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뮤지션이 된 딸이 1세대 이민자인 어머니의 삶을 되짚는 이야기.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삶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하나하나 베일을 벗듯이 이해가 된다는 건 바로 핏줄이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좀 지루했지만,
읽어내려갈 수록 빠져들었던 책.
모녀 사이의 갈등, 화해, 이해 같은 것들을, 디테일하게 잘 묘사했네요.
음악도 잘 하는데 글도 잘 쓰는 이 여자 - 질투가 나네요.
<아래의 글은 옮긴이의 글에서 발췌한 것임>
자우너의 가족은 중산층이라 경제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았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한 해 걸러 한 번씩 딸을 데리고 한국에 갔다. 자우너는 한인 교회의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잦은 한국 방문과 한국 친척들과의 친밀한 교류 덕에 어머니 나라의 문화도 풍부하게 경험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딴 세상의 사람처럼 느낀다. 엉클어진 애증의 모녀 관계는사실 동서를 막론하고 꽤나 보편적인 이야기지만, 이민자이게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언어와 문화의 장벽까지 겹쳐 서로를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예민한 사춘기를 지나며, 그 장벽은 점점 더 견고해지기만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기 암 선고라는 시련을 계기로 자우너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망가진 관계를 복원하려는 지난한 여정에 용감하게 나선다.
자우너에게 그 연결고리는 주로 어머니와 함께 먹던 음식이었다. 음식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기쁨을 주는 원천이자 한 집단의 특질이 고스란히 스며든 문화 요소다.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정체성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세상의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일을 그의 어머니는 무엇보다도 사랑했다. 자우너는 어머니가 즐겨 먹던 음식을 만들고자 요리법을 찾는다. 그리고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뿌리인 한국 친척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같이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게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고 정을 나누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한국 식료품점에서 간신히 구입한 식재료로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부지런히 만들어 가족과 함께 먹으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왔다는 사실도,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문화와 성장 배경이 어머니의 가치관과 습관, 두려움과 소망을 만들어냈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단순히 이민자라는 정체성 안에만 가둬 바라보지 않는다. 자우너는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가족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평생의 소명으로 삼아 충실하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오만하게 폄하한 자신의 짧은 생각을 반성한다. 어머니의 삶 또한 책이나 음악을 만들거나 일터에 나서서 돈을 벌어오는 삶 못지않게 가치 있는 삶으로 존중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고 어머니를 타인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loving 사람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lovely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인식하려 애쓰는 대목이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어머니라는 사람들은 타인의 입맛을 잘 기억해뒀다가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짬뽕과 바삭바삭한 전을 좋아하고, 홈쇼핑에서 구입한 물건으로 한껏 멋부리고 동네 미술 수업을 들으러 다니며 미숙하게나마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자기 이름을 새기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예술가이기도 하다. 누구누구의 엄마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소망을 가지고 고민하며 성장해나가는 사람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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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예술가의 성장 이야기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자우너는 음악과 처음 사랑에 빠진 풋풋한 시절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수많은 젊은 예술가가 겪는 시련, 이를테면 부모의 극심한 반대, 생활고, 기약 없는 미래로 불안에 떨던 경험도 솔직하게 들려준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아시아계 혼혈인 여성 예술가라는 겹겹의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또다른 종류의 좌절과 혼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누구냐고, 너 같은 아시아계 여자 가수는 이미 있는데 너는 대체 무얼 보여줄 거냐고. 하지만 영민하게도 그는 곧 자명한 대답을 야무지게 찾아낸다. 자신은 자유롭게 개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미국인인 동시에 갈비와 김치를 좋아하고 치킨을 먹을 땐 반드시 무피클로 입가심하고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들으면서 애수에 잠기는 한국인이기도 하다고. 이렇게 자우너는 자신에게 다가온 장벽을 하나하나 당당히 극복해내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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