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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스크랩 김정운(49)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 - 2011.8.14.중앙 外
하늘나라(홍순창20) 추천 0 조회 87 15.01.18 21: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창조는 편집이다 … 인생의 시간·공간 잘 편집해야 행복”

중앙SUNDAY에 ‘에디톨로지’ 연재하는 김정운 교수

 

정영재 | 제231호 | 20110813 입력
김정운(49·사진)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그는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뒤집고 다닌다. 자유·민주·정의 등 거대담론이 넘치는 한국 사회에서 일상에서의 재미와 즐거움,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TV에 출연해 명작과 명화에 스민 엄숙주의를 통렬하게 까발린다. ‘잘 놀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그의 주장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그가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의 허위의식과 철부지 심리를 해부한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쌤앤파커스)는 25만 부를 넘어섰다.

그가 이번에는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신개념을 들고 나왔다. 김 교수가 창안해 ‘편집학’이라고 이름 붙인 에디톨로지는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기’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론이다. “인생은 기억의 편집, 역사는 사건의 편집, 음악은 시간의 편집, 건축은 공간의 편집이다. 세상살이는 편집 아닌 게 없다. 따라서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잘 편집해야 즐겁고 창의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게 그가 말하는 에디톨로지의 뼈대다.

중앙SUNDAY에 ‘에디톨로지’라는 제목의 기획물을 연재하기로 한 김 교수를 지난 9일 만났다.

 


“폭탄주도 지나치면 나쁜 리추얼”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가 벌써 82쇄를 찍었다. 왜 이렇게 많이 팔린다고 생각하나.
“독자 비율을 보면 6대 4 정도로 여성이 많다. ‘남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유치함’에 대한 문화심리학적 설명이 재미있다고 한다. 반면 남자들은 자신이 절실히 느끼면서도 차마 얘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학자라는 사람이 얘기해 주니까 공감하는 것 같다.”

-많은 중년 남자가 ‘사는 게 재미없다’고 한다. 왜 그런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좋아하는 건 뭔가’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합쳐 놓은 게 난데 학교나 사회에서 그런 질문을 던져 보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들은 사회적 지위나 명함이 난 줄 안다. 그래서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나도 사라지고 허탈감·공허함이 남는다. 그건 불안으로 이어지고 불안은 분노와 적개심을 낳는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왜 모르나.
“한국 사회의 지나친 엄숙주의 때문이다. 삶에 대한 지나친 진지함이 본질을 오히려 놓치게 만든다. 왜 사나. 행복하려고, 재밌으려고 산다. 이건 궁극적 가치다. 자유와 민주 등 우리가 주로 얘기하는 담론들은 궁극적 가치인 행복을 추구하는 데 걸림돌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즉 자유·민주는 행복을 위한 수단적 가치다. 그런데 수단적 가치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뭐가 재미고 행복이냐는 궁극적 질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삶에 ‘리추얼’이 많아야 한다고 했다.
“리추얼(ritual)의 원래 의미는 종교적 의례·의식이었다. 지금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반복적 행위를 가리킨다. 리추얼이 풍성할수록 행복하다. 살아가는 의미를 반추해 주기 때문이다. 리추얼이 가장 강한 곳이 사관학교와 군대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앞장서 뛰쳐나갈 수 있는 것은 ‘내 조국과 가족을 내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명예심 때문이다. 그걸 만들어 주는 게 열병·사열 등 끊임없는 리추얼이다.”

-일상에서도 리추얼이 중요한가.
“당연하다. 내 독일 유학 시절을 돌아보면 유학생들은 모두가 학위 하나 받으려고 10년 이상 세월, 인생의 가장 빛난 황금기를 소모하고 있었다. 학위 받으면 인생이 풀리나. 그렇지도 않더라. 일상에 사소하고 즐거운 리추얼들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순간순간 리추얼을 즐긴다. 화장실에서 아이패드로 신문과 재미난 동영상을 보고, 추운 겨울에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쫙 나오는 순간을 기대하고, 커피를 직접 갈고 내리면서 커피향을 즐긴다. 이런 일상의 과정을 리추얼로 만들면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

-바람직하지 않은 리추얼도 있지 않나.
“그렇다. 폭탄주가 대표적이다. 폭탄주는 숨막히는 직장 생활의 탈출구로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독특한 리추얼이다. 폭탄주를 만들고 돌려 마시는 것도 일종의 놀이다. 하지만 빨리 먹이고 취하게 만드는 쪽으로 가게 되면 문제다. 건강에 해가 되는 것,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좋은 리추얼이 아니다.”

