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왜 뛰어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석민이 엄마를 보낸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 형주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은 말 할수 없이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수천 수만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 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 해 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 해남에서 형주가 -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어금니를 꼭~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 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 봐
나는 아래 웃니를 꽉~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흑~흑 울어 버렸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 * * * * *
실화라고 합니다.
.
'연탄길' & '행복한 고물상'의 저자 이철환 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
첫댓글 이 글을 읽으면서 돋보기가 뿌여지더니 주르르 눈물이 허락도 안 봤고 제 멋대로 흐릅디다.형주씨 부부같이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_()()()_
10년 전이라니 아마 지금 쯤 형주씨는 등 따시고 배 부른 의연한 가장이 되었겠지요? 아니 준 재벌이 되셨을지도 ~~!!!
지는 향기님의 10년전 일인줄 알고..
지도예 그런줄 알았심더....ㅋㅋㅋ
지도 향기님 일인줄 알고...
에 구~구 어쩌나~ 분명하게' 이철환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 '하고 써놨는데~~잠시동안 미륵골님과 초연화님 그리고 무공해님 뜨뜻한 가슴속에서 결혼한지 10년만 된 새댁이로 되었다니 기분이 헤 ~!!! 감사합네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정서가 메마르지 않아 올해는 무척이나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행복한 마음입니다...형주씨 부부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기원해 봅니다. _()_
..... 눈물가득고이네요 .... 모두 이 어려운 시기들을 잘 이겨냅시다..... 바람향기님 허락도 안받고 눈물이.... _()()()_
추울 때 나누어 가지는 뜨끈한 불덩어리는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습니다...향기성님, 참말로 뜨거운 눈물 나게 하네여..^^*
오늘 임제록 기간에 보는 줄 알았는데~~~서운했시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향기님 그야말로 사람사는 이야기가 가장 아름답고 나를 철저히 인간으로 만들어줍니다. 가슴을 따뜻하게하는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안 울고 참을려고 했는데...내 눈이 내 말을 안듣고 멋대로 눈물을 쏟아내버리네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친구의 우정과 물질이 아닌 진정 따뜻한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네요.마음만은 온우주을 감싸 안을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셨구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이철환님의 글엔 따뜻함이 가득찼습니다....오늘 제 가슴을 뜨듯하게 덥혀 주시는 소중한 마음의 글... 향기님이 옮겨 주셨네요...향기님 고맙습니다..^^*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네요. 지나간 시절을 생각나게 하네요. ^^*.
까만옷 그대로입니다()
조용하게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옮겨 오셔셔 이렇게 염화실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고 계시는 바람향기에게 박수를 보냄니다.
진짜 사람사는 이야기군요. 사람의 찐한 향기가 바로 이런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_()()()_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얼마전 이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눈물 흘러답니다. 정말 가슴에 와닿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