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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폐셜 91회. '토우-신라인의 사랑과 진실' (2000.11.04.)
91회 : 토우-신라인의 사랑과 진실
토우-신라인의 사랑과 진실
방송일: 20001104 조회수 : 5474번 읽음
동영상 : 줄거리:
[역사스페셜 90회]
토우, 신라인의 사랑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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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
#경마장 부지 팬3 지난 7월,
경주시 손곡동에 건설 예정이던 경마장 부지에서
#걸어가3 1500년 전 신라의 유적이 발견됐다.
#토기편 발견 토기를 굽던 대규모 가마터가 발견된 것이다.
#가마 사진 보며 설명9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 밀집해 있던 47기의 가마.
#C.G.5 이곳에 경주로 유입되는 토기가 제작되던 대규모의 촌락이 있었던 것이다.
#성교토우3 이 가마터에서 다양한 토우들이 발굴됐다.
#죄수/악기 토4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토우와
#동물 토우2 여러 가지 동물 모양 토우.
#토우17 가마터 발굴은 토우가 무덤이 아닌 생산 현장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례다.
이것은 곧 토우가 부장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신라인들의 실생활과 얼마나 밀접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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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
# MC 기본 세트 앞에서
여러분은 신라의 유물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웅장한 불국사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거고 뭐니뭐니해도 화려한 금관이다..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신라의 유물은 규모가 크고 화려한 것들이 많이 있지요..
# 전시된 토우를 가리키며
그런데 여기 아주 작고 소박한 신라 유물이 있습니다.
흙으로 빚어서 만든 인형, 토우가 그것입니다.
# 장경호로 걸어와서 (2∼3 발자욱)
이것은 국보로 지정된 신라 유물 장경호입니다.
장경호란 말은 목이 긴 항아리를 부르는 말인데요,
그러니까 장경호는 토기이고, 장경호의 목 부분에 붙여놓은 이 작은 장식들이 바로 토우입니다.
# 토우 커지고.. / MC 다시 들어가 토우들 가리키며
장경호의 장식 외에도 신라에는 많은 토우들이 있는데요,
원래의 토우는 손가락 크기 정도로 작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너무 작아서 화면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토우를 키워 보겠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이제 잘 보이시죠?
# 장식 토우 가리키며
토우에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있고, 새나 뱀, 개구리처럼 동물의 형상으로 빚어진 것도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흙으로 대충 주물러 놓은 것 같은 신라 토우.
하지만 이 작은 신라 토우가 1500년 전 신라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열쇠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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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1
#항공촬영6 크고 작은 고분이 밀집해 있는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걸어와 1926년 일제 때까지만 해도 야산으로 알았던 이 고분 주변에서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무덤 가리켜12 경주역 기관차고 공사에 이용할 흙을 파내다가 다량의 신라 토기를 발견한 것이다.
#이한상 경주 박물관 학예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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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바닥의 흙을 채취해서 가까이에 경주 역이 있습니다만 여기에 옮겨서 매립토로 사용하려 했었는데요,
논바닥을 파다가 안에서 토우가 굉장히 많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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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당시 사진12 당시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였고 발굴은 일본인에 의해 이뤄졌다.
토기와 함께 발굴된 토우들이 심하게 부서진 상태였기 때문에
#깨진 토기편 사진7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윤용진 경북 문화재 연구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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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그릇이니까 다 없애버리고 토기만 모아다가 박물관에 갖다 놨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후의 사람들은
발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 하니까 사람들은 무슨 기능인지 어떤 게 붙어있었는지 뭣 때문에 서 있는지
전혀 목적이나 기능에 대해서 몰랐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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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15 토우란 흙으로 만든 인형을 뜻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사람 뿐 아니라 동물이나 집, 생활 용구 등이 모두 토우에 포함된다.
#동물 토우11 토우는 장난감, 주술적 우상, 그리고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품 등의 성격을 갖는다.
#동물 토우5 대부분의 토우는 10센티 미만의 크기다. 어른의 손가락 길이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크기 비교7
#토우 전시 풀샷2 토우의 형태는 매우 단순하다.
#토우9 순간적인 동작이나 큰 특징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표현만큼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강우방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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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토우에 표현 방법을 보면 세부적인 것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특징적인 것은 과장해서 어떤 행동의 한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익살스러운 점도
많고, 그것은 신라 미술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신라 토우의 양식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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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팬9 지금까지 발굴된 토우는 모두 토기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그렇다면 온전한 신라 토우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걸어가5 1975년,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있던 신라 토우의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지도5 발굴이 있었다.
@요 일대가...
#발굴 당시 사진16 계림로 일대를 고분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공사에서 석곽묘 군이 발굴됐는데,
무덤에서 수많은 신라 유물과 함께 토기 파편들이 나온 것이다.
