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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82회>
씬 1 조령 그 계곡(낮)
시체들로 가득차 있다. 한쪽으로는 부상병들과 포로들이 옮겨지고 있
다. 유금필과 박술희, 윤신달이 함께 오고 있다.
박술희 형님, 완벽한 승리이옵니다. 적은 불과 백여명도 아니 남고
모두 죽거나 생포되었사옵니다.
윤신달 장군, 적장 공직을 놓친 것이 너무도 분하고 안타깝사옵니다.
유금필 동감이네. 그자를 꼭 잡았어야 했는데.....
박술희 참으로 통쾌하옵니다. 지난 날의 그 망신을 아주 깨끗하게 설
욕했사옵니다.
유금필 죽령은 어찌 되었을까?
박술희 주군께서 직접 가셨사옵니다. 이번 전투의 주 목적지가
바로 죽령 아니옵니까? 잘 되었을 것이옵니다.
윤신달 자, 그럼 우리는 조령의 관문으로 가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유금필 그럴 것일세. 가서 주변 성들을 모조리 항복 받아야지.
윤신달 소장이 듣기로는 우리가 가는 길목에 사불성이 있다 들었사옵
니다. 그곳에서 협공을 해온다면 상당히 불리하지 않겠사옵니
까?
유금필 그 점은 걱정마시게. 여기 박부장이 다 맡고 있네 그려. 그곳
에 사람은 보냈는가?
박술희 예, 형님. 지금쯤 전후 사정을 다 듣고 있을 것이옵니다. 미
리 사람을 보내 놓았으니까요.
유금필 잘했네. 자, 군사들을 다시 정리하고 공직장군이 있던 본 성
을 접수받으러 가세. 그 일이 시급하이. 어서, 전군은 대오를
갖추라 하게.
윤신달과 박술희가 대답하며 간다.
윤신달 전군은 대오를 갖춰라. 포로들은 한쪽으로 인솔하고, 나머지
군사는 다시 전투 대형을 갖춰라. (반복) 전투 대형을 갖춰
라.
그 부산한 모습을 보고 있는 유금필에서.....
씬 2 사불성 외경
씬 3 동 성 안
아자개가 인상을 찌푸리며 박술희가 보낸 부장을 보고 있다.
아자개 (서찰을 다 읽고 놓으며) 조령과 죽령을 넘어 왔어?
박부장 예, 나으리.
아자개 아니, 전쟁은 안한다고 하지 않았어?
대주 소녀가 뭐라고 하였사옵니까? 저들은 아버님을 이용하여 오라
버니 의 백제성을 모두 차지하려는 수작이옵니다.
보개 그렇지만, 우리 성을 공격하지는 않았사옵니다.
계모 그건 그렇다. 약속은 약속이야. 절대로 우리 성을 넘보지는
않았어요. 아니 그렇습니까, 나으리?
아자개 그렇기는 하지만..... 이 박술희의 서찰을 보면, 사벌주 인근
의 많은 성들이 지난 밤 사이에 왕건이의 수중으로 들어간 모
양인데.....
보개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아버님. 저 험악
하고 눈이 쌓인 깊은 재를 어떻게 많은 군사들이 넘어와 공격
을 할 수 있단 말이옵니까?
대주 박술희 부장의 허풍일지도 모르옵니다. 조령 쪽에는 백제국의
명장 공직 장군이 맡고 있사옵니다. 죽령에는 이곳보다도 훨
씬 많은 대군이 방장군 인솔하에 있사옵니다. 호락호락 당할
리가 있겠사옵니까?
아자개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이 겨울에는 사람이 도저히 넘기 어
려운 저 조령과 죽령이 아니더냐? 그 산맥을 그 많은 군사들
이 어떻게 넘어와....? 이해가 가질 않지 않느냐? 이곳 사정
을 아주 잘 알면 모를까....
보개 그러니까 충주의 장군 금식이라는 자가 대군을 인솔해 왔다지
않사옵니까? 그 자야 말로 이곳의 토호가 아니옵니까?
아자개 그렇구나. 게다가, 충주 장자 유긍달이 도와주었다면.... 이
건 틀림없는 사실이로구나. 사실이다, 대주야.
대주 첨병을 보내 주변 사정을 알아보게 하겠사옵니다.
그때, 급한 목소리와 함께 전령이 들어와 보고한다.
전령 나으리, 성밖에 백제의 장군 공직이 와서 나으리 뵙기를 급히
청하고 있사옵니다.
그 말에 모두들 놀란다. 박술희의 서찰이 사실인 것이다.
아자개 공직이가 왔어? 그 늙은 장수가 성밖에 와 있단 말이야?
계모 아, 그렇다지 않습니까? 박술희 부장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예
요. 지금 이 시각에 왜 성밖에 와 있겠습니까? 도와달라고 온
모양인데....
아자개 도와줘?
그런 그의 표정에서....
씬 4 동 성 밖
공직이 십여 군사들과 함께 매서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성위 쪽을 보
고 있다. 화살 맞은 상처를 동여 매고 있다. 온통 피투성이다.
공직 나는 장군 공직이오. 어서 성문을 여시오. 아자개님을 뵈어야
하오.
용개 .......
공부장1 말이 들리지 않소이까? 우리는 대 백제국 황제 폐하의 황군이
오. 여기 공직 장군을 모른단 말씀이오? 어서 안에 말을 전해
주시오.
용개 (한참 보다가) 이미 말씀은 전했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군사와도 싸우지 않겠다는 중립을 선포해 놓고 있소이
다.
공직 우리는 백제국 황제 폐하의 군대이고, 그대는 폐하의 아우님
이 되시오. 어찌 그리 매정한 말씀을 하시는 게요? 우리는 지
금 급하오. 조령도 그리고 저 죽령도 모두 적의 손에 떨어지
고 있소이다. 군사와 군량미가 필요하오.
그때, 아자개가 성루에 올라온다. 대주와 보개도 함께 해 있다.
아자개 공직이가 아닌가? 어째 몰골이 그런가? 왜 그래?
