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박수근 미술관에서 박수근 특별전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시관 안을 몇 시간이나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그도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라고 허기가 졌다. 안명이 칼국수집을 소개했다. 그때 먹은 멸치국물의 칼국수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안명에게 그 칼국수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 했더니 그럼 한 번 가시지요 했다. 이번에는 박라까지 동원해서 그 칼국수 집을 찾아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추석 연휴에 이은 휴업이라고 했다.
모처럼의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궁시렁 거렸더니 이번에는 박라가 그녀의 시모께서 즐기시는 옹심이 칼국수집으로 가자고 했다.
소양2교에서 시내 쪽으로 들어자마자 첫 골목에서 춘천역 방향으로 틀자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오래된 단층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소양강변의 당간지주가 있는 같은 블럭 안, 전면에만 타일을 붙인 단층 목조건물들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그만그만한 집들이 모두 맛집이라고 했다. 60~70년대의, 아니 50년대 중반대의 건물들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었다. 그 동리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아련하게 남아 있었다. 미군부대를 가까이 두고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판자집들을 짓고 모여 살던 곳, 양공주들이 모여 살던 곳, 한 십 년 전까지 난초마을이라고, 홍등가가 가까이 있던 마을이었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 외로 홀과 방을 가진 제법 큰 식당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보는 순간 눈에 와서 꽂히는 것이 꿩만둣국이었다. 옹심이 칼국수집에 와서 꿩만두를 시킴은 당치 않은 짓임은 알고 있으나 그래도 겨울에는 꿩만두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버릇이었다. 근래 십여 년간은 꿩만두 구경을 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더욱 반가웠던 것인가. 안명과 박라는 옹심이 칼국수와 왕감자전을 주문했다.
먼저 질그릇에 담긴 무생채와 열무김치가 나왔다. 시식, 맛있었다. 음식점의 음식맛은 김치를 맛보는 순간 판명이 난다. 이 집 음식 괜찮겠다 하고 점수를 주고 들어간다.
만둣국이 나왔다. 국물을 한 수저 입안으로, 구수하고 시원했다. "좋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만두 하나를 건져서 입에 넣었다. 담백하면서도 달큰했다. 만두피를 벗기고 보니 애호박과 무나물이 들어가 있었다. 본래 일반적인 꿩만두는 오두둑하고 꿩뼈가 씹히는 맛에 먹는데, 이집 만두에는 꿩고기를 갈아서 넣었는지 뼈 씹히는 맛은 없었다. 그러나 만두는 담백하면서도 뒷맛이 좋았다. 만둣국에 합격점.
왕감자전이 나왔다. 세상에나, 그렇게 큰 감자전은 처음 보았다. 감자전 전체가 튀김처럼 바삭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질퍽하게 넣고 거기에다 감자전을 튀기듯 부친 것이다. 감자전에 열무김치를 싸서 먹었다. 역시 높은 합격점.
들깨 가루를 넣은 옹심이 칼국수, 국수 국물맛이 배뜩하고 좋았다. 칼국수 전문점이라고 어디에 가서나 칭찬받을 만 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혹시 다시 와서 주문하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꿩만둣국을 주문하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맛있었다.
꿩만둣국 8천원, 들깨옹심이 칼국수 8천원, 왕감자전 9천원. 착한 가격에 맛도 좋으니 뚝배기보다 장맛! 이었다.
맛난 음식, 착한 가격에 먹고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커피집엘 가기로 했다. 전망좋은 곳을 찾다보니 전망 보는 값이 높았다.
의암호반을 바라보는 3층 건물, 강원도 건축문화제에서 최우수 상을 받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1층 도어를 열고 들어가자 대여섯 명의 바리스타들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한 옆에는 다양한 케이크들이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창가에 자리 잡았다. 어디에 앉아도 의암호와 그 뒤로 펼쳐진 북배산과 화악산이 들어왔다. 멀리 장절공 묘소지역도 보였다.
3층는 계단식 의자로 마치 원형극장에서 볼 것을 즐기듯이 차와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사람들은 의암호와 그 배경산들을 명화를 즐기듯 즐기고 있었다.
점심 잔뜩 먹고 왔는데도 안명이 아메리카노 3잔과 두 종류의 케익을 들고 왔다. 앙바터 프리첼- 빵에 팥앙금과 버터 한조각이 들어가 있는.........예상외로 입에 달았다. 또 곰보빵 비슷하게 생긴, 크림이 들어간 케이크도 맛있었다.
케이크와 커피 값은 입을 벌릴 지경이었지만, 충분히 그 값을 하고 있었다. 커피는 향기롭고 목안을 넘어갈 때 부드러웠다. 케이크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었다. 점심값 보다 훨씬 고가의 주점부리였다
착한 가격에 소박하나 맛난 음식, 비록 사치를 부렸으나 향기로운 커피,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점심과 휴식이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춘천의 숨어 있는 맛집들 찾아보자고 했다. 물론 앞으로는 값비싼 카페 출입은 자제할 것이다. 아주 가끔 특별한 경우는 허용하겠지만.
유정의 벗님들에게도 '맛집의 발견'에 참여를 권한다.
2023. 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