현재 국보 195호로 지정된 <장경호>
역시, 깨진 상태로 이곳에서 발견됐다.
#윤용진 경북 문화재 연구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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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는 토우대로 빠져 나오고 이를테면 주워 올렸죠... 토우에 붙어 있었던 장경호는 장경호대로 파편이 돼서
나왔다... 장경호에 토우가 붙어 있었다고는 그 때 몰랐죠.. 다 들어내고 난 뒤에 한, 두군데 뱀이 붙어 있는 걸
근거로 해서 보니까 다른 토우가 붙어 있던 자국이 보였다..
장경호를 복원하고 토우가 붙어있던 자국에 별도로 주워 모았던 토우를 붙이니까 요새 보는 주악상이 장식된
장경호로 완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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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장경호7 조각난 토기와 떨어져나간 토우를 붙이는 복잡한 작업이 끝나고,
#장경호 Z.O.13 드디어 1500년간 땅 속에 묻혀 잠자고 있던 신라의 유물, 장경호가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장식 토우(동물)10 흙을 빚어 구운 목이 긴 항아리의 목 부분에 다양한 장식이 붙어 있는 장경호.
이것이 신라 토우의 원형이다.
#장식 토우(사람)7
#강우방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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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토기에서 전부 유리된 토우였기 때문에 그 토우들이 어떻게 배치됐는지 상호 관계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근데 그 때 발견된 토기에는 신라인의 생활상의 전모, 사냥을 한다던가 물고기 잡이를 한다던가 악기를 연주한다
던가 성교를 한다던가 하는 생활의 전 모습이 그대로 집약돼서 붙어있었기 때문에 토기가 발견되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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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 Z.I.7 토우는 당시 신라인들의 삶이 어떻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가면 토우 T.S. 그리고 고대 삼국 가운데 유일하게 신라에만 존재했다.
외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독자적인 신라만의 문화였던 것이다.
#피리부는 토우
#악기 연주 토우 토우에는 1500년 전의 고대 왕국 신라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토우 풀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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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
# 전시된 토우 앞에서
토우는 아주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신라인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삼국유사 지철로왕 기록 나오고
여기 아주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증왕으로 더 잘 알려진 신라 22대 지철로 왕과 관련된 삼국유사 기록인데요,
"왕음장일척오촌난어가우"
지철로 왕은 남성의 길이가 무려 한 자 다섯 치나 돼서 나이가 들도록 결혼을 하지 못해 고민이었다는 그런
기록입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신부감을 물색하러 전국을 헤매고 다녔는데요, 어느 마을 어귀에서 개 두 마리가 큰 북 만한
변을 물고 실랑이를 하는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신하들이 그 변이 누구의 것인지를 물었더니, 사람들은 그 마을에 사는 한 처자의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신하들은 이제야 왕비감을 찾았다고 기뻐하며 그 처자를 왕궁으로 데리고 갔다는 얘긴데요,
허황된 얘기 같지만 엄연히 역사서에 남아있는 기록입니다.
이렇듯 신라는 왕과 관련된 은밀한 얘기까지도 솔직하게 기록할 정도로 성에 대해 개방적이었습니다.
왕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정도라면 일반 서민들과 관련된 얘기는 더욱 솔직하고 대담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렇게 신라인들의 성에 대한 솔직한 모습이 토우에도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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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2
#장경호 Z.I.14 다양한 장식 토우가 붙어있는 장경호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한 쌍의 남녀의 모습이다.
#여자 얼굴3 토우는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엉덩이4 생활의 모든 부분을
#전체3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다양한 성교상5 토우 가운데는 독특하게 보이는 것들이 여러 점 눈에 띤다.
#성교상 Z.I.12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강우방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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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너무나 적나라하기 때문에 현대인들도 충격을 받을만큼 노골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성생활이 인간의 행복의 한 요소이기 때문에 사후에도 그런 즐거움을 계속 갖도록 하는 염원에서 성교
장면을 다양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그렇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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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상7 신라인들에게 있어 성은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삶의 기쁨이었다.
#익살스런 성교상11 그래서 성을 은밀하고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일상적인 것으로 익살과 해학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과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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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에 나타난 성행위의 묘사된 것으로 본다면 당대인들이 성에 대한 개방성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것은 성적인 문란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융통성 있게 이해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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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록20 하지만 성에 관한 풍속 자체가 문란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우리 민족이 남녀가 음탕하거나 부인이 투기하면 죽음으로 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 기록20 신라의 명장 김유신은 혼전에 김춘추의 아이를 임신 한 여동생을 공개적으로 화형에 처하려
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기록이다.
