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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 자손이, 전멸시켜서 주께 바쳐야 할 물건을 잘못 다루었다. 유다 지파에서,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전멸시켜서 주께 바쳐야 할 물건을 가져 갔기 때문에,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수7:1)
1 The Lord's command to Israel not to take from Jericho anything that was to be destroyed was not obeyed. A man named Achan disobeyed that order, and so the Lord was furious with the Israelites. (Achan was the son of Carmi and grandson of Zabdi, and belonged to the clan of Zerah, a part of the tribe of Judah.)
지난 수요일에도 요양원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에 들어갈 때 저는 마스크를 썼는데 어르신들의 질병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전쟁의 위험
경제의 위험
자동차 위험.......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급의 그의 백성을 구해 주셨습니다.
열 번의 기적을 통해 바로와 그 군대의 위험에서 구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마실 물도 없는 사막길의 위험 속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의 위험과 낮의 위험에서 그들을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여리고의 칼과 활의 위험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당황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7.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8.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9.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수1:7-9)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 와도 당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그 길이 순조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지적입니다.
오른 쪽 편으로 혹은 왼 쪽 편으로 치우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읽고 공부하고 외우라는 것입니다.
또 창세기부터 공책에 쓰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리고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거든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을 전멸하여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칠일 동안 침묵하며 성을 돌 것이었습니다.
첫째 날 백성들은 그 성을 말없이 한 바퀴 돌았습니다.
하지만 성을 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잡했습니다.
이런 전쟁을 본 적이 있어?
이런 작전을 생각이나 해 보았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성 위에 있는 가나안 군인들도 성 밑을 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를 기이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지도자 여호수아도 이상한 전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첫날 백성들이 성을 도는 중에 여리고의 군인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날벼락을 맞더니 팩 꼬꾸라졌다는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둘째 날은 성을 두 바퀴 돌았습니다.
두 배로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두 배로 불안했습니다.
군인 한 사람이 실수로 활시위를 당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성 위의 군인의 손에서 칼 한 자루가 비무장의 이스라엘 사람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경우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셋째 날은 세 배로
넷째 날은 네 배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칠 일이 되었을 때 그 성이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그제야 승리를 경험하고 나서 그들은 사기충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이셨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 든든한 성이 이렇게 힘없이 무너질 줄이야!
칼 한 번 휘두른 적이 없는데!
우리나라가 히딩크를 통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던 경험은 저의 사고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 경험 후에 저는 어떤 유럽팀이 와도 까짓거 우리 한국 팀도 덤벼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도 이런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큰 성도 무너졌는데 아이 성은 작다 보니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했던 아이 성의 전쟁에서 그들은 완전히 패했던 것입니다.
생각도 못 했던 패배였습니다.
무서워 떨던 곳에서는 대승을 했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곳에서 패한 것입니다.
그 패배는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그 땅의 백성들과 전쟁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9. 가나안 사람과 그 땅에 사는 모든 주민이 이 소식을 듣고 우리를 에워싸고, 이 땅에서 우리의 이름을 없애 버릴 터인데, 주께서는 주의 위대한 명성을 어떻게 지키시겠습니까?“
9 The Canaanites and everyone else in the country will hear about it. They will surround us and kill every one of us! And then what will you do to protect your honor?”(수7:9)
이제 시작된 전쟁인데 아이 성의 패배로 앞날이 깜깜하게 된 것입니다.
이 패배는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 패배의 원인을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전멸시켜서 주께 바쳐야 할 물건을 잘못 다루었다. 유다 지파에서,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전멸시켜서 주께 바쳐야 할 물건을 가져 갔기 때문에,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
1 The Lord's command to Israel not to take from Jericho anything that was to be destroyed was not obeyed. A man named Achan disobeyed that order, and so the Lord was furious with the Israelites. (Achan was the son of Carmi and grandson of Zabdi, and belonged to the clan of Zerah, a part of the tribe of Judah.)
TV에서 아프리카의 누우떼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멋진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힘찬 발로 초원을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싸울 줄 모르는 초식 동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서 풀을 뜯을 때도 사방을 경계했습니다.