공직 어르신, 마진군의 급습을 받았사옵니다. 이곳 조령은 이미 떨
어졌사옵고, 수많은 군사들이 죽었사옵니다.
아자개 그랬어. 거 안되었구먼...
공직 어르신께오서는 대 백제국 황제 폐하의 아버님이시옵니다. 도
와주시오소서. 도와주시면 다시 조령을 되찾을 수 있사옵니
다.
아자개 에잉...이걸 어쩌나.... 우리가 그럴 힘이 있어야지? 우리는
싸우지 않기로 했어. 아무하고도 안 싸우기로 했어.
공직 폐하의 군대가 죽어가고 있사옵니다. 백제의 군대이옵니다.
이곳 조령은 물론이고 죽령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희생이 계속
되고 있사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도와주시면 되찾을 수 있
사옵니다. 어르신....
아자개 그만 가봐.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안 싸워. 알겠는가? 거 추
운 날씨에 정말 안됐네. 이보게, 공직이. 자네도 많이 늙었구
먼. 그렇게 형편없이 마진의 젊은 장수들에게 당하다니 말이
야.
공직 어르신....
아자개 아, 그렇게 있으면 얼어 죽어 이사람아. 어서 가서 군불이라
도 피어 놓고 쉬었다가 돌아가게. 성안으로는 들여 줄 수가
없어. 우리는 중립을 지키기로 약속을 했단 말이야. 잘 가게.
공직 어르신..... 너무 하시옵니다, 어르신.... 아드님이 아니라
원수의 자식에게도 이렇게 하실 수는 없으실 것이옵니다. 너
무하시옵니다....
아자개 잘가게.
아자개는 그렇게 사라진다. 안타깝다. 대주,용개,보개들이 그렇게 말
없이 보고 있다. 대주는 아픈 듯 눈을 감는다. 공직이 입을 앙다물며
돌아선다.
공직 가자, 황도로 돌아갈 것이니라. 모두 가자!
군사들 예, 장군.
공직은 그렇게 쓸쓸히 멀리 사라져 간다. 대주가 중얼거린다.
대주 대체 이 일을 어이할꼬..... 이 일을 어이해.... 우리는 이렇
게 해서 결국 백제의 적이 되고 있지 않은가? 오라버니의 적
이 되고 있어.....
씬 5 죽령 성 외경
씬 6 동 성 안
왕건이 중심이 되어 금식, 능산, 태평, 전이갑,의갑 형제들 그리고 많
은 부장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다. 대형지형도도 걸려 있다. 금식이
보고하고 있다.
금식 방금 전에 보고가 들어왔사옵니다. 우리가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저 조령도 함락이 되었다 하옵니다.
태평 ........ (미소) 그럴줄 알았사옵니다.
왕건 이곳이야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해 주력군으로 밀고 들어
왔지만, 조령은 너무 쉽게 무너진 것 같구먼. 그대의 덕이야.
태평 듣기가 민망하옵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웠사온데, 어찌
소인만 칭찬을 들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말씀 거두시오소서.
전이갑 장군, 저희 형제야 비록 늦게 와서 사정을 잘 몰랐으나, 지금
보니 태평군사의 계략과 작전은 놀랍도록 정확했사옵니다.
금식 그러게 말이오. 놀랍다 마다. 무엇하나 빈틈이 없습니다. 하
하하.
태평 방장군은 어찌 되었습니까?
금식 본래 도둑하나를 열명의 장정이 잡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그
렇게 빨리 내빼는 데야 도리가 있어야지요. 놓쳤소이다. 하하
하....
모두들 ....(와--하고 웃는다)
태평 지금쯤은 저들의 전령이 완산주의 백제국 황도로 달려가고 있
을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겠지.
태평 우리는 군대를 계속 전진시켜 낙동강 전선을 확보해야 하옵니
다. 이번이 그 좋은 기회이옵니다.
금식 아주 옳은 말이오. 소장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소이다. 전략
적 요충지로써 그만한 곳이 없소이다. 장군, 영을 내리시오소
서.
왕건 좋습니다. 지금 밖에 대기하고 있는 군사를 재편하여 낙동강
을 확보하도록 하십시다. 이보게, 능산이, 그리고 두 전부장
은 듣게.
그들 예, 장군.
왕건 그동안 금장군이 많은 고생을 하셨으니, 이번에는 그대들이
선봉을 서서 낙동강 전선을 확보하게.
그들 예, 장군.
왕건 견훤왕의 백제 본군이 오기 전에 모두 함락시켜야해! 알겠는
가? 견훤왕이 오면 그만큼 전투가 어려워진단 말일세.
그들 알겠사옵니다, 장군.
씬 7 길
상처투성이의 두 필의 백제군 전령이 황급히 달려 사라진다.
씬 8 낙동강 강변
물안개가 가득히 끼었다. 저만큼 공직이 그 안개 속으로 군사들과 함
께 보고 있다. 온통 상처투성이의 패잔병들이다. 한참 보고 있던 공직
이 또 한쪽으로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한편의 군사들을 보고 긴장하며
전투태세를 취한다.
공부장1 장군, 왠 군사들이옵니다.
공직 .........?
공부장1 (한참 보다가) 우리를 공격하러 온 군사들 같지는 않사옵니
다. (다시 보다가) 장군, 방장군이시옵니다.
방장군 (다가오며) 아이고, 장군. 공직 장군님이 아니시옵니까?
공직 ......... (그저 무겁게 본다)
방장군 면목이 없사옵니다. 저놈들이 저 높고 험한 산을 넘어 올 줄
은 몰랐사옵니다. 주변에 많은 요새들을 다 잃었사옵니다.
공직 (한숨) 나도 조령을 잃었네. 주군을 어찌 뵈어야 할지 모르겠
네.
그때, 한 필의 말이 달려와 서며 군례를 올린다.
전령 장군, 어서들 피하시오소서. 왕건 휘하의 장수들이 기마군을
이끌고 질풍처럼 이리로 달려오고 있사옵니다.
방장군 뭐라고? 왕건이의 기마군이 와?
전령 예, 장군.
방장군 네 이것들을...그냥 두지 않을 것이야.