#승선 토우9 1924년, 금령총에서 출토된 승선토우에 옷을 입지 않은 나체의 남자가 보인다.
#남성 토우9 토우에는 성적인 특징을 강조한 인물상이 많다.
그 가운데 남성 토우는 무한한 생산력의 상징이다.
#남, 여 토우3
#여성 토우7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이 주는 신비감. 여성 토우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
#남,여 토우5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과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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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 묘사가 강조된 토우들의 본질적인 것은 두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손에 대한 번창,
그런 생산능력 뿐만 아니고 곡물에 대한 풍요로운 수확까지도 거기다 부여한거죠. 그런 토우 자체가 갖고 있는
주술적인 상징성으로 표현됐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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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 보며 설명5 성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풍속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슬라이드(남근석/여근석)12 동네 어귀에 서 있는 남근석과 외진 곳에 숨겨져 있는 여근석,
임신을 기원하는 석상 등 민간 신앙의 흔적이 한반도 전역에서 쉽게 발견되는데,
#슬라이드(토우)15 이렇듯 다양한 성 풍속의 단면이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의 신라 토우에서도 그대로 발견
된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과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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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토우의 경우에는 남자 성기를 몸, 팔 다리 정도 크기만큼 비대하게 해놨습니다.
여자 토우 같은 경우도 유방이라든지 여자 성기를 과장되게 묘사가 됐는데, 이런 것은 어떤 그렇게 표현함으로서
생산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믿음이 부여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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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중인 여인14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력이었다.
자손의 번창은 중요한 덕목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다양한 토우8 토우에 나타나는 솔직하고 대담한 사랑은 신라인들이 현실에서 누렸던 행복한 삶의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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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3]
# 기본 세트
어떻습니까? 신라인들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사랑 표현.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꾸밈없는 표현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그머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데요,
자, 여러분을 1500년 전 신라의 음악회장으로 안내합니다.
# MC를 둘러싸고 관악기, 현악기, 합창 순으로 악기 연주
토우 무리 등장 / 잠시 음악 듣다가...
어떻습니까?
오늘날 오케스트라와 비교해서 손색이 없지 않습니까?
이쪽은 다양한 관악기를 연주하는 토우들이고, 이 쪽은 줄이 있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토우들입니다.
가운데는 다양한 악기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고요,
마치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서 천상의 화음을 내는 합창단의 공연을 보는 듯 한데요,
금방이라도 신라의 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 신라금 토우 앞으로 나오고...
그 데 여길 한 번 봐주십시오.
여기 주목해서 살펴 봐야할 토우가 있습니다.
여기 이 사람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주하는 이 악기,
길이가 사람의 키 정도, 악기에 현이 명확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악기가 어떤 악기로 보이십니까?
혹시 가야금처럼 보이지는 않는지요?
가야금이 가야에서 만들어진 악기란 사실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가 있지요?
그렇다면 독자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룩했던 신라에는 신라를 대표하는 악기가 없었을까요?
그 해답 역시 토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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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
#장경호 Z.I.11 5세기에 만들어진 장경호의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다.
악기를 다리 위에 얹고
#연주하는 사람2 연주하는 모습이 가야금과 흡사하다.
#금10 신라 토우에 등장하는 이 악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삼국사기 기록22 삼국사기에 가야금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가야국의 우륵이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악기를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했다.
즉 6세기 진흥왕 때 우륵에 의해 가야금이 신라에 전해졌다는 기록이다.
#기다란 금3 금을 연주하는 모습은 장경호 외에도
#작은 금6 많은 토우에 나타난다.
토우 제작 시기는 대략 4~5세기.
#양이두 금6 그렇다면 가야금이 전래되기 이전에 이미 신라에도 가야금과 유사한 형태의 악기가 존재했다는
얘기가 된다.
#황병기 교수 금 설명3 가야금은 1500년을 이어 지금까지 전해지는 전통 악기다.
@... 소리가... 이렇게 되지요
#설명8 그렇다면 신라 토우에 보이는 악기와 가야금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황병기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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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를 보면은 신라 진흥왕 때 가야의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얘기하지만 그 전부터 한반도 남부지방에
가야금 비슷한 악기는 널리 퍼져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국악계 통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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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록18 신라의 모태가 됐던 진한의 악기에 관련된 기록이다.
<슬>이라는 악기가 있는데 모양은 중국 고대의 현악기인 <축>과 같고, 연주하는 곡이 있다.
#삼국사기 기록19 삼국사기에는 물계자가 금을 연주하고 곡조를 지으며 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계자는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엽의 인물이다.
#김성혜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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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이 6세기 중엽에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왔는데 이런 기록에서 3~5세기에 걸쳐서 신라에도 금이 있다는
기록을 본다면 가야금이 전해지기 전에 신라에도 금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죠.
