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림보에 처음으로 방부를 드렸던 때가 2010년 이 계절 어느 날 이였으리라.
봄 도다리 쑥국이 입맛을 돋구던 삼천포 항에서 연안 여객선을 타고, 오래지 않아 접안을 시도한 곳이
바로 그날의 산행지인 지리망산이 있는 사량도 포구 였었는데 뱃전을 철썩 철썩 때리는 파도소리와
상큼한 갯내음이 물씬 거리는 바닷바람의 정취가 이만 저만이 아닐 즈음 선내에서 누구 술 가진 사람이
없냐는 황급한 소리가 들린다.
이런 찰나에 술이 땡기지 않는다면 물론 술꾼이 아닐 터이다.
정자동에서 부군이신 두발로님과 함께 오신 도미니카님께서 작은 펫트병을 건네 드리기 무섭게 한 입에
병을 무시곤 목젖에서 꿀꺼덕 꿀꺼덕 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참으로 맛있게 드신다.
난 투명한 펫트병에 들어 있던 소주가 쨍하는 햇살을 맞아 빤짝 빤짝 거리며 점점 수위를 낮추던 그 광경을
망연한 심정으로 바라만 보면서
나도 황혼의 나이를 먹었을 적엔 꼭 저 어르신 처럼 멋과 흥취를 아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그날의
산행이 다 끝나도록 마음의 돌벽에 새기고 또 새겼던 기억이 여태도 생생하다.
느림보 산행이 있는 화요일에 오리역에서 느림보 리무진을 승차 하노라면 제일 먼저, 가장 반가이 우리를
맞아 주시는 분이 바로 맨 앞좌석에 좌정하신 우리 느림보의 최고령 어르신 산악인이신 장 사장님 이시다.
그리곤 나를 향해선 꼬옥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드시고 나선 악수를 청하셨고 두툼하신 손이 참으로
듬직하다는 느낌이 많이도 들었던 분 이신데 어느 해
경남에 있는 천성산을 올랐던 여름이였던 가 보다.
B 코스를 택한 것도 모잘라서 산행 코스를 대충 대충 줄여 버렸던 탓에 난생 처음으로 선두팀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일찌거니 하산을 하여 주차장 옆에 있는 매점 쪽으로 가노라니 비취 파라솔 밑에 계시던 장 사장님께서
손짓을 하시며 오라신다.
가서 보니 산 미인 대장님께서 파전에 션한 병맥주를 대접해 드리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도 장 사장님께선
산 미인 대장님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 번을 하셨고 또 어느 때는 단비야님께서 캔음료를 드렸었던 가 본데
이 어르신께서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여 차마 그 음료를 드시지 못하고 집에 있는 냉장고에 여태도 금쪽처럼
보관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 어느 해는 당초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부를 오를려고 했던 우리 삐이팀들이 케이블카 탑승 시간이 잘못되어
만부득 산행을 포기하곤 집결지 근처에 있는 어느 계곡에 발을 담구고 이른 점심을 먹었었는데 흐미나
철암님께서 전복회를 바리 바리 싸 오신 것이 아닌가? 남자들
그시기에 좋다는 내장도 빼트리 않았을 뿐 아니라 고소한 기름장 또한 듬뿍 준비를 해 오셨다. 철암님
덕분에 전복회를 포식하시던 장 사장님의 환한 얼굴 모습이 너무도 보기가 좋았다.