공직 이보게, 방장군.
방장군 예, 장군.
공직 만용은 금물이네. 이미 우리는 군사도 없고 잃을 것은 다 잃
었네. 무엇으로 싸운단 말인가? 빨리 이곳을 벗어나세. 저 낙
동강을 건너 속히 황도로 돌아가야 할 것일세.
방장군 저들을 저대로 두고 말이옵니까?
공직 그렇다네. 자, 어서. 부장은 무얼 하는가? 남은 군사들을 인
솔하여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서둘러라!
공부장1 예, 장군. 자, 철군한다. 서둘러라, 적병이 온다, 어서 서둘
러라.
방장군 (울먹이며) 오호, 일생 일대의 큰 수치로다. 이 일을 어이할
꼬...
공직 뭣들 하는가, 어서.....
그들은 그렇게 그곳을 벗어난다.
씬 9 전주 황도 길
두 필의 말을 탄 그 전령이 황급히 달려와 지나쳐 간다.
씬 10 황궁 외경
견훤 (E) 무슨 소리야? 지금 뭐라고 하였어?
씬 11 동 대전 안
견훤이 용상에서 일어나 서서 아뢰고 있는 전령을 보고 있다. 모두들
착잡하게 함께 보고 있다. 최승우, 능환, 태자신검, 능애, 추허조, 수
달, 김총, 박영규, 지훤, 애술, 최필, 신덕 들이다.
견훤 조령이 떨어지고, 죽령도 떨어지고...... 뭐라 낙동강까지 왕
건군이 밀고 오고 있어?
전령 예, 폐하.
견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군사들이 올 수 있
었다는 말이냐? 공직장군은 무얼 하였고, 방장군 그 놈은 무
얼 하였어?
모두들 ....(침통하다)
견훤 그랬어. (어찔하며) 그랬었어. 그래서, 그런 불길한 꿈을 꾼
게야. 하늘이 미리 예시해주신 것을 내가 왜 몰랐든고?
최승우 그렇다면, 우리의 군사는 얼마나 상했고 또 얼마나 남아 있느
냐?
전령 소인이 올 때는 조령쪽의 군사는 거의 전멸하였사옵고,
견훤 (다시 놀라고) 전멸?
전령 예, 폐하. 하옵고, 또한 죽령쪽의 군사들도 얼마 남지 않은
채 급히 후퇴하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능환 공장군과 방장군은 어찌 되었느냐?
전령 지금쯤 아마도 낙동강 중류 지점에 계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견훤 그렇다면, 살았어? 그것들이 무슨 면목으로 살아 있단 말이
냐? 부하들은 다 죽이고, 어떻게 저들만 살아 있어?
추허조 폐하, 그 넓은 사벌주 일대가 모두 저들에게 넘어 간 것 같사
옵니다. 빨리 군사를 투입하여,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사옵
니까?
견훤 내가 가겠어. 내가 직접 가야겠어.
능애 폐하, 사불성에 계시는 아버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견훤 (벌컥) 뭐, 도와줘? 아버님이 말이신가? 이봐라, 아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겐가? 그 아버님께서 도와주셨다면, 그
노련한 공직장군이 그렇게 당하고 다 빼앗겼겠는가? 아버님이
도와줘....?
박영규 폐하, 그렇사옵니다. 사불성의 도움은 없었을 것이옵니다.
신을 보내주시옵소서. 대군을 끌고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겠사
옵니다.
지훤 아니옵니다, 신을 보내주시옵소서.
애술 신을 보내주시옵소서.
최필 신을 보내주시옵소서.
신덕 폐하, 급히 군사를 일으켜 달려간다는 것은 병법의 이치에 배
치되는 것이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여 무엇이 화급하
고, 또한 순리적인 것인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옵니다.
능환 그렇사옵니다, 폐하. 신장군의 말이 맞사옵니다. 이럴 때일수
록 냉정하셔야 하옵니다.
김총 무엇을 냉정하고 안하고를 한단 말입니까? 이미 다 빼앗겼다
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되찾아야지요.
수달 그렇습니다, 되찾아야합니다. 지금은 그것이 중요합니다. 어
떻게 되찾는가 하는 것 말입니다.
최승우 흥분할 때가 아니올시다. 장군 신덕의 말이 맞사옵니다. 폐
하, 지금은 냉정해야 할 때이옵니다. 신이 생각해보건데, 이
일은 사려가 깊은 장군 신덕을 선봉으로 보내어, 주변을 일단
잘 살피고 공격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견훤 (고민이 많다, 큰 한숨) 참으로 펄쩍 뛰겠구먼 그래. 그게 어
떻게 빼앗은 땅인가 말이야.... 짐이 직접 가서 온갖 고생 끝
에 확보를 해 놓은 땅이야. 아이고....
씬 12 동 황궁 황후전
박씨와 고비가 함께 있다.
박씨 대전에서는 비상조회가 열리는 모양일세.
고비 그런 것 같사옵니다, 황후마마. 아무래도, 전선에서 중요한
사고가 일어난 것 같사옵니다.
박씨 상주의 일이라고 들었네. 아버님 계시는 곳 말이야. 며느리로
써 할 말은 아니지만, 그 분이 어디 아버님이신가? 그 분이
원수지 어디 아버님이냐는 말일세.
고비 황후마마....?
박씨 자식이 미워도 그렇지 어떻게 우리의 원수들인 저 마진국에
군사들과 가까이 하실 수가 있느냐 말이야. 도대체, 나중에
자식의 얼굴을 어찌 보실려고......?
고비 그러게 말이옵니다. 아무래도 이 번 일은 타격이 엄청나게 큰
것 같사옵니다만은...
박씨 그러게 말일세.
씬 13 동 대전
견훤이 인상을 찌푸리며 앉아 있다가, 탁자를 치며 결론을 낸다.
견훤 그래, 어쨌든 상황이 너무 다급하니 누군가는 가야지. 이보
게, 신덕장군.
신덕 예, 폐하.
견훤 신장군이 군사 삼천을 줄테니, 데리고 가서 전선의 사정을 좀
봐.
