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역사의 길
비봉산의 강이식 장군(1)
비봉산 자락에 대봉문이 있고 그 안에 봉산사가 있다.
이 봉산사에는 진주강씨(姜氏)의 시조(始祖)인 고구려병마도원수(高句麗兵馬都元帥) 강이식(姜以式)장군의 영정이 있고 사적비가 있다.
강이식 장군은 본래 수나라의 장군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구려로 망명하여 598년에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병마원수(兵馬元帥)가 되어 5만의 정병을 이끌고 출전하여 수나라와 싸워 대승리를 이룬 장군이다.
왜 강이식 장군은 수나라를 떠나 고구려로 왔을까?
1.수양제는
중국의 수(隨)나라는 수문제(隋文帝)가 세운 나라이고 2대 황제가 수양제(隋煬帝 569년-618년 4월 11일)로 수문제의 차남인 양광(煬廣)이다. 그는 604년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갖은 악정과 무리한 대외 원정 등으로 수백 년 만에 탄생한 통일 왕조이자 망하기 힘든 완벽한 구조를 지닌 왕조 수나라 멸망으로 이끈 황제다.
2.수양제의 어린시절
수양제(隋煬帝)는 569년에 북주의 수국공(隨國公) 양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581년 아버지 양견이 북주(北周)의 어린 황제인 정제 우문천으로부터 제위를 선양(禪讓)받고 즉위해 수나라를 세웠다. 이 때 차남 양광은 13세였고 진왕(晉王)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589년 남조의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룩하는데 큰 공을 세워 태위의 벼슬을 받았다.
3.수양제의 야심
양광은 아버지인 문제가 자신의 진왕부로 행차할 때 미리 젊고 농염한 미희들을 모두 숨긴 채 자신은 여색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상기시키기 위해 늙고 추한 여자들이 시중을 들게 하고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거문고를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놓아두어 향락을 멀리한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양광이 문제와 사냥을 나갔을 때였다. 소나기가 내리자 시중이 그에게 비옷을 건네주니 그는 입기를 거절하고 말하기를 "병사들이 모두 비를 맞고 있는데, 나 혼자 어찌 비를 피하겠는가?" 하여 문제 부부는 양광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도록 했다.
태자인 형 양용을 물리치기 위해 태자와 사이가 나빴던 양소와 짜고 부모 앞에서 태자를 중상 모략하기를 수없이 하였고 나쁜 아들로 매도하기 위해 어머니 문헌황후가 태자를 찾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궁녀를 태자궁에 보내 술을 마시게 하는 등 사치스럽고 방탕하다는 이미지를 뒤집어씌우기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청렴하게 사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의관도 누추하게 입었으며 실상은 그러하지 않으면서도 여자를 탐하지 않는 연기를 하여 왕 부부의 눈을 멀게 하였다.
그 뿐 아니라 아버지인 문제가 병들었을 때 태자 양용이 문제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고 모함하자 문헌황후는 "양용이 태자 자리에 있으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라 판단해, 양용을 태자의 자리에서 쫓아내게 하고 600년 태자의 자리를 빼앗아 버렸다. 태자 자리에서 쫓겨나 방릉왕(房陵王)으로 강등당한 양용은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하였지만 황제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양광에 의해 막히자 궁궐 정원의 나무 위로 올라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광경을 본 문제는 오히려 방릉왕이 이젠 완전히 미쳤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4.태자가 된 수양제
이렇듯 양광은 갖가지의 속임수와 주변의 사람들을 이용하여 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양광이 황태자에 책봉될 때, 지진이 일어나고 광풍이 불어 세간에는 양광이 황제에 오르면 분명 수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돌기도 하였다. 2년 후 어머니 문헌황후가 사망하자 피눈물까지 흘리며 부황과 주변을 감동케 했으나 처소에 돌아가자마자 어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이제 어머니가 죽자 큰 짐을 덜었다면서 고기와 젓갈, 술을 먹고 마시며 즐기는 패륜 행위를 보였다.
문헌황후가 죽자 문제는 예전에 자신이 멸망시킨 진(陳)나라의 효선제 진욱의 14 황녀인 선화부인 진씨를 의지했고 604년에 문제가 중병에 걸려 장안의 인수궁 대보전에 눕게 되자 양광은 자신이 제위에 등극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간파하고, 왕을 지키고 있던 월국공 양소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 황제 사후의 일을 상의하자 양소가 서찰을 보냈으나 궁인의 실수로 문제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때 문제가 총애한 진귀인이 옷매무새가 헝클어진 모습으로 울면서 대보전으로 뛰어 들어오자 놀라 물으니 양광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말했다. 진노한 문제는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이 이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내가 황후의 말을 들은 것이 큰 실책이었구나!"라면서 시중을 들고 있는 유술에게 태자 양광을 폐출하고 양용을 다시 태자로 삼으라는 조서를 쓰도록 했다. 그러나 행동이 빠른 양광은 그날 밤에 즉시 병력을 동원하여 황궁을 에워싸고 유술 등의 대신들을 죽이고 인수궁을 장악, 대보전에서 장형을 시켜 아버지를 시해하였다. 그리고 형인 양용에게 조작된 유언장을 보내어 자결하라고 일렀으나 겁을 먹고 자결하지 않자, 자신의 근위장이었던 우문지급을 보내 죽였다.
5.황제의 자리에 오른 수양제
그후 양광은 금으로 만든 함을 선화부인에게 갖다 주었다. 선화부인과 궁녀들은 양광이 준 함 속에 독주가 들어 있는 줄 알고 혼비백산하여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 함에는 사랑을 상징하는 '동심결(정혼이 이루어진 증거로 신랑 집에서 신붓집으로 예물을 보낼 때 쓰이는 매듭)이 있었다. 양광은 선화부인 진씨를 진귀비로 책봉하여 그녀를 정식으로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녀는 1년 후인 29세에 요절하고 만다. 이처럼 양광이 궁정 반란을 통하여 수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수양제이다.
*독백
온갖 자기 포장과 괴계로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제,
아버지 수문제가 이루어놓은 단단한 수나라를 빼앗아 한순간에 나라도 자신도 망하게 만드는 왕 수양제.
수양제(隋煬帝)의 놀음에 함께 하며 그의 수족이 되어 아첨하며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 자신의 길도 모르고 떠들었지만 역사는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들이 선택한 길은 어둠의 길이었다.
천륜(天倫)을 어기며 그것을 옳다고 따른다면 그는 반드시 하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에도 그런 길에서 큰소리치며 자만한 자가 어찌 한 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