식사를 마치곤 인근에 있는 사찰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내가 장 사장님의 손을 잡고선
따가운 햇살을 아랑곳하지 않고 경내를 돌았었는데 이 장 사장님은 육사를 졸업하시곤 6.25 전쟁에 참전을
하여 총상 까지 입으셨으며 육군 헌병대령으로 예편을 하셔선 우리나라 최고 권력부의 어느 기관에서 근무를
하시다 은퇴를 하신 분이신데 얼굴 모습이나 체구가 그린 베레와 기병대 라는 영화에서 열연을 한 미국의
영화배우 죤 웨인을 연상 시키셨고 가끔씩 대화를 해 보면 기억력도 비상하시고 늘상 주무시는 듯 눈을
내려 뜨고 조용히 계시지만 우리 느림보의 멤버 한분 한분도 정확히 알고 계실 뿐 아니라 산악회 전체가 돌아
가는 상황 또한 훠언하게 알고 계셨는데 지난 해 여름
지리산 계곡 산행을 마치고 내려 오니 그때도 어느 가게 앞 테이블에서 약주를 들고 계셨는데 몸이 약간씩
이상하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노인네들 의례 그러려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오리역에서 전철을 탑승하니 출입구 문쪽에 기대선 장 사장님이 눈에 띄어 얼른 달려
가서 보니 그때도 여느 때 처럼 눈을 감은 듯 뜨신 듯 한 상태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계셨다.
인사를 드리니 무척이나 반가워 하시며 느림보 산악회에 자주 자주 나오시라며 신신당부를 하신다.
그날의 만남이 이 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이란 걸 알았더라면 약주라도 한잔 맛있게 대접을 해 올렸을걸 하는
아쉬움이 내 아버님을 떠나 보내고 나서 했던 후회처럼 몹시도 내가슴을 아푸게 한다.
평소 말씀이 없으시던 장 사장님께서 몹시도 속이 상하셨었던 가 보다.
느림보 회원 몇 분이서 함께 들었다. 장 사장님의 유언처럼 소중한 그 말씀은 여직 기억이 생생하다.
그해 여름 특집으로 강 대장님께서 1박 2일 섬산행을 기획하셨기에 주변의 몇 분 여친들께 섬산행을 함께
가 주시면 산행비를 포함하여 체재비와 기타 경비 일체를 장 사장님께서 몽창 부담을 하겠다고 통보를
하였는데 여태껏 함께 섬산행을 가겠다는 제의를 하는 여친은 단 한 명도 없다면서 여러분들은 제발
나이란 걸 먹지 말라면서 신신 당부를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성주괴공 생자필멸 이라고들 한다. 우리 장 사장님도 필경
젊고 생기 발랄한 시절이 틀림없이 있긴 있었을 것이다.
세상 중생들의 모든 어려운 소리를 들어 주신다는 관세음 혹은 관자재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바로키테
슈바라의 의역이고 여기에서 보살은 보티 사트바 즉 보리 살타의 음역인데 보살은 쉽게 말하면 부처가
되기 바로 직전의 단계라고 보면 된다. 관세음 부처님이 보살의 단계에서 머무르고 계심은 세상 모든 중생
들의 구제를 위해서 라고 한다. 왜냐하면 부처의 경지에 이르면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과는
주파수가 틀려서 교감이 어렵기 때문 이라고들 한다. 지옥을
관장하고 계시는 지장보살님 또한 이러한 연유로 성불을 늦추고 있다고 하는데 금산의 보리암이란
암자명은 불가에서 추구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 즉 위로는 진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그 글귀에서 따 왔는데 관세음보살님은 그때 그때 형편에 따라서 여러 모습으로 화현을 하신다.
바닷가에선 해수 관세음보살로 관악산 연주사에선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로 혹은 버드나무 가지를 든
양류 관세음보살이나 석굴암 본존불 바로 뒷에 계시는 십일면 관세음보살님도 계시는데 난 어제 금산
산행에서 금산 해수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는 이적을 경험하곤 여태도 그 감흥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느림보 산행을 할 즈음이면 난 늘 그러하듯이 후미에서, 요번에 새로이 임명된 후미 꽃님 대장님의 매서븐
채찍질에 휘 갈기며 어정거리는 지라 기껏 눈요기를 하는 것이 홍두깨로 국수를 밀 적에 밑에 받히는,
편편하고 넓은 송판 즉 안반 처럼 듬실 듬실한 에쉴리 여사님의 히푸를 지겹도록 감상하는 것이 고작인데
오늘은 초반부터 보리암 해수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할 욕심에 걸음을 서둘렀던 가 보다. 산 중턱 쯔음에서는
앞서 가시던 야생화님의 뒷모습이 눈에 띈다.
