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황제를 암살하려는 귀신수
이튿날 위소보는 장원의 주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진근남 등과헤어져 북 경으로 갔다. 진근남은 말했다.
[소보, 귀이협 부부는 황제를 찔러 죽이려 하는데 우리와 상의해서 다 시 결정하기로 응낙했다. 너는 북경으로 돌아간 후 황제에게 알려 그가 방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위소보는 그렇지 않아도 그러한 뜻이 있었는데 사부에게 간파당하자 재 빨리 말했다.
[그야 물론이죠. 오랑캐들이 우리 한나라의 강산을 점거하고 있고 제가 비록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는 있지만, 이 모든 게 사부님의 명령을 받 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어찌 그를 위하겠습니까?] [그렇다. 네가 만약 솔직하지 못하게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한 노릇을 한다면 나는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위소보는 쌍아와 서천천 등을 데리고 장용과 조양동 등과 함께 모동주 를 압송하여 북경으로 돌아갔다. 그는 북경으로 돌아가게 되면 즉시 달 려가 강희를 만나려고 했다. (소황제는 나의 절친한 친구인데 어찌 그가 세 마리 자라의 손에 죽도 록 내버려둘 수가 있겠는가? 나는 궁으로 들어가 많은 시위들을 내세워 경계하고 지키도록 해야겠다. 그런데 나는 황제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미 사부와 했다. 대장부라면 신의를 지켜야 하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 마리 자라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가 막 문을 나서려는데 진근남이 이미 고지중과 마초홍 등을 데리고 들이닥쳤다.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당신네들은 이토록 빨리 오시는 거요?) 그러나 그는 억지로 환한 얼굴을 하고 잔치를 벌여서 접대를 했다. 얼 마 후 천지회의 군웅들이 차례로 도착하였다. 곧이어 목검성이 철배창 룡 유대흥, 요두사자 오립신, 성수거사 소강 일행을 데리고 왔다. 목왕 부의 사람들은 이미 북경에 있다가 소식을 듣고 일제히 모임에 참석하 러 온 것이었다. 사람들이 술과 밥을 먹고서도 다시 한참 동안 기다렸을 때 귀씨 집안의 세 사람이 왔다. 위소보는 다시 분부하여 따로 상을 차리도록 했으나 귀이낭이 먹고 왔다고 말했다. 귀종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저택이 매우 화려한 것을 보고 말했다.
[꼬마야, 너의 집 모양은 평서왕의 왕궁과 별로 차이가 없구나. 너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오삼계는 정말 너의 백부였구나.] [맞아, 오삼계는 바로 나의 아들놈이다. 불효막심한 자식이지.]
위소보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마디하고 싶은데 말을 하면 사부님께서 화를 내실 것 같아 말투를 바꾸었다.
[세 분께서 이미 식사를 하셨다면 모두 동쪽 객석으로 가셔서 차를 드 시도록 하시구려.]
사람들은 동쪽 객청으로 나갔다. 곧이어 차와 간식이 나왔고 위소보는 하인과 하녀들을 모조리 내보냈다. 진근남은 다시 십여 명의 무리들을 내보내 객청 주위와 지붕 위에서 지키도록 한 이후에야 문을 닫고 빗장 을 걸어 잠그고 큰일을 논하기에 이르렀다. 진근남은 먼저 귀씨 부부와 목왕부의 사람들을 인사시켰으며 오륙기의 일은 들먹이지 않았다. 귀씨 부부는 이미 은퇴한 지 오래되있지만 유대홍, 오립신 등은 그들을 우러 러보았던 터라 매우 공손하게 대했다. 귀이낭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 다.
[오삼계가 군사를 일으켜 호남과 사천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게 되었는데 군사의 기세가 무척 날카로워 파죽지세라 하오. 오삼계는 과거 오랑캐 에게 투항을 하여 대명나라의 천하를 오랑캐에게 넘겨준 바 있어 아주 커다란 죄를 지었다고 하겠으나 결국은 그 역시 한나라 사람이외다. 우 리 귀 둘째 나리의 의견을 말씀드리지요. 우리는 황궁으로 들어가 오랑 캐 황제를 죽여 오랑캐들로 하여금 대가리가 없어진 뱀으로 만들어 난 장판을 만들려는 것이오. 여러분들의 고견은 어떠하시오?]
목검성이 말했다.
