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영 시집
2023년 1월 2일 월요일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든지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는 성미영 시인의 첫시집 <북에 새기다> 라는 시집을 읽었다. 시인은 시들이 높이를 지향하지 않고 넓이로 펼쳐지는 것을 지향하는 것, 다양한 서술방식과 사유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경(詩經)> 에 따르면 서정시의 근본은 주관적 화자의 정서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사유의 방식으로 풀어쓰는 것이라고 할 수밌다. 나를 울린 시를 몇 편을 소개한다
* 서대단상
눈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이유로 납작 엎드려 지내야 했
던 시절이 있었다. 옳고 그름의 가치가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세월이었다. 하얀 배를 드러내며 죽음으로 경계를 지우려는
이들, 뒤를 이으려 물풀 사이로 모래 속으로 몸을 숨기며 떠돌
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마냥 정처없이 흘러다녔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땅끝까지 흘러왔다. 눈이
쏠렸다는 이유로 이곳에서는 몇 세대 전 붉은 물결로 떠나간
이들 많았다. 장작더미처럼 켜켜이 쌓여 화염 속으로 사라지고
조기꾸러미 줄줄이 묶여 바닷물로 수장되었다. 젖은
아스팔트에 찰싹 달라붙어 짓밟힌 낙엽처럼 쓸쓸하게 떠나간
이들처럼 커다란 혓바닥 모양 채반에 누워 꾸덕꾸덕 말라가는
서대를 바라본다. 어떤 방향도 바른 가치가 될 수 있는 날을, 한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되지 않는 세상을 생각한다.
* 뻘낙지
어머니는 갯벌에 나가 사투를 벌였습니다
허벅지까지 빠져들어가 뻘을 되집어 쓰고
커다란 낙지가 되어
어스름 저녁 빛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버팅기며 달라붙는 낙지뻘과 같은,
한 발을 빼면 다른 발이 빠져드는 질척이는 생
결국,
어미 뻘낙지 온몸을 풀어 새끼들 몸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어머니를 먹고 자란 뻘낙지
퍼덕거리는 여자만으로 하루가 빨려듭니다
한 다리를 서서 바다를 건너는 새처럼
삶을 견디는 일이 쓸쓸해질 때
복천마을 바닷가로 갑니다
* 꽃게와 마주하고
북 위를 튀어 오르는 파도처럼 통통거리며 들고 나는 햇살
비로 갯것들은 탄탄해지는 거지 바다 문을 열고 닫는 달의 불
면으로 억만년 대를 살아가는 거지 따개비들도 곰보처럼
붙어 있는 와온 바닷가에서 갯펄과 모래톱 속을 탄부처럼 드
나드는 너와 마주쳤어 예리한 발끝을 곧추세우고 눈을 굴리며
네 안으로 나를 끌어들었지
게딱지 같은 인생이라 말하지 마라 생각이 굳어질 때마다
허물처럼 벗어던지며 탱글탱글 다져온 속아지를 아느니 옆으
로 슬슬 피해 다닌다고 비겁하다 밀하지 마라 힘없는 것들은
살아남기 위해 퇴로가 필요할 뿐이다. 앞보다 등을 조심해야
하고 부딪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일 때도 있는 법, 무턱
대고 핏대 곧추세운다고 가소롭다 하지 마라 이거다 싶으면
목숨 걸고 놓지 않는 끈질긴 투지를 아느냐 결정적인 순간에
몸의 일부를 버리고라도 생을 구하는 용기, 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이더냐 야박한고 치사한 세상을 항해 거품 물고 달려드는
붉은 성정이 있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 아니라 누
군가를 위해 내어줄 달달한 사랑 가꾸고 있다는 말은 굳이 하
지 않아도 알 테고
* 책(冊)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가질 수 있다
이 황홀한 자유에 자꾸만 빠져들고싶다
겉치레나 예의가 필요하지 않은 안몸의 만남
거기, 그 사람이 온전히 있다
이천 미터 심해보다 깊은 심연을 꺼내놓으면
나도 그곳에 닿는다
눈치를 보거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공허의 구석으로 스며나도 몰랐던 나로 물든다
끝모를 바다에서 우주 먼 데까지
그의 이야기 들으며 내게 말한다.
혼자 있어도 함께다
그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 기울인다
세상에 없어도 멀리 있어도 두고두고 곁이 된다
죽어서도 죽지 않고 삶 속에 일렁인다
해보지 않고 해보는 가보지않고 가보는
앉아서 유목하기 누워서 여행하기 마음먹기 나름이다
꽃이 떨어지는 것의 의지라고 말해주는 이처럼
언제나 설레는 만남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소리없이 주고받는 조용한 대화
그 사람이 말하던 순간에 나도 멈춰선다
나란나란 자리한
흩어진 활자들이 말을 건넨다
* 나와 비슷한 정서와 표현에 어느 시집보다 빨리 읽었다. 물론 사물이나 역사, 자연을 바라보는데 꼼꼼하고 깊이가 나보다는 한 수 위다. 특히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 보다 폭넓고 진실에 철저하다. 다음은 어떻게 살겠다는시인의 다짐이 나와 있는 마지막 시다.나도 공감한다.
* 달팽이의 꿈
속도는 결과에 집착하는 습성이 있다.
생각이 깊을수록 느려지는 걸음
그대의 몸짓은 깨달음에 가깜다
안락한 집 한 채 마련하려는 소박한 욕심이
신(神)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세상에서
풀잎의 사연에 머물다
이슬의 슬픔에 잠기다
촉촉한 숨결로 거친 세상에 입맞추며가는 그대여
그늘지고 어두운 곳 끈적한 사랑으로 가는 그대여
한 치의 틈도 놓치지 않고
오체투지의 자세로 가는 그대에
꿈이 곧 몸인 양 나선형으로 열린 집
소유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그대는 이미 그대가 꿈꾸는 길을 가고 있다
* 나도 이 시인처럼 살고싶다. 천천히 가도 늦지 않음을 믿으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