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조선의 기본 외교정책인 사대교린(事大交隣)정책에 관해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사대(事大)를 할 때 외교관들의 사행 길에 꼭 필요했던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 혹은 牛黃淸心元)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행길 2천리를 내쳐 달려 북경까지 가려면 온갖 고생을 다했기에 상비약으로 우황청심환이 필요했을까? 아무리 상비약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한 사람당 우황청심환만 200알씩 들고 가는 이유….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영감, 이번에 청나라 사행 길에 가신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박영감. 북경까지 그 먼 길을 어찌 갈지…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거립니다.”
“흠, 길도 길이지만, 중국 놈들이 거지 떼처럼 달라붙을 터인데…우황청심환 하고, 부채…그래, 종이도 좀 챙겨 가시구랴.”
“예? 우황청심환이요?”
“예, 개인당 200알씩 챙겨가야 할 거요.”
“우황청심환으로 밥 비벼 먹을 일 있습니까? 약물 오남용이 얼마나 안 좋은데….”
“아따 말 많네, 먼저 간 선배의 충고라니까. 챙기기 싫으면 챙기지 마슈.”
조선에서 사신들이 길 떠날 차비를 할 그 무렵, 중국에서는 조선에서 사신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저마다 조선 사신들 맞을 차비를 하는데,
“조선에서 사신들 온다 해.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환(眞丸)을 구해야 한다 해!”
“안되면 사기라도 치고,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애걸이라도 해야 한다해!”
중국의 민초들,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조선의 사신단을 기다리는데….
“아따, 책문도 지났고…. 쪼메만 더 가면 산해관(山海關 : 북경으로 들어가는 관문 전략적 요충지)이구만…. 빨리 가자!”
사신단을 이끌던 정사(正使)가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때 사신단의 앞길을 막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중국 마을의 마을 사람들이 길가에 쭉 나와 사신단을 막은 것이었다.
“야, 네들 지금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 우린 지금 너네 나라 황제 만나러 가는 길이라니까…. 네들 우리 막았다간 너네 황제한테 죽도록 두들겨 맞는다!”
“사신 나리, 지금 바쁘다는 거 안다 해.”
“바쁜 거 아는데 왜 막는 건데? 바쁜 거 알면 후딱 길 비켜!”
“울리 사람, 조선 사신단 온다는 소식 듣고, 3박4일간 잠도 못 잤다 해…. 못 잔거 책임져라 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 하는데, 울리 산 사람 소원 들어 달라 해.”
“…지금 뭐하자는 토킹 어바웃이냐? 내가 너네들 소원을 왜 들어줘야 하는데?”
“좋은 게 좋은 거 아닌 가 해? 불우이웃돕기 한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도 전화 꾹꾹 눌러주는 세상이다 해. 우리는 그래도 얼굴이라도 봤다 해.”
“…그래서 어쩌라고?”
“에…아주 간단하다 해, 진환(眞丸)있으면 한알만 달라 해.”
“진환? 진환이 뭔데? 어이 역관! 동시통역사! 쟤네들 지금 뭐하자는 플레이냐?”
“저기…우황청심환 있으면 좀 달라는 소린데요? 어쩌죠? 걍 몇알 던져주고 갈까요?”
“야야, 쟤들 우황청심환을 왜 달라는 건데? 진환(眞丸)이 그럼 우황청심환이란 소리야?”
“예…거시기, 쟤네들이 우리나라 우황청심환이 무슨 만병통치약 정도로 알고 있어서요…. 우황청심환 하나 먹으면 죽었던 사람도 살아나는 걸로 알고 있슴다.”
“쟤네도 우황청심환 만들잖아?”
“그게…원래 메이드 인 차이나가 좀 그렇잖습니까? 괜히 따오판이라고 합니까? 저것들이 돈 된다니까 짝퉁을 만들고, 이상 야리꾸리한 걸 다 섞어서 둥글게 만들고는 전부 우황청심환이라고 속이니까 짝퉁 먹고 탈나고 아주 쌩쑈를 했답니다. 그래서 진짜배기…메이드 인 코리아 우황청심환을 진짜 우황청심환이라고 진환(眞丸)이라고 말하면서 사신단 지나갈 때마다 아주 쌩쑈를 합니다.”
“에휴…인생이 불쌍타, 어이 종사관! 우황청심환 몇 개 던져주고 길 떠나자!”
정사의 명을 받고 종사관이 품안에서 우황청심환을 몇 개 꺼내 던지자, 중국인들 벌떼처럼 달려드는데,
“영감, 산해관에 들어가게 되면 우황청심환이 더 필요할 겁니다.”
“그건 또 무슨 토킹 어바웃이냐?”
“뙤놈들이 그래도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조선제 우황청심환이 최고라고 우리가 발자국 뗄때마다 우황청심환 하나 달라고 쌩쑈를 합니다. 아마 우리가 도착했다고 예부(禮部 : 청나라 외교부)에 보고 할 때도 청심환 몇 박스 쥐어줘야 일이 잘 풀릴 겁니다.”
“하…. 자식들 뇌물 밝히는 건 익히 알았다만, 돈 대신 청심환을 더 밝힌다니….”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청심환 하나만 있으면 왠만한 건 다 패스 되는데…. 좋게 생각하십시오 영감.”
이리하여 조선의 사신단은 청심환을 뇌물로 해서 무사히 북경에 입성하게 된다. 조선시대 중국에서는 조선의 우황청심환을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조선제 청심환 하나를 구하기 위해 별별 짓을 다했다. 시골촌부서부터 시작해 산해관의 관문 관리, 북경의 관리들까지 조선제 우황청심환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는데, 관리들이야 말만 잘하면 얻을 수 있기에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정작 문제는 사신단이 지나가는 마을에서였다. ‘조선 사신단’이라는 소문만 퍼지면 사신단을 붙잡고 진환(眞丸)을 달라고 통사정을 하고, 안되면 사기를 쳐서라도 청심환을 챙기려 들었으니…. 사신단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사행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돈 대신 통용될 수 있는 것이 청심환 이었기에 청심환만 챙겨 가면 만사형통이란 것이었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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