[오랑캐 황제는 물론 죽여 마땅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오삼계란 간악한 도적에게 협조를 하믄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귀이낭은 말했다.
[오삼계가 목왕야를 죽였으니 목공자는 물론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겠 지요. 그러나 만주인과 한인을 분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오. 우리는 먼저 오랑캐들을 죽인 이후에 오삼계는 천천히 처치해도 늦지 않을 것 이외다.]
유대홍이 말했다.
[오삼계가 만약 군사를 일으켜서 승리한다면 그 자신이 바로 황제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었을 때 그를 다시 쳐부수기란 쉽지 않은 노릇입니 다. 이 후배의 견해는 우리가 먼저 오랑캐와 오삼계가 서로 죽고 죽이 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부지리를 얻자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후배는 지금 오랑캐 황제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합니다.]
그는 허연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나 귀씨 부부가 이미 명성을 떨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후배라 칭하였던 것이었다. 목왕부의 사람들 은 오삼계와 그야말로 바다처럼 깊은 원한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오 삼계가 민저 망하는 꼴을 보아야만 통쾌하게 여길 정도였다. 귀이낭은 말했다.
[오삼계가 내걸고 있는 것은 명나라를 일으키고 오랑캐를 토벌한다는 깃발이며 주삼 태자를 보좌하여 등극시키겠다는 뜻이외다. 여기에 오삼 계가 군사를 일으킨 격문(檄文)이 있으니 모두들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품에서 커다란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진근남은 즉시 이 를 읽어내려갔다.
[원래 산해관을 지키던 총병이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성지를 받들어 천하의 수륙군사를 거느린 대원수이며, 명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오랑캐 를 토벌하겠다는 대장군 오(吳)는 천하 문무관들과 백성들에게 격문을 돌려 알리노라. 본진(本鎭)은 대대로 대명나라의 은혜를 받았으며 산해 관을 지키고 있었다....]
진근남은 몇 마디 읽고 나서 다시 그것을 해석했다. 그리고 첫번째의 한 부분을 설명한 이후 다시 읽어갔다. 아래는 이자성이 어떻게 북경을 깨뜨렸고 명나라의 숭정 황제가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는 군부(君父)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부득이 청나라에게 군사를 빌어 도적을 쳐부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 다.
[다행히 커다란 역적을 토벌한 우리는 대통을 이을 황제를 세웠다. 본 인은 만주 오랑캐를 이 땅에서 몰아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교활하기 이 를 데 없는 오랑캐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맹약을 저버려 우리의 안이 허술한 틈을 타서 연경(燕京)을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선대 명나라의 천하를 가로챘으며 우리 중국의 제도를 바꾸어 놓았다. 나중에서야 본 인은 호랑이를 물리치려고 이리를 끌어들인 잘못과 장작을 안고 불을 끄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소.] [후에 만주 사람들에게 군사를 빌린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애석하게도 때가 늦고 말았지요.]
귀이낭의 말에 유대홍은 싸늘히 코웃음을 쳤다.
[이 간악한 도적은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거짓이외 다.]
귀이낭은 말했다.
[진 총타주, 계속해서 읽어내려가도록 하시오.] [예!]
그는 계속해서 읽었다.
[본인은 그야말로 양심에 찔려 피를 토할 지경이며 후희가 막급이었소. 그리하여 북으로 창을 되돌려 잃었던 땅을 되찾고 오랑캐들을 소탕하려 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선황의 세 번째 태자를 만나게 되었소이다. 태자 는 겨우 세 살 난 아이였는데 허벅지에다 문신을 남겨서는 어떤 사람에 게 맡겨져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몸으로서 종묘 사직이 이 사람에게 걸 려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소. 그리하여 잠시 은인자중(隱忍自重)하게 되었고 때를 기다리면서 장수를 뽑고 군사를 연마하여 은밀히 나라를 되찾고자 애써 온 것이 벌써 삼십 년이나 되었소.]
유대홍은 거기까지 듣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개방귀 같은 소리다! 개방귀 같은 소리야! 이 이리의 심장에 개의 간 을 지닌, 천지에서 용납받지 못할 간악한 도적이 만약에 정말 반푼어치 라도 명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째서 태자를 죽였더란 말 이요? 이 일은 천하가 모두 알고 있는 일인데 어찌 억지를 쓴단 말이 요?]
군웅들은 유대홍이 수염과 눈마저 곤두세울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을 보 고 하나같이 그의 충성심과 의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삼계가 십이 년 전에 곤명의 저자거리에서 영력 황제 부자를 교살한 사실은 아무리 교활한 변명을 하더라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 다.
