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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형제복지원사건특별법 입법 청원 기자회견 모습. 이후 국회에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지난 6월, 상임위 배정이 보건복지부로 가게 되자 대책위는 법안을 철회하고 수정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
▲ 아시아인권위원회 바실 전 대표가 형제복지원에 관해 인터뷰하는 모습 |
이 사건은 1987년 1월 한 검사가 산 속에서 어떤 사람들의 감시에 의해 강제노역을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이상하다’는 생각 끝에 은밀한(?) 수사로 시작되었다. 때마침 구타로 1명이 사망하고 35명이 집단탈출 하게 되는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인근 원장’은 2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정부보조금 횡령 등만 기소되었고 ‘특수감금죄’ 등은 해당되지 않았다. 한국의 사법부는 이를 ‘국가정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복지실현’이란 명분으로 ‘부랑인’이라 규정된 사람들을 강제 감금하고 관리감독하지 않은 그 모든 인권유린 상황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986년 전체 수용자 3천975명 중 경찰에 의해 수용된 숫자가 3천117명, 구청 공무원에 의해 잡혀온 사람이 253명으로 약 84.7%가 국가에 의해 신체적 자유를 침해당했다. 또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513명이 사망했는데, 1986년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된 구타사망의 당사자의 사망진단서에 ‘구타’가 아닌 ‘심부전증’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수많은 죽음의 사인에 대해 진실을 밝혀낼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이는 최근 사망자 유가족의 증언에서도 드러났다. 그의 형은 청각장애인이었고 두 번이나 잡혀 들어갔는데, 두 번째 들어간 지 3일 만에 죽었다고 증언했다. 그의 시신은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고 했다. 하지만 ‘사망자 명부’의 사인에는 ‘심부전증, 정신쇠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해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형제복지원’에 끌려갔기 때문에 실종되었고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가 하는 일에 어떻게 문제제기 하냐”며 사인을 밝히는 일을 포기했다고 했다. 부랑인 수용정책이 국가의 중대한 정책임을 알았던 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과정에서 청와대, 부산시장, 내부부장관, 안기부 등 국가 권력은 담당 검사에게 수사중단을 지시했다. 온갖 고문으로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정부 관료들과의 유착관계 혹은 정부정책의 위법성 등에 대해서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반면, 시민들은 이 사건을 국가의 위탁을 받은 한 개인이 저지른 비리로 인식했다. 강제 수용이 가능했던 국가정책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문제제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아시아법률자원센터와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가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서면진술서 내용과 지난 6월 19일 회의장에서 아시아법률자원센터가 구두발언한 내용 |
26년 만에 힘겹게 살아남은 한 생존자로 인해 이 형제복지원 사건은 다시 한국 사회 이슈가 되었다. [살아남은 아이]란 책이 출판되었고, 21개의 시민・인권단체들이 모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약 200여 명의 생존자들이 용기를 내어 말하기 시작했고, 주체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국가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은 다양한 접근의 기획보도를 하고 있으며, 국회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여당과 박근혜 정권은 생존자들의 고통어린 목소리를 외면하며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발의에 여당 의원은 단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안전행정부가 국회에 이 법안을 논의할 수 있는 상임위를 ‘안전행정위’가 아닌 ‘보건복지위’로 가야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이는 진상 규명을 하지 않고 피해자가 나타나면 그저 경제적인 지원 몇 푼 하겠다는, 또다시 사건의 의미를 축소, 진실을 왜곡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1975년 국가가 만든 [내무부훈령 410호]에 의해 국가 경찰과 공무원에 의해 가난하고 힘없는 시민의 신체적 자유를 억압당하고 죽임까지 당한 ‘국가범죄’, ‘국가폭력’이란 점이다. 생존자들과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그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는 이를 위한 법 제정 등 책임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일 국가가 나서 법 제정을 통해 진실을 규명한다면, 당시 존재했던 다른 지역의 수용소의 인권유린도 함께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올바른 과거 청산과 사죄로 한국 사회에서 상식이 되어 현재도 이어져오고 있는 ‘시설수용정책’을 지역사회 자립 정책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가난과 장애 등을 이유로 신체를 구속당하고, 집단생활과 관리체계의 이유를 들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다. 이는 시설을 운영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갖고 있는 시설수용 정책에서 기인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이 급속한 경제성장 등으로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인 수용소 정책은 명백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생존자들의 고통어린 외침에 경청하고 반성과 인정으로 인권을 회복해 가야 한다.
※편집자 주
이 글은 형제복지원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아시아인권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서면진술서다. 이 내용은 유엔 산하 각 나라에 보고되었고, 이로써 국제사회가 한국의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게 됐으며, 한국 정부에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