분명히 신라에 신라 고유의 금이 있은 걸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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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교4 토우에 나타나는 신라금은 크기나 모양이 다양하다.
#커다란 금6 악기의 크기가 사람의 키보다도 크고,
#양이두5 가야금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양의 귀와 머리 모양인 <양이두>가 뚜렷한 것이 있는가하면,
#작은 금6 두 손으로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로작은 금도 보인다.
#금 연주 토우4 작은 금은 대체로 양이두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김성혜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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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형태로 봅니다. 하나는 크기가 크면서 양 이두가 뚜렷한 거, 그리고 또 하나는 악기가 사람 몸보다 작으
면서 양이두가 뚜렷하지 않은 것, 그렇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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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기록 19 금의 크기와 관련된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금 보관함의 크기가 사람이 들어가 숨을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창원 자료10 천황의 애장품을 보관하는
일본 정창원.
이곳에 신라금갑이 보관돼 있다.
@사람 키보다 크네요...
#정창원 기록8 기록에 남겨진 금갑은 187.5센티미터.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다.
#탄금 토우10 6세기 이후 가야금이 전해지면서 신라금은 한 단계 수준 높은 악기로 개량됐다.
#현18 토우에는 악기의 현까지도 자세히 표현돼 있다.
현의 수도 가야금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가야금이 12줄인데 반해 신라금은 3줄, 5줄, 6줄로 다양하다.
#탄금토우4 제례를 올리고 있는 듯한 장면을 묘사한 토우.
#탄금 토우(회전)8 금을 연주하는 사람 옆에서 한껏 흥이 오른 듯 두 팔을 벌려 춤을 추는 사람이 있다.
#춤 추는 토우3
#탄금 토우7 신라금이 독주 뿐만 아니라 춤의 반주에도 이용됐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가야금 연주32 우륵이 계고에게 가야금을, 법지에게 노래를 만덕에게 춤을 가르쳤다.
이것은 노래와 춤, 그리고 금의 연주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으로, 신라금이 춤뿐 아니라 노래의 반주에도
이용됐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김성혜 교수 설명5 그렇다면 토우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까?
#가야금 병창 토우 복원13 훼손된 토우의 떨어져 나간 부분을 복원해봤다.
입을 벌린 토우는 금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김성혜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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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병창의 기원은 지금까지 조선 후기로 봤습니다. 왜냐하면 병창을 할 때 소리가 대부분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르기 때문에.. 그런데 그 갸야금 병창처럼 소리를 하면서 가야금을 타는 형태가 신라 토우에도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가야금 병창의 기원을 신라 토우가 나타나는 5세기까지 소급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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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기 토우10 금 외에도 관악기를 연주하는 토우가 발견됐다.
악기의 크기에 따라 연주자의 팔동작을 다르게 표현해 악기의 구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토우2
#비파 연주 토우10 서서 연주하는 현악기, 비파도 등장한다.
이렇듯 많은 양의 악기가 토우에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병기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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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거고, 그만큼 신라 사람들은 음악이 생활 속 깊숙이 들어와 있었
다는 것, 음악을 상당히 즐겼고, 또 그 시대 사람들은 종교 신앙심이 강했겠죠.
그래서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신에 대한 마음을 바치는 것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토우에 주악, 악기를 연주하는
그런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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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 토우17 고구려에 독자적인 현악기 거문고가, 가야에 가야금이 있듯이 신라 역시 신라의 전통 악기
신라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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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4]
# MC 집 모양 토우에서 걸어 나오면서..
신라인들이 빚어놓은 토우는 비단 사람의 모습뿐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라의 가옥입니다.
이곳이 아마 주인이 기거했던 곳으로 보이는데요, 기와를 촘촘히 얹은 팔짝 지붕이 멋스럽게 보입니다.
# 창고 모양 토우 앞으로 걸어가
이 건물은 좀 전의 건물과는 조금 다른 형태군요.
지붕도 단순한 맞배 지붕이고 네 개의 다리가 건물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곱니다.
이렇게 창고를 2층집 형태로 지은 이유는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 그리고 쥐나 해충으로부터 곡식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수레, 지게, 개 토우 앞으로 걸어가서 가리키며..
수레, 지게, 개...
마당 한켠에 놓인 여러 가지 살림살이가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토우에는 이렇듯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표현돼 있습니다.
토우를 살펴보면 신라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조차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신라인들의 식탁에는 무엇이 올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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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
#수렵 토우3
#활 쏘는 사람 사냥꾼이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사냥감을 향해 활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있는 수렵 토우.
#멧돼지 활 끝은 멧돼지를 향해 겨누어져 있다.
