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은 짧고 깊어지는 아쉬움
점점 가물거리는 촛불처럼
힘을 잃어가는 엄마
그저 차려드리는 밥만 드시고
냉장고 문도 안 여는 엄마
엄마가 손을 흔들며 뒤돌아보고
몇 발짝 걷다 또 돌아본다
갈 수 있을 때 안 가면 후회될 것 같아
나섰던 여행길 끝에
아쉬운 연인의 귀가길 같은 이별이 있다
늦은 밤 콜택시도 부르지 않고
찬비가 젖은 마음을 더 흠뻑 적신다
‘여기까지’
내 통곡의 벽 같은 한계선은 너무 차갑고도 어둡다
옹이가 더 깊이 살 속을 파고드는 걸
밤새 지켜본다
벽장 속의 바이올린
선생님의 A선 바이올린 울림에
귀가 멈추어 섰다
수많은 연주곡 속을 헤엄치고 싶었다
나는 작은 틈 속에 쪼그려 앉아
숨 한 번 토해내지 못한 설움안고
마주 앉은 벽에 악보를 그려 본다
셋방살이는 그런 것이었다
규제 많은 법률 같이
소리 내어 울 수 없게 했다
말의 등에 업혀서
어미 소 울음 토하는 낮은 음에서
아기 새 노래하는 높은 음으로
넘나들며 소나무 숲 헤치며 푸르게 춤추고 싶던
샤갈의 그림 속을
날고 싶던 말
벽장 깊은 곳에서 기다림을
재우고 있다
가신 그 꽃 위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봄은
자꾸 설운 꽃을 피웠습니다
좋아하시던 술잔에 꽃잎 띄우고
할미꽃 함께 무릎을 꿇습니다
기나긴 객지생활 끝에 귀향하신 아버지
늙음의 친구라던 병마들이 먼저 마중 나왔습니다
아버지께 차마 하지 못한 말
장미 한 송이 향기로 대신했습니다
꽃은 시들었고
아버지의 계절이 뻐꾸기처럼 떠났어도
찬바람 서성일 때
문득 아버지 미소가
여전히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가뭄
1.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들여도
오후의 따가운 햇살에 나무들이 잎을 들기 힘겨워하고
뚫새김 하던 벌레들도 상추 잎 양산 그늘에 숨어있다
산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허기져 허리 꼬부라들고 힘없이 축 늘어져
생기 잃은 아프리카 아기눈동자를 닮았고
풀들이 누워 사그라진 산자락
푸석푸석한 맨살 핏기 없는 할머니 얼굴 같다
2.
누군가 또 고독사 했다는
뉴스가 되감기한 녹음처럼 흘러나온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
정마저 끊긴 물줄기 같아
다른 곳에서는 밀치고 밀리면서도
살 냄새를 나누고 있을 때
벌집 같은 회색 벽 단칸방들에서는
수인처럼 살다
바싹 마른 풀처럼 스러져 가도
누구 하나
비처럼 눈물 뿌려주는 이 없으니
3.
독거를 부추기는 사회
남편은 객지에
아들은 열사의 땅으로
딸도 이역만리로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가족들 사이 사랑이 말라 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각자의 꼭짓점을 짓기 바쁜 생활
드문드문 풍문처럼 들려오는 소식도
단비처럼 반갑다
더듬이를 가진 간이역
아직도 있을까
수십 년 벽을 넘어서도
살아남아 있을까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작은 읍을 지나다
청춘의 덫처럼 걸려있던
그 간판을 향해
당연한 절차처럼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저 초라한 역사를 가진 정거장이었고
차멀미 나는 버스대신
가야 할 곳으로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한 모퉁이이었을 뿐
어느 마을이던가
시내버스 종점에서 이어지는 긴 다리를 터벅터벅 건너가
기차역까지 가는 길가
노쇠한 할멈 같은 초라한 다방이 있었고
기차 출발시간까지
무작정 시간은 쉬고 있었다
한 남학생이 학교 운동장 가 소나무 아래로 찾아와
참 어색하기 그지없는
복선 같은 웃음이
오고 간 후로
방학이면 그 다방이 은밀한
접선 장소역할을 자임했다
사소한 사건이 절정을 만들기 마련이고
하강곡선은 가파른 대미를
아픈 심장으로
남기기 마련인가
서울에서의 짧고 음습한 유랑에 온점을 찍고 싶어
아버지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 후로 나는 이곳의 붙박이로 살지만
가끔씩 바람처럼 내 안을 쓸며
지나가기도 한다
오늘처럼 뜻밖의 귀향 같은
마주침은
깊은 그림자를 거느린다
주소: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667번길 25-11(봉명2동 673번지)
성명: 김정옥
생년월일: 1959.1.20
전화: 043-263-9872
휴대전화: 010-5437-9872
email: jeong963@hanmail.net
* 청주시 1인 1책 쓰기 참여 시집 출간
시집 1.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2012
시집 2. 하! 하! 하! 2013
시집 3. 뭐라구 2014
시집 4. 함께 걷는 이길 2015
* 한겨례경제연구소 주최 2009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공모전 장려상
* 2016 (사)환경실천연합회 주최 제 15회 국제 지구사랑 작품 공모전
시 부문 가작
* 2017 (사)환경실천연합회 주최 제 15회 국제 지구사랑 작품 공모전
시 부문 주거복지연대 이사장상
* 창 시창작반 창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