-리추얼은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과 맥락이 닿는 것 같다.
“맞다. 즐겁고 재미있는 리추얼을 반복하다 보면 수준이 올라가면서 희열과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몰입을 가장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게 스포츠인데, 인기 있는 스포츠일수록 리추얼이 발달해 있다. 야구는 감독의 사인, 선수의 몸짓, 특정 선수에 대한 응원가 등이 모두 리추얼이다. 골프에서 매 홀 티샷을 하기 전 습관적 동작을 프리샷 루틴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리추얼이라고 할 수 있다.”

 


“큰 반지 끼고 있으면 파라오 된 느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것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물론이다. 내가 지금 손가락에 큰 반지(사진)를 끼고 있는데 독일 유학 시절부터 반지 끼는 걸 좋아했다. 이렇게 큰 반지를 끼고 있으면 내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돼 수많은 시녀를 거느리고 있다는 즐거운 착각에 빠진다. 파마는 4년 전에 했는데 사실 원형탈모를 커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왕 할 것 내가 좋아하는 슈베르트 스타일로 가자 싶었다. 슈베르트 파마를 하니 안경도 그에 맞는 동그란 것, 의상도 파마와 어울리는 것으로 하게 됐다.”

-골프를 하면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는데.
“골프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게 있을까. 중요한 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이다. 남의 얘기를 하면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 골프장에서 소위 ‘통조림 개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캐디들이 수백 번도 더 들은 골프 관련 음담패설을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까’라며 읊어댄다. 정말 재미없다. 삶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나온 얘기들이 진짜 재미있는 거다.”

-아침형 인간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근면·성실하고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건 산업사회 패러다임이다. 새벽마다 약수터에 오는 사람은 모두 성공해야 맞지만 환자가 태반이다. 지금은 지식정보사회다. 창조적 사고가 중요하다. 창조의 본질은 재미다. 재미있는 사람만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 애플이나 구글 등 앞서가는 기업들이 사옥을 즐거운 놀이터로 꾸미는 게 그런 이유다.”

“난 재미없는 사람의 대표선수였다”

말끝마다 ‘재미’를 말하는 김 교수에게 본인은 재미있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는 “재미있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원래는 정말 재미없는 삶을 살았고, 그래서 재미없는 사람의 문제점을 잘 안다”고 대답했다. 그는 1980년대 초반 고려대 심리학과 재학 중 반독재 학생운동을 벌이다 강제 징집당해 강원도 최전방부대에서 복무했다. ‘재미없는 나라’ 독일에서 재미없는 좌파 비판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순간을 지켜봤다. 그래서 전공을 문화심리학으로 바꿨다.

지나치게 진지하고 심각한 청춘을 보냈지만 그는 자신 안에 유머감각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대학 와서 여학생들과 얘기를 하면 걔들이 정말 재밌어하는 걸 보며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때부터 ‘어떻게 얘기하면 재밌게 들어줄까’를 연구했다. 군에서도 가요책 뒤에 있는 펜팔난을 보고 편지를 보내면 98%가 답장을 보내왔다. 내 ‘말발’과 ‘글발’은 이처럼 실전을 통해 길러졌다.”

독일에서 돌아온 지 10년. 김 교수는 재미와 행복, 창조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다. 처음에는 ‘웃기는 사람’ 취급당했지만 지금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래서 한 단계 더 나간 게 ‘에디톨로지’다.

-에디톨로지를 좀 쉽게 설명할 수 있나.
“‘창조는 편집이다’는 명제를 설명하면 될 것 같다. 나는 내 과거 기억의 편집이다. 의미 있고 중요한 사건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의미 있는 사건들의 자의적인 편집이다. 그래서 역사의 기술은 시대 정신에 따라 바뀐다. 건축·디자인 등은 공간의 편집, 영화는 시간의 편집이다. 관점의 편집도 있다. 세계지도를 보면 모두가 자국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심지어 호주는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이처럼 우리 삶을 규정하는 편집을 내 삶 속에 적용시키면 창조적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게 에디톨로지의 요지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내 삶의 시간과 공간을 주체적으로 편집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는 책상부터 편집해야 한다. 왜 회사에서 주는 똑같은 책상을 쓰나. 내 돈 들여서 내 맘에 맞는 책상을 사서 내 방식대로 꾸며 보라. 일에 임하는 태도가 바뀔 거다. 왜 점심은 낮 12시에 동료와 함께 먹어야 하나. 30분 일찍 또는 30분 늦게 먹으면 쫓기지도 않고 제대로 대접받으면서 먹을 수 있을 거다. 요즘 화두가 되는 ‘스마트워크’도 자신의 시공간을 마음대로 편집하자는 얘기다.”

김 교수는 자신이 창안한 ‘에디톨로지’를 ‘편집학’이라는 독자적 학문 영역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사회학이니 심리학이니 하는 학문들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누군가가 만든 게 아니냐는 거다. 그는 ‘우군’을 만들기 위해 논문 대신 신문을 택했다. 김 교수는 “중앙SUNDAY 독자들이 내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편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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