#수렵 토우4
#화살6 인물을 표현할 때도 활과 화살은 비교적 세밀하게 나타낸 반면,
#사냥꾼7 사람은 단순하게 표현해서 사냥의 긴박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개, 멧돼지13 개 한 마리가 멧돼지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아마도 멧돼지가 당시의 주된 사냥감이었던 모양이다.
#토우 복원19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토우를 그래픽으로 복원해봤다.
말이 한 마리 있고, 사냥꾼으로 보이는 사람이 타고 있다. 뒤에 실려있는 것은 다리가 묶인 멧돼지다.
#천진기 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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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은 식량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데, 그 당시에 지금처럼 그런 것이 아니라 수렵과 어로가 굉장히 중요한
생업기술의 양상이었다.. 결국 그런 예상이 되는 어로와 수렵이 풍요를 가져야만 생존의 안정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런 생존의 안정을 비는 의미로서도 많이 등장하지 않느냐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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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토우8 동물 모양의 토우를 살펴보면 신라인들의 수렵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토끼, 사슴4 멧돼지뿐만 아니라 토끼, 사슴, 심지어는 표범, 호랑이 같은 맹수 등을 사냥했다.
#토끼6 수렵은 고대 신라인들에게 있어 자연과의 투쟁인 동시에
#사슴4 주된 경제 활동이었던 것이다.
#개,돼지3 하지만 수렵으로 충당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돼지5 짐승을 가둬 길러야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게 됐다.
#돼지13 들짐승을 가축화 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돼지다.
토우에도 다양한 형태의 돼지가 상당수 등장한다.
#천진기 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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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굉장히 빨리 성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당시 중요한 동물성 단백질을 제공하는 그러한 역할도 할 수가
있는 거죠. 다음에 사람이 죽었을 때 옥돈이라고 해서 옥으로 만든 돼지를 사자의 손에 넣어서 같이 부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돼지를 부장하는 것은 식량, 저 세상에 가서도 풍요, 식생활, 이런 부분들을 염원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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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개4 가축화된 동물로 가장 오래 됐다는 개.
#개12 개는 식용이나 애완용, 혹은 호신용으로 신라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동물이다.
#이정일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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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몇 개 몇 개 필요한 동물을, 자기가 일 할 때 부려먹는다던가 먹이로서 대상이 됐던 동물을 가둬 놀
필요가 있었죠. 그 때부터 동물 사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어떤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저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쪽으로 많이 생각을 하게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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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로 토우4 잉어, 망둥어, 게 등 다양한 어류도
#물고기3 토우로 표현되는 것들이다.
#망둥어8 이것은 신라인들이 어로를 수렵 못지 않게 중요한 식량 확보 수단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3
#승선토우16 금령총의 주형, 즉 배 모양 토우는 신라의 활발했던 어로 활동을 뒷받침한다.
신라는 해안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해상 활동이 활발했고, 선박 제조 또한 발달했다.
#신라 배 풀샷5
#배11 토우는 신라 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배를 복원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원식 고대선박연구소 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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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동남해안에 접하고 있습니다. 동해안 바닷가를 끼고 있기 때문에 생활의 근거지가 바다가 되고 바다가
되니까 자연히 배를 만들어 쓰게 되고 그것이 이제 운송수단, 기타 농산물, 해산물 집산, 모으는데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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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풀샷2
#지게 진 토우11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나르는 토우가 있다.
어깨에 농기구를 둘러매고 가는 토우와
#사진6 함께 신라 농군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김재홍 전주박물관 학예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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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에 나타나는 것은 구체적인 농기구라기 보다는 농사를 짓고 나서 벼를 옮기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소위 말하는 짐승을 통해 가지고 볏단을 나르는 모습이라든지 지게 지고 가는 사람, 더 나아가서 곡식 빻는
디딜방아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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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딜방아 토우14 신라의 농경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토우.
디딜방아를 빚어놓은 것이다. 크기만 작을 뿐, 실물과 차이가 전혀 없다.
#트래킹5
#걸어올라가3 취재팀은 토우의 실제 흔적을 찾아
#방아터5 지금도 남아있다는 경주 남산의 디딜방아 터를 찾아갔다.
#방아 찧는 흉내8 이곳이 농경의 마지막 단계인 도정 작업이 이뤄지던 장소였다.
#이홍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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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 계곡에 천동탑이 있는 절터가 있어요.
그 절터가 신라 때 절텁니다. 지척에 사는 분들이 쓰던 방아로 추정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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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붙은 토기7 1500년 전, 신라의 볍씨가 탄화된 채 그대로 붙어 있는 토기가 있다.
#C.G.6 신라인들은 조, 콩, 쌀 등의 농산물을 디딜방아를 이용해서 도정했던 것이다.