불쑥 튀어나온 사자에게 제 새끼가 잡아먹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런 불행한 일들이 그들에게 수시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재수 없는 한 마리가 사자에게 목이 물려 끌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그 한 마리를 뒤로 두고 누우떼가 도망해야 했습니다.
누우떼가 경계를 잘하는 경우 용케 배고픈 사자를 피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누우떼들은 이 쪽 언덕의 풀을 다 먹으면 풀을 찾아서 강을 건너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강을 건널 때 물속에 숨어있던 악어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우두머리 누우는 이번에는 강 속의 악어를 살핀 후에 누우떼를 인도했습니다.
우두머리의 안전하다는 신호를 따라 떼 지어 강을 건넙니다.
위기감에 그들은 정신없이 강을 건넙니다.
그런데 강을 건너고 보니 강가에 수십 마리의 누우떼가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급히 서두르다가 동료의 발에 밟혀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미가 제 새끼를 발로 밟은 것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그들은 사자가 아닌 제 어미나 형제를 위험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를 경계한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엉뚱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마리의 죽음을 피해 강을 건너다가 형제들의 발에 떼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강을 건널 때면 번번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 형제에게 밟혀 죽는 누우떼가 한 해에 한 7,000여 마리가 된다고 합니다.
아이 전쟁의 전까지 그들은 그들의 적이 애굽 땅의 바로인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물도 없는 사막길이 위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나안에 이르러서는 성벽 위에 칼과 활을 들고 서 있는 여리고의 군인들이 그들의 위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아이의 적들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을 치르고 발견한 것입니다.
본인들의 숨통을 제 발로 밟고 선 것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형제 아간 때문에 공동체가 위험을 당했던 것입니다.
아이의 전쟁을 통해 그 동안 그들이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도 일본놈들보다 더 악한 적은 제 나라 왕 선조였습니다.
또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고위 관리 원균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일본놈들만이 적인 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조왕이 저만 살려고 백성을 두고 도망을 갔는데 백성들은 일본놈 군인들 보라고 이정표를 세워 주었다는 것입니다.
“한 시 정각에 선조가 이쪽으로 지나갔음.”
“검찰 총장과 감사 원장이 뒤따라갔음.”
“주의! 국무총리는 저 길로 갔음.”
왜놈 말로 써두었다는 것입니다.
남한도 북한도 제 민족의 반역자는 최고 지도자들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성을 주장하는 총회의 총회장이 불륜으로 교회를 욕먹이고 있습니다.
우리 노회도 노회장 했던 사람이 미자립 교회들을 지원할 헌금을 갈라 먹다가 노회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일 후에도 여전히 노회 안에서 활개치고 다닙니다.
창피한 줄도 모릅니다.
교회도 담임 목사가 문제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 치명적인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치명타를 먹이는가?
꼭 이런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명령(The Lord's command to Israel)을 어기는 방식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전멸시켜서 주께 바쳐야 할 물건을 잘못 다루었다.
1 The Lord's command to Israel not to take from Jericho anything that was to be destroyed was not obeyed.
사람들은 자꾸 아간의 죄를 윤리적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도둑질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큰 오해를 만듭니다.
성경은 이 아이성의 패배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18. 너희는, 전멸시켜서 바치는 희생제물에 손을 댔다가 스스로 파멸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라. 너희가 전멸시켜서 바치는 그 제물을 가지면, 이스라엘 진은 너희 때문에 전멸할 것이다.
19. 모든 은이나 금, 놋이나 철로 만든 그릇은, 다 주께 바칠 것이므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의 금고에 넣도록 하여라."(수6:18,19)
하나님께서 먼저 주셨던 말씀을 어겨서 그 백성들이 패한 것입니다.
그 패배는 적이 아닌 그 백성들이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지적을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건과 평행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만드셨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 살게 하신 아담에게 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2:16,17)
에덴 안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외우기까지 하고는 그 말씀을 거역했던 것입니다.
물론 아간의 죄란 윤리적으로 설명해도 그럴듯합니다.