[유형의 말씀이 옳습니다. 오삼계는 결코 충신의사가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랑캐황제를 찔러 죽이고자 하는 것은 청나라를 쳐부수고 무너뜨려 명나라를 되찾겠다는 것이지 결코 오삼계를 도와 황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외다.]
귀이낭의 말에 이어 진근남은 말했다.
[내가 이 격문을 다 읽고 난 후에 차근차근 의논하도록 합시다.]
그는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되어 오랑캐의 우두머리가 무도하게 날뛰고, 간악하고 사악한 자들이 날뛰게 되었으머, 도의를 지키자는 선비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 다시피 하였소. 그리하여 소인배들이 높은 벼슬에 올라....]
여기까지 읽고 위소보를 향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소보, 이 한마디는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위소보는 그 격문이 문체로 쓰여진 글이라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삼계가 그를 들먹였다는 말을 듣고 놀람과 기쁨을 느끼며 재빨리 물었다.
[사부님, 그가 뭐라고 했죠? 그 녀석은 저에게 좋은 말을 하지는 않았 을 것입니다.] [학문과 도덕이 있는 좋은 사람들은 그저 깨알 같이 작은 벼슬을 하고, 전혀 재간이 없는 하찮은 녀석들이 대관이 되었다고 했다. 이것이야말 로 너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느냐?] [그 자신은요? 그의 벼슬은 나보다 더 큰데 그렇다면 그는 나보다 더 쓸데없는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말했다.
[맞았소! 오랑캐 조정의 관직 가운데 평서친왕보다 더 높은 것은 없지 요.]
격문의 최후 한 토막은 다음과.같았다.
[산도 슬퍼하고 물도 근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며 부인들은 울부짖고 자 식들은 흐느끼고 있소. 위로는 하늘이 노하여 혜성이 떨어지고 아래로 는 땅이 원한을 지녀 산이 무너지는 듯한 이 마당에 본인은 하늘을 우 러러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난폭한 자들을 물리쳐서 백성을 구하여 하늘 에 순종하고 사람의 뜻을 따르기로 날을 정하게 됐소. 그리하여 점을 쳐 본 결과 갑인년 정월 원단(元旦:초하루)에 태자를 삼가 모시고 천지 신명께 제사를 올려 대보(大寶)에 오르시도록 했음을 널리 알리는 바이 오. 건원주자(建元周咨).]
진근남은 읽고 난 후 설명했다. 사람들 가운데 진근남과 목검성 두 사 람 이외에는 글공부를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같이 이 격문은 마 치 바른 말만 하고 있는 듯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 는지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목검성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말 했다.
[진 총타주, 그가 주삼(朱三) 태자를 모시고 대보에 오르게 되었다면 어째서 대명나라의 국호를 되찾지 않고 주(周)라는 국호로 바꾸어야 한 단 말이오? 이 가운데 실로 커다란 빈틈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소. 더군다나 주삼 태자인가 하는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소? 그런 인물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밑도끝도없이 불 쑥 튀어나왔소이다. 십중팔구 오삼계는 철 모르는 어린애를 끌어다가 주삼 태자라고 말하면서 인심을 불러 모으고 있지만 기실은 그를 꼭두 각시처럼 조송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구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귀이낭은 말했다.
[오삼계가 주삼 태자를 괴뢰로 삼았다는 것은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일 이지요. 하지만 주삼 태자는 어린아이가 아니요. 선황이 서거하신 지 이미 삼십 년이 지났으니 만약 주삼 태자가 진짜라면 적어도 삼십여 세 는 되었을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삼십여 세라도 철모르는 꼬마가 있는 법이지요, 혜헤.]
그는 귀종을 한번 바라보았다. 군웅들 가운데 몇 사람들은 참을 수 없 어 웃음을 터뜨렸다. 귀이낭은 눈썹을 곤두세우며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때 위소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 다. 자기의 귀여운 아들은 삼십여 세나 되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철모르 는 꼬마가 아닌가? 그녀는 그만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들 한참 동안 상의를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강희의 손을 빌어서 오삼계를 먼저 제거한 후에 나중에 나라를 되찾자고 했고, 어떤 사람들 은 오삼계가 간악하기는 하나 그 역시 한나라 사람이니 마땅히 그를 도 와 오랑캐를 쫓아내고 한나라 강산을 되찾은 후에 그를 제거해야 한다 고 했다. 이론이 분분했으며 어떤 결론도 내리기 어려웠다. 걸국 모두 들 진근남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서 반드시 어떠한 고견이 나오리라고 기대했다.
