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육학이 있다면 그것의 핵심은 '저항의 삶'이 인간의 자주성을 성장시키는 치명적 동력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학교는 당연히 저항의 경험을 교육적으로 성찰하고 뒷받침하는 곳이어야 한다.
30년전(1992년) 서른살 배이상헌이 전교조참실연수에서 발제하며 던졌던 중요한 문제의식이 바로 '자주성'을 강조하는 참실운동이 '학생과 학생집단의 저항의 본성을 통한 성장'에 대해 회피하고 외면하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순에 대한 질타였다.
학생자치활동은 자치로봇을 길러내고 제조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저항의 정치학이 넘실대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상상력, 그것이 진정한 학교혁신이며 참교육이다.
그것은 비단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진술이 아니다. 인간 일반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통찰이며 인간사회의 법칙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저항의 본성이 있으니, 인간은 당연히 저항의 권리를 갖는다.
저항의 권리는 삶의 본질이니 저항하지 않음은 자신의 본질을 억압하고 가둠으로써 우울증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우리들의 우울증의 절반 이상은 저항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음이니, 저항으로 생긴 트라우마를 치료한다고 말하는 것도 때론 모순적 진술이다.
오히려 저항함으로써 비로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