중년이 된 사람들의 건강의 바로미터 즉 척도는 딱 두 군데 뿐이다.
겨드랑이에서 팔로 내려 가는 즉 삼두박근 쪽과 히푸에서 허벅지 근육 즉 대퇴근으로 빠지는 이 두 곳이
노폐물과 지방으로, 오뉴월 돼지 부랄 쳐 지듯 추욱 늘어져 있느냐 아니면 매끔한 근육질로 형성되어 있느냐
두가진데 야생화님은 산행을 많이 하셔서 인지 건강미가 40대 극초반 정도일 뿐 아니라 화장실이 위로 처억
올려다 붙어서 인지 다리도 몹시 길어 보인다. 아 뜨발 내가
일주일만 젊었어도 하는 생각으로 정신이 오락 가락할 즈음 갑작스레 부처님이나 보살님들께서 나투실 적에
나타나는 밝은 빛 즉 광배가 눈을 찌르는 듯 하여 고개를 뒤로 돌려 보니 아! 대한민국이여
불가에서 삼천년 만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 꽃 그 다음으로 아름답고 신묘하여 천년 만에야 겨우 핀다는
금낭화 꽃이 해수 관세음 보살님으로 화현을 하여 강림을 하신 것이 아닌 가?
손발이 부들 부들 떨리고 어금니에서 떡 떡 거리는 소리가 날 즈음에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웅 보살님께서도
싱그런 풋사과의 향내와 함께 승화된 아름다움이 은하계의 곰자리 별 처럼 광채를 발하면서, 해수 관음보살님이
쌍을 이루어 연신 나타 나신다.
황급히 엎드려 삼배를 올리고 나선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 버린다.
얼마를 그 자리에서 혼자 서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식겁을 했었던 가 보다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여 발길을 옮길려고 하니 바지춤에서 등산화 속으로 몬가 연신
흘러 든다. 잠시 오줌을 지렸다.
오랫만에 느림보의 일원이 되었었는데 흐미 봉선화 처럼 터질듯한 젊음의 열기가 너무 좋더만요.
토요일은 밤이 좃타면서 밤새도록 고고춤을 추면서 지랄발광을 뻐드던 광란의 잊지 못할 그 밤들과 자신이
오셨던 어느 별자리로 다시 돌아 가신 장 사장님을 그리며 이만.
분당 탄천변에서 콩고의 피그미 침팬지 보노보 돌삐 드립니다.
첫댓글 참으로 오랫만에 돌삐님의 말도 않되는 허구에 웃어봅니다.
돌삐님의 글을 오랫동안 읽어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진실인듯..허구인듯..그 경계를 잘 짚어내셔야 오해가 없으십니다.ㅎ
느림보의; 상징같으셨던 장사장님의 타계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늙으막에 느림보가 가장 즐거움을 주었다는 자제분의 전화가 아니었더라도
그 연세에 먼길 움직이시는 그 모습은 누구에게나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어제는 환하게 핀 벚꽃을 보며 다시는 저 꽃을 볼 수 없는 장사장님을 잠시 떠 올렸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사랑할 수 있을때 사랑하고
걸을 수 있을때 마음껏 걸으세요~~!!
오랜만에 뵙게되어 반가웠습니다.
돌삐님 이번에 너무잘가셔서
산에선 못뵈었지요.
보리암에 와서 살짝뵈었죠.
선두을 맡으셔도 될듯하십니다.
돌삐님의 글솜씨는 다 읽어내려 가기도전에 느림보에서만 읽는것이 많이 아쉽다고 생각이 듭니다.
구구절절
지난 이야기도 잊지않고 메모라도 해놓으신듯 꼼꼼히 글을 쓰십니다요.
혹여 실수라도하면 ㅇㅇ처럼 매번 글속에서 양념으로 등장할것같아서 조심 스럽기까지~ ㅎ
가끔 오심에도 산행속도는 선두 뺨치십니다요.
돌삐님 반가웠습니다.
내가 보기엔 돌삐님이 야생화님 아름다운 모습에 정신줄을 놓고 기가 빠져 헛것을 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