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신 / 하늘꽃 윤외기
해마다 목련이 눈치 없이 하얀 봉오리를 터뜨릴 때면, 나는 안방 가장 깊숙한 곳에 놓인 어머니의 오동나무 장롱을 떠올린다. 그 장롱 세 번째 서랍, 겹겹이 쌓인 광목천 사이에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낡아가는 비밀 하나가 숨어 있었다. 분홍색 비단 바탕에 연두색 코를 세우고, 옆면에는 국화 문양이 촘촘히 수놓아진 꽃신 한 켤레였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오면, 버선코 앞세우고 꽃향기 따라 불어오는 바람결에 어머니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서랍 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꽃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마 밟아보지 못한 청춘의 길목이었고, 가시밭길을 걷느라 문드러진 발가락 끝에 매달아 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나는 오늘 그 꽃신 속에 갇혀 있던 어머니의 숨소리를 꺼내어 보려 한다.
어머니에게도 시간의 중력을 이기며 날아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열아홉,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봉오리처럼 싱그럽던 무렵의 어머니를 상상해 본다. 수줍은 미소는 꽃숭어리처럼 화사했고, 그 미소가 머무는 자리마다 동네 총각들의 마음에는 일렁이는 파도가 일었을 것이다.
그때의 어머니는 거미줄에 수를 놓듯 정교하게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을지 모른다. 비단실을 골라 꽃을 수놓듯, 당신의 삶도 화려하고 단단한 무늬로 채워질 것이라 믿었을 터다. 길 떠나는 님의 발자국을 멈춰 세우고,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발을 떼지 못하던 청춘의 한 자락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광활한 하늘의 햇살이 어머니의 어깨에 머물며 영원히 함께 놀자고 약속하던 그 봄날, 꽃신은 비로소 어머니의 발끝에서 완성될 준비를 마쳤었다.
그러나 꽃잎 떨구듯 아름다움도 잠시였다. 혼인이라는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꽃신은 장롱 속으로 유배되었다. 비단길인 줄 알고 들어선 길은 날카로운 자갈이 박힌 황톳길이었고, 당신이 마주한 현실은 시린 서리가 내리는 한겨울 벌판이었다.
어머니는 꽃신 대신 코가 다 떨어진 검정 고무신을 신어야 했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산밭으로 향할 때면 고무신 속으로 늘 축축한 흙탕물이 스며들었다. 자식들의 입에 들어가는 한 술 밥을 위해 당신은 꽃향기 대신 비린 땀 냄새를 선택했다. 화려했던 꽃숭어리는 세월의 모진 풍파 속에 하나둘 낙화했다. 당신의 고왔던 목소리는 가파른 고갯길을 넘는 거친 숨소리로 변해갔고, 몽올몽올 피어오르던 꿈들은 자식들의 학비와 등록금이라는 현실적인 숫자 뒤로 숨어버렸다.
가장 추웠던 어느 정월, 수도가 얼어 터져 앞마당 우물가에서 얼음을 깨며 빨래를 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당신의 손은 찬물에 젖어 붉다 못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손등은 이미 가뭄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낀 때와 흉터는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엄마, 힘들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시린 손을 얼른 등 뒤로 숨기며 말씀하셨다. "아니다, 우리 아들 손 시릴라. 저리 가 있거라." 혹여 자식 마음 다칠세라 내뱉으신 그 한마디가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당신의 몸이 부서지는 것보다 자식의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어머니. 그 주름진 손등은 당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의 지도이자, 우리를 키워낸 생명의 밭이었다. 거칠어진 손등 너머로 보이는 뽀송뽀송한 어머니의 얼굴, 그것은 외양의 쇠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기억 속에 영원히 박제된 성모의 모습이었다.
자식들이 장성하여 제 앞가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의 얼굴에는 수천 개의 잔주름이 깊게 패었다. 하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그 눈빛만은 처음 꽃신을 가슴에 품었던 열아홉 소녀처럼 여전히 맑았다.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결한 평온함이었다. 당신은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가시에 찔린 자리마다 꽃씨를 심으셨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모진 세월을 지난 이의 얼굴이 저토록 온화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어머니의 장롱 속 꽃신을 꺼내어 본다. 누렇게 빛바랜 비단 신발을 가만히 만져본다. 이 신발은 단 한 번도 길 위를 걷지 못했지만, 사실 어머니의 평생을 함께 걸어왔다. 비 내리는 시장 골목에서도, 뙤약볕 내리쬐는 밭이랑에서도,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늘 이 꽃신이 신겨져 있었을 것이다.
님이시여, 주름진 손등처럼 간절한 이 부름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된다. 어머니, 이제는 그 고무신을 벗으셔도 됩니다. 당신이 지나온 가시밭길은 이제 우리가 꽃길로 닦아놓겠습니다. 시커멓게 멍든 발톱과 굳은살 박인 발바닥에, 장롱 속 그 고운 꽃신을 신겨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대지의 가시를 벗어나 하늘의 꽃으로 피어나실 것이다. 광활한 하늘 햇살 속에 머물며, 수줍게 웃던 그 꽃숭어리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거미줄에 수를 새기며 노시라. 당신의 삶은 결코 지지 않는 영원한 꽃신입니다.
첫댓글 어머니는 다 그러셨지요.
우리 어머니도 꽃신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고단한 세월을 살아오신 어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생하신.어머님들의 꽃신.. 잘 감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울엄마는 꽃신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꽃신! 그리울 때마다 꺼내볼 수 있으니 부럽습니다.
와.. 정통 수필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꽃신. 저는 웨딩슈즈를 결혼식 날 한 번 신고 신발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는데요. 결국 의류수거함에 넣었어요. 안 신어서요^^ 요즘 아이들은 꽃신이 없으니 엄마의 고충을 모를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