남몰래 보화를 묻어두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전에 치렀던 전쟁들에서는 노획한 물건을 서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전리품을 손대지 말라는 것은 여리고 성의 전투에서 특별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래서 전에 했던대로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덴의 사건은 윤리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이브에게 쌍욕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화가 난 나머지 칼부림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과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오히려 에덴의 부부는 금슬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 에덴의 부부가 사이좋게 그것을 나누어 먹었다가 인류에 죽음이 온 것입니다.
윤리적인 문제를 찾을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죄가 성립되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먼저 이 과일에 대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죄란 하나님 말씀의 순종 여부일 뿐입니다.
그것은 윤리적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말씀의 순종 여부입니다.
만약에 그 과일이 사과였다면 사과 먹는 것이 죽을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추였다면 사과는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대추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땅콩이면 땅콩을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의 여부가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요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에덴에서는 사람의 식욕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셈입니다.
그리고 여리고에서는 사람의 소유욕 때문이었습니다.
아간이 소유욕을 챙기다가 말씀을 어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소유 주장을 잘 합니다.
하지만 제 목숨을 걸고 전쟁해서 노략한 것이라도 그것을 제 소유로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불상사는 아간이 주께 바쳐야 할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실은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잊으셨나요?
1. 이스라엘 자손이, 전멸시켜서 주께 바쳐야 할 물건을
1 The Lord's command to Israel not to take from Jericho anything that was to be destroyed
이런 소유의 공적이 개념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자본주의라나 그래서 소유가 자본가의 권리라나?
그것은 세상 법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제 소유를 포기하는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 법은 50년이 되면 소유를 원상태로 돌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주장할 수 있는 제 소유란 없습니다.
제 몸까지 흙으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시장경제가 사적 소유의 정당성을 주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정상적 상거래를 통해 얻은 것이라 해도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은 죄입니다.
내 창고를 넓히다가 오늘 저녁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8.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사5:8)
세상의 자랑은 하나님의 소유를 부인하는 죄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이런 소유에 대한 의지를 꺽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다시 여리고 전쟁을 생각해 봅시다.
세상은 전쟁을 전쟁 무기로 쉽게 설명합니다.
탱크 비행기 등등
그런데 여리고 전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날 사람들은 신음하듯이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성을 돌았습니다.
완전 무장을 한 군인들이 바로 머리 위에 칼과 활을 들고 서 있는데 비무장을 하고 성을 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카로운 칼날로 햇살이 반사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독침을 단 화살이 들려있었습니다.
그 손에서 단 한발이라도 잘못 튕겨 나갔더라면 이스라엘 한 사람이 팩 꼬꾸라지고 대열은 완전히 무너졌을 것입니다.
또 갑자기 여리고의 장군이 돌격 앞으로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성을 돌 때 사람들은 하나님 하나님 했을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전쟁 행위는 실은 말씀에 제 목숨을 건 신앙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튿날은 두 배로 간절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어제 성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곱날을 성을 돌았던 것입니다.
일곱째 날 일곱 나팔을 불고 여호와께서 이 성을 주셨다는 외침을 외치기 일 초 전에는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일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을 빙빙 돌면서 죽자사자 자신과 신앙의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여리고의 전쟁은 그렇게 신앙으로 거둔 승리였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상대인 아이를 만났는데 그들이 첫 번째로 한 일은 상대의 군인 수를 세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이해가 되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 머리로 작전 계획을 짜는 것이었습니다.
비무장으로 성 밑을 빙빙 도는 그런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베델 동쪽 벳아웬 곁에 있는 아이 성으로 사람들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고 지시하니,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 성을 정탐하였다.
3.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돌아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천 명이나 삼천 명만 올라가도 아이 성을 칠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성을 치느라고 다 수고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4. 백성 가운데서 약 삼천 명이 그리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아이 성 사람에게 패하여 도망쳐 왔다.(수7:2-4)
완벽한 작전 계획이었는데 여지없이 패하고 만 것입니다.
이 아이 성의 패배를 두고 교만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교만은 그들에게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이 성은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수의 군인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의 패배 원인을 성경은 전혀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를 칼과 창과 화살에서 찾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8. 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와서, 르비딤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을 공격하였다.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장정들을 뽑아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다."
10. 여호수아는, 모세가 그에게 말한 대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11. 모세가 그의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더욱 우세하고, 그가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더욱 우세하였다.