#수레 토기9 추수가 끝난 곡식은 수레를 이용해서 운반했는데,
수레 또한 토우로 확인할 수 있다.
#기록19 신라에서 수레의 이용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삼국사기 기록이다.
쌀 4천 석과 조 2만2천 석을 수레에 실어 평양까지 보냈다는 것이다.
#바퀴 자국 발굴 현장10 수레를 널리 사용했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경주 박물관 신축 공사장에서 발견됐다.
#바퀴자국13 수레바퀴 자국과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닦은 흔적이다.
남북으로 길게 뚫린 도로. 이것은 경주 시내에 도시 구획이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전호태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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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는 오늘날의 자동차와 같은 것이니까 자동차의 다양한 용도를 생각하면 수레의 용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운송을 위한 모든 자료, 물자가 수레에 담기는 거죠. 사람부터 시작해서 식량, 물건이 다 담기니까
이것이 지역간의 분쟁이 있거나 전투가 있을 때 물자 수송을 원활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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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토우5 토우에 남겨진 신라인들의 생활.
#개 토우2 그것은 1500년이 지난 지금의 생활 모습과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주형토우6 신라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지게 토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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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5]
# 원숭이 토우 가리키며
이것은 신라인들이 만든 동물 토우입니다.
이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아시겠습니까? 원숭이입니다. 원숭이는 우리 나라에는 살지 않았던 동물이죠.
# 코끼리 토우 가리키며
그럼 이것을 좀 보시지요.
귀가 크고 코가 기다란 것이 한눈에도 코끼리를 표현했다는 걸 알아볼 수 있겠지요.
코끼리 역시 우리 나라에는 살지 않던 동물입니다.
# 개미핥기 토우 가리키며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요?
주둥이가 길쭉하고 꼬리를 바짝 치켜든 동물, 개도 아니고 늑대나 여우도 아닌 것 같은데요,
# 개미핥기 사진 내려오고..
이 동물은 한반도와 지구 정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대륙에 서식하는 개미핥기라는 동물입니다.
바로 이 토우의 모델이지요.
사진을 보니까 정말 비슷합니다.
# 흰 개미핥기 토우 가리키며
등에 줄이 선명한 이 토우는 개미핥기의 일종인 흰 개미핥기라는 동물입니다.
# 흰 개미핥기 사진 내려오고..
주로 호주 대륙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어떻습니까? 사진 속의 흰 개미핥기와 토우로 제작된 흰 개미핥기,
같은 동물임을 확연히 알 수 있겠지요?
이렇듯 토우에는 우리 나라에는 살지 않는, 그래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도 상당수 등장합니다.
각각의 동물들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표현해낸 토우.
실제로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만들지 못 했을텐데요, 이러한 이색 동물 토우를 통해 신라와 외국과의
교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라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토우.
토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라인의 생활과 문화 뿐 아니라 그들만의 독특한 정신세계까지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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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5
#신라요 외경2
#장경호 팬 류효웅7 평생을 신라 토우 재현에 힘써온 류효웅씨.
#항아리 빚어2 지난 35년간 재래의 방법 그대로 신라의
#풀샷2 토기와 토우를 제작하고 있다.
#토우 빚어
#토우 붙여6 토우는 손으로 대충 주물러 만드는 것 같지만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생명력을 갖는다.
#토우 장식
#류효웅 신라 토기 명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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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만든다고 하면, 뭘 붙여야 될지 몰라... 그러나 뭘 만들어 붙여야지.. 그런 생각 있으면 물체가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고 새가 날아가는 것 같고 가재가 기는 것 같고 이런 느낌이 든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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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 붙여3 토기를 장식하는 토우 가운데 유난히 자주 눈에 띠는 것이 있다.
#장식7 뱀이 개구리의 뒷다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다.
#뱀,개구리 Z.I.12 장경호를 장식하는 다양한 토우 가운데도 뱀과 개구리가 보인다.
특별히 친근하지도 않고, 때로는 사악한 동물로 비쳐지기도 하는 뱀.
#뱀,개구리7
#뱀2
#전호태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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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보통 불멸, 재생을 상징합니다. 동면도 하고 껍질도 벗고 이러니까.. 고대인들이 보기에는 영원히 존재하는
상징적인, 실제적인 존재다, 이렇게 보는 것이고 개구리 같은 경우에는 알을 많이 낳으니까 다산의 상징이 되는
거죠. 그래서 뱀이 개구리를 문다는 것은 다산과 재생, 불멸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결국 영원토록 다산, 풍요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기원이 거기 담겨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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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그릇16 신라인들은 뱀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뱀이 장식된 그릇은 제사용기나 종자를 보관하는 그릇으로 볼 수 있다.