[우리들은 천하를 중시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강희를 죽인다면 오삼계 의 세럭은 물론 크게 강해지겠으나 대만의 정왕야께서 바다를 건너 서 쪽으로 정벌을 나서게 될 것이고 군사들을 복건성과 절강성으로 상륙시 켜 곧장 강소성으로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때 오삼계가 청나라 조정을 무찌르고 황제가 되려고 해도, 정왕야의 병력에다 다시 목왕부와 천지 회, 그리고 각처의 영웅들이 힘을 합쳐서 그를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 다.]
소강은 냉랭히 말했다.
[진 총타주의 그와 같은 말씀은 대만의 정왕야를 위해 하시는 말씀이 아닌지요?]
진근남은 늠름하게 말했다.
[정왕야의 충성은 천하에 알려져 있는데 소형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오?]
소강은 말했다.
[진 총타주가 충성스럽고 용감하며 의협심이 깊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탄복하고 있소이다. 그러나 정왕야 곁에는 간사하고 비열한 소인이 적 지 않게 있는 것도 사실이오.]
위소보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도 맞습니다. 예를 들자면 일검무혈 풍석범, 그리고 정왕야의 작 은아들 정극상도 모두 좋은 사람이 아넙니다.]
진근남은 그가 자기의 말에 찬동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약간 의아한 생각 이 들었다.그러나 그의 말도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귀이낭은 말했다.
[오랑캐를 쫓아내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대사입니다. 누가 황제가 되든 우리가 관계할 필요가 없으나 청나라를 무찌르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 야 할 일이니 명나라를 되찾고 못 찾는 것은 천천히 상의하도록 합시 다.대명나라의 숭정 황제만 해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지요.]
진근남과 목왕부의 군웅들은 언제나 주씨의 명나라에 충성하고 있던 터 라 이러한 말을 듣자 모두 안색이 변했다. 목검성은 말했다.
[우리가 주씨 자손을 옹호하여 그 자리를 되찾도록 하지 않는다면 설마 하니 오삼계란 대간적을 옹위해야 한다는 말이요?]
귀종이 갑자기 말했다.
[오삼계는 매우 좋은 사람이지요. 그는 나에게 흰 호랑이 가죽으로 만 든 옷을 선물했소. 그대들은 본 적이 있소?]
그는 저고리를 들추더니 흰 호랑이 가죽을 보여 주며 매우 의기양양한 태도였다. 귀이낭이 그를 나무랐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일 때가 아니다.]
소강은 냉소했다.
[귀 도련님의 눈에는 가죽으로 만든 마고자가 우리 한나라의 강산보다 도 중요한 모양이군요?]
귀이낭은 진노하여 말했다.
[얘야, 그것을 벗어라!]
귀종은 어리둥절해졌다.
[무엇 하게요?]
귀신수는 손을 뻗더니 아들의 허리에 찬 장검을 뽑았다. 광채가 번쩍이 는 가운데 짝짝짝, 하는 소리가 났다. 귀신수의 손에 들린 장검의 끝이 아들의 몸 뒤, 어껫죽지, 손과 팔 등이 있는 곳에서 오락가락했다. 모두들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으며 귀신수가 아들을 찔 러 죽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귀종이 입고 있는 마고자가 열일고여덟 조각이 나서 그의 주위로 떨어지면서 그 속에 입고 있던 비단옷이 드러 났다. 귀신수의 이 검법은 정말 정확하기 이를 데 없도록 쓰인 것이다. 마고자만 잘라 놓았을 뿐 안에 입고 있는 비단옷은 조금도 자르거나 구 멍을 내지 않았다. 군웅들은 이를 똑똑히 보고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귀종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하며 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아버지,쿨룩....쿨룩....oㅏ부지....,쿨룩....나,나....]
귀신수는 손을 휘둘러 장검을 검집에 꽂더니 자신이 걸치고 있던 마고 자를 벗어서 아들의 몸에 걸쳐주며 말했다.
[입어라!]
