는 양쪽의 군인들을 내려다보며 당혹스러워 하는 부락민들.
부락민을 방패삼아 적을 위협하는 양측 군인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총 버리고 손들어”
“하 ……. 저 간나새끼 지금 나 노려보는 거네!!! 뉘시깔 꽉! 뽑아 버린다. 썅!!”
“개새끼 널 제일먼저 쏴버리겠다!!! 특히 너 배나온 놈 조심해라 알았냐!!”
씬 21~1. 조종사가 누워있는 방.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밖이 궁금한 조종사, 부상당한 몸을 간신히 움직여 머리로 문을 밀어낸다.
겨우 열려진 틈으로 밖을 내다본다.
“저건 또 뭐하는 짓들이지?”
평상 위에 부락민들이 죽 올라서 있는 이상한 행동을 보며 머리를 갸웃거리는 조종사.
다시 마당
부락민들 다리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적군의 모습들……. 싸늘한 기운이 흐르고…….
영희: (겁에 질린 투로) 군관동지……. 군인 없다고 왔는데 이거이 뭡네까?
택기: 열 발 안짝에 있습네다……. 우린 셋이고 저긴 둘이고……. 확 까 죽입시다!!
치성: 서택기, 그냥 내 뒤에 있으라우…….
영희: 아새끼……. 촐랑거리며 일 만들지 말고 가만 좀 있수라…….
상상: 수적 우리가 밀리는데 어떡해요? 그러게……. 그냥 지나쳐 가자니까……. 왜 여기까지 와가지구……. 씨바……. 난 되는 게 없어……. 니미…….
현철: (무섭게 인민군을 노려보다 소리 지른다) 야-!!
인민군 셋……. 침묵…….
마을 사람들……. 인민군과 국군을 번갈아 보다가…….
석용: (인민군들에게) 안 들려요? 부르는 거 같은데…….
석용 처: (현철에게) 우리한테 말해요 전달해 줄 테니…….
치성: 와?……. 방아쇠에 손가락 집어넣었으면 땡겨야지……. 다른 용무 있네?
영희: (속으로) 군관동지……. 거 괜히 세게 나가지 마시라요……. 우린 총알도 없는 데…….
현철: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제대로 한번 붙자!!
상상: 뭐하자는 거예요? 미쳤어요……. 숫적으로 밀린다니까…….
현철: 죄 없는 부락 사람들 피해주지 말고 일단 나가자…….
달수: 우리 때문이면 괜찮아요…….
촌장: (지긋이) 달수야…….
치성……. 고민하다 이를 악물고 수류탄을 빼든다.
치성: 내 말 잘 들으라우……. 괴뢰군 아새끼나 부락 인민이나 조금만 허튼짓 하면
그길로 몽땅 죽는 기야……. 지금 한 말 허투로 듣지 마라우!!
영희와 택기도 약간 놀라다가……. 옆으로 총을 집어 던지고 모두 수류탄을 꺼내든다.
부락민들 치성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저 수군거리고만 있다.
치성: 뭐 이런 것 들이……. 말기를 못 알아듣고……. (버럭) 전체 손 올 리라우!!
부락민들 서로 눈치를 보다 하나둘……. 손 올린다……. 한쪽 손만……. 왼손을 드는 사람……. 오른쪽 손을 드는 사람…….
현철의 소총 가늠자로 보이는 흥분한 치성의 얼굴……. 옆으로 팬하면 손에 들린 수류탄이 보인다.
무슨 이유에선지 불안한 표정이 되는 현철…….
이때, 밖에서 용봉이 뛰어 들어온다.
용봉: 촌장님!!
일제히 용봉을 향해 총과 수류탄을 겨누는 군인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잠시 멍하게 서있는데…….
부락민 모두 거 섰지 말고 얼른 일리 올라와. 이 사람들 부애가 마이 났어.
치성: 올라 가라우.
택기: 썅!! 빨리 올라가!!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평상위로 올라서는 용봉.
촌장: 어째 이리 늦었냐?
용봉: 벌통 좀 보고 오느라고요……. 그보다 난리 났어요!
달수 처: 용봉 아제……. 손들고 얘기하래요…….
어색하게 손 하나 드는 용봉…….
“아……. 예,…….”
용봉: 실천 위 감자밭 있잖아요……. 새로 심군데……. 그 밭 초입부터 멧돼지가 길을 내버렸어요!! 길 크기를 보니 그기 한두마리가 아인 거 같애요.