신덕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리고, 추장군은 신장군 후미를 도와주고.
추허조 예, 폐하.
견훤 다들 듣게.
모두들 예,
견훤 비상이야. 이번 일은 나라가 비상시국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주
는 것이야. 그 중요한 전선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것
은 이 나라가 총체적인 난국에 접어들었음을 뜻하는 것이야.
총체적 난국 말이야... 모두 정신들을 바짝 차리라는 말이야,
알겠는가?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무조건 싸움만 하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야. 때로는 한 걸음
전진을 하기 위해서 두 걸음을 물러날 때도 있는 것이야. 잘
살피게, 신장군.
신덕 예, 폐하.
씬 14 길
신덕이 수천의 대병을 이끌고 가고 있다. 그 위로.
해설 왕건의 이번 전투, 기록에는 이 전투를 사화진 전투로 표현하
고 있다. 사화진이란 바로 사불성 즉 아자개가 있던 그 주변
의 진지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지도상
으로 보이는 좌측이 조령이고 그 위로 올라간 우측이 죽령이
된다. 왕건은 이때 지금의 상주를 비롯해 문경, 영주 등 낙동
강 이북 지역을 모두 마진의 땅으로 만들었다. 대단한 전과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견훤은 이때 여러 차례 장수들과 대
군을 보내 그곳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
했다. 이때가 서기 907년대의 일이었다.
씬 15 철원 저자 거리
숱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 한켠에 석총과 허월이 오고 있다.
곳곳에 군사들과 승려들이 오가는 것이 보인다.
허월 대단하이. 전국에 사람들을 여기로 다 끌어 모은 것 같구먼.
석총 그러게 말일세.
허월 하기사 법단을 밖에 마련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이 많이
모인다는 뜻일세. 법회가 아주 클 것 같네 그려.
석총 크고 작은 것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것이 얼마나 쓸만
한가가 중요한 것이지?
그때, 유긍달의 집사가 방한복 차림으로 종자 하나와 함께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다. 황궁 쪽으로 사라진다.
허월 허허, 무엇이 저리 급한고...(하다가) 음, 아니, 이보게, 석
총, 저 사람 말이야. 지금 지나간 저 사람.
석총 왜 그러는가?
허월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 충주에서 말이야.
석총 글세......
그때 석총의 절 주지가 승려들과 함께 오다가 이들을 발견하고 급히
다가와 합장한다.
주지 아이고, 큰스님이 아니시옵니까?
석총 여기는 웬 일인고? 산문을 잘 지키라고 하지 않았느냐? 여기
는 왜 왔어?
주지 그런 말씀 마시오소서. 군사들이 매일처럼 찾아와 법회에 참
가하라고 하는 통에 견딜 수가 없어서 왔사옵니다.
석총 이런 쯧쯧...그토록 근기가 약한 사람이 산문에 주지를 보는
가?
주지 아무튼 큰스님 여기서 이렇게 뵈니 꿈만 같사옵니다. 떠나실
때의 뒷 모습이 하도 무서워서 걱정을 했사옵니다만은.....
허월 암, 그랬지. 이 주지가 자네 걱정을 많이 했어, 석총.
석총 아무튼 가자꾸나.
주지 예, 큰 스님.
그들 그렇게 인파들 속으로 사라지고....
씬 16 왕건의 집 외경
씬 17 동 집 사랑
두 여인과 왕식렴,장수장이 함께 해 있다. 하녀들이 다과상을 놓고 물
러난다.
오씨 거리가 사람들로 넘쳐 난다 들었사옵니다.
왕식렴 예, 형수님. 법회 때문이옵니다. 이미 법단도 다 마련이 되었
다고 하옵니다.
유씨 저희들도 참석을 하라고 전해들었습니다, 도련님.
왕식렴 그러실 것이옵니다.
유씨 스님들도 벌써 많이 와 계신다지요?
장수장 예, 마님. 참으로 많은 스님들이 도성에 들어오셨사옵니다.
유씨 지금쯤 전선은 어찌 되었을꼬? 서방님께서 큰 전쟁에 들어가
셨다고 들었는데....
오씨 보나마나 다 잘되었을 것이옵니다. 그러니까 소식이 없는 것
이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 않사옵니까?
유씨 아우님은 어떻게 늘 그렇게 대범할 수가 있는지, 나는 그것이
부럽네 그려. 요즘은 꿈에 자꾸만 서방님이 보여....무슨 일
이 있으신지?
오씨 정말 그렇게 꿈에도 보이십니까? 이 아우는 그렇게 꿈을 꾸려
고 해도 도통 뵐 수가 없사옵니다.
왕식렴 하하하, 두 분 형수님께서 이렇게 형님 생각만 하고 계시니
저는 뵙기가 아주 좋사옵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 조금도 의
가 상하시지 않으시고, 화목하게 집안을 이끌어 주시니 또한
좋사옵니다.
오씨 호호호, 도련님, 마치 우리가 싸울 것을 바라기라도 하는 말
같으십니다?
왕식렴 예, 아니, 형수님....?
모두들 ........(와- 웃음) 씬 18 황궁 외경
씬 19 동 황궁 대전
궁예가 미소를 지으며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다. 한참 보다가 끄떡이며
크게 웃는다. 종간, 복지겸이 함께 해 있다.
궁예 그러면 그렇지. 하하하...그러면 그렇지. 내 아우가 누구인
가? 왕건이가 누구인가 말이야? 조령과 죽령을 함락시켰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참으로 이번 왕장군의 전공은 너무도 완
벽하고 큰 것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궁예 암, 감축 받을만 하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말이야? 환
선길이가 잃어 버린 것을 왕건이가 가서 찾아왔어. 역시 왕건
이야....내 아우란 말이야....
복지겸 하옵고, 폐하, 신라쪽 전선에 가 있는 환선길 장군과 홍유,
배현경 장군들의 활약 또한 참으로 대단하옵니다.
궁예 그 얘기는 듣고 있어. 많은 포로들을 올려 왔다지?
종간 그렇사옵니다, 폐하.