귀이낭은 땅바닥에 떨어진 휜 호랑이 가죽 조각을 집어서는 한창 타오 르고 있는 화로 속에다 집어던졌다. 불길이 크게 솟아오르면서 가죽이 타는 노린내가 퍼지는 가운데 횐 호랑이 가죽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위 소보는 소리쳤다.
[정말 애석하구나, 애석해!]
귀신수는 위소보를 힐끗 노려보더니 말했다.
[가자!]
그는 아들의 손을 잡고 대청문 쪽으로 걸어갔다. 진근남은 말했다.
[귀이협께서 큰일을 하시겠다면 저희들은 삼가 시키시는 대로 거행하겠 습니다.]
귀신수는 말했다.
[감당할 수 없소! 그럴 필요도 없소!]
그는 대청문 쪽으로 향했다. 위소보는 그가 즉시 손을 쓰려는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황제에게 달려갈 수도 없어서 시간을 늦추 어 그를 저지할 생각에 큰소리로 말했다.
[황궁 안의 집들은 일만 칸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천 칸은 될 것 입니다. 그대는 오랑캐 황제가 어디에 거처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귀신수는 어리둥절해졌으나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그대는 아는가?]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는 사람이 없지요. 오랑캐 황제는 자객이 두려워서 매일 밤 자는 곳 을 바꾼답니다. 어떤 때는 장춘궁에서 자고, 어떤 때는 경양궁에서 자 며, 어떤 때는 함복궁(成福宮)이나 연희궁(延禧宮)에서 자며, 어쩌면 여경헌(麗景軒), 우화각(雨花閣), 육경궁(毓慶宮)에서 잘지도 모르지 요.]
그는 계속해서 일고여덟 채의 궁궐 이름을 들먹였다. 귀신수는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설사 황제의 심복인 태감, 시위들이라 하더라도 그가 오늘 밤에 잘 곳 은 알지 못한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황제를 찾을 수 있겠는가?] [황제가 조정의 일을 보려고 모습을 드러내면 문무백관들은 모두 다 그 를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그가 대궐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 자신은 보고 싶은 사람을 찾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를 영원히 찾을 수 없 습니다.]
사실 강희는 잠자리를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귀신수 부부는 초 야에 묻혀 살던 사람들이라 어찌 황궁 내의 규칙을 알겠는가? 위소보의 터무니없는 말을 듣고 황제가 자객을 엄히 방비하기 때문에 마땅히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크게 망설이는 빛을 띄웠다. 위소보는 귀신수가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띄우는 것을 보자 의기양양해져 서 물었다.
[귀 나으리, 황제에게 얼마나 많은 비자(妃子)들이 있는지 아십니까?]
귀신수는 흥,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야기꾼들의 말을 들으면 황제에게는 삼궁유원(三宮六院)이 있으며 후궁의 미녀가.... 삼천 명이나 된다고 하더군요. 오랑캐 황제의 마누 라는 그토록 많지 않습니다. 삼천 명은 안 되고 그저 구백 명 정도에 불과하죠. 그는 밤마다 신랑이 되고 오늘은 삼백오십한 번째의 비자에 게서 잠을 자고 내일은 육백삼십네 번째의 비자에게 가서 잠을 자지요. 설사 황제의 비자라 하더라도 황제가 어디에 머무는지 모르고 삼 년이 나 사 년 동안 기다리기만 하는 비자도 있지요.]
진근남은 말했다.
[소보, 너는 궁 안에 있은 지 오래되었으니까 황제를 찾는 방법을 알 것이 아니겠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대낮에는 찾기 쉽지만 저녁에는 어떻게 해도 찾을 수 없답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그렇다면 내일 대낮에 우리들이 옷차림을 바꾸고 변장을 한 이후 네가 인솔한 가운데 궁 안으로 잠입해서 일을 벌이면 될 것이 아니겠느냐? 이분 전형제와 오 둘째 형은 네가 데리고 궁 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는 전노본과 오립신 두 사람을 가리켰다. 위소보는 말했다.
[전형은 주방에만 가 보았을 뿐이지요. 그리고 오 둘째 형 일행은 황궁 으로 들어갔다가 위사들....위사들에게 발각당했지요. 황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십만팔천 리나 떨어진 곳이었지요. 전형과 오 둘째 형,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노본과 오립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두 사람은 황궁을 들어가 보 았으며 궁 안에서 황제가 있는 곳을 찾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제자에게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진근남은 물었다.
