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허균(許筠)생년1569년(선조 2)몰년1618년(광해군 10)자단보(端甫)호교산(蛟山), 성소(惺所)본관양천(陽川)특기사항권필(權韠), 이안눌(李安訥), 조위한(趙緯韓), 이재영(李再榮), 정응운(鄭應運), 조찬한(趙纘韓), 기윤헌(奇允獻), 임숙영(任叔英) 등과 교유
惺所覆瓿稿卷之二十五○說部四 / 惺叟詩話 / [尹勉見山中老翁詠梳詩]
尹斯文勉奉使湖南。造一山中有草屋。一老翁樹下槃博。几有一卷。展看則就奪之曰。鄙作不堪入眼。僅見首題詠梳詩曰。木梳梳了竹梳梳。梳却千回蝨已除。安得大梳長萬丈。盡梳黔首蝨無餘。問其名。不對而遯去。或言全州進士兪好仁也。
허균(許筠) | 1569 | 1618 | 양천(陽川) | 단보(端甫) | 교산(蛟山), 성소(惺所), 학산(鶴山), 백월거사(白月居士) | 허엽(許曄) |
성소부부고 제26권 / 부록 1 ○ 학산초담 / 학산초담(鶴山樵談)
근세 어떤 선비가 지리산(智異山)에 유람갔는데, 한 외진 숲에 이르니, 폭포는 이리저리 흐르고 푸른 대 우거진 가운데 한 띳집이 있는데,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섰다가, 선비를 보고는 몹시 반기며 손을 맞아 솔 아래 앉혀 놓고 막걸리에 나물국으로 대접하고는 말하기를,
“이 늙은 것이 평소에 머리 빗기를 좋아하여 하루에 꼭 천 번은 빗어내린다오.”
하면서 쪽지를 내어 놓는데, 그 속에 든 것이 바로 머리를 빗는다는
소두시(梳頭詩)였다.
얼레빗으로 솰솰 가려 낸 다음 참빗으로 훑되 / 木梳梳了竹梳梳
천 번이나 훑어내니 이는 벌써 없어졌네 / 梳却千廻蝨已除
어떻게 하면 만 길 되는 큰 빗 구하여 / 安得大梳長萬丈
백성의 이 모조리 훑어 없앨꼬 / 盡梳黔首蝨無餘
선비가 자신도 모르게 뜰 아래 내려가 절하고 그 이름을 물으니 숨기고 알려 주지 않았다. 이튿날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는 두세 사람이 같이 다시 찾아가보니 집은 그대로 있었으나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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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집(於于集) 유몽인(柳夢寅)생년1559년(명종 14)몰년1623년(인조 1)자응문(應文)호어우당(於于堂), 간재(艮齋), 묵호자(默好子)본관흥양(興陽)시호의정(義貞)특기사항성혼(成渾)의 문인. 이항복(李恒福), 이정귀(李廷龜) 등과 교유
於于集卷之二 / 詩○拾遺錄 / 詠梳 拾遺錄
木梳梳了竹梳梳。亂髮初分蝨自除。安得大梳千萬尺。一梳黔首蝨無餘。
어우집 제2권 / 시(詩)○습유록(拾遺錄) / 빗을 읊다〈습유록〉〔詠梳 拾遺錄〕
얼레빗으로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 / 木梳梳了竹梳梳
어지럽던 머리카락 정리되고 이는 절로 없어졌네 / 亂髮初分蝨自除
어떻게 하면 천만 자 되는 큰 빗을 얻어 / 安得大梳千萬尺
한 번 빗질로 백성의 이를 남김없이 쓸어낼까 / 一梳黔首蝨無餘
[주-D001] 빗을 읊다 : 허균(許筠)의 《성수시화(惺叟詩話)》에는 지리산에 사는 이름 모를 노인의 작으로 되어 있다. 《惺所覆瓿稿 卷25》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장유승 (역)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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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인(劉好仁) | 1502 | 1584 | 강릉(江陵) | 극기(克己) | | 유선보(劉善寶) |
1 | 예양서원(汭陽書院) |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장흥읍 예양리에 있다. 1620년(광해군12)에 이색(李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8년(현종9)에는 신잠(申潛)과 김광원(金光遠)을, 1681년(숙종7)에는 남효온을, 1683년에는 유호인(劉好仁)을 추가 배향하였다. | 추강집(秋江集) |