부락민들, 그 말에 모두 경악한다.
마님: (한숨) 어째 거기다 길을 냈데…….
응식: 재작년에도 옥시기 밭을 헤집고 돌아댕겨서 겨울 한 달을 굶었는데……. 이래 이…….
촌장: (아주 근심스럽게) 이거……. 큰일이구만…….
석용: 감자나 캐거들랑 그러지……. 천식아 너 좋아하는 감자 이제 없다.
아쉬워하는 꼬마 천식……. 사람들 모두 한숨……. 휴-
군인들은 안중에도 없고 모두들 멧돼지 문제로 걱정이 태산이다.
치성: 이보라우! (수류탄 치켜들며) 이거이 안보이나? 까딱하면 다 죽을 판에……. 그깟 돼지길이 뭐이 걱정이네……. (여전히 반응은 없고) 이놈 까 던지면 이 마당에 시체길 생긴다!!
버럭 겁을 줘도 심각하게 논의를 하는 건지……. 수군수군……. 시끄럽다.
영희: (혼란스러운) 이 부락……. 뭐이가 좀……. 이상하지 않습네까?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부상당한 상태의 스미스가 마루로 쏟아져 처박힌다.
깜짝 놀란 인민군들……. 일제히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수류탄을 치켜든다.
치성: 썅, 저건 뭐야?
택기: 야……. 양키 놈인데요. 저것이 와 여기에…….
영희: 으……. 3대 3…….
치성: 몰골을 보니 한명으로 치기엔 턱없다……. 절대 기죽지 말라우!
이 때……. 쾅 하며 다른 방문 하나가 열린다……. 또다시 일제히 그곳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누는 군인들…….
구부정한 허리를 힘겹게 펴며 기지개를 하고 섰는 아흔 살은 족히 돼 보이는 노모.
영희: 저건 또 웬 고이가?
노모: (그 앞을 지나며 중얼거린다) 소래기를 질러대서 잠을 잘 수가 있나……. 늙은 것이 잠 좀 자는 게 그리 못마땅하나……. 썩을 놈의 종재들……. 쯧쯧쯔……. 외지인들을 발견하고는) 뭐이가 이렇게나 많이 께 들어왔나? 뭔 일이 있나?
촌장: 어머니……. 일루 오세요……. (노모, 대꾸 없이 어디론가 간다)
평상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걸 위 아래로 훑어보는 노모…….
노모: 지랄하구……. 기껏 닦아 놨더니 거 왜 신발을 신고 올라가 있나? 뱀이 나왔 나?
치성: 어디 가는 거야? 이보라 ……. 노깔……. 꼼짝말라우!
노모: (가다말고 치성을 돌아본다) 꼼짝 안하믄……. 여다 똥을 싸나? 싸지 뭐…….! 동네 사람들이요……. 팔십묵고 배컽에다 똥을 다 싸요!
당황한 치성……. 촌장을 본다.
촌장: 우리……. 어머니…….
노모: 여다 싸 까?
치성: 가시라.
촌장: 어머니……. 얼른 댕기와요. 진짜로 싸요.
노모: (걸어가는 뒷모습) 뭔 똥을 허락을 받고 싸나……. 아침마다 일어나믄 똥을 싸요! 똥을 싸도 돼요? 물어보고 싸나……. 이래이…….
중얼거리며 뒷간으로 가는 노모를 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치성.
대청마루에 앉아 구경하던 이연……. 뭐가 웃긴지 히히히……. 웃는다.
촌장: 이연아……. (웃음을 멈추는 이연)
냉랭한 긴장감이 노모의 뜻밖의 등장으로 풀어지고…….
다시 감자밭을 망친 멧돼지 얘기로 웅성거리는 부락민. 평상시 아는 척을 잘하는 석용……. 멧돼지 퇴치법에 대해 장황하게 교육을 한다(?)
치성: (짜증난) 입 다물라우…….
소리를 지르면 그때만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소란스러워 진다.
평상위의 부락민들로 인해 서로를 자세히 볼 수도 없고……. 시끄럽고……. 점점 예민해 지는 군인들.
치성: 전체다 앉으라우! 내말 안들리네? 빨리 앉아!!
엉거주춤 그 자리에 앉는 부락민들…….
서있을 때보다 전체 덩어리가 커지면서 가장자리에 있던 부락민 몇몇은 평상 밑으로 떨어진다.
