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쉬는 날은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고 싶지만, 실제로는 어떤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하루 15시간에 육박하는 무지막지한 근무시간도 그렇지만, 있는 놈들이 더한다고 대기업
공사설계도 가면 갈수록 조악해져서, 그런 매듭을 풀고 현장에 적용시키자면 또 다른 설계실을
내 머릿속에 차려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종일 퍼져 자다가 저녁 무렵 들른 식당에서 아주
오랜만에 수수부꾸미를 발견했다.
며칠 후면 번연히 남 주는 줄 알면서 모가지에 자신의 분신을 매달고 서 있던 저 수수는
작년 봄여름가을 내내 고스란히 그 땡볕과 비바람을 맞으며 저 많은 자신의 씨앗들이 세상을
이루는 천국을 그리워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자연은 그런 과도한 욕심을 배제함으로써
오랜 세월 그 자신을 보존해 왔으며, 이미 그러한 사람의 아주 자잘한 욕심마저도 꿰뚫고
거기 묵묵하게 서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사람이 순수하든 그렇지 않든 만약 어떠한 욕심에 의하여 자신의 노동을 수수에게 부여하지
않았다면, 수수는 진즉에 멸망했을 것이다. 수수는 물론 다른 오래된 이 땅의 동식물들도 그런
욕심의 틈새를 노리는 것이다. 그 많은 씨알 다 먹어도 내년 봄 또 다른 한 해의 풍요를 꿈꾸는
농부가 떨어뜨릴 몇 알의 씨알이 아니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자신의 존재를 저토록 오랫동안
유지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수수 그 자신의 힘만으로써는 도저히 이루기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내 앞에 방금 도착한 이 수수부꾸미에게 내가 지나치게 경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수수가 자신의 모가지에 자신의 분신을 달고 내 앞에 고개 숙인 이유가 설령
그것이었을지라도, 그것은 영생을 꿈꾸는 수수 자신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지, 종일 굶은
내 입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것에 수수의 뜻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더라도, 나에게는 오로지 나의 한 해 뼈 빠진
노동에 대하여 이 세상이 나에게 주는 아주 작은 하나의 예의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아무리 어떤 장대한 일을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코 수수부꾸미를 먹기에는 낯이 좀 계면쩍다. 아무래도 수수부꾸미에 대하여 목례
한 번 정도는 하고 먹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音 마이클 호페 & 마틴 틸먼 ‘어떤 다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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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능수산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 하는것이지 뭐 맛은 다 다른지만.
사람 살아서는 그들을 먹고 살지만
죽어서는 그들의 먹이가 되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나는 단순해서 맛있는거 보면 아무 생각없이 먹는데....
너무 단순화하면 안 그래도 재미없는 세상 더 재미없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