#뱀4
#거북8 거북 토우 역시 신라인들의 정신 세계를 보여준다. 거북은 바다와 땅을 잇는 동물로
#장경호3 영혼을 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거북4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신구형 토기4 거북의 몸에 용의 머리와 꼬리를 가진
#용 머리, 꼬리15 토우.
거북과 용의 능력을 동시에 가진 상상 속의 동물을 표현한 것이다.
#용 토우4 신라인들은 용을 나라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분황사3
@신라를 지켜주는 호국 용...
#우물 드려다 봐/설명10 분황사의 우물 <삼룡변어정>에는 세 마리 용에 얽힌 전설이 있다.
당나라 사신에게 빼앗길뻔 했던 호국 용을 이 우물에 넣고, 그 때부터 삼룡변어정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박방룡 경주박물관 학예 연구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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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무한한 능력, 무한한 힘, 그러니까 용은 물 속에서 항상 살고 있지만 땅 위에서도 살고 또는 얼마간 있다
보면 하늘로 승천해서 위력을 발휘한다는 의미에서 신라시대 토우에서 상당수 사용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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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토우8 토우 가운데는 가면이나 고깔을 쓴 토우도 많이 보인다.
#학가면/고깔/가면10 새의 부리처럼 얼굴 부분이 돌출된 모습, 머리를 뾰족하게 만들고 눈과 입만을
표현한 모습.
#토우 T.U.8 과연 고대인들은 가면을 쓰고 무엇을 했을까?
#전호태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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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가면이란 것은 또 다른 인격입니다. 또 다른 인격이란 것은 신의 얼굴이죠. 그래서 인간의 얼굴을
한 채로 종교행렬을 하는데 부담을 느낀다면 신의 얼굴을 쓰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가 신이 되는 것이죠.
신이 몸에 내리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거죠. 그래서 반구대 암각화에 보면 탈이 나오고 있습니다.
곳곳의 유적에서 탈이 한두개씩 꼭 보여요. 나중에 그것이 신라의 처용무로까지 내려오게 되는데,
결국 이것은 주술 행위의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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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삼동 출토 패면12 신석기 유적,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조개껍질 가면.
시대는 다르지만 주술행위에 있어서 가면의 중요성은 맥을 같이한다.
#슬퍼하는 여인28 주검을 앞에 놓고 슬퍼하는 여인이 있다.
# 시신은 천으로 덮여 있다.
남편이나 자식의 죽음인 모양이다.
고대 사람들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 죽음을 가장 두려워했다.
#천진기 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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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바라는 행복의 느낌은 뭐냐면 물질적인 풍요,
유한한 존재가 오래 사는, 영생하는 그 바램, 풍요와 영생이 굉장히 중요한 인간 생존에 있어서 큰 바램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 영생과 풍요는 전 시대를 통해서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욕망이었지만 그것을 표현
하는 방식은 달랐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신라인들은 이른바 신라 토우속에 지금까지 완벽하게 해석이 되진
못하지만 그 속에 신라인들의 삶, 관념, 종교, 죽은 사람을 땅 속에 묻으면서 무엇인가 바램..
이런 것들을 표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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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모은 토우14 토우는 살아 생전 행복했던 이야기.
그리고 사후에도 그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절 하는 토우4 신라사람들의 희노애락이 토우에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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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6]
# 오리 토우 가리키며..
오리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이 토우 하나에도 신라인들은 여러 가지 뜻을 담았습니다.
오리 토우를 빚어 무덤 속에 넣은 이유는 죽은 후에도 배불리 먹으라는 기원을 나타낸 것입니다.
또 오리는 물에서도 살고, 땅 위에서도 살며, 하늘을 날기도 하는 등 3계를 넘나드는 특성이 있기때문에
영적인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리가 하늘과 땅을 잇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죽은 사람의 영혼이, 혹은 산 사람의 소망이 무사히 하늘에 있는 신에게 닿기를 염원했던 것입니다.
# 삼국 지도 나오고
이렇게 다양한 토우는 삼국 가운데 유일하게 신라에만 존재했던 독특한 문화였습니다.
# 삼국 지도/ 통일신라 지도로 바뀌며
모양이 다양하면서도 하나 하나에 신라만의 정서가 흐르던 신라의 토우도, 시간이 흐르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하게되면서 점차 그 모습이 변해가게 됩니다.
모양이 변하면서 의미도 많이 달라지게 되지요. 토우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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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6
#항공촬영6
#용강동 고분 발굴 사진12 1986년, 경주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용강동 고분에서 대규모 발굴이 있었다.
#출토품 사진13 7~8세기 통일신라 왕족의 무덤으로 보이는 이곳에서 다량의 토우가 출토됐다.
