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골로새서 3장 1-4절『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다시 살리심을 받는다”는 헬라어의 표현은 Εἰ οὖν συνηγέρθητε τῷ Χριστῷ. 쉬네게르데테(συνηγέρθητε)는 영적으로 죽은 자였는데,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쉬네게르데테는 쉰과 에게르데테의 합성으로서 함께 일어났다(살아났다)는 의미다.
그래서 영어로 표현을 할 때는 If ye then be risen with Christ(kjv), Since, then,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niv)로 되어있다. 문법적으로는 헬라어나 영어를 보면 모두 완료형이나 과거형이다. 골로새서 1장 4절의 표현은 이미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이다.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부활이라는 용어도 에게이로(에게르신)와 함께 혼용한다. 마태복음 27장 53절『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καὶ ἐξελθόντες ἐκ τῶν μνημείων μετὰ τὴν ἔγερσιν αὐτοῦ εἰσῆλθον εἰς τὴν ἁγίαν πόλιν καὶ ἐνεφανίσθησαν πολλοῖς.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에게르신은 일어남, 살리심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이라는 용어가 아나스타신로 표현되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아나스타신)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이와 같이 일어나다, 살리심과 부활이라는 용어는 혼용되고 있으나, 개역개정의 번역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부활” 이라는 표현의 아나스타신(ἀνάστασις)은 영어 성경에는 resurrection(niv,kjv)으로 표현되었다. 부활은 문법적으로 명사이다. 즉 영적으로 살아난 어떤 상태를 나타낸다. 영적으로 살아나는 모습은 동사로서 쉬네게르데테로 표현되었다. 이런 동적인 상태 이후에 모습을 부활이라는 아나스타신으로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이고, 부활은 영적으로 살아나 영의 몸을 입은 상태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1절『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에서, 위의 것은 영의 몸에 해당되는 것이다. 성도가 죽었던 영이 살아났으면, 하늘의 영의 몸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부분 신도들은 부활을 육체가 죽은 후에 다시 사는 개념으로 받아드린다. 그래서 영적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개념이 없으며, 영의 몸에 대한 이해도 없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서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심는 것은 썩는 것이다. 즉 씨의 껍질과 같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살아나는 것은 씨의 껍질이 아니라, 그 속에 생명이 살아난다고 표현한다.
고린도전서 15장 36-38절『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육의 몸은 땅의 것인 씨의 껍질과 같이 썩을 것이다. 그러나 영의 몸은 하늘의 것인 씨 속의 생명에 해당된다. 이는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5-47절『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번역 오류: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에 대한 표현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가 많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동일한 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동일한 분이 아니다. 십자가에서 죽기 전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의 몸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첫사람 아담으로 이어져 온 죄의 몸을 끊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첫사람 아담의 표상이 된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예수가 곧 첫사람 아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었으며, 예수는 첫사람 아담이 준 죄의 몸을 이제 없애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영어 번역은 Who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kjv)
창세기 1장 27절에서『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첫사람 아담은 바로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인자였으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죄의 몸을 없애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다. 그러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7-50절『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자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 역시 하늘에 속한 자가 된다.
육체가 죽어서 그 몸이 신령한 것으로 다시 변화하여 살아난다고 믿는 자들은 하늘에 속한 자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땅에 속한 것을 하늘에 속한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3장 3절『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들은 육의 몸이 죽었고, 하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믿는 자들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말씀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영이 살아남과 동시에 영의 몸을 입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54-55절『이 썩을 것(프다르톤)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아프다르시안)을 입겠고 이 죽을 것(드네톤)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프다르톤(φθαρτὸν)은 그리스도가 없는 육의 몸, 아프다르시안(ἀφθαρσίαν)은 죽지 않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이 심판의 부활은 마지막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 드네톤(θνητὸ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간다. 이는 영의 몸을 입고 낙원으로 들어간다.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들에게는 심판이 되지만,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져서 비록 육체가 있지만, 영의 몸은 낙원(천국)에 있는 것이다. 천국은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으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