민망한 듯 헤 웃고는 평상에 엉덩이를 걸치는 쌍둥이 할아버지.
처음으로 상대편을 정확하게 보게 되는 군인들……. 더욱 살벌한 분위기가 된다.
뒷간에 갔다 돌아온 노모, 군인들……. 긴장해서 쳐다보면 한쪽 코를 짚고 힘차게 팽- 풀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어이없는 군인들…….
밤이 깊어진다……. 부엉이도 울고……. 졸다가 평상에서 떨어지는 부락민……. 간혹 코를 고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군인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총과 수류탄을 든 채 상대를 노려보며 대치중 이다.
씬 22. 동막골 전경 새벽.
안개 낀 동막골의 새벽은 동양화를 보듯 신비롭다.
씬 23. 촌장 집 마당 아침. (대치 2일째)
닭이 울고…….
“간나새끼 지금 나 노려보는 거네!!! 뉘시깔 꽉! 뽑아 버린다 썅!!”
“너 배나온 놈 특히 조심해라”
아이들은 막대기를 들고 군인들 흉내를 내고 있다.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국군과 인민군…….
결린 어깨를 톡톡치는 영희. 양말이 반쯤 벗겨진 채 저린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상상.
평상에서 자던 동구(9세)가 일어나 내려온다.
영희: 뭐이가?
동구: 뒷간요…….
택기: 움직이지 마랏!!
촌장: 바지에 쌀라……. 얼른 댕겨와. (하고는 인민군들을 보며 웃어 보인다)
인민군……. 할 말이 없다. 동구가 뒷간 가는 걸 물끄러미 보던 용봉도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선다.
현철: 그냥, 앉아계세요!! 저 놈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용봉: (전혀 상관없이) 내 금새 다녀 올테니……. 꼼짝 말고 여 있어요?
상상: 니미……. 이건 뭐……. 우리가 인질이잖아?
밤을 꼬박 샌……. 군인들, 크게 하품을 하는 영희……. 하품이 옮았는지 상상도 쩍-
스미스는 아예 처박힌 채 자고 있다.
마루 밑의 누렁이도 입이 찢어져라 하품한다. 이때…….
촌장: (당황하며) 어머니……. 뭐할라고요?
마님: 어머님…….
달수: 큰 마님…….
작은 바가지에 물을 떠서 나오는 노모……. 군인들 뭐지? 하고 보는데, 다가와 치성앞에 선다.
노모: 몰골이 깨재재 해가지고 까마귀가 형님요 할기래.
또 뭔 짓을 하려는 거지 하는 심정으로 뒤로 물러나는 치성……. 지난 밤 기억도 있고…….
얼굴을 찰싹 치며 머리를 들이 대라고 손짓한다.
영희: 어드렇게 난처해질지 모르니 그냥 대 주시라요.
쭈뼛거리고 있는 치성의 얼굴을 쓱 끌고 와 씻겨주기 시작하는 노모……. 그러면서도 계속 중얼거린다.
노모: 날이 트는데 어째 씻을 줄들을 몰라……. 밤새 으르렁대고 소래기 질러대 고……. 왜이지랄이래 ……. 그래하믄……. 밥이 나오나……. 옥시기가 나오나? 망할놈의 종재들……. 에구 쯧쯧쯔…….
부락민에게 적대적이었던 인민군들……. 노모로 인해 격한 감정이 봄눈 녹듯 살짝 풀린다.
어색해하는 택기를 씻기고 나면……. 영희는 알아 얼굴을 갖다 댄다.
이번엔 현철에게 다가가는 노모…….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현철……. 강하게 제지한다.
현철: 할머니, 잠깐요!!!
현철의 강한 제지에 잠시 누그러지는 듯하던 분위기가 다시 냉기가 흐른다.
모두 현철을 주시한다. 강하게 나오는 현철을 물끄러미 보는 노모…….
현철: 물 갈아서요! 한 바가지로 지금 몇 명쨉니까!!
씬 23~1. 촌장 집 마당. (시간경과)
대청마루에 앉아 옥수수를 먹고 있는 부락민들……. 부러운 듯 바라보는 지친 군인들.
씬 23~2. 촌장 집 마당. (시간경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군인들 (관객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귀에서 윙-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귀를 턱턱 치고 머리를 흔든다. 반쯤 얼이 빠진 모습의 군인들…….
이때……. 어디선가 강하게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놀란 군인들……. 정신이 번쩍 들어 사방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