그런데 용강동 토우는 기존의 토우와 다른 모습이었다.
#용강동 토용12 학자들은 용강동에서 발굴된 유물을 토우가 아닌 토용이라고 분류한다.
그렇다면 토우와 토용은 어떻게 구분하며 어떤 관계를 갖는가?
#단대 외경5 우선 토우와 토용의 형태상의 차이를 신라의 복식사를 중심으로 알아보기로
#고부자 교수4 했다.
#토우 부부상13 대개의 토우는 의복에 대한 표현이 생략돼 있다.
다행히 황남동에서 출토된 부부상이 신라의 복식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기록20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복식은 고구려, 백제와 그 모양이 같고,
흰색을 숭상한다고 했다.
#고구려 의상7 그 당시 고구려의 복식은 북방 유목민 계통인 바지와 저고리가 중심이었다.
#고구려 의상7 따라서 신라도 바지, 혹은 치마와 저고리가 기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부자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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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동에서 나타난 부부의 모습을 보면 머리에 상투를 틀고 있고 바지를 입고 여자는 치마를 입고 있는데,
이 치마에서 주름을 잡았다, 바지에도 주름을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넓은 바지를 입었다는 것이 되고 황남대총
남분에서 춤추는 여자도 주름이 잡힌 치마를 입었다는 것은 그만큼 폭넓은 치마를 입었다는 것을 입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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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복식14 토우가 소박한 바지, 저고리 차림인 반면 대부분의 토용은 통이 넓고 길이가 긴 포를 주로 입고 있다.
#저고리6 여자들의 복식 역시 통이 넓고 풍성한데, 치마를 저고리 위에 덧입었다.
#머리5 머리 모양도 기존의 토우와는 차이가 있다.
#고부자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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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기 이후의 용강동에서 나온 신라의 토용은 완전히 중국 당대에 복속화 현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자라든지, 모자에서 사모를 썼다든지 손에 홀을 들고 옷이 포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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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과 복식 비교15 토용은 7~8세기 통일신라 때 제작됐다.
당시는 당과의 교류가 원활했고, 복식 또한 당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시기였다.
#회전하는 토용13 토용에 낯선 모습의 서역인이 등장하는 것도, 당을 비롯한 서역과의 활발해진 교류로 이해할
수 있다.
#여자 토용 T.U.7 토우와 토용의 가장 큰 차이는 순장관련 여부에 있다.
#남자 토용8 원래 우는 인형, 허수아비를 의미하고, 용은 순장을 대신하는 인형을 뜻한다.
#서안 트래킹10 신라시대까지 자주적이고 독립적이던 토우는 통일신라에 들어 당과의 교류가
#진시황 토용29 빈번해지면서 중국의 도용을 모방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중국 도용의 대표적인 예는 진시황제의 무덤에서 나온 대단위의 병마용이다.
황제를 호위하는 진나라의 군단으로, 표정이나 동작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김성범 경주문화재 연구소 실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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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 대용으로 부장을 했던 고분에서 출토된 인물상을 토용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아라비아 서역 상인들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든지 그 당시 옷차림 같은 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가지고 당시 생활상이나 문화 교류상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대체로 토용이라고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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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15 토우와 토용은 만드는 방법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토용이 일정한 틀에서 한꺼번에 떠낸 것처럼 하나같이 획일적인 반면,
#토우14 토우는 격식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빚어서 만든 까닭에 형태가 모두 다르고 개성이 살아있다.
#장경호7 또한 장경호에서 보이는 것처럼 토우는 항아리의 뚜껑이나 몸체에 붙어
#토우 장식 뚜껑15 토기를 장식하는 용도가 대부분이다.
#강우방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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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가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유일한 자료라고 할 수가 있죠.
왜냐하면 불교가 정착하면서부터는 외지의 요소가 들어오고 통일 후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중국 토용을 모방한
것이 만들어집니다. 그렇지만 토우야말로 이것은 외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그 당시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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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토우18 토우는 신라가 강력한 고대 국가로 발돋움 할 무렵인 5세기 경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삼국이 통일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지만 토우는 신라만의 고유한 문화다.
#부부 토우15 토우는 신라인들의 삶과 행복, 그리고 사랑과 진실을 흙으로 빚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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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기본 세트 / 토우 앞에서
그렇습니다.
토우는 살아 생전 행복했던 생활, 그리고 그 행복을 죽은 후까지 이어가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간절한 기원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뛰어난 도예 문화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흙으로 빚은 1500년 전의 기록, 토우.
고구려에 고분 벽화가 고구려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면
토우는 신라인들의 삶과 사랑을 솔직하게 담고 있습니다.
토우는 1500년 전 신라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진솔한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신라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