궁예 제국의 앞날이 갈수록 밝아. 사실 이번 법회도 그런 의미에서
크게 열려고 하는 것이야. 제국의 미래와 희망에 대해서 얘기
해주려고 말이야.
종간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
궁예 아무튼, 백제가 신라로 들어갈 수 있는 그 유일한 교통로를
완전히 끊어 버렸다는 것은 왕건이 아니면 아무도 못해. 대단
해.... 그러고 보면, 왕건이를 도와준 그곳의 장자 유긍달의
공도 아주 큰 것이야.
종간 그렇사옵니다, 폐하.
복지겸 그 일로 인하여 유긍달 장자가 폐하께 뭔가 소청을 드릴 것이
있는 것 같사옵니다만은....
궁예 그래? 짐에게 말인가? (읽던 두루마리를 다시 본다) 아니, 이
건 또 뭐야? 뭐, 간곡한 소청이 있는데.... 허, 이런....
종간 왜 그러시옵니까, 폐하.
궁예 (보다가 크게 계속 웃는다) 으하하하.... 하하하..... 이럴
수가 있나...? 세상에 이렇게 복 많은 사내가 있는가? 왕건이
말이야 유장자의 말이 자신의 딸을 주고 싶은데, 날 보고 허
락을 하라는 것이야. 짐보고 말이야. 으하하하하.....
복지겸 .....(미소)
종간 아니, 폐하, 이미 왕장군은 두 번이나 장가를 간 사람이옵니
다.
궁예 허지만, 말이오, 내원. 열 번 스무 번 왜 장가를 못 가느냐
하는 것이 유장자의 말이오. 일리가 있소이다. 이거 아주 일
리가 있어요.
종간 예?
궁예 조석으로 인심이 변하는 이 전국 시대에 누가 누구를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오.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길은 혼인을 맺음
으로써 사돈이 되고 서로 같은 식구가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요. 유긍달은 지금 그 이야기를 내게 적어 왔어요. 일리가 있
고 말고. 이거 왕건 아우는 정말 복이 터졌단 말이야. 하하하
하....허락하지, 암 내가 허락 안할 리가 있는가? 당장 답사
를 보내시게, 병부령. 그리고, 전선이 정리되고, 좀 오라고
하게. 너무 오래 안본 것 같아.
복지겸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궁예 장가라, 왕건이 또 장가를 간다...하하하....
씬 20 유장자의 집
서찰을 다 읽은 유장자(유천궁)가 앞에 서있는 유긍달의 집사를 빤히
보고 있다.
유장자 폐하께도 서찰을 올려 드렸다고 하였는가?
집사 예, 광치나 어른. 왕건장군의 전선에 관한 일은 별도로 전령
을 통해 올라간 것으로 아옵니다. 소인은 그저 저희 어르신에
관한 서찰만을 올렸사옵니다.
유장자 청혼을 한 이야기 말인가?
집사 그러하옵니다, 광치나 어른.
유장자 휴.... (한숨) 이것이 여복인지, 여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그려. 벌써 그 부인이 둘이나 되는 사람이야 또 청혼을
하게 해 달라니 이런....
집사 한 가정을 이루는 청혼이 아니옵니다. 집안과 지역, 나아가
큰 영토를 보전하기 위한 서로간의 약속이옵니다.
유장자 내가 왜 모르겠는가? 허지만, 뭐라고 주변에 이해를 시켜야
할지가 난감하네 그려. 아직 왕장군의 두 부인들은 아이도 하
나 없네 그려. 막 신혼이나 다름이 없어요. 헌데, 또 받으라
는 게야, 또.....
집사 그래서, 특별히 저희 어르신께서는 광치나 어른을 찾아 뵈라
하셨사옵니다, 도와주시오소서.
유장자 난감하네, 이 참 난감하게 되었어.
씬 21 충주 유긍달의 집 외경
씬 22 동 집 사랑
유긍달이 그의 딸 수인을 앞에 놓고 차를 마시고 있다.
유긍달 너도 들었느냐? 왕장군이 승리를 하였다. 그것도 아주 큰 승
리를 거두었다.
수인 들었사옵니다, 아버님.
유긍달 참으로 잘되었다. 물론, 그렇게 될 줄은 알고는 있었다만
은...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거두었어. 전선을 낙동강까지 확
보했다는 구나.
수인 예, 아버님.
유긍달 대단한 인물이 아니냐? 과연, 너의 신랑감이 아니냐 하는 이
말이다.
수인 ..........
유긍달 지금쯤 철원에 계시는 폐하와 광치나 어른이 나의 서찰을 받
아 보셨을 게다. 너의 혼사 문제를 아주 솔직하게 청해 올렸
다. 그 분들은 절대로 이 유긍달이의 청을 물리치지 못 할게
다. 우리는 그만큼 일을 해주었어.
수인 하지만, 아버님, 혼인이라는 것은 인생의 중대사이옵니다. 과
연, 쉽게 대답을 하겠사옵니까?
유긍달 하고말고, 반드시 대답을 주시게 되어 있단다. 걱정 말거라.
왕장군은 이곳에서 너와 혼례를 올릴 것이야. 반드시....기다
려 보자꾸나. 그리고, 좋은 꿈을 꾸거라.
수인 예......?
유긍달 정주의 유장자가, 그리고 목포의 다련군이 왜 자신의 딸들을
그렇게 서둘러 맡겼겠느냐? 그리고, 온 재산과 집안의 운명까
지 걸어가면서 말이다. 나는 아느니라. 그리고, 보았느니라.
수인 ...........?
유긍달 왕건 장군의 앞날을 알기 때문이지. 왕장군은 머지 않아 옥좌
에 오를 것이다. 황제 말이다.
수인 아버님.....
유긍달 세상 인심이란 무서운 것이다. 너도 보았을 것이다. 그 석총
대사 말이다. 그 사람은 이 시대의 미륵으로써 지금의 폐하가
아닌 왕건 장군을 택하였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이야기를 대
변할 수 있는 것이야. 이미 선택이 다 끝났다 하는 이런 이야
기이다.