12. 모세가 피곤하여 팔을 들고 있을 수 없게 되니,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 와서 모세를 앉게 하고, 그들이 각각 그 양쪽에 서서 그의 팔을 붙들어 올렸다. 해가 질 때까지 그가 팔을 내리지 않았다.
13.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 백성을 칼로 무찔렀다.(출17:8-13)
하나님의 전쟁은 칼과 창으로 싸우는 사람에 의해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전쟁이란 결사적인 신앙 행위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머리를 굴릴 수 없는 강한 적을 만났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불렀습니다.
그렇게 전쟁이 신앙 행위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충분히 머리를 굴릴 수 있는 만만한 상대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에게 전쟁은 치열한 신앙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쟁이 신앙과 분리 될 수 없듯이 정치란 종교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정치 행위가 곧 신앙행위라는 것입니다.
정치가 사람이 생명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이 종교와 서로 분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재 정치 현실이 사람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종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정치가 곧 신앙 행위라고 하니 종교를 통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나부랭이가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때 기독교는 그것을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행위인 것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가 신앙 행위와 분리될 수 없다고 했을 때 돈 벌어서 부자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의 폭력의 바퀴에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종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명을 다루지 않는다면 종교와 경제의 분리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위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동족 300만이 아사를 당하는데 한 쪽에서 그것으로 막걸리를 담아 먹는 것은 죄입니다.
남이 되었든지 북이 되었든지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적입니다.
나는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잘 압니다.
여러분도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며 정의로운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아이의 전쟁의 패배의 중요한 원인은 바로 그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아간 한 사람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 한 사람들이 역사의 색깔을 정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첫 사람 한 사람이 죄를 범해서 모든 인류가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 예수님을 인해 인류에게 생명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17.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지배할 것이 아닙니까?(롬5:1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인 열 사람을 언급했습니다.
그 열 사람으로 인해서 한 도시가 구원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열 사람을 인해서 조카 롯이 사는 소돔을 멸하지 마시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을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리셨던 것입니다.
세상 역사조차 그렇습니다.
한 사람 이 순신이 나라를 구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우리 한국의 경제 발전을 말할 때 한 사람을 언급합니다.
박정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한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말할 때 한 사람 김재규를 말해야 합니다.
그 한 사람이 독재자를 죽임으로 굴러가는 군사 독재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했던 것입니다.
현재에도 그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 정훈 대령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불법적인 국가 권력의 개입을 막았습니다.
그의 고백대로 그는 얼마나 무서울까!
전 두환의 군사 반란을 반대했던 장 태완은 그 하수인들에 의해 그의 아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이 하수인들을 잡아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육사에 대령의 아들이 다닌다고 하니 심장을 멎게 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의 편에 한 사람이 선 것입니다.
그 아들이 의문사했다는 소식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 권력이 마약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아니면 국가 권력이 이렇게 이 일에 조직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 수레가 한 사람쯤은 그대로 갈리고 지나가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백 해룡 경정 한 사람이 죽음을 각오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최 재형 목사님이 홀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사람들을 통해서 죽음의 세력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한 사람 아간이 죄를 범해서 그 공동체가 위기를 만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가나안과 전쟁에서 승리의 보장을 위해 중요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외부의 적이 아닙니다.
내부를 정화하신 것입니다.
24. 여호수아는, 세라의 아들 아간과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그에게 딸린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갔으며, 온 이스라엘 백성도 그와 함께 갔다.
25. 여호수아가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느냐? 오늘 주께서 너를 괴롭히실 것이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돌로 쳐서 죽이고, 남은 가족과 재산도 모두 돌로 치고 불살랐다.(수7:24,25)
부정의를 돌로 치고 불로 살라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자정의 역사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 정화의 그 자리에는 돌무더기를 쌓아두어야 합니다.
즉 역사를 후손 대대로 기억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부의 적 때문에 패배하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역사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높이 쌓아두고 후손 대대로 보고 확인하라는 큰 돌무더기입니다.
26. 그들은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았는데, 그것이 오늘까지 있다. 이렇게 하고 나서야 주께서 맹렬한 진노를 거두셨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도 아골 골짜기라고 부른다.(수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