2 | 유호인(劉好仁) | 1502~1584. 본관은 강릉, 자는 극기(克己), 호는 천방(天放) 또는 산당(山堂)이다. 현재 장흥군 장흥읍 예양리 소재 예양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 미암집(眉巖集) |
유호인(劉好仁)
[진사] 중종(中宗) 29년(153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二等) 6위(11/100)
자(字) 극기(克己)
본인본관 낙안(樂安)
거주지 장흥(長興)
선발인원 100명 [一等5・二等25・三等70]
전력 유학(幼學)
부모구존 ○○하(○○下)
[부(父)]
성명 : 유선보(劉善寶)
관직 : 학생(學生)
[출전]
『가정13년갑오윤2월초2일생원진사방(嘉靖十三年甲午閏二月初二日生員進士榜)』(하버드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K 2291.7 1746(1534)])
윤면(尹勉)
[문과] 선조(宣祖) 9년(1576) 병자(丙子) 별시(別試) 병과(丙科) 3위(06/19)
자(字) 치중(致仲)
생년 계묘(癸卯) 1543년 (중종 38)
합격연령 34세
본인본관 파평(坡平)
거주지 한성([京])【補】(주1)
[관련정보]
[생원] 선조(宣祖) 3년(1570)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二等) 23위(28/100)
[이력사항]
선발인원 19명 [甲1・乙2・丙16]
전력 생원(生員)
관직 부사(府使)
문과시제 표(表):의당사문박사한유진원화성덕시(擬唐四門愽士韓愈進元和聖德詩)
타과 1570년(선조 3)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2등(二等) 23위
[부(父)]
성명 : 윤안민(尹安民)
[조부(祖父)]
성명 : 윤감(尹瑊)
[증조부(曾祖父)]
성명 : 윤여림(尹汝霖)
[외조부(外祖父)]
성명 : 강세준(姜世準)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
성명 : 민사도(閔思道)
본관 : 미상(未詳)
[안항(鴈行)]
형(兄) : 윤적(尹勣)【補】(주2)
[가족과거]
자(子) : 윤지남(尹芝男)[文]
[주 1] 거주지 : 『융경4년경오2월18일사마방목(隆慶四年庚午二月十八日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2]) 내의 합격 기록을 참고하여 거주지를 추가.
[주 2] 안항 : 『융경4년경오2월18일사마방목(隆慶四年庚午二月十八日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2]) 내의 합격 기록을 참고하여 안항을 추가.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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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면(尹勉)
[생원] 선조(宣祖) 3년(1570)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二等) 23위(28/100)
자(字) 치중(致仲)
생년 계묘(癸卯) 1543년 (중종 38)
합격연령 28세
본인본관 파평(坡平)
거주지 한성([京])
[관련정보]
[문과] 선조(宣祖) 9년(1576) 병자(丙子) 별시(別試) 병과(丙科) 3위(06/19)
[이력사항]
선발인원 100명 [一等5・二等25・三等70]
전력 유학(幼學)
타과 1576년(선조 9) 병자(丙子) 별시(別試) 문과(文科) 병과(丙科) 3위
부모구존 엄시하(嚴侍下)
[부(父)]
성명 : 윤안민(尹安民)
관서 : 충무위(忠武衛)
품계 : 어모장군(禦侮將軍)
관직 : 행충좌위부사과(行忠佐衛副司果)
[처부(妻父)]
성명 : 민사도(閔思道)【補】(주1)
본관 : 미상(未詳)
[안항(鴈行)]
형(兄) : 윤적(尹勣)
[주 1] 처부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내의 급제 기록을 참고하여 처부를 추가.