씬 23 낙동강
왕건이 금식, 그리고 태평과 세 아우를 데리고, 전선을 시찰하고 있
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왕건이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먼 곳을 본
다.
금식 어떠시옵니까, 장군?
왕건 참으로 광활하기가 끝이 없소이다. 나는 조령과 죽령만 얻을
생각을 하였지, 이곳 낙동강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소이
다.
금식 그 모든 것이 여기 태평 군사의 덕이라고 장군도 말씀을 하시
지 않았사옵니까?
왕건 왜 아니겠소이까? 하하하.... 다, 태평군사의 덕이오. 사실이
오.
유금필 태평군사,
태평 예, 장군.
유금필 한때는 나의 군졸에 불과하였소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우
리 주군께서 군사로 대하고 계시니, 우리도 태평군사를 어른
으로 뫼시겠소이다.
태평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어떻게 그렇게 민망한 말씀을.....
능산 사실이외다. 이미 형님과 아우에게 이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박술희 그렇사옵니다, 태평군사.
태평 아니옵니다. 그렇지 않사옵니다. 소인은 그저....
왕건 하하하, 군사란 한 집단의 향도일세. 향도란 길을 인도한다는
뜻이야. 어른이 아니고서는 어찌 그 많은 무지렁이들을 이끌
고 가겠는가? 그 대접은 마땅하이.
태평 주군, 참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세 분을 모두 형제
처럼 뫼시겠사옵니다.
왕건 고마운 말일세. 서로 신의로써 대하며 사세나.
태평 예, 주군.
왕건 그리고, 술희.
박술희 예, 주군.
왕건 이번 전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불성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컸네. 가서, 인사를 드리게나.
박술희 예, 주군. 아, 아니 보내주셔서 가지 못하고 있었지, 보내만
주신다면 이 몸은 더 없이 기쁘옵니다.
능산 대주낭자가 보고 싶어서, 저렇게 좋아하는 것이옵니다, 주군.
모두들 하하하.....
금식 전선은 이렇게 해서 평정이 된 것 같사옵니다. 첩보병이 전해
온 소식을 들으니, 견훤왕의 군대가 무려 오천이나 움직였다
가 그대로 돌아갔다 하옵니다.
태평 저들이 일단의 군대를 움직였다가, 다시 돌렸다는 것은 저들
속에도 상당한 지략 있는 군사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옵니
다. 잠시 이곳을 도모하였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아니 될 것
이옵니다.
왕건 이를 말인가. 나는 견훤왕을 잘 알고 있네. 용감하기는 범 같
고, 지략 또한 뛰어난 왕일세. 사람 다루는 것도 또한 대단하
고... 급한 성질만 아니라면 저만한 인물을 보기도 어려운 일
일 것일세. 암, 그래도 백제국의 황제가 아니겠는가? 조심해
야지.....
씬 24 전주 황궁 안
견훤이 화가 난 그 표정으로 안을 맴돌고 있다. 신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 공직과 방장군은 무릎을 꿇고 있다.
견훤 (맴돌다 본다) 이보아, 공장군.
공직 예, 폐하.
견훤 그대 같은 백전노장이 어떻게 그렇게 실수를 할 수가 있단 말
인가? 나는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
공직 망극하옵니다, 폐하. 죄인 공직을 죽여주시옵소서.
견훤 (한숨 쉬다가) 방장군.
방장군 예, 폐하.
견훤 이 미련한 것아, 아무리 술이 좋아도 그렇지 적군이 오는 것
도 모르고 술만 퍼마셨다는 말이냐? 그렇게도 술이 좋아?
방장군 송구하옵니다, 폐하. 죽여주시옵소서.
견훤 어떻게 하겠어. 그 많은 죽은 군사들 말이야. 그 땅..... 그
소중하고도 큰 그 전선 말이야. 어떻게 낙동강까지 뺏길 수가
있어....? 어떻게.....?
두장군 죽여주시옵소서.
견훤 여봐라, 추허조.
추장군 예, 폐하.
견훤 군법은 군법이다. 두 장군을 법대로 성밖으로 끌어 내서 처형
하라.
능환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모두들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추허조 폐하, 용서하여 주시오소서. 비록 두 장군이 이번에 지은 죄
는 크오나, 지난 날 많은 공을 세웠사옵니다. 목숨만은 부지
케 하여 주시옵소서.
수달 폐하, 폐하께오서는 지난 날 이 수달이의 엄청난 죄를 보시고
도 용서하셨사옵니다. 그로인해, 이 수달이 어떻게 폐하를 위
해 죽을까 그것만을 생각하며 절치부심하고 있사옵니다. 두
장군에게도 한번더 기회를 주시옵소서.
모두들 (엎드리며) 폐하, 기회를 주시오소서.
견훤 ......... (갈등한다) 아니야, 끌어내. 어서 끌어내 목을 베
어라.
최승우 (그때까지 아무말 없다가) 폐하, 신 최승우 아뢰옵니다. 노여
움을 거두시고, 한 번 더 저들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오소서. 장수를 한 번 죽이기는 쉽사오나, 얻기는
어렵사옵니다. 이들에게도 실수를 만해 할 기회를 주시는 것
이 지금으로써는 마땅하고 옳을 줄로 아옵니다, 통촉하여 주
시옵소서.
신덕 통촉하시옵소서, 폐하. 파진찬의 주청이 실로 마땅하고 옳사
옵니다. 두 장군에게 기회를 주시옵소서.
견훤 ........에잉....
신료들 통촉하시오소서.
견훤 신료들이 이렇게 청하니, 이번만은 짐이 물러서겠소. 두 장군
은 들으라.
두장군 예, 폐하.
견훤 오늘의 일을 결코 잊지 말라. 알겠느냐? 이미 너희들의 목숨
은 오늘 죽은 것이야. 나라에 빚을 졌다 이말이다. 반드시 오
늘의 빚을 갚도록 하라, 알겠느냐?
두장군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오........ (한탄한다) 도대체, 사벌주의 아버님은 언제까지
이리 하실 것인가? 이 자식과 무슨 원수가 져서 그렇게 등을
돌리셨단 말인가? 도대체, 계모 한 사람의 농간이 이렇게도
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버님만 도와주었더라도 이렇게 형편
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말이야.
