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의 위대한 선택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번 5·31 지방선거는 열린우리당이 권력과 조직력을 광주에 총동원해 치러진 선거입니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또 한번 광주의 자존심을 살리고 광주의 위상을 드높인 선택을 했습니다.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의 승리는 저 박광태의 승리에 앞서 끝까지 저를 지켜주시고 성원해주신 광주시민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모든 영광을 광주시민에게 돌려드립니다.
선거기간 동안 저에게 보내준 시민들의 지적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는 데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저에 대한 또 다른 사랑과 믿음의 표현이라 믿고 '일등 광주' 건설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선거기간 동안 표출됐던 갈등을 해소하여 화합의 광주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일등 광주' 건설에 너와 내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앙금을 털고 풍요로운 광주 건설에 벽돌 한장씩 쌓는 심정으로 모두 함께 동참해줄 것을 호소합니다.
자랑스런 광주는 어느 개인의 몫이 아니라 140만 광주시민 모두 함께 만들어가야 할 가치있는 사명입니다. 민선 4기에는 갈등과 분열을 딛고 일어서 모두가 하나 된 위대한 광주정신의 실현으로 화합의 광주를 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민주당에 대해 보내주신 뜨거운 성원에 대해서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광주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2007년까지 우리 민주당이 중심이 돼 정권 창출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광태 당선자 걸어온 길
박광태 당선자는 해방전인 1943년 완도의 외딴섬인 고금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후 목포에서 문태고를 졸업했다.
학교 은사와 친구들의 권유로 조선대 법대를 택했고, 오늘날까지 '인간적 신의'를 삶의 모토로 삼으면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격의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를 지내면서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강한 추진력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간직한 박광태 당선자는 1969년 야당인 신민당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박정희 정권 때부터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20여차례 연행과 투옥을 겪었다.
이후 1992년 제14대 국회에 입성해 광주에서 내리 3선을 기록하면서 오로지 민주당만을 주장하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민주당과 역사를 같이했다.
97년 대선때는 범야권 대통령 후보 단일화 협상 간사를 맡았으며 외환위기 직후 당 제2정조위원장을 맡아 한남투자신탁 예금자 보호대책을 마련, 지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제3대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에 당선된 박광태 당선자는 광주 경제 활성화에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리'와 '믿음'을 최고의 덕목으로 살아간다는 박광태 당선자는 광주시청내에서는 덕장으로 통한다. 가족은 부인 정말례 여사와 사이에 1남1녀.
▲1943년 완도 출생 ▲조선대 법정대학 ▲민주당 사무부총장 ▲14·15·16대 국회의원(광주 북갑) ▲국민회의 제2정조위원장 ▲국민회의 경제대책위원장 ▲민주당 북갑지구당 위원장 ▲민선 3기 광주시장
첫댓글 완도에서는 고금도 분이 큰사람이 마니 나오네요.... 지가 아니고 제 아버지가 고금도가 고향이레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