[출전]
『융경4년경오2월18일사마방목(隆慶四年庚午二月十八日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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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강집(秋江集) 남효온(南孝溫)생년1454년(단종 2)몰년1492년(성종 23)자백공(伯恭)호추강거사(秋江居士), 행우(杏雨)본관의령(宜寧)시호문청(文淸)특기사항김종직(金宗直)의 문인. 김굉필(金宏弼)ㆍ정여창(鄭汝昌)ㆍ김시습(金時習) 등과 교유.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秋江先生文集卷之七 / 雜著 / 冷話
成化,弘治年間。有一書生姓韓。讀書於永安道山寺。有藍衣老夫乞米於村野。遇書生曰。措大苦讀何書。僕平生丏食足矣。仍書一絶云。懶倚紗囱春日遲。紅顏空老落花時。世間萬事皆如此。叩角謳歌誰得知。東人嘗云。我邦褊小。有才必達。豈有滄海遺珠之嘆。今吾所聞如是。則吾所未聞如老夫者。未知幾人在野。幾人在市乎。韓學而篤論君子。必不妄語者。爲余道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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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촬요(攷事撮要) : 어숙권(魚叔權) 등이 1554년(명종9) 명종의 명을 받아 《제왕역년기(帝王曆年記)》 및 《요집(要集)》 등을 참조하여 편찬한 책으로, 사대교린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대동야승 > 패관잡기 > 패관잡기 제3권
충암이 시은(市隱) 박계강(朴繼姜)에게 절구 두 수를 주었는데, 그 첫째 시에 이르기를,
저의 시상이 호산으로 들어가서 / 看渠詩思入湖山
붉은 티끌 열 길을 완강하게 눌렀다 / 剛壓紅塵十丈頑
크게 숨는 것은 원래가 굽은 길이 아니다 / 大隱從來非曲徑
저자 가운데 병 속 일월이 또한 신선의 동류이다 / 市中壺日亦仙班
하였고, 그 둘째 시에는
나른하게 비단 창문에 기대니 봄날이 더디도다 / 懶倚紗窓春日遲
붉은 얼굴은 부질없이 꽃 떨어지는 때에 늙었구나 / 紅顔空老落花時
세상의 만 가지 일이 모두 이와 같도다 / 世間萬事皆如此
뿔을 두드리며 미친 듯이 노래하는 것을 누가 알리 / 叩角狂歌誰得知
하였다. 상고하건대, 아래 글은 곧 홍치(弘治) 연간에 남의노인(藍衣老人)이 한생(韓生)에게 준 시로 그 사실이 《추강냉화》에 보인다. 이는 필시 박계강(朴繼姜)이란 자가 두루마리를 가지고 와서 시를 구하매, 공이 시의 말뜻이 꼭 박계강과 합하므로 장난 삼아 쓴 것인가보다. 내가 젊었을 때에 서해에 가려고 하는데, 채운자(採雲子)가 술을 가지고 와서 전별하면서 즉석에서 사(詞)를 짓기를
산 속이 고요하고 쓸쓸한데 / 山之中兮寂寂
그대는 돌아가도 나는 돌아가지 못한다 / 君歸兮我未歸
흐르는 시냇물은 그대의 마음을 씻어주는데 / 溪之流兮緇洗君心
낙양의 티끌은 나의 옷을 검게 물들이는구나 / 洛之塵兮緇我衣
하였다. 그 말이 그다지 고상하고 예스럽지는 못하나, 노련하고 완숙하여 반가웠다. 이때 채운자의 나이 겨우 2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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冲庵先生集年譜 下 / 附錄 / 諸家記述
沖庵嘗遊通川之叢石亭。題詩六首。後郡守毀其板。因而逸其二篇。嘗覽四佳詩話。金英憲之岱題詩義城官樓。爲一時膾炙。及樓火於兵。板隨以亡。後數十年。縣監吳迪莊之女發枉亂語。忽詠出金詩。以爲鬼物亦愛詩。使復傳於世。若通之爲郡。亦無鬼物之愛詩者。可惜也。出稗官雜記。下同。
沖庵贈市隱朴繼姜二絶句。其二曰。懶倚紗窓春日遲。紅顏空老落花時。世間萬事皆如此。叩角狂歌詩得知。按此乃弘治年藍衣老人 贈韓生之詩。事見秋江冷語。蓋必朴繼姜者手軸求詩。先生以詩詞意正合於朴。故戲題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