그러다, 욱한다. 입에 피가 고인다. 신료들이 모두 놀라 우하고 일어
선다.
최승우 폐하, 폐하..... ?
모두들 폐하, 폐하......?
견훤 그 전선을 반드시 탈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라고 마
진이고 뻗어 올라 갈 수가 없어.
최승우 그렇게 할 것이옵니다. 반드시 찾아 올리겠사옵니다, 폐하.
견훤 암, 찾아야 해. 반드시 되찾아야 해.
그렇게 절규하는 견훤의 그 부릅뜬 눈에서..... 아자개의 낄낄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씬 25 아자개의 성 외경
씬 26 동 성 안
아자개가 낄낄 거리며 눈이 부신 유리 그릇들과 옥으로 만든 다기 일
습과 비단, 양탄자 들을 보고 있다.
아자개 히야.... 이게 모두 처음보는 것들이네. 이건 유리그릇이고,
이건 옥으로 만든 다기고, 이건 황금 놀이개요. 부인 것이로
구먼.
계모 그러게 말이옵니다, 아이고, 이쁘기도 하여라. 이 귀한 것
을.....
박술희 이것은 특별히 인삼과 녹용으로 다린 보약이옵니다. 조석으로
드시면, 힘이 나실 것이옵니다. 저의 주군께서 특별히 보내셨
사옵니다.
아자개 암, 고맙구먼. 힘이 좀 나야지. 자꾸 나이가 들어가니까 힘이
빠지는 걸 느끼겠어요. 아, 보약 좋지... 암, 자 한 잔 마시
세.
박술희 예, 어르신.
그들 그렇게 마시다가, 갑자기 아자개가 키득거리며 또 웃기 시작한
다.
아자개 아무튼, 그날, 말이야. 그날 따라 참 추웠어. 공직 말이야,
아주 딱하더라고.
박술희 왜, 아니 그렇겠사옵니까, 어르신? 특히나 누구보다도 인정이
많으신 어르신이시옵니다.
아자개 아, 그러니까 가슴이 아팠지. (그러다가 계속 웃으며) 글세,
그 공직이 말이야 평소에는 그렇게 의젓한 장수가 또 없거든,
그런데 그 날 몰골하고는 (계속 웃으며) 볼만 하더라고, 아주
볼만 하였어.
계모 왜, 아니겠사옵니까, 나으리? 소첩은 나가서 보지는 않았지
만, 그 정경이 훤하게 떠오르옵니다. 참, 불쌍하게들 도망갔
지요.
박술희 아무튼 어르신께서 큰 용단을 내리시어, 중립을 지켜주시었기
로 우리는 공정한 전투를 할 수 있었사옵니다.
아자개 암, 그랬을 게야. 암.....
대주 이보시오, 박장군.
박술희 예, 대주낭자.
대주 가만히 보자하니 그 만용이 끝이 없구료. 언제까지 이 성과
아버님을 가지고 노실 셈이오?
박술희 아니, 저 낭자...어떻게 그런 말씀을....어떻게 소장이....
어르신을 놀릴 수가 있다 말이옵니까? 우리는 상부님의 예로
써 인사를 드릴 뿐입니다.
대주 닥치시오. 우리를 얼마나 만만히 보길래 그렇게 건방질 수 있
단 말인가? 이곳이 마진국의 성인가, 아니면 누구의 성인가?
박술희 낭자, 왜 이러시오, 낭자? 사실, 나는 한 번이라도 더 낭자를
뵈려고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하고 있소이다. 어떻게 그리 따
뜻한 말씀 한번 아니주시고, 혼만 내시오이까? 낭자, 제발 이
마음을 헤아려 주시구료.
대주 닥치지 못하오? 돌아가시오, 썩 돌아가시오.
계모 얘야, 대주야, 왜 이러니? 아, 오늘 왜 이래?
대주 가지 못하겠소이까?
박술희 아, 글세, 낭자..... 아이구, 이 머루주하고 이거 다 그냥 두
고 어떻게 가겠습니까? 낭자.....
아자개 아, 대주야, 아 얘가 오늘 왜 이렇게 흥을 깨고 그래? 대주
야, 대주야?
대주 그렇다면, 내가 나가겠습니다.
박술희 아, 낭자.
대주는 화가 나서 나가버리고, 박술희만 머쓱해 있다. 아자개가 도리
질을 하며 혀를 찬다.
계모 박장군, 이해를 하시오. 쟤 성깔이 본래 저렇게 날카로워.
박술희 옵니다, 큰마님. 소장은 그저 낭자의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
이 터질 것 같사옵니다.
계모 내가 왜 박장군 마음을 모르겠소? 다 때가 되면 연분이 이루
어지겠지요. 어서, 들어보시오, 이 꿩고기 좀 들어봐요.
박술희 고맙사옵니다, 큰마님.
아자개 그래도, 말이야 여자란 시집을 가면 다 달라지게 되어 있어
요. 사람이 변하게 되거든. 대주도 빨리 시집을 가긴 가야 겠
는데... 그러니까 이야기인데 그 왕장군이라고 하는 그 사람
부인이 둘이나 된다며?
박술희 예, 어르신.
아자개 맞아, 영웅호걸 치고 열 계집 마다하는 사람 누가 있겠는가?
암, 왕건장군은 영웅이고, 호걸이지. 대단했어. 그 철원의 궁
예왕은 참 좋은 장수를 두었단 말이야.
씬 27 철원 황궁 외경
씬 28 동 황궁 대전
어린 최응이 막 절을 끝내고 있다. 궁예가 그 소년 신동을 보고 있다.
아주 세세히 훑어 보며 살핀다. 박유, 종간이 미소 지으며 보고 있다.
궁예 (한참만에) 이름이.....?
최응 최응이라 하옵니다, 폐하.
궁예 나이가 열넷이라......(사이) 오경을 다 떼었다지?
최응 본래 학문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이옵니다. 어찌 다 떼었다
는 말을 쓸 수가 있겠사옵니까?
