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9년 1월 17일(일)
장소 : 산천단-소산오름-칼선내-초지대-삼의악봉-아라목장-초지대-출발점
참석 : 15명(여 4명)
홍관표 동창이 지난 정기총회에서 산악대장 추천되어 첫 산행일이다.
아침공기는 싸늘했지만 모두 밝은 미소로 보건소에 모여 산천단으로
이동하였고 산행 내내 찬 공기는 어디가고 봄날같이 햇살이 내리는
포근한 날이었다.
나도 작년에 부진한 산행을 올해 작심삼일로 끝내지 않으려고 각오를 다지며 합류했다. 오후에는 두원 동창 아들 결혼식(오리엔탈호텔)에 산행한 친구들과 함께 갔고,
여성분들은 오리엔탈호텔 서쪽 ‘산호전복’에서 점심을 하였다.
나는 또 대전에서 오신 해설사 선생을 만나기 위하여 조천읍 선흘리 낙선동으로 달려 오후 일정은 제주4·3 유적지 답사 길에 올랐다.
1470년(55세) 제주목사로부임~1473년 이임한 이약동 목사는
벽진이씨이며 조선관료들 중에도 청백리로 선정된 목사이다.
제주는 고려 때부터 한라산 정상에서 국가제례로 지내고 있었는데 정월 초에 한라산에 오르려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노촌 이약동 목사께서 지금의 자리인 산천단으로 제단을 옮겨 시행하면서부터 '산천단'이라는 명칭도 부여 된 것이다.
나는 2018년 제주문화원 답사팀에 합류하여 노촌선생 묘를 찾아보았고 후손들과 교류하여 덕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노촌 후손들은 매년 산천단 제일에 참석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제주도 안내를 하고 있다.
또한 노촌선생은 제주를 떠날 때 말채찍 하나라도 갖고 가면 안 된다고 하여 제주목 정문에 채찍을 걸어 놓았던 일화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요즘 공무원들 본 받아야 할 것이다.
이 기적비는 당시 현평효 제주대학장께서 단기 4323년(1992년) 추진하여 건립하였다.
산천단 토종닭 집 울타리는 각구목으로 담장을 이쁘게 쌓았다.
산천단 곰솔은 이약동 목사가 제단을 옮길 때 소나무 밭이라 생각이 들었다. 제단이 설립 되고서는 금기시 하는 장소라 누구도 함부로 나무를 자를 수 없어 오늘 날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1471년에 제단을 옮겼으니 이 소나무도 대략 700년은 되었을 것이다.
20년 전만하여도 14그루가 있었는데 세월 앞에 견디지 못하여 태풍에 몇 그루는 쓰러져 죽고 현재 8그루가 남아 있다. 재선충 옮길까 제주시에서는 노심초사 하여 관리하고 있다.
출발하면서 우리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놓았고
대나무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소산오름을 오른다.
오름의 유래는 안내판에서 확인하도록 ~~~
우리가 중학교 시절 식목일이면 이 산에 와서 소나무,편백나무,
삼나무를 심었는데 당시에 우리들 심은 나무도 여러 그루 있을
것이다.
탐방로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한번 살펴보면서
칼선내로 향하여
아라역사문화 탐방 길을 가로지르면서
2012년 경 경주(현 동창회 총무) 동창이 새집 10개 정도
달아서 지금까지도 우리들 모습을 볼 수 있어 입가에
미소를 짓게했다.
밤나무 군락을 지나
탐방로 안내판을 또 확인하고
가는데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산책로를 따라
드디어 확 트인 초지대 목장 밭에 도착하여
숨 한번 돌려 쉬고
입구로 들어서서
멀리 한라영산을 쳐다 봤더니 상고대 흰꽃에 눈이 시리다.
삼의악, 삼의양악, 새미오름 등으로 표기하는 오름으로
새미오름의 근간은 바로 요 물이다.(용출수) 가뭄에도 졸졸 흐른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멧돼지 가족이 먹이를 찾느라고 난장판이었다.
제주시가지가 잘 보이는 장소에서
자신의 추억록을 만들어 보고
아, 제주시가 정말 많이 크구나 하는 이야기들도
인구 30만이 넘으면 대도시로 분류한다.
억새꽃이 겨울 바람에 하늘하늘
1700고지에는 상고대를 보니
얼른 달려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