[무슨 방법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제자가 내일 황제를 뵈러 가겠습니다. 그는 반드시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군사를 파견하여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의논하려 할 것입니 다. 그때 제자는 그에게 대포를 시험해 보자는 제의를 하는 겁니다. 그 가 궁문을 나서기만 하면 손을 쓰기가 훨씬 쉬워지고, 찔러 죽이는 것 이 성공하든지 성공하지 않든지 우리들은 발에다 기름칠을 한 것처럼 뺑소니칠 수가 있으니 많은 위험한 일들을 덜게 되지 않겠습니까?]
귀이낭은 냉소했다.
[황제께서 그대와 같은 꼬마의 말을 그토록 잘 듣는단 말인가? 그가 삼 년 동안 궁에서 나서지 않는다고 우리들이 설마 그를 삼년 동안 기다려 야 한단 말인가? 그대가 이런저런 구실을 내세워 변명하는 것은 어찌되 었든 우리를 인솔하여 일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겠지, 안 그런가?]
목검성은 말했다.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찔러 죽이는 일은 형제도 해보았습니다. 말씀드 리기 부끄럽습니다만, 우리 목왕부는 몇 분의 형제들만 죽게 만들었습 니다. 저의 누이동생과 방 사매, 그리고 이분 오 사숙과 두분 사제는 모두 궁 안에서 잡혀서 하마터면 변고를 당할 뻔했으나 다행히 위 향주 가 의를 내세워 구해 주는 바람에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담이 적어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은 정말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귀이낭은 위소보를 바라보며 냉랭히 물었다.
[그대가 그들을 위험에서 구해 낼 수 있었단 말인가?]
오립신은 재빨리 말했다.
[이 위 향주는 나이는 어리지만 인의에 뛰어나며 기지와 총명은 남이 따를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형제의 목숨을 바로 그가 구해 주었습니다.]
귀이낭은 말했다.
[목왕부에서 해내지 못한 일을 우리 역시 해내지 못한다는 법은 없어 요.]
유대홍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귀씨 부부는 신권무적이니 물론 우리 조그만 목왕부보다 백 배나 뛰어 날 것입니다. 이제 곧 출발하십시오. 우리들은 이곳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천지회 홍순당의 한 형제가 말했다.
[위 향주, 그대는 역시 함께 궁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하 여 귀씨 집안의 세 분 대인께서 오랑캐들의 위사에게 체포당했을 때 그 대가 나서서 구원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소?]
그는 귀씨 집안의 세 사람이 오륙기를 죽인 데 대해서 분노와 더불어 증오심을 품고 있었던 터라 총타주 앞인데도 불구하고 참지 못하고 비 웃는 말을 한 것이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했다. (너희들 세 마리의 자라가 궁으로 들어가 잡히게 된다면 나의 목이 잘 리더라도 구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귀씨 집안의 세 분 대협이 어찌 위사들에게 잡히겠소? 황궁의 위사들 은 팔천 명이나 되지만 귀씨댁 도련님께서 기침 몇 번만 하면 팔천여 명이나 되는 위사들이 모조리 충격을 받아 죽고 말 것이오.]
천지회와 목왕부의 적지 않은 군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귀종도 웃었 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까? 그것 참 재미있겠구나! 그것들은 나의 기 침....쿨룩,쿨룩....하는 것을 두려 워한다는 말이지? 쿨룩, 쿨룩.... 쿨룩,쿨룩....]
귀씨 부부는 대노하여 각기 아들의 한쪽 팔을 잡고 세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진근남은 말했다.
[귀이협, 잠시 노기를 가라앉히십시오. 형제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귀이낭은 그가 평소부터 지혜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몸 을 돌리고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진근남은 말했다.
[귀이협 부부는 무예가 고강하여 당대의 무적이십니다. 그러나 위험한 곳으로 깊이 들어가면 역시 중과부적입니다. 우리들은 역시 만전지책을 강구....]
귀이낭은 말했다.
[나는 진 총타주에게 무슨 고견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요!]
그녀는 몸을 돌려 대청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유대흥과 오립신이 갑자 기 재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문 앞을 막아섰다. 유대홍이 말했다.
[두 분이 오삼계를 도와 주려는 것을 우리 목왕부에서는 결코 허락할 수 없소이다.]
귀이낭은 말했다.
[아니, 손을 쓰겠다는 말이에요?]
유대홍은 말했다.
[두 분은 먼저 우리 사형제를 죽인 후 문을 나서서 오삼계를 도와 주도 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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