궁예 허허...그래...? 내가 듣기로 넌 신동이라 하였다. 나라를 다
스리는 데 있어서 그 근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최응 대학에 이르기를 수신(修身)한 다음에 제가(齊家)하고 그 다
음에 치국(治國)을 한다 하였사옵니다.
궁예 (놀랍다) 허면, 치국이란 무엇인고?
최응 윗사람이 먼저 백성에 대한 공경과 봉사의 본을 보이는 것이
옵니다.
궁예 또?
최응 대중의 지지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옵니
다. 더불어, 통치자는 먼저 덕을 쌓는데 힘써야 함을 근본으
로 삼아야 하옵니다. 선함으로써 하늘의 도움을 받고, 포옹력
을 가짐으로써 백성을 사랑해야 하고, 군자와 소인을 가려서
등용할 줄 알아야 나라를 오래 보존할 수 있사옵니다. 또, 말
씀 올리오리까?
궁예 덕을 밝히는 근본은 무엇인고?
최응 덕을 밝히는 근본은, 자신의 수양에 있다 배웠사옵니다.
궁예 어떻게 해야 사람은 자신을 닦을 수가 있는고?
최응 수신이란 본래 편파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옵니다. 상대를
미워하되, 그의 좋은 점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맹목적인 편애
가 사람과 나라를 더불어 망친다는 것을 알아야 하옵니다.
드디어, 궁예는 웃는다. 신기한 것이다. 바짝 다가가 최응을 본다.
해설 최응! 본관은 황주이다. 우리는 일찍이 그가 출생하였을 때
잠시 소개했던 적이 있다. 고려사 열전 최응편에서는 그에 대
해 이렇게 적고 있다. 벭聆응?모친이 임신하였을 때 그 집
오이 줄기에 갑자기 참외가 맺히므로 이웃 사람이 이를 궁예
에게 고하니 궁예가 점을 쳐 뫛勳꽁玖?나라에 이롭지 않을
것이니 절대 키우지 말라뮥?하였으므로 부모가 그를 숨겨두
고 양육하였다.?최응은 어려서부터 5경에 능통하고 문장에
능하여 궁예가 열서너살에 불과한 그를 원봉성으로 삼았는데,
뫠見Ⅹ?성인을 얻는다 함은 이 사람이 아닌가?할 정도로
궁예의 신임이 대단하였다 라고 되어 있다.
궁예 최응이라...? 최응이라고 하였느냐?
최응 예, 폐하.
궁예 보면 볼수록 신기하기만 하구나. 최응이라....마치 학처럼 고
고하게 생겼구나. 고기도 먹지 않는다지?
최응 예, 폐하.
박유 이 소년은 나물만 먹고 산다고 하옵니다, 폐하.
궁예 사실이 그러하냐?
최응 예, 폐하. 죽과 나물만 먹고 사옵니다. 그래야, 정신이 맑고
편안하옵니다.
궁예 신동이 아니라 성인이로다. 성인이야..... 이 나라에 성인이
나왔어. 마침 내 옆에서 책을 관리해주고 글을 대신해 줄 사
람이 필요하였다. 내 옆에서 원봉성(황제의 문서를 다루는 직
책, 조선조의 도승지 격)의 일을 보거라.
종간 (놀라며) 폐하.....?
궁예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능력에 따라 벼슬도 주는 것이야. 너
는 그리하라. 그리고, 내 옆에서 떠나지 말거라.
최응 예, 폐하.
궁예 하하하..... 참으로 기쁘고 반갑도다. 하늘이 내게 이런 성인
을 내려 주다니.... 제국의 앞날이 참으로 밝은 징조가 아니
겠는가? 아니 그렇소이까, 내원?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모두가 폐하의 복과 덕이시옵니다.
궁예 암, 암.... 자, 최응의 이야기는 이쯤하고 법회로 가십시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지요.
종간 그렇사옵니다, 신라의 전선에서 환장군과 홍유, 배현경, 김락
장군들도 잠시 법회에 참석차 올라왔다하옵니다.
궁예 오, 그래요....?
종간 그리고, 이미 황후마마께서도 출궁 준비를 하고 계시고, 수많
은 승려들과 신료와 그 가솔들이 법석에 나와 있사옵니다.
궁예 그렇다면, 가야지. 이 법회가 얼마나 벼르고 별렀던 법회인
가? 가십시다, 내원. 자, 최응이도 준비를 하거라.
최응 예, 폐하.
씬 29 길(철원 저자 거리)
황제인 궁예가 오고 있다. 황금 법복과 금책을 썼고, 황후와 두 아들
도 앞세웠다. 앞에는 숱한 승려들과 연꽃 등을 든 동남동녀들이 끝도
없이 앞서고 있고, 수백의 승려들이 옴마니반메홈을 외우며 따르고 있
다. (최대로 화려, 장엄하게 할 것)
씬 30 그 야단 법석
모든 신료들이 다 참석해 있다. 그리고, 백씨를 비롯한 호족의 부인들
도 모두 보인다. 오씨와 유씨는 물론이다.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다.
석총과 허월도 보인다. 다련군과 그 집사들도 보인다.
씬 31 또 다른 길
궁예 일행이 오고 있다. 그 화려함이 극에 달해 있다. 카메라 오고 있
는 궁예의 얼굴 어느 정도에서 스톱모션되며....
해설 궁예! 이 무렵의 기록을 삼국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
다. 궁예는 스스로 미륵부처라 일컫고 머리에는 금고깔을 쓰
고, 몸에는 방포를 둘렀으며, 밖에 나갈 때는 늘 흰말을 탔는
데, 비단으로 말 갈귀와 꼬리를 꾸몄다. 그리고, 두 아들을
신광, 청광 보살이라고 하였으며, 동남동녀들로 하여금 나부
끼는 일산과 향과 꽃을 받들고 앞에서 인도하도록 하였다. 또
한, 비구승 이백여 명을 시켜 찬불가를 부르며 뒤따르게 하였
다 라고 되어 있다. 그 행렬과 규모가 얼마나나 대단하였는가
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82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